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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09화 (110/224)

109장. 나 고주선인데?

RT는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랄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살짝 기가 질린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RT 씨.”

“네? 네…….”

“여기서 뭐합니까?”

“…….”

“아, 미인들이 이 방에 있으니 미인들을 지키러 들어오셨구나.”

“죄송합니다.”

“당연히 죄송해야죠. 이게 지금 뭡니까?”

클럽에서 일어난 사건이 RT 잘못은 아니지만, 가이드를 자처해 놓고 어떤 결과도 내놓지 못한 점에 있어선 당연히 욕을 먹어도 싸다.

“나가세요.”

“네?”

“맞은편 방에 인선 씨랑 같이 있어요. 우리 이야기는 따로 해야 할 것 같으니.”

“그냥 가면 안 될까요.”

“그게 될 것 같습니까?”

“…….”

“괜히 어슬렁거리다 쥐어 터지지 말고 가 있어요. 지금 RT 당신이랑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네…….”

RT는 슬금슬금 문 쪽으로 다가가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사라졌다.

맞은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릎을 꿇고 있는 약쟁이 형제가 눈에 들어왔다.

“인선 씨…….”

“아, RT 씨.”

“대표님이 이쪽에 가 있으라고 해서.”

“아하. 그래요?”

“네.”

“그럼 와서 끓어요.”

“네? 아니 내가 왜…….”

“가이드를 그따위로 해 놓고 내가 왜? 지금 그런 말이 나와? 나에게 이런 엉망진창인 옷을 입혀 놓고 물만 마시게 한 놈이?”

“…….”

“꿇어 새꺄.”

“넵.”

* * *

곰곰이 생각했다.

왜 자꾸 이렇게 꼬이는 걸까.

이미 내가 가진 돈은 부의 경계를 넘어섰고 소유한 것들도 적지 않다.

누구나 부러워할 나인데…….

한 잔, 두 잔. 술이 늘어났다.

이미 반병 이상의 양주를 들이켠 상태라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올라왔다.

룸 문이 열리고 로건과 로버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내부를 쓱 둘러보더니 쓴웃음을 짓는다.

“왔어요?”

“네. 보스.”

“앉으세요. 몇 가지 물어볼 것과 지시할 내용이 생겼습니다.”

두 사람은 성큼성큼 안쪽으로 들어오더니 좌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이코와 김덕영 대표도 호출하세요.”

“두 사람을 말입니까?”

로버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검사 아저씨들도 부르세요.”

“내일 차분히 만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로버트는 자리가 적절치 않다는 뜻을 전했다.

“아니요. 여기에서 만나야 합니다. 할 말이 있거든요.”

로버트는 내 눈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런 일을 지시할 땐 엉뚱하면서도 색다른 일을 벌인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로버트다.

“통신을 막아놔서 귀찮겠지만…….”

폐촌 사건 때 획득한 통신 제어 장비는 우리 쪽에서 요긴하게 써먹는 중이다.

“유선은 살아있습니다.”

로버트는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며 로건에게 고갯짓했다.

로건이 연락을 돌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로버트는 룸 내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자들을 바라봤다.

“능력이 좋으십니다. 위기에 처한 여자분들을 구하셨군요.”

로버트가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능력은요. 저 아가씨들 다들 목적이 있어서 접근한 겁니다.”

목적. 접근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웃고 있던 로버트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잠시 미간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미인계군요.”

“뭐. 대충 그런 것도 같고. 로버트도 알잖아요. 내가 마음이 여려서…….”

나는 눈을 찡긋하며 로버트에게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로버트는 ‘호오’하는 표정을 짓더니 눈치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뻔한 방식이지만, 굿 캅 배드 캅 놀이가 고전인 이유는 그만큼 효과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보스 손에 피를 묻혀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조용히 묻어버리겠습니다. 일반인 사찰에 불측한 의도를 가진 접근입니다. 대놓고 자신들 요원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처리를 해도 문제 삼지 못할 겁니다.”

조용히 묻어버리겠다는 말에 여자들 표정이 핼쑥해졌다.

나는 뜻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만 보고 있던 여자들 사이에 곧바로 균열이 일었다.

“저…… 저기.”

“어떤 말도 듣지 않겠다.”

로버트는 단칼에 말을 잘라버렸다.

입을 열었던 장신위안은 낯빛이 칙칙해졌다. 자신은 정식 요원도 아니고 거의 끌려오다시피 이 작전에 투입이 됐다.

뭐라도 해 보고 문제가 생겼다면 모르겠는데 엉뚱한 방에 끌려가 약 탄 술을 마실 뻔하시고 러시아 여자의 폭주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이 자리까지 왔을 뿐이다.

“부…… 부탁입니다. 제 말을 들어주세요.”

장신위안은 쥐어짜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말이 안 통하는군.”

로버트는 곧바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장신위안은 눈앞에 총구가 나타나자 파리한 얼굴이 되었다. 몸을 파르르 떨면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사…… 살려 주세요. 저는 이런 자린지 진짜 모…… 몰랐어요.”

장신위안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장신위안과 달리 정식으로 요원 교육을 받은 다른 여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설마 말 몇 마디 했다고 총부터 들이댈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네. 보스.”

“잠시만요. 유언 정도는 들어줍시다.”

“흠. 유언입니까?”

“저들도 자의에 의해서 이곳에 온 건 아닐 겁니다. 여러분. 내 말이 맞습니까?”

장신위안을 포함한 아홉 명의 여자들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에 책임을 물으려면 작전을 세운 자와 지시를 한 자를 잡아야죠.”

“보스. 이미 잡아 두었습니다.”

가늘게나마 붙잡고 있던 끈이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되자 여자들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통신 자료와 녹취 데이터는 이미 수거했습니다. 증거와 증인은 차고 넘치니 굳이 이런 피라미들을 붙잡고 취조니 뭐니 할 이유도 없죠. 조용히 치워버리는 게 가장 좋습니다.”

로버트는 진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투로 말을 던졌다.

“증거도 증인도 모두 확보했다는 말이죠?”

“네. 보스.”

“그럼 좀 천천히 가죠.”

“네?”

“조용히 치우든 시끄럽게 치우든. 일단 여기서는 하지 말라는 이야깁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엉망인데 피까지 보고 싶지는 않거든요.”

“아, 그 부분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보스.”

로버트는 마치 마피아 척결단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요. 그러니 총도 잠시 넣어둡시다.”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신위안에게 향했던 총구를 치웠다.

“아가씨들.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건데. 협조를 좀 해 줬으면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여자들은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들킬 것 다 들키고 지휘부까지 모두 붙잡힌 상태다.

자신들이 대단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 몇 마디 때문에 클럽에서 총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 국가 요원들입니까?”

아홉 사람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장신위안은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임시 요원으로 임명이 되긴 했지만, 정식으로 훈련을 받거나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입니까?”

전문가냐는 내 질문에 표정들이 복잡해졌다.

정식 요원이 맞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프로라 불릴 정도의 경력과 실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었다.

“특별한 질문은 아닙니다. 나이들이…… 어려 보여서 물어본 겁니다.”

중고등학생 때 차출이 돼서 훈련을 받고 현장 요원으로 몇 년 굴렀다면 모를까. 딱 봐도 경험 부족의 초짜 분위기다.

미인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개개인의 실력보다는 얼굴과 몸매를 중심으로 뽑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저들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보부 요원이 됐다는 말은 가진바 재능이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말인즉. 인물 좋고 몸매 좋고 재능도 빵빵한 열 명의 재녀가 내 손에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

“나는 여러분들을 나에게 파견시켜 달라고 요청할 생각입니다.”

“네?”

“에?”

“보스!”

내 발언이 의외였을까. 여자들은 물론이고 조용히 듣고 있던 로버트 역시 놀라는 표정이 됐다.

나는 로버트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며 손을 들어 보이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파견에 동의치 않는 사람 있다면 지금 말씀하세요. 그분은 제외를 시켜드릴 테니.”

내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빛들이다.

“그리고 그 미인계 계속하세요.”

“에에?”

“내가 대단한 미남은 아니지만, 그걸 상쇄시킬 수 있는 재력이 있지 않습니까. 남자친구로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어…….”

“고민할 시간 없습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원치 않는 사람은 손!”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다들 머리가 뒤엉킨 모양이다.

움찔하는 이들은 있어도 자신 있게 손을 든 사람은 없다. 뭐가 뭔지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좋습니다. 모두 파견근무를 하는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아, 여기 자리한 열 명이 전부죠?”

“그게…….”

딱 봐도 러시아 쪽 요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편하게.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스테이지에 있던 요원들이 더 있습니다. 싸움이 일어나고 바로 빠져나갔을 겁니다.”

“그렇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로버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스…… 지금…….”

“지휘부 잡아 두었다고 했죠?”

“네.”

“데려오세요. 파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

“보스.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그럴게요.”

로버트는 룸 밖으로 나가더니 곧바로 지시를 내리고 다시 들어왔다.

잠시 뒤, 미인계 작전을 지휘하던 이들이 하나둘 룸으로 들어섰다.

“워워. 이런!”

이번 작전의 기획과 실행자들의 면면을 확인한 나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미국에 계셔야 할 알렉스 차관님. 대사관에 계셔야 할 니콜라이 대사님. 프랑스 대사도 계시고…… 그쪽은 일본? 중국?”

“큼. 일본입니다.”

주몽 관리팀 일본 쪽 책임자 스즈키가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흘렸다.

나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너무들 하는 거 아닙니까? 민간인 사찰에 요원까지 투입해요? 그것도 어리고 마음 약한 여자들을 이용해서?”

“…….”

“했으면 들키지를 말든지.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

알렉스를 비롯한 책임자들은 하나 같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거 문제 삼으면 골치 아픈 거 다들 아시죠?”

골치만 아프다 뿐인가. 자국 시민을 사찰하고 불측한 의도로 여자까지 접근시킨 일이다.

이게 밖으로 알려졌다간 월드 특종으로 온갖 미디어가 활활 타오를 것이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이번 일에 관여된 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고 만에 하나 주몽이 본격적으로 소송이라도 걸어오는 날엔…….

천문학적인 배상금까지 감당해야 한다.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책임자들도 낯빛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요? 공개적으로 항의해요?”

“크흠. 미스터 고.”

알렉스가 목이 잠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런데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로버트가 단박에 언성을 높였다.

“헤이. 알렉스. 미스터 고가 아니라 체어맨!”

“…….”

알렉스는 로버트의 호통에 얼굴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보스는 일국의 대통령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위치다. 그런데 차관도 뭣도 아닌 네가 미스터 고?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간 성치 못할 거다.”

“죄…… 죄송합니다. 고 회장님.”

알렉스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래서 할 말이 뭡니까?”

사과는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입을 연 이유나 듣자고 했다.

“외부에 알려지기로…… 회장님은 몸이…….”

“휠체어 코스프레 말이군요. 그래서요?”

“크흠. 피차간에 이번 일이 알려져봤자…….”

“왜 피차간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네?”

“나는 고주몽이 아니라 고주선입니다. 주몽이 형의 육촌 동생이죠.”

“에에?”

“그리고 나는 지금 호텔 방에 누워서 오랜만에 잠을 깊이 자고 있죠. 여기 온 적도 없어요.”

“…….”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리고 여기 아가씨들은 주몽이 형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육촌 동생인 나를 의도적으로 엮으려고 했죠. 그것도 마약까지 동원해 가면서.”

알렉스는 물론이고 다른 책임자들 역시 얼굴이 핼쑥해졌다.

“내 얼굴을 봐요. 내가 고주몽입니까. 아니면 고주선입니까?”

“…….”

“피차 불편한 일이라…… 모르겠군요. 우리 형이 과연 그렇게 생각할지 말입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이거야 원. 형한테 가서 빨리 일러야겠네. 아주 못된 놈들이니까 이번 기회에 작살을 내버리자고.”

“고 회장님!”

“알렉스! 어디서 언성을 높이나!”

로버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알렉스 쪽으로 다가갔다. 목을 잡아당긴 로버트가 이마를 맞대고 으르렁거렸다.

“마지막 경고다. 계속 그렇게 실수를 해라.”

알렉스는 이글거리는 로버트의 눈빛에 기가 질렸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의 실수를 바라는 그런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젠장. 로버트 국장. 당신 돈 받고 그냥 고용된 사람이잖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알렉스는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알렉스의 눈빛에 로버트는 피식 웃어버렸다.

“알렉스 피트. 38세. 하버드 졸업과 동시에 재무부 입성. 동기는 물론 선배들까지 제치며 10년 만에 차관에 오름. 성격. 오만하고 자기중심적. 소시오패스 경향이 있음. 관리팀으로 좌천되고 보스에게 앙심을 품었음.”

“그…… 그게 무슨 소리…….”

“짐과 샤론이라고 했던가?”

“설마. 녀석들이…….”

“GO 컴퍼니에 소송을 당하는 것보단 자잘한 정보라도 내뱉는 게 살길이니까.”

로버트는 알렉스의 뒤통수를 쓰다듬더니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로버트가 벌인 활극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다른 책임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표정이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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