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장. 긴급속보! - 1
“그런데, 내 출국기록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익현 차장을 바라봤다.
“아, 그건 전 법무부 장관이신 나관형 후보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나관형 후보가요?”
“네. 저도 자세한 사항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전담 관리팀인가 하는 곳이 있는데 그쪽으로 통보가 되었고 정일표 사무관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육성철 후보에게 연락했다고 합니다.”
“아. 관리팀. 그게 아직 돌아가고 있었군요.”
복권 당첨이 되고 나서 시민권 및 세금 관련으로 업무를 전담했던 부서다.
임시로 만들어졌던 곳이라 일이 끝나고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운용이 됐던 모양이다.
거기다 정일표 사무관이면 미국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던 법무부 직원이다. 나관형이 법무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엔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였다.
“일단 알았습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됐군요. 정일표 사무관에겐 나중에 따로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정일표 사무관의 긴급한 연락이 없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상하이에 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고, 반격에 대한 실마리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표님. 데려왔습니다.”
박산호가 조폭 두목 박만천을 데리고 왔다.
함께 자리한 사람들 모두가 하나 같이 쟁쟁한 인물들이라 박만천은 기가 팍 죽은 얼굴로 연신 눈치를 봤다. 특히 장수철 지검장 쪽은 아예 눈도 못 마주쳤다.
“모두 이쪽으로 모이세요. 급하게 만든 계획이라 구멍이 많겠지만 일단 설명을 하겠습니다.”
내 말에 제이코와 박산호, 장수철과 형상진 및 인천지검 에이스 검사들까지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박만천 씨.”
“네. 회장님.”
“절단기와 용접기를 가지고 온 것으로 압니다.”
“아. 네.”
“부하들과 함께 지금부터 내 차를 부수세요.”
“네?”
박만천은 깜짝 놀란 얼굴로 방탄 롤스로이스를 바라봤다. 한 눈으로 봐도 억 소리가 나올 만큼 고급차량이다. 그런데 그런 차를 박살 내라니!
“회장님. 사…… 살려주십시오.”
박만천은 무릎이 부서지라 꿇더니 나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주려고 그러는 겁니다.”
“네?”
박만천은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조각을 내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절단기를 들어요!”
“아…… 알겠습니다.”
“로건. 박만천을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보스!”
갑자기 차를 부수라는 말에 지시를 받은 박만천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지만, 연이어 내려지는 명령에 점점 표정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형 국장님 역할이 중요합니다.”
“노…… 녹취는…….”
안보수석과 그들 무리에 섞여 들어가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자들의 목소리를 담으라는 지시에 얼굴이 핼쑥해졌다.
형 국장이 머뭇거리자, 장수철이 그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형님. 기횝니다.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공익제보자가 되는 겁니다. 평소라면 절대 피할 일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수철아. 그래도 이건…… 말이 좋아서 공익제보자지 대한민국에서 이런 짓을 했다가는.”
“뭐가 걱정입니까. 회장님이 뒤를 봐주시겠다는데.”
장수철의 말에 형 국장이 나를 바라봤다.
“어차피 이번 일이 밝혀지면, 형 국장님은 자리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저들과 공모한 죄를 물어 더 큰 궁지에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빠져나올 수 있는 키(key)를 손에 넣으세요.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
“형 국장님이 살아나려면 이번 기회에 저들과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진 않겠죠?”
“녹취만…… 하면 되는 겁니까?”
“뭐든 좋습니다.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대신, 남은 인생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입술을 깨물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던 형 국장은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저를 이용하세요.”
“너를?”
형 국장이 장수철 지검장을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형님과 내가 저들에게 공을 세운 거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그러면 당연히 상을 받아야죠. 형님과 내가 저들 무리에 속하고 싶다고 그렇게 이야기하세요. 증거 획득 부분은 나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장수철 지검장의 말을 막지 않았다.
일이 터지게 되면 장 지검장도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겠지만, 그 대신 새로운 인생을 보장해줄 생각이다.
“그래. 해 보자. 젠장. 나나 너나 안보수석에게 제대로 엿을 먹은 셈이니. 이대로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지.”
형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산호 부장님.”
“네. 대표님.”
“만에 하나 나에게 문제가 생긴다 해도 장 지검장님과 형 국장님은 제이코와 함께 재단에서 책임을 지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본래 제이코에게 해야 할 말이지만, 두 사람 듣기 편하라고 한국말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차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차장님.”
“네. 회장님.”
“대왕 일가를 쓸어 버릴 때처럼 이 일과 관련된 자들 모두 단숨에 쓸어 버릴 겁니다. 형 국장님과 장 지검장님이 증거수집을 마무리하면 그 자료와 더불어 두 분을 ‘공익제보자’ 또는 ‘증인’으로 세울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번 일을 벌인 이유 중 분명히 신당과 관련된 부분도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정치권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안보수석은 이 나라 기득권층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득권자들이 언론 삼사만 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전, 현직 정치인들 역시 그 안에 포함이 되어 있을 겁니다.”
“현직 정치인은…… 건드리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불체포특권도 문제지만, 각 정당에서 온갖 방해가 들어올 겁니다. 선거철이라 정치적 공격이라고 악을 써대면 아무리 검찰이라고 해도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이익현 차장의 말에 나는 씩 웃어줬다.
“그래서 말인데. D―데이는 선거 이틀 전으로 잡겠습니다.”
내가 D―데이 날짜를 지정하자, 다들 ‘아!’하는 표정이 됐다.
“증거와 증인. 그리고 구사일생 끝에 살아 돌아온 내가 얼굴을 내밀 겁니다.”
“선거판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겠군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번 일과 조금이라도 엮여 있는 게 밝혀진다면, 이번 총선은 그들에게 지옥 그 자체가 될 겁니다.”
“만에 하나 정말 그들이 이번 일에 연관이 되어 있다면…… 이번 총선은 신당의 독무대가 될 수도 있겠군요.”
주몽의 투자지침만으로도 어느 정도 의석수를 확보한 신당이다. 그런데 신당을 지원하는 주몽이 납치, 살인을 당할 뻔했다.
이 일에 기존 정치인들 이름이 튀어나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3선이니 4선이니 하면서 콧대를 높이던 이들도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주몽 납치 살인’ 쓰나미에 뿌리째 뽑혀나갈 것이다.
“국회의원 특권도 배지를 달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죠.”
내 말에 이익현 차장이 씩― 웃음을 보였다.
거대 재벌가의 비리와 범죄를 밝혀낸 데 이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이자 4대 기업의 사주인 고주몽의 납치, 살인, 유기를 밝혀내는 일이다.
이미 스타검사로 우뚝 선 그지만, 이번 일까지 마무리를 하고 나면 검찰 내부에서 독보적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이다.
“제이코.”
“네. 보스.”
“한동안 몸을 숨기고 잠적을 할 겁니다. 부모님이 놀라지 않도록 넌지시 말씀 좀 드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어디에 머무실 생각인지.”
“여기 어떻습니까. 인적도 없고 CCTV니 하는 기록 매체도 없는 곳이니. 몸을 숨기기엔 최적인 것 같은데.”
처음엔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었는데, 둘러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이번 일이 끝나면 이곳 일대를 매입해서 나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생각이다.
부릉! 부르르르릉! 까아아아아앙~!
뒤쪽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소음에 나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시선도 롤스로이스 쪽으로 향했다.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던 롤스로이스가 절단기 톱날에 불꽃을 튕기며 형체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장수철 지검장님.”
“네. 회장님.”
“박만천 씨가 작업을 다 끝내면 사진 좀 잘 부탁합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저들을 확실히 속이려면 회장님 사진도 찍어야 할 것 같은데.”
“물론이죠. 옷도 찢고, 피도 찍어 바르고. 최대한 비참한 몰골로 찍혀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 이동과 관련된 교통정보와 CCTV도 모두 삭제, 보관해 주세요.”
“삭제와 보관.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저쪽에 찾아갈 때 관련 자료를 모두 소각처리 했다고 하면 더 좋아하겠군요.”
“네. 일을 잘했다고 칭찬받을 수도 있겠네요.”
내가 웃으며 이야기하자, 이 차장과 장 지검장도 마주 보며 웃음을 보였다.
* * *
총선을 보름 앞두고 충격적인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글로벌 복권 당첨자 고주몽이 상하이에서 실종되었다는 뉴스다. 각 신문사와 방송사는 이 소식을 톱으로 다루며, 엄청난 양의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글로벌 복권 실종!
― 확인된 재산만 수백조! 행운의 상속자?
― 대왕 그룹! 긴급사태 선포!
― 외교부 출국기록 공개! 그가 상하이로 간 이유는?
― 상속세만 400조! 시민권은 20개! 세금은 어느 나라로?
― 상하이 내연녀 등장. 고주몽은 내 남자였다?
― 삼합회, 그들은 누구인가. 중국 정부 관련 사실 부정!
― 경찰,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고주몽의 실종 또는 죽음과 관련된 기사가 선거보다 더한 관심을 끌었다.
TV에선 후보자 검증보다 주몽의 실종 사건에 더 집중했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뉴스가 쏟아졌다.
온갖 루머가 만들어지고 부풀려지면서 실종은 어느덧 사망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안녕하십니까. JS 뉴스데스크 김필조입니다. 열흘 전,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고주몽 씨의 시체가 서해 인근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조성일보 산하 케이블 방송사인 JS에서 주몽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뉴스의 첫 꼭지를 장식했다.
“중국 상하이에 나가 있는 박기대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박기대 기자?”
― 네. 박기댑니다.
“고주몽 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소식 부탁드립니다.”
― 금일 오전 조업에 나갔던 중국 어선 한 척이 그물에 걸린 시체를 발견했고 중국 당국에 신고한 상태입니다.
“시신 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고주몽 씨인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까.”
― 시신의 훼손도 심각했고, 바닷물 때문에 일부 부패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DNA 검사를 통해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발견된 시신이 착용하고 있던 장신구 등을 봤을 때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고 합니다.
“장신구라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 시계와 지갑입니다.
박대기 기자의 발언에 김필조 앵커 옆으로 화면 하나가 떴다.
“국민 여러분 지금 화면에 뜬 사진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고주몽 대표가 실종되기 며칠 전에 찍힌 사진입니다.”
화면 일부분이 확대되면서 주몽의 손목을 보여주는데 시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보시는 시계는 파텍필립사에서 제작한 한정판 모델 중 하나로 가격만 해도 7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80억이 넘는 명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 JS 방송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 시계는 10개만 제작이 됐고, 국내엔 판매가 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시계를 보유한 사람 중에 동양인은 고주몽 씨가 유일하다는 겁니다. 박기대 기자 이번에 발견된 시계가 파텍필립에서 제작된 한정판 모델이 맞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발견된 시신은 시가 80억에 이르는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고 또 소지한 지갑에선 고주몽 씨 것으로 보이는 신분증 역시 발견이 되었습니다.
“박기대 기자. 수고했습니다.”
― JS 박기대 상하이 특파원이었습니다.
현지에서 소식을 전하던 박대기 기자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고주몽과 관련된 사진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말씀하신 것처럼 DNA 검사를 통해 확증을 거쳐야겠지만, 현재 상태만으로도 발견된 시신은 고주몽 씨의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보입니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조사와 시신 수습을 위해…….”
선거를 5일 앞두고 JS에서 특종으로 보도한 고주몽 시신 발견 소식은 다시 한번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다른 방송사와 신문들 역시 JS의 보도 내용을 받아쓰며 선거와 관련된 이슈를 완전히 잡아먹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