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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01화 (102/224)

101장. 꼼수 부리는 놈들 - 1

강남이다!

따지고 보면 한 줌 되지도 않는 서울 일부분이지만, 홍대 젊음의 거리와 마찬가지로 묘하게 사람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반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일 년의 절반에 이르는 시간을 보냈음에도, 그 많은 돈을 소유하고도 한 번도 맘 편히 놀아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떠밀리듯 일만 했다.

“산다는 게…….”

“네?”

내 중얼거림에 김인선이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냥 혼잣말입니다.”

“아. 네.”

김인선은 고가의 차량을 운전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회사 대표를 직접 수행한다는 점에서도 적잖게 긴장을 하는 눈빛이다.

“혹시 아십니까?”

“어떤…….”

“저도 복권에 당첨되기 전에는 재벌 4세의 수행비서였습니다.”

“아, 네. 방송 봤습니다.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엔 그게 머릿속에 콕 박혀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그랬는데, 이젠 애써 떠올려야 기억이 날 정도로 희미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삶이 달라졌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달라진 삶. 하하.”

내 웃음소리가 조금은 묘하게 느껴졌을까. 김인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생각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생각이랄 것도 없습니다. 인선 씨 말대로 삶이 달라지긴 했죠. 벌써 1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처음이네요.”

“처음이라면 어떤…….”

“어떻게든 놀아보겠다고 밖으로 나온 것 말입니다.”

“…….”

김인선은 내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살짝 놀란 눈빛이 됐다.

뭐랄까. 당신 정도 부자는 놀고 싶을 때 놀고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그런 표정이다.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개진상이 제멋대로 굴고 여자와 뒹굴고 툭하면 술이나 마시고…….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것 말고는 진상이도 일에 치어서 살았던 것 같다.

쉽사리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처럼 친구를 만나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홍대 거리를 걷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그런 모습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진상이 너도 참…….”

재벌의 삶. 부자의 삶이란 게 멀리서 봤을 땐 멋지고 대단해 보이지만, 정작 그 자리에 다가서거나 올라서면 아등바등대는 거기서 거기다.

막상 나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과거 내가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또는 부러워했던 것처럼. 이젠 다른 이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또 판단하고 상상한다.

잠시 자질구레한 상념에 잠겼던 나는 김인선의 질문에 현실로 돌아왔다.

“대표님.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강남에 유명한 클럽들이 여러 개 있다고 하던데.”

“네. 저도 말은 들었습니다만…… 딱히 이름도 잘 모르고…….”

“하하. 그건 나랑 똑같네요.”

“대표님이요?”

“네. 나도 인선 씨랑 같습니다. 대충 말은 들어봤는데 이름도 정확히 모르고 그게 어디 붙어있는지도 딱히 몰라요.”

김인선이나 나나 ‘클알못’이다.

촌 동네에서 태어나 지방대를 나오고 입사할 때까지 농사를 돕다가 상경했고, 이진상 밑에 비서로 꼽힌 뒤론 모든 스케줄을 그에게 맞추다 보니 사생활이란 게 없다시피 했다.

솔직히 강남은 고사하고 홍대 거리도 제대로 걸어본 역사가 없다.

‘크. 돌이켜보니 인생 참…… 퍽퍽하게 살았네.’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정신적 여유조차 사치스러웠던 나날들이다.

“검색해 봅시다.”

“아, 제가…….”

“운전하면서 검색을요? 동반 자살은 사양입니다.”

“…….”

김인선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소리를 했다 싶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강남 클럽이라고 검색을 하니 ‘클럽 순위’가 떴다.

“우리나라 사람들 순위 매기는 거 참 좋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길이 가는 건 역시 1위다.

“헤드라인?”

인기 1위라는 클럽 이름치곤 희한하다 싶었지만, 이름이 중요한가. 순위가 중요하지.

“헤드라인이라는 클럽이 요즘 인가가 좋다고 하네요. 위치 알려줄게요.”

“네. 대표님.”

페이지에 적힌 약도를 보며 설명을 했다.

“아, 대충 어디쯤인지 알 것 같습니다.”

김인선은 곧바로 차를 돌려 클럽 헤드라인으로 이동을 했다.

저 멀리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주변이 어두워지자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대표님. 이쯤인 것 같습니다.”

약도 위치를 쫓아 헤드라인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왠지 분위기가 썰렁하다.

“잠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차에서 내려 클럽 쪽으로 달려갔던 김인선이 낭패스러운 표정을 하고 돌아왔다.

“저기 대표님.”

“네.”

“영업시간이…… 10시부터라고 합니다.”

“아…….”

대충 저녁쯤 열지 않나 싶어 무작정 찾아왔는데, 완전히 헛다리 짚어버렸다.

“어떻게 할까요? 문을 열려면 최소 3~4시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긴, 간만에 기어 나왔는데 어떻게든 놀다 들어가야지.

“일단 저녁이나 먹을까요?”

근처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마친 나는 김인선과 함께 하염없이 강남 거리를 돌아다녔다.

어렸을 때 소풍을 나온 것처럼 그저 거리 구경, 사람 구경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겨우 이런 거로 재미를 느끼는 내가 웃기기도 했지만, 오래간만에 사람 사는 세상에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김인선은 길 잃은 고양이처럼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내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그렇다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댈 위치는 아니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조용히 따라다니며 틈틈이 주변을 살피며 경호 업무를 이어갔다.

“인선 씨.”

“네. 대표님.”

“옷 좀 삽시다.”

“네. 어디로 모실까요?”

“저기.”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던 김인선은 ‘진짜 저기입니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가리킨 옷집은 말 그대로 힙합 패션을 매인으로 하는 샵이었기 때문이다.

“갑시다.”

샵에 들어가자 금목걸이를 주렁주렁 단 남자 한 명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헤이 맨.”

헤이 맨…… 헤이 맨이란다. 이런 샵들의 스타일인 것인지. 아니면 샵 주인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재미는 있다.

“여기 이 사람 코디 좀 해 주세요.”

내가 김인선을 가리키자 샵 마스터가 ‘흐음’하는 표정으로 김인선을 훑어봤다.

“저기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김인선 입에서 대표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샵 마스터가 ‘호옹’하는 표정으로 이번엔 나를 바라봤다.

“이 패션으로 클럽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샵 마스터가 씩― 웃음을 흘렸다.

“헤드라인에 가시게요?”

“네. 영업시간을 몰라서 너무 빨라 와 버렸네요.”

“와우. 강남 클럽 타임을 모르시다니 외국에서 오셨나 봅니다.”

“하하. 그런 셈이죠. 클럽에 어울리는 패션 좀 부탁드립니다.”

샵 마스터는 맡겨 달라며 김인선을 데리고 샵 내부를 돌기 시작했다.

“대…… 대표님. 이건 좀…….”

“헤이 맨. 갑빠가 죽입니다.”

샵 마스터는 김인선의 단단한 체형에 살짝 놀라는 눈빛이 됐다. 그러더니 뭔가 아이디어가 떠 올랐는지 잽싸게 옷들을 챙겨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데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뭐지? 이 찜찜한 기분은.’

딱히 거슬릴 것도 없고, 문제 될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김인선이 옷 갈아입는 걸 지켜보며 이유를 찾고자 곰곰이 생각했다.

‘아…… 이런.’

찜찜하고 뭔가 어긋난 느낌. 원인을 깨달은 것이다.

‘보통 이런 장면은…… 아름다운 여비서에게 옷을 사입히고 그걸 바라보는 사장의 흐뭇한…….’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는 내 던지더라도 남자 수행인에게 옷을 사 입히며 흐뭇한 미소라니!

미친것도 아니고. 왜 이걸 흐뭇하게 바라봐!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설마, 다른 세상의 ‘나’ 중에 게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비서인 나와 기자 출신의 나. 그리고 군인 또는 용병으로 보이는 나 외에도 두 개의 인격체가 더 얹어진 상태다.

‘재수 없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질 말자. 내가 게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 * *

주몽의 납치(팩트), 실종(페이크) 사건이 벌어지자 잠정 영업 중단 상태에 있던 각국 주몽 관리팀은 불난 호떡집처럼 정신이 없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주몽의 출신 국가에서 테러가 일어나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더더욱 당황했다.

사태파악을 위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국 관리팀에서 연락 하나가 날아들었다.

고주몽 사망 시 대책을 요구하는 일종의 의견서였는데, 내용은 두말할 그것 없이 주몽이 보유한 자산과 현금에 관한 것이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주몽이 방송에 나와 직접 유언을 밝힐 정도로 사후 대책이 마련돼 있는 상황인데 무슨 수로 그의 재산에 손을 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게 또 웃긴 게 몇몇 사람들 입에서 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는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그런 의견을 낸 첫 번째 이유는 주몽의 기반 자체가 모래성 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보통 일정 이상의 재산을 가졌거나 기업을 소유한 경우, 그 소유자를 지탱할 수 있는 가문 또는 탄탄한 배경이 존재한다.

세계적 부자들은 하나같이 오랜 세월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완성한 자들이다. 그래서 법적 한계를 넘어 그들을 건드리거나 무리수를 두었다간 곧바로 반격을 당할 수가 있다.

하지만 주몽의 경우는 여타 부자들과 그 형태가 달랐다.

세월의 힘도, 특정 배경을 둔 규모의 힘도 존재치 않는,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벼락처럼 뜬금없이 튀어나온 존재인 것이다.

배우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배경이라 부를 수 있는 가문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거기다 그가 보유한 특혜도 문제가 됐다. 각국 시민권과 세금 및 법적 혜택은 온전히 주몽 본인에게만 적용이 되는 문제라 한국에 남겨진 그의 가족들과는 무관하다는 법리해석을 내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주몽의 모든 재산을 한 톨 남김없이 강탈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첫째. 남겨진 가족에게 유산이 전달될 때 천문학적인 세금을 때릴 수 있다는 점.

둘째. 그의 재산이 어디에 얼마만큼 남겨져 있는지 그의 가족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

셋째. 그 재산 내역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점이다.

여기서 재산 내역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말은 금고지기로 알려진 변호사 제이코를 회유 또는 제거함으로써 주몽의 재산 보유 여부를 다른 이들이 확인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있었다.

제이코와 주몽이 인연을 맺은 것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특별한 혈연관계나 그 이상의 뭔가로 이어지지 않은 이상. 틈새를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한국에서 날아든 제안은 간결하고 단순했다.

● 한국 내 고주몽의 재산 관리는 한국 정부가 맡는다.

● 고주몽의 소유한 기업과 현물 자산을 가족에게 상속하되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부과하고 20국이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

● 고주몽의 금융자산은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19국이 나눠 가진다.

각국 관리부가 눈독을 들인 항목은 ‘금융자산’이다.

어차피 한국 내 현물 자산은 한국법에 영향을 받기에 함부로 건드리기가 어려웠다.

그조차 나눠 갖자고 달려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걸 건드리지 않는 대신 금융자산 포기를 선언했으니 적정선에서 양보해도 문제 될 게 없다.

한국의 현물, 기업 주식보다 몇 배는 더 큰 재산이 주몽의 ‘현금’이었기 때문이다.

각국에 투자금 형태로 유치된 자본만 2천억 달러다. 한국 돈으로 200조. 이것만 해도 엄청난 수익인데 남겨진 자산은 두 배 또는 세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금융자산을 포기한다고 했으니, 현금만 나눠 가져도 19개 국가에서 최소 20~30조가량의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각국 관리부는 한 푼이라도 자신들 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 적용이 될 수 있도록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주몽의 유언이 발동되지 않게 특별법 제정을 연구하고 금고지기인 제이코를 회유 또는 제거하기 위해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G20이라고 해도 모든 나라의 국력이 같지는 않다.

당연히 강대국도 있고 약소국도 존재하니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앞장서는 나라와 물러나서 손가락만 빠는 나라도 생겨났다.

마음 같아선 다른 나라들과 경쟁을 해서라도 더 많은 돈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자칫 그마저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받아먹자며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렇게 국가간 비밀 협약이 오가고 고주몽 자산 회수 작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 황금열쇠란 암호명을 얻은 제이코의 존재가 문제로 대두됐다.

회유 또는 제거가 목적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그가 자국이 아닌 타국에 포섭이 되면 주몽의 감춰진 금융자산이 엉뚱한 놈 손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특정 국가에 작전을 맡기는 안은 폐기가 됐고, G20 내부에서 나름 방귀 좀 뀐다는 6개 국가가 공조해서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제이코가 가진 자산 정보는 물론이고 유산 집행인이라는 특별한 위치는 다른 나라에 내놓고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전에 투입된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영국.

서로서로 견제할 목적으로 나라 여섯이 동시에 움직였고, 그렇게 한국에 들어왔다.

호텔에 짐을 풀고 작전 계획을 점검하는데 고주몽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왓!???”

“뻑!!!!”

“빠가야로!”

“부땡!”

“쵸르트!”

“빵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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