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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91화 (92/224)

091장. 엿에는 빅엿으로!

“과연 돈이 목적인가.”

장수철 지검장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무겁게 느껴졌다.

“표면적 이유 말이군요.”

“네. 물론, 회장님의 재산을 생각한다면 ‘표면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게 될 혼란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해 보세요.”

“먼저 한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답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대왕을 포함해 3개 그룹이 회장님 손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투자 형태가 말입니다. 회장님 개인입니까?”

장수철 지검장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의 요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그러니까. 제 질문은…… 투자사나 다른 기업을…… 그러니까.”

“페이퍼 컴퍼니를 묻는 거군요.”

“…….”

장수철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돈인 것은 맞지만, 투자 주체는 페이퍼 컴퍼니가 맞습니다.”

“아!”

장수철 지검장은 눈을 반짝였다.

“수십조가 넘는 돈을 개인 통장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죠. 미국에서 그걸 멍청히 두고 볼 리도 없고 말입니다.”

“네. 그럴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죠?”

“회장님 사후…… 크흠. 회장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페이퍼 컴퍼니는 재단에 귀속되는 겁니까?”

“당연히 그럴 겁니다. 아…….”

장수철 지검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뒤늦게 이해가 됐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재산을 제외하곤 건드릴 수가 없겠군요. 국회를 동원하든 뭘 하든 말입니다.”

내 질문에 장수철 지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도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는 회사니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됩니다. 그걸 다른 나라에서 용인할 이유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의문이 든 겁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돈은 모르겠지만, 바다 건너에 있는 재산은 건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 돈들은 회장님 유언에 따라 재단에 귀속될 것이고…….”

“복수 재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죠.”

“네. 이건 저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돈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

“어디까지나 제 사견일 뿐이지만, 누군가 혼란을…… 정확히는.”

“내 재단과 대한민국의 싸움을 조장했다?”

내 말에 장수철 지검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의견입니다.”

“……?”

나쁘지 않은 의견이라는 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장수철 지검장은 의문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팩트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어떤…….”

“칼잡이로는 저를 잡을 수가 없다는 점이죠.”

나는 차창 밖 조폭들을 가리켰다.

“마흔 명이 아니라 칼잡이 백 명이 몰려왔다면 가능했을까요?”

장수철 지검장은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는 경호원들을 바라봤다. 장수철 지검장은 ‘빠진 팩트’가 뭘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렇군요. 이건…….”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든 것은 맞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성공을 생각한 작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말에 장수철 지검장은 혼란스러운 표정이 됐다.

“지검장님의 의견.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론입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요.”

“네…….”

“나를 이곳에 부른 사람은 안보수석이고 이번 작전을 지시한 사람도 안보수석이죠.”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안보수석은 이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닙니다. 말장난 몇 번으로 경제부총리와 법무부, 외교부 장관을 날려버린 인간이, 성공 가능성 몇 프로도 되지 않을 암살 작전을 시도했다? 이것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부총리와 장관 두 명을 말장난 몇 번으로 날려버렸다는 말에 장수철 지검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접 치고받으며 그를 겪은 건 아니지만, 최소한 안태완의 성향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성향이라면 어떤…….”

“목표를 노리기보단 주변을 공략하는 것 같더군요. 예를 들면 돌려치기라고 할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더 듭니다.”

“네.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일이 실패할 것을 상정하고 작전을 세웠다고 전제한다면 말입니다.”

“네.”

“도대체 안 수석이 노리는 건 뭘까요?”

“…….”

“이런 짓을 벌여서 득 될 게 없는데 말입니다.”

“그건 저도…….”

“거기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안보수석은 이번 일을 통해 나와 양립할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

“나를 죽이려 든 자가 암중에 숨은 것도 아니고 대놓고 자신이 벌인 일이라고 광고를 한 게 아닙니까. 내가 무리수를 두더라도 본격적으로 공격에 나서면 버틸 재간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안보수석을 공격한 적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놓고 선전포고를 한다? 그것도 칼잡이 몇 명을 동원해서?”

“…….”

“지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안보수석은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

“내가 반격에 나설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그런 걸까요. 이건 돌려치기와는 무관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아……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선 예측되는 부분이…….”

“하하하. 지검장님이 죄송할 부분은 아니죠.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물론이고 이번 일에 동원된 사람들 모두 장기판 말 취급 당한 것 아닙니까.”

“끙.”

“안보수석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검장님의 의견은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실패를 산정하고 세운 계획이라고 해도 가끔은 예상을 깨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일도 있으니까요. 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죽임을 당했다면, 지검장님이 말한 방법들이 동원됐을 겁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장수철 지검장이 의견 하나를 냈다.

“이럴 때는 말입니다.”

“네.”

“끙끙거리며 고민만 하기보단,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대놓고 물어보는 게 빠를 수도 있습니다.”

“안보수석을 만나보라는 말이군요.”

“네.”

“흠. 사실 오늘도 그럴 생각에 이곳까지 온 겁니다.”

“아…….”

“그나저나,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하하. 그게…… 과를 공으로 상쇄시키라는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네. 그랬었죠.”

“형 국장을 데려오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 보니.”

“이것저것이라면 또 다른 게 있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키우던 녀석들이 있습니다.”

“키우던?”

“어딘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마는 검찰도 조직이다 보니, 라인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 지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지검 검사 중에 능력이 출중한 녀석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저야 이미 저지른 실수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녀석들은 너그럽게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배경. 그러니까 스폰서가 되어 달라는 말입니까?”

“스폰서라는 어감이 워낙 안 좋게 인식이 박혀서 거부감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 말로 바꾸면 후원자 정도입니다. 능력은 출중하지만, 생활이 여의치 않은 녀석들이라…….”

“흠.”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고아한 선비라 해도 배고픔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그동안은 제가 알음알음 도움을 줬습니다만, 오늘 이후론 그조차 어려울 상황이라. 녀석들이 자칫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스폰서 검사도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한 말씀 더 드리고자 합니다.”

“네. 말씀하세요.”

“이번 일과 관련해서 회장님이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폭탄을 끌어안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지검장님이 아끼는 검사들을 숨은 뜻 없이 말 그대로 그저 '돌봐' 달라는 말이군요.”

“…….”

장수철 지검장의 말에 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사항만으로 다양한 추론을 뽑아내는가 하면, 궁지에 몰린 와중에도 자기 사람 챙기기를 한다.

조폭들이나 동원하고 윗사람에게 쓸려 다니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능력이 좋다.

나는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지검장님.”

“네. 회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아! 네!”

“그리고 박만천 사장이 가지고 있던 자료는 지검장님이 도착하기 전에 회수했습니다.”

“…….”

“대단한 내용이 있나 싶었는데, 별것도 없더군요.”

나는 호주머니에서 USB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줬다.

“직접 파기하세요.”

“회. 회장님.”

“하시는 일이 그렇다 보니, 오물이 좀 묻은 것뿐입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익현 차장을 아십니까?”

“이 차장이라면 서울에…….”

“네. 조금 있으면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회장님 사람이었군요. 이제야 대왕을 비롯해 각 그룹의 사주 일가가 어떻게 그리될 수 있었는지 알겠습니다.”

“형 국장과 다른 검사님들이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일단 나갑시다.”

“네. 회장님.”

“아, 그리고 말입니다.”

장수철 지검장이 깜빡했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네.”

“안태완 수석은 조성일보 사위입니다.”

“네?”

“역시, 모르고 계셨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자, 장 지검장이 한 마디 덧붙였다.

“안보수석이 왜 일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네.”

“조성일보와 그의 관계를 파헤쳐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힘 좀 써 주시게요?”

“하하. 힘이랄게 있나요. 그저 조용히 한 번 들여다보면 어떨까 싶어서.”

“도움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와 장 지검장이 차에서 내리자, 형 국장은 물론이고 지검 에이스 군단이라는 검사들 역시 얼굴 한가득 궁금한 표정들이다.

뭐랄까. 근심, 걱정, 기대. 뭐 이런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고 할까.

장수철 지검장이 형 국장과 검사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다들 안도하는 표정으로 웃는 얼굴이 됐다.

형 국장은 죽다 살아났다는 얼굴이고 다른 검사들은 제대로 된 후원자가 생겼다는 데 있어서 기뻐하는 표정들이다.

“형 국장님.”

“네. 회장님.”

“안보수석과 언제 통화를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장 지검장과 만나기 전에…….”

형상진 국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통화 내용도 알려줬으면 하는데.”

“보고 전화였습니다. 이쪽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그러니까. 일이 잘되고 있다고 보고를 했다는 말이죠?”

“네. 죄송합니다.”

“아니요. 죄송할 일은 아니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실패 확률이 높은 작전이 성공 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면 안태완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그가 세웠던 계획이 예정과 달라져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건 아닐까?

‘미치겠군. 안태완 이 작자가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으니.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어.’

그러다 문득, 만약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장수철 지검장이 말했던 내용처럼 ‘돈’이라도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이익현 차장님 도착하셨습니다.”

박산호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이 차장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표정이 어딘가 심각해 보였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 차장을 바라봤다.

“회장님이 상하이발 비행기에 탑승하셨습니다.”

나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회장님 말인가요?”

“당연히 총회장님이시죠!”

“나요?”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함께 있는 이들 모두 황당한 표정이 됐다.

“아니 내가 언제 비행기를…… 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곧바로 감을 잡았다.

이곳의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형 국장의 보고에 안태완 역시 그에 맞춰 다음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나를 잡아다 상하이로 밀항을 시키는 게 박만천 사장의 목적이었다.

한국에 있던 내가 느닷없이 중국 쪽에서 시체로 발견이 된다? 발견된 장소는 둘째치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당장에 한국에 화살이 날아들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내 출국기록을 조작한 것이다.

내가 중국으로 출국을 하고, 그곳에서 칼에 맞아 죽는다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려나. 처음부터 중국을 노린 수였나? 내 재단과 중국이 거하게 한 판 붙어보라고? 그게 한국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중국을 때려봐야 좋아할 놈들은…… 미국?

아니야. 이건 안태완이 꾸민 짓이라고 보기엔…… 만약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면, 어설픈 조폭이 아니라 국정원이든 뭐든 진짜 무서운 놈들을 보냈을 것이다.

당장 내가 타고 다니는 롤스로이스부터 부셔놓아야 할 테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단순 돈 때문은 아님이 분명했다.

젠장,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이놈들이 나를 졸(卒)로 보고 있다는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짜증 나게. 이것들이 자꾸 나를 엿 먹이네.”

잠시 삐걱거리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회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익현 차장은 당장이라도 대응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표정이다.

“크크크. 아니요. 일단 지켜보죠. 아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번 해 봅시다. 박만천 사장 데려오세요.”

“네. 대표님.”

박산호가 조폭들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제이코와 이익현 차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보스.”

“총회장님.”

“잠시 기다려 봐요. 저들이 판을 펼쳤으니 잠시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안태완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이는지 판단할 수 없다면, 이번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안태완도 알 수 없게 해줄 생각이다.

안태완과 떨거지들아. 어디 한 번, 빅엿을 먹어봐라.

뒤통수가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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