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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13화 (114/224)

113장. 뭐부터 시작할까요?

천기득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버틀러가 아니라 봉신이로군.”

“저기. 지금 두 사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제이코가 설명했다.

“보스는 지금 스스로 가문을 열겠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것도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보스. 보스가 보시기에 저는 뭡니까?”

“네?”

질문이 너무 직설적이다. 자신을 뭐로 보냐니.

“제이코는…… 제이코죠.”

“…….”

큼. 답변이 좀 궁색했나? 제이코 표정이 썩 좋지를 않다.

“내 선생님이자 법률자문이고 Go컴퍼니 2인자이면서 미래를 함께할 동반자입니다.”

“그렇게 거창하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굴에 미소나 지우고 그런 소릴 하시지.

“저는 말입니다.”

“네.”

“스스로 봉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a vassal라고 하는데. 내가 잘 모르는 단어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봉토를 하사받은 신하라는 뜻입니다. 장원을 받은 기사나 귀족을 뜻하기도 합니다.”

“봉토……? 어. 그거 중세시대…….”

“네. 맞습니다. 하지만 중세시대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 말은 지금도 이런 제도가 존재하고 있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세계를 아우르는 대가문은 모두가 이런 제도를 차용하고 또 운용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당연히 혈족만으론 모든 걸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문을 지킬 외곽 울타리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회사에 직원을 들이는 것도 외견상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지 딱히 과거와 달라진 바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니 공화정이니 하며 발전된 사회구조를 이야기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거기서 거기죠.”

제이코의 설명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제이코에게 봉토를 내렸다고 아니 줬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Go 컴퍼니의 법률부분을 주셨지 않습니까.”

“…….”

“그리고 그 외에 봉토를 더 늘려주겠다고 방금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가문으로 미래를 이끌겠다는 일명 신세계 프로젝트 말입니다.”

“그 말이 내가 봉토를 주는 것과 같다는 그런 말입니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꼭 땅을 내려야 봉토라고 하진 않죠. 물론 분야만 놓고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법률 지식을 가졌다고 누구나 저 같은 힘을 가지진 못하니 말입니다. 제가 가진 힘은 보스와 Go 컴퍼니라는 영지를 바탕에 두고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인가? 개념적인 부분은 이해가 되지만, 봉신이니 봉토니 하는 말은 쉽사리 와닿지 않았다.

“보스가 가진 돈은…… 네. 많습니다. 아주 많죠. 하지만 보스가 느끼셨다는 그 불안감 말입니다.”

“네.”

“그건 territory가 부실해서 그런 겁니다.”

“territory? 아. 영지(領地).”

평소 영어 못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본 나지만, 오늘 튀어나오는 단어들은 여전히 익숙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영지에 속해있는 저 역시 활동반경도 그렇고 할 수 있는 일도 협소합니다. 솔직히 봉신을 자처하는 저로선 아쉬운 점이 많을 수밖에 없죠.”

“내가 내린 봉지가 협소해서?”

“하하. 말뜻이 그렇게 되나요?”

제이코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정확히는 모시는 영주가 결단을 내리지 않아서라고 하겠습니다.”

“결단이라…….”

“네. 지금까지 보스는 상황에 맞춰 대응하셨습니다. 주도적으로 일을 이끌어가는 타입은 아니셨죠.”

“큼.”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 피드백을 주기보다는 받는 편이었으니까.

“신세계 프로젝트를 입에 담은 이유가 무엇이 됐든. 봉신으로선 반가운 일입니다. 영주가 드디어 깃발을 세우고 전쟁을 선포했으니 말입니다.”

“전쟁을 선포한 게 반가운 일이란 말입니까?”

“아무리 봉신이라고 해도 ‘싸움 개’ 영주는 반갑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에 칼을 쥐고도 선뜻 휘두르지 않고 땅이 널렸는데도 점령하지 않는 영주는 굉장히 답답하죠.”

“비유를 들고 있지만, 아주 대놓고 디스를 하는군요.”

제이코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봉신의 한계입니다.”

“네?”

“보스가 들으시기엔 제가 불만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시겠지만…… 이래서 봉신은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불만이 있어도 영주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이군요.”

“네. 보스.”

제이코는 당연한 일 아니겠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천 회장님을 비롯해 정 회장님. 한 회장님도 저와 비슷합니다. 아,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제가 좀 더 측근이라는 점이 있겠군요.”

제이코의 말에 룸 내에 와하하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래도 각자 부여받은 봉토가 다르니 멱살 잡을 일은 별로 없지만 말입니다.”

제이코는 그렇지 않냐는 듯 천기득과 한중근, 정진호를 바라봤다.

세 사람은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갑자기 봉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 의아해하셨죠?”

“그랬었는데. 이젠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으니까요.”

제이코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천 회장님.”

“네. 총회장님.”

“제이코는 시작부터 그렇게 엮였으니 봉신이니 뭐니 하면서 장난을 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 회장님과 다른 두 분은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까. 저와 손을 잡은 이유 중 하나가 독립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천기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내 쪽에 발을 들이겠다는 말입니까?”

“버틀러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쪽 말로는 마름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하겠군요. 포장된 말로는 가신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만.”

천 회장은 재차 말을 이었다.

“내가 이씨 가문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은 그들이 주인으로서 명망이 없기도 했거니와 평생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그룹을 대들보부터 갉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네. 그래서 동참을 했죠. 빈손으로 쫓겨나 떠돌이가 될 뻔했는데 총회장님 덕분에 그룹의 지분은 물론이고 지배권까지 인정을 받았지 않습니까. 어, 그리고 보니 이미 봉지를 하사받은 거나 마찬가지네요.”

한중근과 정진호도 한 마디씩 끼어들었다.

“총회장님이 생각하는 신세계에 나 천기득도 동참하겠다고 했습니다.”

“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기득의 지원엔 돈으론 계산할 수 없는 세월과 연륜, 그리고 강대한 인맥이 함께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천기득의 통해 얻을 수 있기에 그의 도움은 말 그대로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봉신이 되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공신(功臣)이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신세계를 연 ‘고’ 씨 왕조(王朝)의 공신 가문이라면 어설픈 독립보다 백배는 더 나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으…… 얼굴 뜨거워. 여기서 왕조가 왜 튀어나옵니까.

“왕조는 너무…….”

천기득의 말에 김덕영이 숟가락을 얻었다.

“총회장님! 저 김덕영도 한 몸 불사르겠습니다. 개국공신!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하하하!”

아저씨. 평소엔 그렇게 눈치 빠른 분이 왜 이렇게 오버야. 적당히 좀 해요.

아무리 말뿐이라고 해도 왕조는 너무 하잖아.

내가 민망한 표정을 짓자, 천기득이 한 마디 덧붙였다.

“재벌을 두고 현대판 계승 귀족 운운하지 않습니까. 정치인들과 달리 부는 상속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벌이 소유한 기업에 수많은 사람이 묶여 있으므로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천기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가 어찌 됐든. 다들 계획에 동참한다는 거죠?”

“물론입니다.”

하나같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성희 국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국장은 룸에서 오가는 대화에 반쯤 얼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목숨 운운할 정도로 겁을 주었기에 뭔가 중대한 이야기가 오가리라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건 그녀가 생각한 범주를 훌쩍 넘어버렸다.

“한 국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한성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라 경고를 했습니다.”

“…….”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이곳을 나가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를 터트릴 것인지. 나름대로 결정을 내렸을 것 아닙니까.”

“그게…….”

한성희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겠다는 이들의 대화가 정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게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패악이 되는지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한성희는 혼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 역시 그런 그녀를 묵묵히 바라봤다.

“대표님이…….”

“네.”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된다면…… 그게 대한민국에 복이 될지, 화가 될지 가늠을 못 하겠습니다.”

한성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당파 싸움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거나. 푼돈 훔쳐 먹겠다고 세금으로 장난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딱히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 나라에 도움이 된다, 안된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매번 국민의 손으로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뽑고 있지만. 그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는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미래는 직접 겪어봐야 아는 거겠죠.”

“그…… 렇겠죠. 미래는 직접 겪어봐야 아는 일이죠.”

한성희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함께 하겠습니까?”

나는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한성희 한 명 설득하자고 주절주절 말을 늘고 놓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성희는 제이코와 눈을 마주치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주몽의 첫 방송을 담당하게 되면서부터 이미 운명이 정해졌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제이코와의 만남도 남녀 관계로 진전이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지 않던가.

주몽으로선 다시는 무시를 당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동안 그가 보인 행동과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런 결정이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었다.

원인은 매번 달랐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겠습니다. 최소한 기존 정치인들처럼 말장난으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요.”

스스로 저널리스트를 말하며 방송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주몽의 도움을 받고 그를 뒷배로 둔 순간부터 순수성을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아예 그 안에 속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백배는 나을 것이다.

군대를 동원해 군사독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장악해 나가겠다는데 그걸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미 일당 독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회는 신당이 장악했고, 재계는 1위 그룹 대왕을 비롯해 선진, 진영. TS 미디어는 물론 최근 언론 삼사까지 손에 넣었음을 알고 있다.

주몽이 이런 선택을 내리고 말고를 떠나 이미 대한민국은 그의 영향력 안에 놓이기 시작한 셈이다.

“솔직히 이런 대화가 오고 갈 거라곤 생각지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히 더 나빠질 것 같지도 않아서요.”

한성희는 긴장을 털어내고 밝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한성희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곤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프로젝트를 시작해 볼까요?”

“뭐부터 시작할까요?”

“쌍끌이 작전으로 가야죠. 징벌적 법 조항을 준비하세요. 마약 강간범이든 경제사범이든 그전까지는 증거 수집을 하고 철퇴가 마련되면 단숨에 치고 들어갑시다. 안 그래도 일전의 습격 사건 때문에 청와대와 할 말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안면을 트겠습니다.”

“네. 보스!”

“네. 총회장님!”

“로버트. 알렉스 일당들 좀 보러 가죠. 제이코. 다른 분들과 함께 프로젝트 초안을 좀 더 세밀하게 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로버트와 함께 알렉스가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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