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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07화 (108/224)

107장. 강 건너 불구경

클럽 DJ는 비트를 고조시키며 스테이지를 더욱 격하게 몰아갔다.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들리지 않을 만큼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평소라면 비트에 몸을 맡기고 몸이라도 흔들어보겠지만, 목적을 가지고 클럽에 들어온 요원들에겐 그저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다 보니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다.

서지은은 수신기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클럽 안이 워낙 시끄러워서 수신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그래!”

서지은이 귀에 손을 대고 주변 소음을 차단하자 다른 요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악쓰듯 이야기했다.

클럽 외부에 지원팀을 가지고 있는 건 미국을 포함해 몇 개국뿐이었고 다른 요원들은 말 그대로 몸만 투입이 된 상태였다.

함께 있는 서지은이 아니라면 정보를 얻을 사람이 없다.

“잠시만.”

서지은은 눈을 감고 수신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잘…… 못 들어갔어?”

“뭐!”

“방 주인이 고주몽이 아니라고!”

“아니 왜!”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성대를 혹사했지만, 악을 쓰고 귀를 가져다 대야 겨우 소통이 될 정도다.

“기다려봐!”

서지은이 다시 귀를 틀어막고 수신에 집중했다.

“고주몽이 아니라 다른 녀석들 방에 간 모양이야! 그리고…….”

서지은은 미간을 찡그렸다.

“젠장. 일이 어그러졌다.”

“뭐!”

“일이 어그러졌다고!”

“뭐라고?”

“일이 잘못됐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방 주인들이 술에 약을 탔어!”

“약? GHB!?”

“그래! 싸움이 났어!!”

다들 귀에 손을 모으고 서지은의 외침을 듣던 요원들은 싸움이 났다는 말에 표정이 달라졌다.

“저기!!”

요원 하나가 룸쪽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요원 하나가 인상을 구기더니 곧바로 자리를 떴다.

“어디가!!!”

다른 요원들이 소리를 쳤지만, 자리를 뜬 요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제야 다들 상황을 인지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나누던 요원들은 망설임 없이 클럽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다 싸움까지 하게 됐는진 모르겠지만, 여기 이대로 있다가 사건에 휘말리면 입장만 난감해질 뿐이다.

혹, 불똥이라도 튀었다간 본인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속한 나라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럴 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는 게 정석이다.

서지은은 적잖게 당황한 표정이다. 애초부터 서로 돕고 말고 할 사이도 아니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는 다른 요원들 모습에 짜증이 밀려왔다.

― 지…… 금. 당…… 장. 나…… 와!

수신기에서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지은은 룸 쪽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이대로 동료들을 두고 나가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달려가 돕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 빠…… 져 나. 오…… 라고!

“젠장.”

마음 같아선 룸 쪽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자신이 도움이 될 상황이었지만, 지휘부에서 협조하라고 명령이 내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빠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서지은은 그대로 몸을 돌려 클럽을 빠져나갔다.

* * *

오늘은 글렀다며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김인선의 말에 나는 푹푹 한숨이 나왔다.

“나갈 수는 있겠습니까?”

김인선은 빼꼼히 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다.

“그게. 지금은 좀.”

“비켜보세요. 나도 좀 봅시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기에 그러는지.”

“위험합니다.”

“위험은 무슨.”

나는 김인선을 밀치고 밖을 내다봤다.

“뭐냐. 저 여자들은…….”

냄새나는 남자들끼리 ‘여자’를 두고 싸우나 싶었는데 여자와 남자로 패가 나뉘어 싸움하고 있었다. 그것도 목소리만 높이는 그런 싸움이 아니다.

“우와.”

모델처럼 늘씬하게 빠진 여자 한 명이 미끄러지듯 복도를 타고 넘더니 앞을 막고 있는 사내의 발목을 걷어찼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얻어맞은 남자가 한쪽으로 기우는데, 그걸 또 놓치지 않고 스핀 들어간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찍어버렸다.

빡!

“꾸엑!”

둔탁한 타격음과 숨넘어가는 비명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남자는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워워. 모델이 아니라 격투기 선수네.”

여자 한 명만 그런 거라면 모르겠지만, 쭉쭉 빵빵 뻗은 다른 여자들도 거침이 없었다.

“여자 조폭들인가?”

내 중얼거림에 김인선이 ‘네?’ 하는 소리를 냈다.

“아닙니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며 문틈으로 리얼 활극을 감상했다.

여자와 노는 건 날 샜지만, 여자가 싸움질하는 장면은 새로운 재미가 됐다.

자로고 강 건너 불구경과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 구경거리가 없다고 하더니 명불허전이다.

처음엔 나름 선전을 하며 남자들을 밀어붙이는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들 쪽이 불리해졌다.

복도를 막아서는 남자들은 하나둘 늘어났고 여자들의 체력은 빠른 속도로 소진이 됐다. 주먹을 뻗던 여자 한 명이 저쪽에 붙잡힐 뻔한 위험한 상황도 연출이 됐다.

“이거…… 위험한데.”

내심 여자들 쪽을 응원하던 참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양측에서 고성이 오갔다.

미친년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남자들 쪽에서 흘러나왔고, 여자들 쪽에선 마약이니 강간범이니 하는 소리로 맞받아쳤다.

복도를 막고 있는 놈들은 저놈들 경호원이거나 부리는 놈들 같았다.

“호오. 대충 줄거리가 그려지네.”

직접 나서진 않고 목소리만 높이는 놈들 사이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등의 말이 흘러나왔다.

남자들 생겨 먹은 걸 봐선 나이를 높게 잡아도 서른 안팎이다.

저 나이에 클럽 룸을 잡고 여자들에게 약까지 먹이며 놀 정도면 딱히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돈 있는 집 망나니들.”

하는 짓을 보니 딱, 진상이 같은 놈들이다.

나는 쯧쯧 혀를 차며 시선을 거뒀다.

클럽에서 대놓고 싸움을 할 정도면 나름대로 힘 있는 집안일 것이고 동네 경찰들이 나서봤자 허수아비로 전락할 것이다.

어쩌면 출동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클럽으로서도 이런 소란이 외부로 알려지는 건 원치 않을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들이 폴리스 운운했지만, 놈들은 콧방귀만 날렸다. 마치 ‘이 구역 미친놈들은 우리다!’라고 외치는 모양새다.

“여자들이 잡히면 대충 끝날 것도 같은데…….”

이대로 모른 척 방에 있다가 나갈 것인지. 아니면 밖에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로건을 호출을 하는 게 맞는지 잠시 고민했다.

그때 긴장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여자 한 명과 눈이 딱 마주쳤다.

“헤…… 헬프미. 플리즈.”

여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쯧. 내가 변장만 하지 않았어도 힘 좀 써주겠는데. 나 지금 휠체어 탄 환자거든. 그래서 나설 수가 없다.

“쏘리.”

“…….”

여자는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듯 나를 바라봤지만, 어쩌겠는가.

“쏘쏘 쏘리.”

“…….”

나는 슬그머니 문을 닫았다.

옆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RT와 김인선이 묘한 눈빛을 쏟아냈다.

“뭡니까? 그 눈빛은.”

“미인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RT가 너무 한 거 아니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보기가 좀…….”

“그럼 RT 씨가 나서면 되겠네.”

“네?”

나는 문을 열고 RT를 힘차게 밀쳐냈다.

“어엇!”

“RT 씨 파이팅.”

RT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곤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김인선은 RT만큼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인선 씨도 나가고 싶다면…….”

“아닙니다. 저는 대표님을 지켜야죠!”

김인선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여자를 도와야지 않겠냐던 RT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들었다.

“대…… 대표님. 이건 아니죠. 문 좀 열어봐요. 대표님. 제가 망언을 했습니다. 제발!”

RT의 간절한 외침에 김인선이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입만 산 가이드잖아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그건 그렇죠.”

“그럼 뭔가 책임을 져야지 않을까요? 인선 씨 생각은 어때요?”

“저야. 대표님 결정에 따를 뿐입니다.”

괜한 소릴 했다간 자신도 RT 꼴 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김인선은 현실에 타협하기로 했다.

나름 몸 좀 쓴다는 소릴 듣고 살지만, 여자들까지 보호하면서 열댓 명의 덩치들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많았다.

껄렁거리는 양아치라면 모르겠지만, 다들 제대로 훈련받은 경호원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문밖에서 퍽퍽 거리는 소리와 RT의 비명이 흘러들었다.

여자들의 고함. 망나니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그려진다.

그렇게 대충 마무리가 되는가 싶었는데, 망나니 하나가 요단강 건너는 소리를 냈다.

“미친년들아. 아무리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안 되는 건 안 돼. 저 방 주인처럼 눈치라도 있어야지.”

“으하하. 그래. 적어도 저 방에 있는 놈은 세상 무서운 줄은 알잖아.”

“여기 정리 끝나면 저 방에 술 한 병 넣어줘라.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 같은데 술이라도 먹고 힘내라고.”

이것들 봐라. 입장이 곤란해서 조용히 있다가 나갈 생각이었는데 잠사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네.

“허허허.”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자 김인선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

“대표님. 그냥 듣고 흘리시죠. 술과 약에 취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놈들입니다.”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코털은 건드렸지만, 적당히 웃으며 넘어가기로 했다. 쏘쏘 쏘리까지 내뱉은 마당에 이제 와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고 해서 크게 고마워할 것 같지도 않고.

“뭐. 그럽시다. 애들 헛소리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니.”

내가 너그러이 넘어가겠다고 이야기하자 김인선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밖의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나 김인선으로선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트러블 없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목적이다.

문 뒤에서 다시 소음이 일기 시작했다.

“뭐해? 저년들 잡아 꿇려! 오늘 아주 작살을 내버릴 테니까!”

망나니 하나가 거칠게 지시를 내렸고 몇 차례 투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일순간 조용해졌다.

잠시 뒤, 망나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게 결국 여자들이 붙잡힌 모양이다.

그렇게 일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망나니 하나가 코털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쿵쿵쿵. 문 두들기는 소리가 룸 내부에 울려 퍼졌다.

“야. 문 좀 열어봐.”

쿵쿵쿵.

“문 열어보라고.”

“인선 씨.”

“네…….”

“어떻게 할까요?”

“제가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김인선이 문 쪽으로 다가오자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느릿하게 문이 열리고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두들긴 놈 뒤로 여자들이 붙잡혀 있는데 모습이 하나 같이…… 짠하다.

나름 클럽에 놀러 온다고 차려입고 온 모양인데 여기저기 찢겨서 걸레가 되었고 머리도 거칠게 헝클어져 미친년이 따로 없다.

그리고 그녀들 사이로 쌍코피가 터진 RT가 흐릿하게 보인다.

“쯧.”

절로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인선이 문을 열고 앞으로 나가자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던 망나니 하나가 움찔 물러섰다.

몸에 걸치고 있는 건 힙합 패션이지만, 옷 사이로 근육을 드러낸 김인선의 몸집은 무시할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 무슨 일입니까?”

김인선은 나름 정중하게 말을 건넸지만, 오히려 그게 얕보인 모양이다.

“방 빼라.”

“네?”

“우리가 그쪽 방을 좀 써야겠으니까. 나가라고.”

김인선은 어쩌면 좋겠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방을 빼라고?

뭐. 흘러가는 분위기가 놀기는 글렀다만. 그래도 그렇게 예의 없이 이야기하면 듣는 내가 좀 그렇잖아.

“어이. 내 말 안 들려?”

들려. 아주 잘 들려. 마음 같아선 한바탕하고 싶지만, 오늘은 내가 참는다.

“그렇게 하죠.”

내가 순순히 물러나겠다고 하자, 녀석이 룸 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리고 내 어깨를 팡팡 내리쳤다.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다음에 놀러와서 그때 신나게 놀아.”

오늘도 겨우 만든 날이었다. 이 새꺄. 내가 휠체어 코스프레만 아니었어도…… 운 좋은 줄 알아라.

나는 화를 꾹 누르며 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인선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내 곁에 딱 붙어서 움직였다.

“인선 씨.”

“네.”

“좀 떨어집시다. 덥네.”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는데 붙잡혀 있던 여자 하나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플리즈…….”

“미안하다. 나도 사정이 있어서 그래.”

너 같은 미인을 망나니들 손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내 마음도 조금은 이해해주라. 나라고 이렇게 떠나고 싶겠냐.

안타까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몸을 돌리는데, 다른 여자 한 명이 ‘미스터 고. 플리즈……’라는 말을 꺼냈다.

몸은 그대로 두고 고개만 그쪽으로 획 돌아갔다.

‘나를 알아?’

이런 내 눈빛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얼굴 인상까지 바꾸고 외출을 했는데 어떻게……?

‘제발…… 도와줘요.’

‘싫다면?’

내가 여기 있었다고 방송에 나가서 증언이라도 하게? 사진이 찍힌다고 해도 본래 내 얼굴과는 많이 다르다고. 거기다 호텔에 알리바이도 만들어 두었고.

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망나니 하나가 ‘어이!’하고 나를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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