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15화 (116/224)

115장. 내가 원하는 반응은 이게 아닌데.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그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자신들이 꿈꾸는 위치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네. 회장님.”

“가문을 열 생각입니다.”

“가문이라면…….”

“이번처럼 꼼수 부릴 생각의 여지를 없애겠다는 말이죠.”

꼼수 운운하는 말이 나오자, 여섯 사람은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마지막 제안을 하겠습니다.”

사태를 무마시켜주고 후원을 약속했다.

여기에 또 다른 제안이 있다고 하자, 다들 호기심 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봉신(vassal)이 되세요.”

“봉신이라면…….”

“가문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아!”

“나는 내가 세운 가문이 한국을 넘어 세계 속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동참하겠습니까?”

정치적 후원을 받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과 고주몽의 사람이 되어 봉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다들 복잡한 표정을 짓는데, 의외로 고노 스즈키는 반기는 표정이 됐다.

“그 말씀은 저 스즈키가 회장님 가문에 속할 수 있다는 그런 말씀입니까?”

“네. 주고받는 관계를 넘어 완전히 내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내 대답에 니콜라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안은 제안일 뿐입니다. 앞서 말한 후원은 약속대로 이뤄질 겁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프랑스 팀장 루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말입니다. 후원을 받은 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땐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떤 문제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후원은 후원일 뿐이죠. 세상에 인재가 루이 팀장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내 대답에 마지막 제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달은 눈빛이다.

“그렇군요. 회장님. 아니, 지금부터 가주님이라고 칭하겠습니다. 봉직을 허락해 주십시오.”

반기는 표정이 됐던 스즈키보다 루이가 먼저 봉신을 자처했다.

“루이 가렐. 그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지금부터 루이 당신이 만들어가는 모든 분야에 지원을 약속합니다. 봉토는 두말할 것 없이 프랑스가 되겠군요.”

나는 프랑스가 내 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루이에게 봉토로 하사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어찌 보면 황당한 대화지만, 이는 루이의 활동반경을 프랑스에 국한해 지원하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루이를 시작으로 각각 봉직을 청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알렉스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표정으로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봉신이니 봉직이니 하는 문화가 전통으로 남아있는 유럽, 일본과 달리 알렉스는 철저하게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알렉스 팀장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지금 이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힘듭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후원만 받을 것인지. 보호도 함께 받을 것인지. 적이 있다면 내가 함께 싸워 줄 것인지의 차이입니다.”

“아…….”

“하지만 그 대가로 가문에 충성해야겠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내 호의를 악용하거나, 배신하는 자가 있다면.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겁니다.”

봉신이 배신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역적질과 다를 바 없다.

사돈의 팔촌은 물론이고 그와 연관된 모든 분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내 말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듯 로버트가 번뜩이는 눈으로 룸 내부를 둘러봤다.

“저 혼자 죽는 게 아니겠군요.”

“더는 혼자만의 일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결정을 내렸습니까?”

“저렇게 다들 눈을 반짝이는데, 저 혼자서 빠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같은 봉신이 되면 협조를 받기도 좋은데 말입니다.”

알렉스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각각의 영역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것이 약속되었다.

“함께 하기로 했으니 선물을 하나 드리죠.”

사태를 무마해 준 것만으로도 이미 선물은 넘치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를 더 내주겠다고 하니 다들 기대 섞인 표정이 됐다.

“각국에 투자금 100억 달러가 유치돼 있는걸 알고 있을 겁니다.”

“네.”

“Go 컴퍼니 지사에 연락해 놓죠. 그중 10억 달러는 여러분의 의지에 따라 집행이 될 겁니다.”

“아!”

“가서 힘부터 기르세요. 10억 달러의 투자금이라면 터 잡기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말이 10억 달러지, 그 정도 돈을 운용할 수 있게 되면 정계에선 굉장한 힘이 된다.

“나라별 후원 방식을 정리해서 올려요. 정치자금법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그에 맞춰서 지원할 테니까.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말입니다만, 불법까지 저지르며 움직일 필요 없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움직이세요. 그렇게 올라갈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 드릴 테니까.”

“네. 가주님!”

“다른 나라에도 관리팀이 유지되고 있습니까?”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알렉스 팀장.”

“네. 회장님.”

“다른 나라들의 관리팀도 한 번 엮어봐요. 동료가 늘어나면 차후 서로 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얼마 전까지 한국 정부에서 안보수석으로 일하던 사람입니다.”

안태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알렉스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에게 ‘제안’을 했던 사람이 바로 안보수석 안태완이고 또 그와 손잡고 일을 추진하려 했던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네요. 얼굴 보면서 이야기 좀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혹시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로버트에게 건네주기 바랍니다.”

말로야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어떤 의미로 안태완의 정보를 요구하는지 모를 리 없다.

알렉스가 대표로 대답을 했다.

“준비되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전에 투입했던 요원들 말인데.”

“네.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말했던 것처럼 Go 컴퍼니에 파견 보내주시고…….”

“네.”

“그리고…… 작전은 계속 진행하세요.”

“네?”

작전을 계속 진행하라는 말에 알렉스는 물론이고 다른 팀장들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내 말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나 하는 눈빛들이다.

“덕분에 나도 연애 한번 해 봅시다. 또 압니까? 그들 중에 내 짝이 탄생할지.”

“……!”

짝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말에 팀장들 모두 눈을 반짝였다.

만약 내 말대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짝이 탄생한 국가는 물론이고 자신들 역시 단숨에 위치가 달라질 것이다.

봉신을 자처한 이상, 가문의 주인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람이 총신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지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남녀관계야 끝까지 가봐야 알 일이지만…… 노력해 봅시다.”

“네. 회장님!”

후원을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힘차게 대답하는 걸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였다.

‘그런 생각들 하라고 던진 떡밥이니까.’

아무튼, 이번 기회에 임도 보고 뽕도 따보자.

다른 사람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여자 사람 구경해 보겠다고 밖으로 나돌 이유도 없으니 나로선 불감청 고소원 아닌가 말이다.

나를 놓고 경쟁하는 다국적 미인들이라니.

앞으로의 일이 기대됐다.

“나는 다른 볼 일이 있으니. 나중에 다시 한번 자리를 만듭시다.”

이쪽 일은 대충 마무리가 됐으니 이제 맞은편 마약 강간범들 만날 차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섯 사람도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룸 밖으로 나오자, 로버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요?”

“그냥…… 보스가 짓궂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대놓고 꽃밭에서 노실 걸 생각하니 나름 부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네. 보스.”

“대통령이니 뭐니 하는 건 감투 좋아하는 사람 하라고 하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지금도 외출 한 번 하려면 곤욕인데, 창살 없는 감옥은 사절입니다. 김덕영 씨 분위길 보니 나이 낮추고 대통령 중임제 쪽으로 개헌해서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생각인 것 같은데. 내가 왜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합니까. 그리고 다른 걸 다 떠나서 나이 서른에 대통령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내 말에 로버트가 ‘하하’ 웃음을 보였다.

“그렇잖아요.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대통령이든 내각제 수상이든. 내 사람이 하면 그만이지. 내가 굳이 감옥 같은 청와대 생활을 할 이유가 없죠. 나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진데. 그리고 대통령들 퇴임할 때쯤 되면 백 년씩은 늙어서 나오더라고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보스 말씀이 맞습니다. 알렉스나 니콜라이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후원자로 남으셔도 충분하죠. 보스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 같은 감투가 아니라 감투를 씌우는 힘이니까요.”

“다행이네요.”

“뭐가 말입니까?”

“로버트가 내 말에 공감해 줘서. 제이코는 은근히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하하. 제가 보스 말에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감투란 게 막상 쓰고 나면 제약도 많고 권리보단 의무가 더 많습니다.”

나와 만나기 전까지 샌프란시스코 경찰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있었으니 자리가 주는 압박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까지 했을까.

“제이코도 보스의 생각에 딱히 반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미국의 가문들도 직접 나서기보다는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뒤에서 움직이는 걸 선호하니 말입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변호사와 말싸움 하는 건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라서.”

로버트는 약쟁이들이 잡혀있는 룸 문을 열고 내부를 살피더니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다소곳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약쟁이 여섯과 RT가 눈에 들어왔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앉으시죠.”

소파에 앉아 약쟁이들과 RT를 노려보고 있던 김인선이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조용하네요. 집안을 내세우며 소리깨나 지르고 있을지 알았는데.”

“하하. 네. 처음엔 좀 그랬습니다.”

김인선은 머쓱한 표정으로 이마를 긁었다.

“혹시 때렸습니까?”

“아닙니다. 대표님 허락도 없이 제가 어찌…….”

김인선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로버트. 클럽 터는 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 좀 해줄래요?”

“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로버트가 밖으로 나가자 눈치를 보고 있던 RT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기…….”

“네. RT 씨.”

“저는 왜…….”

RT는 약쟁이들을 바라보며 왜 자신이 이들과 같이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러게요. 왜 그러고 있는 겁니까?”

“그게 김인선 씨가.”

RT는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김인선을 바라봤다.

김인선은 고자질하듯 이야기하는 RT의 태도에 잠시 당황한 표정이 됐지만, 금세 표정을 되찾았다.

내가 김인선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인선 씨가 그렇게 시켰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내 말에 김인선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가이드를 자처해 놓고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습니다. 술 몇 잔에 천만 원이나 쓰게 만든 주제에 반성의 기미도 없지 말입니다.”

김인선의 말에 RT는 억울한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놨다.

“그게 왜 제 잘못입니까. 여기 이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이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제가 장담했던 대로 밤을 불태웠을 겁니다.”

“과정은 의미가 없죠. 결과가 중요할 뿐. 그런 식으로 변명을 하자면 세상에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막말로 핵폭탄을 가져다주겠다고 해 놓고 세관 때문에 통과를 못 한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라는 논리 아닙니까.”

“에에?”

RT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황당한 표정이 됐다.

“왜요. RT 씨 듣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습니까?”

“그게 그렇지 않습니까. 부킹 한 번 안 된 것과 핵폭탄을 사고파는 게 어떻게…….”

“나로선 핵폭탄이 아니라 항공모함이 침몰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용히 꿇고 계세요.”

“…….”

나는 약쟁이 육 형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김인선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내가 누군지 이야기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히 눈치들만 보실까? 내가 원한 반응은 이게 아닌데.”

내가 누군지 아냐며 큰소리도 치고. 집안 들먹이며 협박도 하고 그래야 나름 패는 맛이 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약쟁이 육 형제는 긴장된 표정으로 마른 침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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