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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14화 (115/224)

114장. 각국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합니다.

머리를 맞대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던 미인계 작전 ‘지휘부’는 내 등장에 분분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석에 자리한 나는 알렉스와 나머지 일당을 쓱 둘러봤다. 표정들이…… 몇 날 굶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피폐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생각은 하셨습니까?”

“…….”

생각은 많았지만, 적절한 대응책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표정들이다.

하긴, 제이코의 그 협박성 가이드 라인에 근접한 뭔가를 내놓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지만, 그 정도 일을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결정하고 실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말씀이 없네요.”

“저기…….”

“스즈키 씨라고 했던가요?”

“하이. 일본에서 회장님 업무 관리를 맡은 고노 스즈키라고 합니다.”

“네. 말씀하시죠.”

스즈키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구십도 넘는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제 위치에선 가이드 라인을 맞출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실망이네요.”

“…….”

“뭔가 색다른 제안을 내놓나 싶었는데, 일본인 특유의 허리 숙이기인가요?”

“부탁드립니다!”

“안 된다고 하면 그다음 단계는 도게자(どげざ, [土下座])가 튀어나오겠군.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최후 수단으로 할복이라도 감행할 생각입니까? 그때쯤 되면 사과가 아니라 협박이 되려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적당히 물러나라는?”

비아냥거리는 내 말투에 스즈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다른 이들은 일본이 총대를 메고 나서니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하이! 말씀하십시오.”

“내가 여자를 보내죠. 일본 총리에게.”

“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총리를 꾀어서 잠을 자라고 하겠습니다.”

“회…… 회장님.”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겸사겸사 언론에 택배도 보내고. 그러면 되겠네. 그쪽에서 하려는 일이 그거 비슷한 일들이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겠다는 내 말에 스즈키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낯빛이 칙칙해졌다.

실제로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허리 그만 숙이고 앉아요. 스즈키 씨 말고도 이야기해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넷이나 남아 있으니까.”

스즈키는 주춤주춤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허리를 숙이고 고집을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알렉스…… 팀장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네. 회장님.”

“듣자 하니, 나 때문에 좌천을 당하고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하던데. 고주몽 관리팀이 그렇게 힘도 지위도 없는 한직입니까?”

알렉스는 긴 한숨을 쏟아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그러세요.”

“하는 일이 없습니다.”

“응?”

“회장님 활동을 살피는 것 외엔 딱히 하는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그저 보고서 작성해서 위에 올리는 것 말고는.”

알렉스의 말에 다른 이들도 내심 그런 마음이 없지 않은지 동조하는 눈빛이 됐다.

팀원 두서너 명 데리고 앉아서 종일 스토커 짓이나 하고 있으니 그간 나름대로 성공적 커리어를 쌓아왔던 이들에겐 적잖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나름 잘나가는 공직자들이었을 텐데. 스토커로 전직을 했으니.”

내가 저들 입장이라고 해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그럼 조용히 지켜나 볼 것이지. 왜 이런 사달을 일으킨 겁니까.”

“그건 회장님이!”

알렉스는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로버트의 싸늘한 눈빛에 곧바로 자세를 조정했다.

“회장님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 데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미인계를 꾸몄다? 시체와 결혼이라도 시킬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훗.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 서로 손 잡고 내 재산을 강탈하려고 모의 중이었지 않습니까. 우리 쪽에서 항의 서한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알렉스 씨. 하나 물어봅시다.”

“네.”

“당신들은 카네기 가문이나 부시 가문 또는 미국의 유수 가문에도 이런 짓을 합니까?”

“네?”

알렉스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야 말이 되지 않습니까. 알렉스 당신 혼자서 내 재산을 털어먹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정부 차원에서 움직인 일인데. 다른 부자들도 같은 짓을 하고 있어야 형평성이 맞지 않는가. 이런 말이죠.”

알렉스는 내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 감을 잡은 표정이다.

“다시 묻죠. 당신네 나라. 아, 나도 시민권자인데. 이거 말이 이상하네. 아무튼, 다른 부자들도 이렇게 지저분하게 작업하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알렉스뿐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도 같이 묻는 겁니다.”

“…….”

다섯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선을 피했다.

“뭐, 답하지 않아도 알겠네. 그러니까. 내가 만만해서. 잡아먹어도 문제가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랬다는 거죠?”

“…….”

“쯧쯧쯧. 그런데 이제 어찌합니까? 내가 그들처럼 대단한 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투사하고 더 막 나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회장님…….”

스즈키가 재차 간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만 늘어놨다.

“결정하세요. 내가 공식적으로 나서길 바랍니까. 아니면 비공식적으로 움직이길 바랍니까?”

공식과 비공식?

내 말에 다섯 사람은 그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공식적인 부분이라면 말 그대로 이번 사건을 세상에 공표하고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이라는 부분에선 선뜻 머리에 떠오르는 내용이 없었다.

일 년 전엔 대사 직급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한직이라 불리는 고주몽 관리팀 팀장을 맡고 있다는 영국 신사 윌리엄 조드 G.스콧이 입을 열었다.

“비공식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공식적인 부분은 알고 있다는 의미죠?”

“그렇습니다. 여기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공식적 항의 활동을 무마시켜 보기 위함이니 말입니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비공식이라는 단어엔 새로운 협상안이 담겨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는 윌리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일을 무마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내용이죠.”

무마를 떠나, 윈윈할 수 있다는 말에 윌리엄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눈을 반짝였다.

“내 후원을 받으세요.”

“네?”

“그게 무슨…….”

“후원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말한 후원이 뭘 의미하는지 곧바로 눈치를 챘다.

“회장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군요.”

“이름도 웃겨요. 고주몽 관리팀이라니.”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이번 일에 문제를 제기하면 여러분은 물론이고 각국 정부들 역시 골치가 아플 겁니다. 그렇죠?”

“…….”

“그저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죠. 나라 망신은 물론이고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까지 이어지면…… 참 볼만할 겁니다.”

윌리엄이 다시 나섰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누구도 그런 결과를 바라지 않습니다.”

“고주몽 관리팀을 Go 컴퍼니 산하에 넣겠습니다.”

“으음…….”

“그리고 여기 모인 다섯 사람은 원하는 분야로 진출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밀어드리죠.”

원하는 분야의 진출. 적극 지지라는 말에 다들 표정이 복잡해졌다.

고주몽 관리팀을 흡수하겠다는 말은 자신의 정보를 더는 외부로 흘리지 않겠다는 의미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고주몽이 원하는 형태로 정보를 가공해야 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말만 관리팀이지 감시팀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상 어떤 멍청이가 이런 조직을 두고 봅니까? 알렉스. 당신 같으면 당신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팀을 그대로 둘 수 있겠어?”

“…….”

알렉스는 그저 한숨만 쉴 뿐이다.

“감시당하는 나는 그렇다 치자고. 기껏 한다는 짓이 스토킹이라니. 당신들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을 거잖아.”

여기저기 한숨 소리가 뒤섞였다.

자신들이라고 그렇게 살고 싶겠는가만은, 당첨자 고주몽과 인연이 그렇게 시작이 된 걸 어쩌란 말인가.

아는 놈이 한 마디라도 더 떠든다고 1차 협상자였던 자신들이 이일에 적임자라며 인사발령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사표라도 내 던지고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와 미래를 생각하니 그조차 쉽지 않았다.

이런 업무가 영원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고 한동안 쉬어간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신이 떠난 자리는 그새 다른 이들이 장악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돌아갈 자리가 하나둘 사라졌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는진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잊힌 존재가 돼가고 있었다.

알렉스가 무리해서 일을 추진한 것도 그렇고 거기에 동조해 사달을 일으킨 것도 스토커 임무를 벗어나 본래 영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섞여 있었다.

“공식적으로 항의를 받고 야인(野人)이 되던지. 아니면 내 후원을 받고 위로 올라가던지. 선택하시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조건을 던지시는군요.”

윌리엄이 씁쓸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윌리엄 팀장.”

“네. 회장님.”

“내가 영국에 해코지한 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건드린 것도 그쪽이 먼저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그쪽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봅니까? 마지못해서 한다는 그런 표정은 내 쪽에서 사절합니다.”

윌리엄은 재빨리 손을 내 저었다.

“아닙니다. 회장님 때문이 아닙니다.”

윌리엄은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런 상황까지 와 버린 저 자신이 한심해서 그런 겁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같은 심정일 겁니다.”

윌리엄의 말에 다른 네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엄 팀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다른 네 사람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회장님…….”

“네. 스즈키 씨. 아니 팀장.”

“혹, 저희를 이용해…….”

“자국에 문제를 일으키려는 것 아니냐?”

“…….”

“내가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세끼 먹을 게 없어서 남의 집 담을 넘어야 할 정도로 부실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합니까?”

“하하…….”

내 대답에 스즈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 내가 한국인이라서?”

“…….”

“그럼 일본 시민권을 박탈하시면 되겠네.”

“네?”

“이것 봐요. 스즈키 팀장.”

“하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20개 국가 시민이 된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서 한국, 일본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죄송합니다!”

스즈키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다른 분들도 들으세요. 나는 한국의 이익 또는 타국의 침탈을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해진 룰에 따라 다른 이들처럼 사업을 하고 투자를 할 것이고 또 법적으로 보장된 한도 내에서 움직일 겁니다. 그러니 머리 복잡하게 이 나라, 저 나라 따지지 마세요. 나에겐 20개국 모두 내 나라니 말입니다.”

“아…….”

“나는 각국의 공정한 경쟁을 지지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윌리엄이 슬쩍 맞장구를 쳤다. 나는 윌리엄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 재차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이 자국 이익을 위해 나를 설득하거나 투자를 유치하는 등의 행위는 문제 삼지 않을 겁니다. 그건 여러분의 정당한 권리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위해 나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내 권리를 침해한다면…….”

“절대 그럴 일 없게 만들겠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역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세계인)인 것입니까.”

각국 팀장들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스즈키는 안도하는 눈빛과 함께 묘한 감정까지 담아서 나를 바라봤다.

“스즈키 팀장이 적절한 말을 했네요. 네. 맞습니다. 나는 20개국 시민권을 가진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입니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총수이기도 하고 이 나라 대한민국의 최대 권력자가 될 사람이기도 하죠.”

대한민국의 최대 권력자가 될 거란 말에 다섯 사람의 눈빛이 또 달라졌다.

“그리고 여기 있는 다섯 분도 그렇게 될 겁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확실히 보여드리죠.”

인생 막장 테크를 타나 싶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앉아있던 다섯 사람은 예기치 못한 나의 제안에 화색이 돌았다.

일 년 전엔 그저 운 좋은 사람이었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고주몽의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동참하든 말든, 고주몽은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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