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장. 오늘 가이드해 드릴까요?
샵 마스터의 도움을 받아 클럽 패션으로 복장을 바꾼 김인선은 말 그대로 힙합 전사가 되었다.
헐렁하면서도 근육이 드러나도록 코디를 마친 김인선은 거울을 보며 어색한 표정을 반복했다.
“완전 멋져.”
샵 마스터는 김인선의 어깨선을 터치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사장님. 꼭 이렇게 입어야 하는 겁니까?”
김인선이 샵 마스터를 바라봤다.
“이렇게 좋은 몸을 왜 감춥니까. 그리고 입구 컷 당하지 않으려면 옷이라도 이렇게 맞춰 입어야죠.”
“입구 컷 말입니까?”
입장 자체가 안될 수도 있다는 말에 김인선은 물론이고 나 역시 ‘어?’하는 표정이 됐다.
“복장은 둘째치고 대표님도 그렇고 여기 이분도 그렇고 클럽 에이지는 아니죠.”
샵 마스터는 대놓고 나이 폭행을 했다.
“나이가 문제 됩니까?”
내 질문에 샵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이 아니라 나이트 가서 아줌마들이랑 놀라고 할 겁니다. 컷 당할 가능성 90%?”
샵 마스터의 말에 나도 김인선도 얼떨떨한 표정이 됐다.
사회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결코 많다고 할 수가 없다.
“외국에서 오셔서 그런가. 강남 탑 클럽은 이십 대 중반 넘어가면 둘 중의 하나는 갖춰져야 입장이 자유롭죠.”
“둘 중에 하나요?”
김인선의 질문에 샵 마스터가 설명했다.
“나이는 기본이니 제외하고…….”
“네. 나이는 제외하고.”
“1급수 정도의 멋짐 폭발 또는 빵빵한 지갑이죠.”
샵 마스터는 나와 김인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내가 좀 도와드려요?”
샵 마스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입구 컷이라니. 부하직원까지 데리고 와서 망신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로 방법이 있습니까?”
“룸을 잡아야죠.”
“룸?”
“네. 일반 입장은 티켓값이면 충분하지만, 말했다시피 두 분은 티켓 입장이 어려우니.”
“하하. 재미있네요.”
“어떻게 할까요?”
“잡아주세요. 여기까지 와서 입구만 구경하고 돌아갈 수는 없죠.”
“비용이 좀 나오는데.”
샵 마스터는 괜찮겠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에게 돈 따위가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다. 룸비가 얼마나 나오기에 괜찮겠냐는 질문이 나왔는지 말이다.
“기본 오백. 이것저것 조인(join) 들어가고 술도 분위기 있는 거로 깔면 천?”
샵 마스터의 말에 김인식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클럽에서 춤 좀 추고 술 좀 마시는데 무슨 놈의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냐는 표정이다.
“직원분 표정이 적나라하시다. 말씀드렸잖아요. 애들은 티켓 값이면 오케이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룸살롱도 아니고 무슨 클럽 룸 값이…….”
“그런 룸이랑은 차원이 다르죠. 나가요와 노는 거랑 어리고 예쁜 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애들이랑 노는 거랑 어떻게 비교를 합니까.”
샵 마스터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니, 강남 클럽은 미스코리아에 천재들만 와서 춤을 춥니까?”
김인선은 하룻밤 술값이 자신의 월급 두 배를 상회한다는 것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김인선의 말에 샵 마스터는 어깨를 으쓱였다.
“복불복이죠. 미스코리아에 천재를 건질 수도 있고, 알코올에 쩐 죽순이를 만날 수도 있는 거고. 하하하하.”
샵 마스터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대표님. 어떻게 룸 잡아드려요? 오케이하시면 내가 가이드도 해 드리죠.”
소위 잘나가는 강남 클럽의 룸비가 그렇게 비쌀 줄은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돈 때문에 물러설 일은 없다.
간만에 스트레스 좀 풀어보겠다고 기어 나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죠. 그런데 가이드라면…….”
“내가 여기서 옷 장사한 지 5년이 넘었거든요. 그래서 딱 보면 척하고 느낌이 오죠. 클럽 초보시잖아요.”
“하하하.”
“어정쩡하게 돈만 쓰는 것보다는 나처럼 정보 빵빵한 가이드 하나 데리고 있는 게 남는 장사라는 거죠.”
“사장님 재미있으시네. 클럽 가이드라.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내가 오케이 신호를 보내자 샵 마스터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내가 손님 한 팀 모시고 갈 거야. 오늘 VIP 비어있지? 오케이 그거 잡아줘.”
샵 마스터가 통화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김인선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이거 아무래도 호객 당한 거 같은데 말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네?”
김인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샵 마스터 말도 딱히 틀린 건 아니라서.”
나는 나와 김인선 얼굴을 가리켰다.
내 나이 서른. 김인선 나이는 서른다섯. 나이를 떠나 남들 눈에 확 튈 정도로 미남도 아니다.
잘나가는 클럽들은 자체 수질 관리니 뭐니 하면서 입구 관리를 한다더니 지금 상황만 놓고 봤을 땐, 샵 마스터 말대로 입구 컷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클럽에 목멜 일은 아니지만, 거의 일 년 만의 일탈인데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일병 첫 휴가 나왔다고 할 수 있죠.”
“아. 네.”
일 년 만의 일탈, 일병 첫 휴가라는 말에 김인선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지금 이 상황을 백 퍼센트 이해했다는 표정이다.
통화를 마친 샵 마스터는 곧바로 매장 정리에 들어갔다.
“문을 닫는 겁니까?”
“하하. 내가 사장인데 누가 뭐라 할 겁니까.”
샵 마스터는 신이 난 얼굴로 정리를 마치더니 나와 김인선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고주선입니다. 이쪽은 김인선.”
“네. 저는 RT라고 불러주세요.”
“RT요?”
“ReTweet.”
“아, 리트윗. 이름이 특이하시네요.”
“그냥 저 좋을 대로 붙여서 쓰는 거죠. 우리 쪽은 본명보다 예명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쪽이라면 어떤 쪽을 말하는 겁니까?”
“샵은 부업이고. 본업은 음악 합니다. 힙합 아시죠?”
“호…….”
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RT는 ‘하하’ 웃음을 보였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우리가 클럽 초보인 거야, 말 몇 마디 나누면 다 알 일이지만, 입장비를 오백, 천씩이나 낼 정도로 지갑이 두둑하다는 건 어떻게 안 겁니까?”
“에이. 딱 보면 알죠. 옷 갈아 입힌 저분은 그렇다 쳐도…… 아, 저도 저분처럼 대표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뭐. 그러시죠.”
RT는 나를 쓱 흩어보더니 ‘씩’ 웃어 보였다.
“평범해 보이는 복장이지만 하나 같이 명품이지 않습니까. 아까 계산할 때 꺼냈던 지갑도 그렇고 손에 차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시계도 절대 평범하지 않고 말입니다.”
RT는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척 보면 압니다’하는 표정을 지었다.
“샵을 부업으로 한다고 해도 나름 전문가입니다.”
RT의 말에 김인선이 내 복장과 시계를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김인선의 말에 RT가 ‘놉!’하고 소리를 높였다.
“여기 대표님이 걸치고 있는 것들 대충 계산해도 5천은 될 겁니다.”
“에에?”
내가 입고 있는 옷과 시계가 5천이라는 말에 김인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단 그런 눈빛이다.
RT는 그런 김인선의 눈빛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표님이 뭐 하시는 분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입고 다니시는 옷을 보면 재력이 상당한 것 같은데 직원분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표정을 하니 그게 더 신기하네요.”
RT의 말에 김인선은 무안한 표정이 됐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모시는 대표가 얼마나 돈이 많은 사람인지 잠시 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국정원에서 Go 컴퍼니로 이직을 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일 테니 아무래도 익숙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님. 차 가지고 오셨죠?”
“네.”
“실례가 안 된다면 차종이…….”
“포르쉐 911입니다.”
“와우.”
차종을 들은 RT가 눈을 반짝였다.
마치 오늘 제대로 된 봉을 잡았구나 하는 그런 표정이다.
“타고 가죠!”
“차 타고 이동할 거리는 아닌데…….”
“에헤. 이거 왜 이러실까. 포르쉐 타고 클럽에 가면 슬리퍼 신고 내려도 무사통과!”
RT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무조건 타고 가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런가요.”
“그런 겁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니까요.”
‘겨우 클럽 한 번 가는데, 가이드까지 필요합니까?’ 하는 표정을 지었던 김인선도 슬슬 RT 스타일에 빠져드는 눈빛이다.
그간 다녔던 직장도 그렇고 본래 군 출신이다 보니 상명하복에 딱딱한 분위기가 일상이던 김인선이다.
RT는 그런 김인선마저도 흥이 돋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걸어서 5분도 되지 않는 거리지만 RT의 주장에 따라 클럽 입구에 포르쉐를 가져다 댔다.
나와 김인선 RT가 차에서 내리자, 클럽 입구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호오‘하는 눈빛으로 포르쉐와 차에서 내린 세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특히 여자들 눈빛이 장난 아니다.
RT가 나에게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내 말이 맞죠?”
“뭐가 말입니까?”
“여자애들 탐지 레이더에 떡하니 걸려들었다는 말입니다. 스캔 활동에 열심이지 않습니까.”
아…… 그러니까. 나 포르쉐 타는 남자라고 광고를 했다는 말이다.
“룸에 앉아 있으면 ‘포르쉐 타고 온 남자들 룸’이라고 슬슬 소문이 날 겁니다.”
말하는 폼세가 한 때 유행했던 ‘픽업아티스트’ 냄새가 난다.
나는 물론이고 내가 타고 온 포르쉐도 이 남자에겐 여성 픽업을 위한 소품 취급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네.’
RT의 목적이 나를 티켓 삼아 클럽 룸에서 노는 것이든 아니면 겸사겸사 여자를 꾀는 것이든 상관없다. 나도 RT를 가이드 삼아 즐겁게 놀다 가면 그뿐이니까.
클럽 입구에 도착하자, RT가 눈을 찡긋하며 ‘VIP 예약’이라고 말을 했다.
입구를 막고 있던 가드들은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순순히 길을 터주었다.
티켓도 줄 서는 작업도 없이 무사통과하는 우리 모습은 포르쉐 덕분에 찍혔던 도장을 더욱 확실하게 박아넣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야, 포르쉐 VIP룸이란다’등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RT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클럽 복도를 지나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잔잔한 연못에 떡밥 좀 던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월척들이 주변에서 서성이면 피라미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죠. 숫자를 생각하면 불타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 재미있지만 말입니다. 룸도 평일이어서 바로 잡힌 겁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림도 없죠.”
“월척? 피라미?”
“미스코리아에 머리 좋은 애들이 월척. 나머지 애들은 피라미.”
RT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내심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을 두고 월척이니 피라미니 하며 지칭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일 것이다.
‘교회에 기도하러 온 것도 아니고. 청춘들이 에너지 쏟으러 온 곳이잖아. 마법사가 되더니 머리까지 이상해진 거냐? 로마에선 로마의 법에 따르는 거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털어버리고 오늘 하루는 이쪽 분위기에 맞춰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눈치 빠른 RT가 이런 내 기색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하하. 제 말투가 좀 그랬나요?”
“아니요. 그냥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죠. 가이드를 자청했는데, 고객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신경 쓰겠습니다.”
RT의 태도에 피식 웃음이 났다.
‘돈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클럽 안으로 들어서자, 요란한 음악에 벌써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클럽 내부는 시작부터 북적거리는 분위기다.
“헤드라인 실장 전강석입니다.”
말끔하게 생긴 남자 한 명이 인사를 해왔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쪽으로’ 하면서 안내를 시작했다.
다양한 사이즈의 룸을 지나 맨 끝방에 도착했고, 실장이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