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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12화 (113/224)

112장. 봉신(a vassal)

“그리고 로버트.”

“네. 보스!”

“정보조직 창설에 박차를 가하세요. 그리고 PMC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제가 몸이 하나다 보니…… 죄송합니다. PMC 쪽도 빠르게 준비를 하겠습니다.”

“로건은 어떻습니까.”

“PMC 쪽으로 말입니까?”

“네. 경찰 특공대에 들어가기 전에 델타에서 복무했다고 하던데. 로버트 말대로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로버트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로건에게 PMC를 맡겨볼 생각입니다.”

로건은 현재 경호팀 부팀장을 맡고 있다. 로버트 부재 시 경호팀은 로건이 총괄한다고 보면 된다.

“로건이라면 잘 해낼 겁니다.”

“좋습니다. 경호팀 인사 조정하세요. 로건에게 PMC 창설을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네. 말씀하십시오.”

“경호팀을 회사 형태로 바꾸겠습니다.”

“지금보다 인력을 늘리시겠다는 말씀이군요.”

“네. 대규모 공채를 할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숫자를 늘리기에 대규모라는 말을 쓰는지 궁금하다는 눈빛이다.

“대한민국은 경찰국가이면서 전 국민이 2년 이상 군 경험을 한 군부 국가이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인재가 많죠.”

“그 말씀은…….”

“일단 1만 명입니다.”

“네?”

1만 명이라는 숫자를 들먹이자 로버트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경호회사는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건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다.

그런데 1만 명이나 되는 경호 인력을 뽑아 운영하겠다니. 자칫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도 있었다.

“경호기업은 PMC 보조 전력으로 운영할 겁니다. 예를 들면 PMC 대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전 교육을 전담하는 기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겸사겸사 Go 컴퍼니에서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좋고 말입니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군대 다녀와서 백수 전전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긴 어렵겠지만, 적잖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당장 천명도 수용할 공간이 없는데 일만 명을 동시에 뽑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단계별로 진행된다고 생각하세요.”

“아…….”

“당장 전쟁을 할 것도 다른 나라에 파견을 보내 총질을 시킬 생각도 없습니다. 평화를 얻고 싶다면 전쟁 준비를 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PMC는 그렇게 운영을 할 겁니다. 외부에서 인력을 데려오는 방법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내부에 훈련기관을 만들어 직접 수혈을 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입니다.”

“네. 보스.”

나는 제이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이코. 내가 가진 시민권 말입니다.”

“네.”

“언제 어떻게 회수당할지 모릅니다. 당장 오늘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신들 쪽에 불리하다 싶으면 언제든 문제 삼고 나올 거라는 말이죠. 시민권을 줄 때도 특별법을 이용했으니, 그 반대 상황도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대응책을 준비하세요.”

“네. 보스.”

“그리고 김덕영 대표. 대한민국 로펌들에게 전하세요.”

“어떤…….”

“내 밑에 설 것인지. 아니면 나와 맞은 편에 서서 전쟁을 할 것인지.”

“…….”

“정계와 재계를 손보는데 법조계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김덕영은 왜 그걸 자신에게 시키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법 쪽은 자신보다 제이코가 나서는 게 더 좋지 않냐는 그런 눈빛이다.

“제이코는 외국인이고 또 한국 법조인이 아닙니다. 이런 일에 나서봤자 불협화음만 만들어낼 겁니다.”

“아…….”

“하지만, 국회를 장악한 신당의 대표는 절대 무시할 수 없죠.”

“그럼요. 신당의 대표를 무시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김덕영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대충 감을 잡아가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정계보다 더 더럽고 치사한 동네가 법조계입니다. 제 식구 챙기기라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집단이죠. 콩나물 도둑에겐 영장을 쳐도 자기들 비리엔 눈 감고 아웅해 버린 게 한두 번입니까. 그들이 저지른 비리가 조만간 손에 들어올 거니 단단히 준비하세요….”

법조계 비리가 내 손에 들어온다는 말에 김덕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그에 대한 답은 내가 아니라 천기득 회장이 대신했다.

“김 대표. 법조계와 가장 깊게 움직이는 쪽이 바로 재계일세.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이 진행된다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로펌과 손을 잡으려 하겠지.”

“아…….”

“재계를 두들기고 평정하다 보면 온갖 찌꺼기들이 다 튀어나올 것이고. 그건 당연히 나와 이 사람들 손에 들어오겠지. 총회장님이 말씀하신 비리는 바로 그걸 이야기하는 걸세.”

“네. 이해했습니다. 로펌에게 양자택일을 이야기한 것도 그것과 관련된 부분이군요.”

김덕영은 이 일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또 연관되어 있는지 뒤늦게 파악을 했다.

국회를 장악한 신당의 대표 자리를 맡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경력이 가장 짧은 사람이 김덕영이다.

아직은 배울 것도 많고 정치인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눈치 빠르고 이해력이 좋은 덕분에 대화 내용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는 중이다.

“총회장님. 그래서 말입니다만…….”

김덕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김 대표님.”

“내려주신 지침 사항을 의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견 하나가 나왔습니다.”

“새로운 의견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대통령제를 바꾸는 부분입니다.”

“연임이든 중임이든 그건 당내 회의를 통해 진행하면 될 일이지 않나요?”

“크흠. 대통령제가 아니라…… 대통령 출마 나이 제한에 대한 부분입니다.”

대통령 나이 제한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천기득의 눈이 번뜩였다.

“김 대표. 지금 그 말은…….”

“네. 맞습니다. 총회장님을 대통령으로 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호오.”

천기득이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다는 듯 호기심을 내비쳤다.

“나를 대통령으로 밀어요? 갑자기 왜 그런 말이 나왔답니까?”

“그 부분을 설명하자면, 신당이 가진 한계를 먼저 설명해 드려야 합니다.”

“신당의 한계? 국회 의석 태반을 차지한 신당이?”

한중근 회장이 의아한 눈빛으로 김덕영을 바라봤다.

“의석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아!”

한중근은 신당이 가지고 있다는 한계가 무엇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대권 주자가 없군.”

“네. 국회는 장악했을지 모르지만, 행정부는 우리 쪽 사람이 없습니다. 그쪽은 말 그대로 통수권자가 손에 쥐고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렇지. 그렇군.”

천기득을 비롯해 다른 두 회장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신당은 총회장님의 자금을 깔고 올라선 정당입니다. 총선에서 승리한 것도 총회장님의 선전 덕분이죠.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서른석 남짓 확보하는 거로 끝났을 겁니다. 기존 정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진 것이 이번 총선의 승리 요인이었으니 말입니다.”

김덕영은 목이 타는지 물을 벌컥 들이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국회를 손에 넣었으니 법을 만들고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정계, 재계, 법조계만으론 대한민국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총회장님이 생각하시는 신세계 프로젝트가 아, 정정하겠습니다. 그 프로젝트 안에 대한민국이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일을 진행하려면 행정권 역시 손에 넣어야 합니다.”

김덕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여기서 벌어지는 대화는 방법만 다를 뿐이지 쿠데타 모의나 다름없다.

최종적으로 행정권까지 손에 넣어야 대한민국을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현행법으론 40살이 넘어야 대통령 출마가 가능하다고 알고 있네. 신당에선 이걸 몇 살까지 낮추려는 건가?”

“마음 같아선 서른으로 대폭 낮추고 싶습니다만, 헌법 개정은 국민투표가 필수인지라…….”

“국민 저항감이 클 수도 있다는 말이군.”

“네. 그래서 선거연령 제부터 손을 보고 있습니다. 기성 층과 달리 새롭게 유입되는 선거인들은 그 부분에 저항감이 낮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증 교부와 함께 선거권도 보장되는 쪽으로 바꾸려는 것이군.”

천 회장의 말에 김덕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당내 의견은 서른다섯입니다만, 지금처럼 대한민국 장악이 목적이라면 그보다 더 낮춰서 총회장님을 새로운 대권 주자로 밀어 올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김덕영의 말에 다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국회를 장악한 신당이 선거연령을 낮추고 대통령제를 중임 또는 연임으로 바꾸고 출마 나이 제한마저 대폭 낮추게 되면…….

천기득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총회장님.”

“바라보시는 눈빛이 좀 그렇습니다.”

“정계, 재계, 법조계를 손에 넣고 헌법까지 바꾸고 나면 말입니다.”

“법을 바꾼다고 해서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국민투표로…….”

“원숭이라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

원숭이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고?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잖아.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분위기다.

“저기요. 아무리 그래도 원숭이를…….”

“물론 과장된 표현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보스는 비리를 저질러 푼돈이나 따 먹을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보유한 재산을 이용해 나라에 도움이 되게 하고 있죠. 투자 건도 그렇고 각 지역에 연구단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국민 입장에선 오히려 더 반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 서른에 대통령? 물론 선거는 2년 뒤니 서른둘쯤 되겠지만, 아무튼 그래도 엄청나게 어린 나이다.

사십 대 대통령만 나와도 젊다는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삼십 대 대통령은 애 취급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총회장님 의견에 동조하고 전력으로 나서는 게 총회장님이 나이가 많아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신세계 프로젝트를!”

천기득은 주먹을 불끈 쥐어가며 목소릴 높였다.

“그걸 국가 단위로 확대하시죠.”

“네?”

“총회장님과 주변 사람뿐 아니라 이 나라 대한민국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겁니다.”

멍.

내가 생각한 범위를 훌쩍 벗어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에서 정점에 올라서는 것과 대한민국을 정점에 올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지 않은가.

“천 회장님. 너…… 너무 멀리 갔습니다. 그런 일은 돈 좀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에 천기득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하고 계십니다.”

“내가요?”

“네. 국회를 장악해 법을 바꾸는 것도 그런 일이고. 집안 배경만 믿고 능력도 되지 않는 자들이 기업을 운영하는 걸 막는 것도 바로 그런 일입니다. 이걸 총회장님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 규모로 확대하는 것일 뿐입니다.”

천기득 회장의 말에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 대표가 그랬죠. 신당은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총회장님을 등에 업었지만, 솔직히 뿌리가 약하긴 마찬가지죠.”

“…….”

“그걸 단단히 할 기회입니다. 우리도 좋고. 대한민국도 좋은!”

“저도 천 회장님 말에 동의합니다. 강대국의 대단한 가문을 이야기하셨지 않습니까. 우리라고 못 할 게 없습니다. 다시는, 감히 어떤 누구도! 대가리 굴릴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가문을!”

한중근 회장이 흥분한 표정으로 천 회장 말에 동조했다.

대화 중에 제이코가 툭 끼어들었다.

“그 말씀은. 두 분 스스로 ‘a vassal’을 자처하겠다는 것으로 들어도 되는 거겠죠?”

a vassal. 봉신(봉건 군주에게서 봉토를 받은 신하)을 뜻하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자, 룸 내부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가신(家臣)이라…….”

대왕 이씨 일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던 천기득이다. 대의명분은 대왕 그룹이 더는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내심 한 부분에선 독립된 일가(一家)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도 내포된 선택이었다.

이는 한중근이나 정진호 역시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제 발로 고씨 가문에 들어간다?

천기득이 복잡한 표정을 보이자, 제이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버틀러가 아니라 봉신입니다. 말뜻을 곡해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아…….”

제이코의 말에 천기득은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금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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