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18화 (119/224)

118장. 당신도 사표 내야지.

“로빈 타일러. 어쩌면 RT라는 이니셜을 사용하고 클럽 주변에 위장 업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내 말에 양하석이 김인선을 바라봤다.

“맞은편 방에 RT라는 자가 함께 있는데. 과장님이 말씀하신 파견 관리자로 의심이 됩니다.”

양하석이 나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로버트와 로건이 그쪽을 파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국내 정보를 획득하는 쪽에선 양 과장님이 한 수 위일 것으로 생각되니.”

“네. 대표님! RT라는 자를 일단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인선과 밖으로 나간 양하석은 RT라는 자만 밖으로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국정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혹시 안면이 있는 자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RT와 마주친 양하석은 RT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한숨이 쏟아졌다.

“어?”

RT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여기서 형이 왜 나와?’ 하는 표정이다.

“오랜만이다. 태석아. 너 여기서 뭐하냐?”

“어…….”

억울하다며, 자신은 이곳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버티고 있던 RT는 석상이라도 된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양하석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과거 자신의 사수였던 남자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봤기 때문이다.

“아니…… 양 선배님이…… 여기 왜…….”

RT 또는 로빈 타일러로 활동 중이던 류태석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왜 여기 있을 것 같냐?”

“그러니까요. 선배님이 왜…… 이쪽 파트도 아니지 않습니까.”

양하석이 회사를 나와 Go 컴퍼니에 들어갔다는 걸 모르는 류태석이다.

부서가 다른 양하석이 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는지 도무지 감을 못 잡겠다는 표정이다.

RT는 룸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설마, 저놈들 때문입니까? 시끄럽지 않게 위에서 조용히 묻으…….”

“묻긴 뭘 묻어. 있는 것도 다 파헤칠 상황인데.”

“네?”

“쯧. 니 인생도 참.”

양하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주몽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RT 씨가 선배님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말입니다.”

김인선의 말에 RT가 ‘당신도 회사 사람?’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무튼, RT 씨 이제 좆돼버렸습니다. 정보원 팔자 뒤웅박이라고 하지만 인생 참…….”

김인선은 연신 혀를 차대며 RT를 룸에 밀어 넣었다.

“인선 씨. 앞뒤 다 자르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귀띔을 해주라고. 인선 씨도 Go 컴퍼니에 위장 근무 나가 있는 것 같은데, 같은 회사 사람끼리 그 정도도 못 해줘?”

“미안해서 어쩌죠?”

“뭐가?”

“위장 근무도 파견 근무도 아닙니다.”

“뭐?”

“Go 컴퍼니로 이직했어요. 장난 아니고 진심으로.”

“…….”

RT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혹시…… 양 선배…….”

“네. 과장님 파트는 물론이고 이번 인사에서 억울하게 밀려난 직원들까지 통째로 이직했습니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국정원에서 업소 차려 놓고 마약 장사하는 건 말이 됩니까?”

“!”

RT는 헤드라인이 회사 관리하에 있다는 게 다 알려졌음을 알아차렸다.

양하석이 직접 나타나 얼굴까지 비친 이상 어설픈 변명이나 오리발은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이 상황을 상부에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선배님 눈빛을 보아하니, 위쪽에 전화라도 넣어볼 생각인 것 같은데. 내가 충고 하나 해도 될까요?”

“충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뭐?”

“그냥 지금 이대로 조용히 있으면 그나마 살아날 구멍이라도 있겠지만, 여기저기 말 옳기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겁니다.”

“협박이냐?”

“풋. 협박이요? 선배 정신 차리세요. 밖에서 약장사, 물장사하다 보니 감이 떨어진 겁니까. 아니면 개념이 사라진 겁니까? 지금 누굴 상대로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요?”

“Go 컴퍼니?”

“잘 알고 계시네. 선배나 나나 이럴 땐 바짝 엎드려서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신상에 이롭습니다. 어설프게 나섰다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요. 아니면 잘려나간 꼬리가 돼서 곰탕 재료로 전락하거나.”

“아무리 Go 컴퍼니라고 해도 상대는 회사다. 그게 맘대로 될 것 같아?”

RT의 말에 김인선을 고개를 저었다.

“정상적인 업무였다면……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었겠죠. 그런데 이게 지금 회사 간판 걸고 할 일입니까? 이번에 2차장 날아간 것도 똥오줌 못 가리고 깝죽거리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아무리 밖에 나와 있다고 해도 회사 돌아가는 소식 정도는 들었을 것 아닙니까.”

“…….”

“앞으로 볼만하겠습니다. 회사가 약장사는 물론이고 강간범을 VIP 등급으로 길러내고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참~ 재미있겠어요. 선배님 생각은 어때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

* * *

대한민국 새벽 뉴스에 느닷없이 폭탄이 떨어졌다.

약쟁이 육 형제가 마약 투약 및 약물 강간 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방송이 된 것이다.

Go 컴퍼니와 전쟁을 하게 생겼다는 말에 미친놈처럼 달려왔던 현화 그룹과 각 기업 대표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검사들에게 아들들이 잡혀가는 것을 멍청히 지켜만 봐야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떻게든 시간이라도 벌어보겠지만, 강간 미수 피해자가 된 여성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증거까지 쏟아지자 도무지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어떻게 알고 쫓아왔는지 JTB 보도국장 한성희가 스마트 폰 카메라까지 들이댔다.

“아버지! 그렇게 지켜만 보면 어떻게 합니까!”

“검찰 고위층에 연락이라도 넣어줘요!”

“아악! 놔!”

약쟁이들은 수사관들을 밀치며 반항을 했지만, 결국 수갑이 채워졌다.

한성희는 1인 너튜버처럼 혼자서 이야기하고 혼자서 설명을 하며 클럽에서 벌어진 엽기행각을 실시간으로 터트렸고, 너튜브 영상을 이어받은 JTB 보도국은 긴급 뉴스를 편성해 이 모든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새벽녘 벌어진 재벌 2, 3세들의 엽기 행각 고발 뉴스는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평소 같으면 일탈 정도로 마무리하며 대충 덮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보수 언론들까지 나팔을 불어댔고, 종국엔 특집방송으로 2차, 3차 편성돼 과거 있었던 비리와 엽기 행각까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김덕영은 바통을 넘겨받아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를 더는 방관할 수 없으며,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도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낸 것이다.

신당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들고 나왔다.

기존 여당과 야당은 기겁하고 막아섰으나 국회를 장악한 신당의 의석수 앞에선 그야말로 당랑거철이 따로 없었다.

힘으로 막아서고 싶어도 숫자가 딸렸고 국회법으로 막고 싶어도 교섭단체조차 되질 못 하니 그저 공허한 외침만 반복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 한 정당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하나 더 터져 나왔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강남 클럽을 국가정보원에서 운영했다는 의혹이 쏟아진 것이다.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정부를 성토했고, Go 컴퍼니의 지원을 받은 시민단체들이 움직이자 이는 촛불 정국으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국민의 시선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에 집중이 됐다.

신당이 들고나온 징벌적 손해배상과 사회지도층의 불법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지지성명을 시작한 것이다.

고주몽 납치 살해 시도로 총선 패배라는 고배를 마시고 신뢰도마저 바닥을 치는 바람에 시름시름 앓고 있던 청와대는 이번 일까지 겹치면서 너덜너덜해졌다.

오전 중 진행된 국무회의는 의기소침 그 자체였다.

뭘 해도 힘이 나질 않으니 다들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축 처진 분위기가 이어졌다.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청와대가 아니라 초상집이 따로 없다.

회의를 마친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국정원장을 따로 불렀다.

“검찰에선 뭐라고 합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민정수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국민의 뜻에 부합된 결과를 내놓겠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법적 절차에 따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모든 걸 파헤치겠다고 합니다.”

“후우.”

이명환 대통령은 연신 한숨을 내 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마음 한뜻으로 동조하기도 어려웠다.

“국정원장. 세간의 소문이 사실입니까?”

국정원장 서길우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이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까!”

“전 전대 정권에서…… 죄송합니다.”

서길우는 나름 변명이라도 해 볼까 했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조직에서 벌어진 일임엔 변함이 없다.

숙였던 고개가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 정도로 더 깊게 숙여질 뿐이다.

“오늘 고주몽 대표를 만나기로 한 것은 알고들 있습니까?”

“네. 대통령님.”

“좋은 일로 만나도 도움을 받을까 말까 한데…… 연달아 이런 일이 터지니.”

“…….”

“그 미친놈들은 왜 하필 건드려도 고 대표 직원들을 건드려서는!”

이명환은 분통이 터지는 얼굴로 책상을 탕탕 두들겼다.

안보수석과 외교부, 법무부가 손잡고 고주몽을 털어버리려 했던 사건 때문에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대통령이다.

어떻게 변명을 하고 어떻게 보상을 해야 이번 일을 넘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탈모가 올 지경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Go 컴퍼니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강간 시도라니.

그것도 평범한 직원들이 아니라, 각국 정부가 고주몽을 위해서 선발한 특급 재원들이라고 했다.

사건이 터지고 외교부로 각국 대사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하니 굳이 Go 컴퍼니가 아니더라도 이미 국제적으로 온갖 망신을 사는 중이다.

“아우…… 두통이야.”

이명환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현화 그룹에서…….”

민정수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현화에서 뭐요? 강간범 아들내미에게 선처라고 해 달라고 합니까?”

“크흠.”

민정수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연신 헛기침을 했다.

“내 코가 석 잡니다. 내 코가! 지금 남의 집 자식 걱정할 때입니까?”

“죄송합니다.”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이 말이야. 자기가 모시는 사람을 그렇게 챙겨봐. 엉? 지금 현화 운운할 때냐고!”

이명환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동석한 두 사람도 자라목이 됐다.

“국정원에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관련자들을 모두 색출해서…….”

“당연한 소리 말고!”

이명환은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이건 업무 과실이나 작전 실패 등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한 나라의 정보를 관장하는 기관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약까지 유통했다. 거기다 몰래카메라까지 찍어서 협박 용도로 사용을 했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

“국정원장.”

“네.”

“사표 제출하세요.”

“…….”

“왜 대답이 없습니까!”

“네. 대통령님.”

“억울하면 사고 친 놈들 사표도 같이 받아서 제출해요. 나가보세요.”

국정원장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집무실을 벗어났다.

“민정수석.”

“네. 대통령님.”

“검찰총장 좀 보자고 해요.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알아야겠으니.”

“직접 보고를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검찰과 법무부 쪽은 민정수석인 자신의 담당처다. 대통령이 직보를 받기 시작하면 자신은 있으나 마나 아닌가 말이다.

“민정수석.”

“네. 대통령님.”

“당신도 사표 내야지.”

“대…… 대통령님.”

“누군가는 책임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내가 사표를 쓸까요?”

“아닙니다…… 제출하겠습니다.”

“나가보세요.”

“네.”

국정원장이 그런 것처럼 민정수석도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집무실을 나갔다.

“능력이 없으면 성실하기라도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눈치라도 있던지. 쯧.”

이명환은 한심하다는 듯 연신 혀를 찼다.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고주몽 대표 덕분에 언론 삼사는 물론이고 그들이 심어 두었던 끄나풀은 모두 쳐 내게 됐지 않습니까. 무조건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니. 화를 삭이시죠.”

“그러면 뭐하나. 나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무능의 극치로 찍혀버렸는데.”

이명환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 뿜었다.

“그간 청와대 요청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사람이 먼저 연락을 해 왔어. 비서실장 생각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일전의 사건도 그렇고. 클럽 사건까지 터지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뭔가 목적이 있으니까 보자고 했을 거 아니냐고. 뭐 짐작되는 거 없어?”

“…….”

비서실장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의견을 내놓았다.

“신당에서 발의한 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국회를 장악한 상태인데. 내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대통령령이 있지 않습니까. 긴급조치도 가능하고 말입니다.”

“그것 말고는 없나?”

“저도 딱히…….”

“쯧. 자네 말대로 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좋겠는데 말이야.”

“레임덕이니 뭐니 말들 하지만, 그래도 국가수반이십니다. 아무리 대기업과 신당을 손에 넣은 고주몽이라고 해도 무리한 요청은 하지 못할 겁니다.”

“도착이 몇 시라고 했지?”

비서실장은 재빨리 시간을 확인했다.

“곧 도착할 시간입니다. 어떻게…… 집무실에서 만나실 생각입니까?”

“그나마 여긴 듣는 귀가 없지 않나. 이쪽으로 모셔와.”

“네. 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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