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장. 신당 총회의
“국정원도 그런 걸 합니까?”
“일반적인 회사와는 다릅니다만, 문제가 생긴 파트는 통째로 공중분해 되는 일도 적잖게 있습니다. 이걸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2차장 라인에 속해 있던 제 팀도 조정을 당했습니다.”
“조정을 당했다는 말이…… 퇴사 처리가 됐다는 의미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팀이 분해돼서 다른 파트로 재배치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네…… 그런데 왜?”
“공무원 사회라는 게…… 그런 일이 한 번 터지고 나면 성장이 멈춰버립니다.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빨간 딱지가 붙어서 어딜 가도 눈칫밥 먹는 신세가 되죠.”
양하석의 말에 로버트가 말을 이었다.
“다른 나라들이야 셈의 커뮤니티를 이용해 도움을 받으면 되지만, 이곳 한국에선 따로 아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연락을 했는데. 사정이 딱하게 되었더군요.”
“그래서 스카우트?”
“네. 스카우트했습니다. 한국은 저 같은 외국인들이 움직이기엔 어려운 점도 많고 무엇보다 눈에 튀어서 말입니다.”
로버트의 말에 ‘그건 그렇죠’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양하석 씨. 혼자는 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
“네. 이번에 조정을 받은 친구들이 적지 않은데…… 다들 찬밥신세가 되어서.”
“그래서 몇 명입니까?”
“스물두 명…… 입니다.”
“에? 몇 명이요?”
국정원 요원이 한두 명도 아니고 단번에 스물두 명이나 내 쪽으로 이동을 해 버린다? 차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이다.
“적지 않은 숫자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 같이 능력 있는 친구들이고…….”
“아니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정도 고급인력이 내 쪽으로 이동하는 걸 국정원이 지켜만 보고 있겠냐는 말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양하석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근거라도 있습니까?”
“오래전부터 그래왔습니다.”
“오래전부터?”
“네. 국정원이든 기무사든. 정보조직 종사자들의 이직 장소는 정해져 있습니다.”
양하석의 말에 문득 대기업들이 떠 올랐다.
“대왕 같은 기업들로 옮겨간다는 말이군요.”
“네. 이번엔 GO 컴퍼니가 됐을 뿐입니다.”
“하하. 이거야 원. 국가정보를 다루던 이들이 그렇게 쉽게 자리를 옮겨도 문제가 없는 겁니까? 로버트 말을 들어보면 미국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던데.”
내 말에 양하석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상이긴 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말입니다. 정경유착이 시작된 이래…… 꾸준히 반복된 일이었습니다.”
“하하. 이래서 대기업 정보팀이 국정원과 맞먹느니 마느니 하는 말들이 나온 거군요.”
“보스. 지금은 한국의 역사 공부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컴퍼니에 필요한 인재들이 시기적절하게 마련됐다는 게 중요하죠.”
로버트는 이쯤에서 그런 이야기는 멈추는 게 좋겠다고 했다.
“네. 그냥 궁금해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양 과장을 우리 쪽 팀에 받아주는 것이.”
반대할 이유가 있나? 내가 싫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 옳다구나 하고 다 집어 갈 텐데.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양하석은 안도하는 눈빛으로 악수를 했다.
“양…… 과장님?”
“회사 직급입니다. GO 컴퍼니로 이직을 하면 이쪽 서열에 맞추겠습니다.”
“네. 뭐. 호칭이야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말씀하십시오.”
“이직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모든 부분이 그런 건 아니지만, 네. 국내 기업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외국계 기업은 문제로 삼는 모양이군요.”
양하석은 당연한 일 아니겠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양 과장님은 국내 스카우터로 임명하죠.”
“스카우터입니까?”
“네. 신뢰할 수 있는 인재라면 얼마든지 데려오세요. 분야도 영역도 가릴 필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양하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를 깔끔하게 완수하겠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는 이렇게 진행을 한다고 하고. 교육하겠다는 쪽은 아까 말했던 국가별, 인종별 요원을 이야기하는 거겠군요.”
“그렇습니다. CIA의 요원 양성은 여러 가지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식 코스를 밟아 입사하는 것과 군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이는 능력자를 스카웃 하는 방법. 그리고 현장에서 요원을 차출하는 방식입니다. 보통은 유학을 온 학생을 포섭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죠.”
“그 부분은 로버트에게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미스터 로이건과 해밀턴 두 사람과 함께 준비해 보세요.”
“네. 보스.”
“아직 점심 전인데, 다들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하. 공항에서 바로 달려왔습니다.”
“그럼 식사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까요?”
* * *
김덕영과 신당 지도부는 주몽의 지침 사항을 두고 일주일 넘게 회의를 이어갔다.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일과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할 일들로 일단 부류를 나누고 이걸 문서화 했다.
보통 보수니 진보니 하며 당의 색깔을 보이기 마련인데, 신당은 애초부터 그런 것과는 인연이 없는 말 그대로 돈으로 만들어진 사조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문서로 만들어진 내용 역시 진보적 성격의 내용과 보수적 성격의 내용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신당 총회의.
의원들이 모두 회의실에 들어서자, 김덕영은 곧바로 문을 걸어 잠갔다.
“대표님. 지금 뭐하신 겁니까? 왜 회의실 문을 잠 군겁니까?”
젊은 의원 하나가 발끈한 표정으로 김덕영을 바라봤다.
“기다려 보세요.”
김덕영은 의원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에 서 있는 외국인들에게 손짓했다.
시커먼 정장에 인상 험악한 외국인들은 알루미늄 케이스에서 다양한 장비들을 꺼냈다. 그리고 회의실 곳곳을 검색하며 의원들에게 바구니 하나를 내밀었다.
“폰 플리즈.”
“네? 뭐요?”
“폰! 플리즈.”
의원들은 당장 들고일어났다.
“대표님.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수작입니까! 개인 물품을 왜!”
의원들이 곳곳에서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덕영은 마이크를 툭툭 건드렸다.
“오늘 이곳에서 다뤄질 내용은 1급 보안 사항입니다. 누군가의 실수 또는 의도적 장난 때문에 당 전체가 풍비박산 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협조할 수 없는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주십시오.”
“그게 무슨…….”
“참고로 고 대표님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김덕영 입에서 주몽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반항심 가득한 표정으로 폰을 움켜쥐고 있던 이들이 ‘응?’하는 표정들이 됐다.
“고 대표님이요?”
“네. 앞으로 당이 나아가야 할 지침 사항도 있고 경고 사항도 있고…… 쯧.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보안 검색에 협조하세요.”
잠시 소란이 일긴 했지만, 오늘 회의 내용이 1급 보안 사항을 다룬다고 하자 의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협조에 나섰다.
그렇게 보안 검색만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됐고 외국인 경호원들이 모습을 감춘 뒤에야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나눠드리는 문서는 이곳에서만 봐야 합니다. 외부로 유출하거나 파기 또는 카피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점 의원 여러분께 양해 말씀드립니다.”
의원들 앞에 전달된 파일은 ‘1급 보안 문서’라는 붉은 도장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기존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새롭게 의원에 당선된 이들도 이런 문서는 처음 보는 눈빛들이다.
“읽어봐도 됩니까?”
“네. 그러라고 나눠준 겁니다. 단!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떠들어 대면 회의가 진행되겠습니까? 일단 문서를 확인하시고. 그다음에 정식 발언권을 얻어 질문이든 의견이든 내시면 된다는 뜻입니다.”
“알겠습니다.”
신당 의원들은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문서를 열었다. 하나씩 항목을 점검해가며 내용을 숙지하는데, 여기저기가 ‘오……’, ‘그래. 진즉에 이랬어야지!’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 모든 의원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기성 정치인들은 ‘으……’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 쥐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래서 보안을 그렇게…….”
“나도 공감. 이런 사항이 다른 당에 흘러나갔다간 시작도 하기 전에 온갖 소리를 다 뱉어냈겠네.”
“그런데 고 대표님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하지 않았어? 이건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개혁안들이잖아.”
“쯧쯧. 머리가 안 돌아가냐? 이게 쉽게 될 일이었으면 이미 해결을 했겠지. 그런데 이제야 튀어나온 이유가 뭐겠냐? 당연히 고 대표님 입김이 들어갔다는 소리잖아.”
“고 대표님은 후원자로 남는다고 하지 않았나?”
신입 의원 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짓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의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확인된 건 아닌데. 내가 보좌진에게 들은 말이 있어.”
“신 의원 보좌진?”
“그래. 이쪽으로 모여봐.”
신 의원이라 불린 청년의 말에 몇몇 의원들이 머리를 맞댔다.
“김 대표랑 지도부가 얼마 전에 고 대표님을 찾아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주몽을 찾아간 게 뭐 이상한 일이냐는 표정이다. 비록 후원자로 남겠다고 했지만, 신당과 고주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핵심은 만났다는 게 아니지. 왜 만나러 갔냐는 거지.”
“뭔가 아는 게 있구나.”
“있지.”
“그럼 뭘 고민하고 있어. 빨리 털어놓아 봐.”
“어디까지나 보좌진이 전해 준 말을 가지고 유추한 것이니까. 너무 멀리 가지는 말자고.”
“알았으니까. 뭔데?”
“지도부 지지 선언을 요청하려고 했다더라고.”
“지도부 지지 선언?”
“그래. 자네들도 알잖아. 우리 당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로국밥?”
“지도부 입장에선 머리가 아팠겠지.”
“결국, 고 대표님 힘을 등에 업고 당을 움직이겠다 뭐 이런 계획이었나 보군.”
“그래. 그런데,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고 하더라고.”
“아니 왜? 김덕영 대표만 하더라고 고 대표님 사람이잖아.”
신 의원은 1급 보안 문서를 툭툭 두들겼다.
“지지 선언을 요청하러 갔다가 오히려 일만 잔뜩 끌어안고 나왔다는 말이 있었어.”
“아하…… 그럼 이 문서가.”
“그래. 아무래도 고 대표님이 지침을 내린 모양이야.”
“쯧. 결국, 고 대표님도 말로만 후원 운운했다는 말인가?”
“뭔 멍청이 같은 소리야.”
신 의원이 동료 의원의 말에 쯧쯧 혀를 찼다.
“그게 아니면?”
“보면 몰라? 이 문건에 담긴 내용 어디에 고 대표님 이익이 담겨 있지?”
“어…… 그건 그렇네.”
“그래서 결론이 뭔데?”
“당론이지.”
“당론?”
“그래. 우리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말 그대로 뜬금없이 튀어나온 당이잖아.”
“크크크. 그건 그렇지.”
“그래서 당의 정체성이 없다고 할 정도야. 따로국밥 소리가 왜 나오겠어.”
“결국. 당을 하나로 결속시킬 방안이라는 말이군.”
“어쩌면.”
신 의원과 동료 의원들의 이런 대화는 곳곳에서 이뤄졌다. 다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파악하려고 애쓰는 표정들이다.
그때 이번엔 ‘2급’ 도장이 찍힌 파일이 추가로 나누어 줬다.
이미 1급 문서를 만져봐서인지, 2급 문서엔 다들 여유로운 표정들이다.
“2급이라. 이번엔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한 번 봐 볼까?”
“호오. 이건…….”
“고 대표님이 지원 하나는 화끈하게 해주시네.”
“실시간 방송 지원을?”
“청원 게시판이 생긴다면, 법안 작성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는걸.”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우리 사생활은 어떻게 되는 거지?”
“멍청한 소리 하고 있네. 이건 기회라고. 기회.”
“자네 말이 맞네. 인지도가 약한 우리에겐 기회네.”
회의실 내부는 의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