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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90화 (91/224)

090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비슷한 신세가 된 장수철 지검장과 형상진 검찰국장은 서로 힘을 합쳐 이 난관을 헤쳐나가자며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막상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더니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빌어먹을. 박만천 이 인간. 도대체 칼잡이를 몇 명이나 보냈던 거야.”

주몽이 마흔 명 운운하기는 했지만, 진짜 그 정도 숫자가 주몽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조폭들 전쟁에도 그 정도 숫자가 칼을 들고 설쳤다간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모조리 철퇴를 맞을 일이다.

때문에, 요즘의 조폭은 과거보다 오히려 칼을 들고 설치는 이들이 줄어든 편이다.

조폭들 구조가 기업화돼가는 추세라 그런 점도 있지만,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조직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 조폭 관리가 잘되고 있는 곳이 한국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적당히 풀어놓고 관리하는 쪽이고 규모 있는 조폭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고 자신들 영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하나 같이 총을 맞은 것 같은데…….”

끙끙거리며 치료받는 조폭들 모습에 형상진이 슬쩍 입을 뗐다.

“주변을 둘러봐요. 어떻게 이런 장소를 섭외했는진 모르겠지만 딱 봐도 폐촌입니다. 고 회장을 고립시켜서 잡으려 한 모양인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습니다.”

장수철의 말에 형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여기서 죽었다가는…….”

“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겁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그래야지. 그래야지.”

장수철과 형상진이 속닥속닥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위협적으로 생긴 외국인 경호원들이 자신들 쪽으로 다가왔다.

큰 키와 덩치는 둘째 치더라도 그들 손에 들린 권총을 보자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컴 히어.”

“예스. 오케이.”

로건의 손짓에 두 사람은 후다닥 발을 놀렸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것처럼 수십 대의 차량이 눈에 들어왔고, 그 사이에 롤스로이스 한 대가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톱!”

“예스. 예스.”

로건이 위협적으로 손을 들자, 두 사람은 재깍 멈춰 섰다.

롤스로이스 차 문이 열리고 이젠 유명인사가 된 벼락부자 고주몽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수철과 형상진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몽에게 인사를 했다.

사람이 아니라 계급에 경례하는 거라는 말이 존재하듯이 이들도 주몽이라는 일 개인이 아니라 그가 가진 힘과 배경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곳에 오는 동안 자신이 세운 공을 어떻게 부풀릴까. 머리를 굴렸던 장수철이지만, 막상 마흔 명이 넘는 칼잡이와 총을 든 경호원 거기다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몽과 시선이 마주치자 머릿속이 덜컥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한 마디만 삐끗해도 내 경력도 여기서 끝장나겠구나.’

장수철은 흐트러지던 머릿속을 재빨리 부여잡았다.

항장(降將) 신세가 됐으니 뭐라도 쓸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것이고 저들과 같은 공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장수철 지검장님이 어느 분이실까요?”

“저…… 접니다.”

장수철은 번쩍 손을 들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네요.”

“하하.”

장수철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보였다.

“저분이 형상진 국장님?”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렇고 형 국장도 그저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검찰 조직이라는 게 상명하복이 기본인지라.”

“흠. 그래서요?”

“회장님. 저도 그렇지만, 형 국장도 크게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만 선처해 주신다면…….”

“선처라.”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눈치를 보고 있던 형상진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살살 이야기해도 잘 들립니다.”

“아. 네.”

형상진이 뻘쭘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장수철 지검장이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회장님.”

“네.”

“이곳에 오는 동안 최대한 정보를 취합한 결과. 이번 일을 꾸민 자들이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호오. 그래요?”

내가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자, 장수철 지검장은 살짝 올라간 톤으로 말을 이었다.

“네. 저기 형 국장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은 청와대 안보수석으로 있는 안태완입니다.”

“네. 그럴 겁니다. 나를 이곳에 부른 사람도 안태완이니.”

“아…… 그…… 그렇습니까.”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자, 장수철과 형상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내심 쓸만한 정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다 까발려진 패다. 장수철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안 수석 뒤에 누가 있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장 지검장님은 알고 있는가 봅니다.”

“조성일보 방석직 회장입니다.”

장수철 입에서 조성일보란 이름이 튀어나오자, 나는 ‘허!’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이코 역시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떻게 일개 신문사 사장이 이런 일을 꾸미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눈빛이다.

“박 부장. 이게 지금 가능한 이야기인가? 언론사 사주가 청와대 안보수석을 움직여 암살을 꾸밀 수가 있냐는 말이야.”

“일단 진정하시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죠.”

박산호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제이코를 급히 진정시켰다.

“한 마디도 빼지 말고 통역을 해야 할 거네.”

“물론입니다. 한 마디도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중간에 말장난 칠 분위기도 아니고, 어쭙잖게 의견을 덧붙여 해석했다가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장수철 지검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센터 일보와 동양일보도 모두 한통속입니다. 고 회장님을 노린 이유는 표면적으로 돈이라고 알려졌지만…….”

“잠깐.”

“네?”

장수철 입에서 암살 작업을 벌인 이유가 흘러나오려 하자 나는 급히 대화를 중단했다.

“그 부분은 차 안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둘이서 말입니까.”

“네. 잠시 차에 타시죠. 제이코, 박 부장도 들어와요.”

“네. 보스.”

“네. 대표님.”

주몽과 제이코가 롤스로이스에 오르자, 박산호가 장수철에게 눈짓했다.

“아. 네.”

주몽을 따라 차에 오르자,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 마련됐다.

“다시 들어보죠. 표면적 이유라고 하셨는데.”

내가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의문. 나를 죽이겠다고 함정을 판 것까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칼이 아니라 총을 동원했어야 했다. 이렇게 인적도 없고 소란이 밖으로 알려지지도 않을 장소를 마련해 놓고 기껏 칼이라니.

“이번 사건의 목적 또는 이유를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장수철은 주몽의 질문에 ‘아……’하는 표정이 됐다.

왜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 차에 타라고 했는지 이해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검증된 내용이 아니라, 제 생각일 뿐입니다.”

개인적 견해라는 말에 나는 살짝 실망한 마음이 들었다. 내심 안보수석이 벌인 이 멍청한 짓 뒤에 감춰진 본질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팩트가 아닌 추론이라는 말이군요.”

“네. 회장님.”

“뭐. 좋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일단 들어보도록 하죠.”

장수철 지검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돈 문제 운운한 것은 형 국장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들어볼까요?”

“일단 회장님을 노린 것부터가 무리수입니다. 당장 이곳 상황만 봐도 그렇고 말입니다.”

“조성일보 회장이 미쳐서 막무가내로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무기란 게 뻔하기도 하고.”

내 말에 장수철 지검장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요즘 잘나가는 조폭들은 모두 총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해 밀수되는 무기도 적지 않고 말입니다.”

“마치 알고 있으면서도 잡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사고처럼 무분별하게 발포가 된다면 가만 둘리 있겠습니까. 그저 자기들끼리 알음알음 쏘고 막고 하니 넘어가는 것뿐입니다. 거기다 어설프게 막는 것보다, 놈들 손에서 관리되는 게 안전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들 손에 관리를 맡기는 게 더 안전하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네. 고양이 손에 생선을 맡기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총기 관리 미숙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잘나가는 놈들이라고 해도 한 방에 훅 갑니다. 자신들도 그걸 잘 알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총기 관리에 열심이죠. 밀수입되는 물건도 다 그놈들 시야에서 오고 가니…….”

“필요에 따라 협조받기도 좋겠군요.”

내 말에 장수철 지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설프게 쫓아다니며 힘을 빼느니 따로 관리할 놈들을 두고 필요에 따라 보고 받는 게 더 낫습니다.”

어찌 보면 특이한 논조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야기가 잠시 샜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아. 네.”

“돈은 표면적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회장님은 이미 세상에 복수를 천명하시기도 했고 사후 재산관리 역시 유언장에 적힌 대로 실행이 될 겁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돈이 탐난다고 해도 그걸 아무렇게나 뺏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억지를 부려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면…….”

“억지?”

“네. 회장님이 특별조치를 통해 시민권을 인정받은 것처럼 국회를 동원해 특별법을 제정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법이라면 어떤…….”

“회장님 관련법이니 상속이나 기업 지분 등에 관련한 법이 아닐까 합니다.”

“…….”

“물론 그런 조치에 반발하는 국가가 나오기도 할 겁니다. 회장님 시민권을 이유로 말이죠. 하지만 정당한 상속자가 국내에 존재하니 그들의 반발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할 겁니다. 회장님의 시민권은 사망과 동시에 소멸할 것이고 남은 재산은 가족분들에게 상속이 될 겁니다.”

“재미있군요.”

말로는 재미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장수철 지검장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정리가 되고 나면…….”

장수철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회장님은 외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가족을 노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회장님은 이미 사망을 한 뒤고 재산은 특별법에 따라 강제당한 상태라 가정하겠습니다. G20 시민권 역시 유명무실하니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노숙자에게 칼 한 자루 쥐여주는 게 뭐 어렵겠습니까.”

장수철의 말에 아차 하는 심정이 됐다.

자신의 위치만 생각했지, 그런 식으로 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젓이 초청장을 보내놓고 칼잡이를 보내는 놈들이 무슨 짓인들 못 할까. 방심은 둘째치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혹시 문제가 생길까 걱정해 가족들 근처에 경호원들을 심어 두긴 했지만, 자신이 이렇게 당한 것처럼 누군가 독하게 마음먹고 달려든다면 못할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철 지검장의 말이 ‘가설’을 바탕에 둔 작전이라고 해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작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를 다루는 검사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건 확실히 나나 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구나.’

내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자, 장수철 지검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계속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네. 계속 말씀해 주세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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