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장. 정글의 법칙. - 3
희희낙락 아지메 털게탕집에 도착한 형상진은 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님. 여깁니다.”
“어. 그래.”
식당 한 곁에서 장수철이 손을 흔들자, 재빨리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배님 얼굴이 좋네. 요즘 보약이라도 드시는 건가?”
형상진이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보약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입에서 똥물이 올라올 지경인데.’
장수철은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형상진을 우격다짐으로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앞뒤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인지 말이다.
전자를 선택했을 땐 진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고, 다행히 후자가 된다면 인천지검 에이스 군단에 형 국장까지 예쁘게 포장해서 저울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달랑 모가지만 남은 검찰국장보다는 살아서 알랑방귀를 뀌는 검찰국장이 좀 더 값이 나가지 않겠는가 말이다.
“선배님.”
“그래. 후배님. 말씀하시게.”
“선배님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중 하나? 정보가 두 개인가?”
“정보는 하나입니다만, 선택은 두 가지라는 거죠.”
장수철의 말에 형상진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래. 말씀해 보시게.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도대체 뭔가?”
“선배님.”
“그래.”
“딱 한 번만 묻겠습니다. 그걸 답해 주시면 저도 바로 정보를 건네 드리죠.”
장수철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낀 것인지 형상진의 표정도 대번에 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인천 애들 움직인 것 말입니다.”
“그게 뭐?”
“누굴 치려고 한 겁니까?”
“왜 그게 궁금한 건가?”
형상진은 앞으로 당겼던 몸을 뒤쪽으로 꺾었다.
“저도 명색이 지검장입니다. 앞뒤 사정도 모르고 무작정 뛰어다녀야 하겠습니까?”
“허허. 이 사람.”
형상진은 불쾌한 표정으로 장수철을 바라봤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세.”
“약도 약 나름이죠. 뒤통수 맞는 건 사절입니다. 제가 가진 정보를 듣고 싶으시다면 선배님도 패를 까주시죠. 노리는 게 누군지 정도는 알아야, 저도 뒷감당을 할 것 아닙니까.”
장수철이 정보를 미끼 삼아 집요하게 질문을 하자, 형상진의 얼굴에 고민이 드리웠다.
“말하면?”
“저도 정보를 드려야죠. 선배님 인생이 걸린 일인데.”
“인생?”
“네. 더도 덜도 말고 ‘인생’이 걸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정보기에…….”
형상진이 답답한 표정으로 장수철을 바라봤다. 장수철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30분 남았습니다.”
“30분이라…… 내 인생이 걸린 정보가 30분 뒤 효력을 발생한다 그런 의미로군.”
장수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굴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보가 선배님 인생과 맞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데 말입니다.”
형상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탁자를 내려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야기함세.”
“네.”
“나도 모르네.”
“네?”
“나도 모른단 말일세.”
“그게 말이 됩니까? 시간과 장소까지 딱 집어 주신 분이 선배님입니다. 그런데 누굴 노리는지도 모르고 저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고요?”
“하아.”
형상진은 목이 타는지 물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목을 적시기도 전에 장수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먼저 날아들었다.
“이런 씨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깎듯이 선배님, 선배님 하던 장수철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형상진은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떨어트렸다.
“지…… 지금 자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보면 모르겠소? 인생 엿같이 되어서 숨이 꼴딱 넘어갈 판이요.”
“그게 무슨…….”
“우리가 건드린 사람이 누군지 알면 그런 표정은 절대 못 지을 거요.”
“정보…… 30분…… 인생?”
“그래도 검찰밥 드셨다고 눈치는 있으시네.”
“누…… 누구. 우리가 누굴 건드렸다는 거야!”
“누구긴.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현금 부자지. 아, 이젠 현금 부자뿐만이 아니구나. 그 대단한 대왕마저 그 사람 손에 들어갔으니. 이젠 재벌 중의 재벌이라고 불러야 하나?”
“……고주몽?”
형상진이 뜨악한 표정으로 장수철을 바라봤다.
“누굽니까? 일을 지시한 사람이.”
“진짜. 고주몽이라고?”
“선배…… 아니. 상진이 형님. 정신 똑바로 차립시다. 우리 여기서 삐끗하면 다 죽는 겁니다.”
“이런 젠장.”
형상진은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욕을 뱉어냈다.
“누굽니까? 우릴 엿 먹인 인간이. 어디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고주몽을 그것도 조폭 칼잡이들을 보내서 담그려고 했냔 말입니다.”
“젠장.”
형상진은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미쳤수!”
장수철은 재빨리 폰을 뺏어 들었다.
“뒤지려면 혼자 죽어요. 물귀신도 아니고 지금 누굴 끌어들이려고!”
“도움을 청해야지!”
“아, 그러니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냐고. 아니, 도움을 청하면 그쪽에서 도와줄 방법은 있고? 방송에 나와서 대놓고 복수 운운하는 인간이야. 정상, 비정상 가려가며 힘을 쓸 인간이 아니라고! 에이 씨발. 가족들까지 염라대왕 구경시킬 것도 아니고. 생각 좀 하면서 행동합시다!”
장수철 입에서 가족들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형상진은 얼굴빛이 까맣게 죽어버렸다.
“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당장 달려가서 빌어야지.”
“그런다고 우릴 살려 줄까?”
“그럼 이대로 숨만 꼴딱꼴딱 쉬다가 죽으려고?”
“너…… 뭔가 방법이 있구나.”
“있으면?”
“그걸 말이라고. 있으면 당연히 알려줘야지!”
“내가 왜요?”
“뭐?”
“나를 이 꼴로 만든 게 누구요?”
“…….”
“형님 아니요. 그런데 뭘 이쁘다고 살아날 방법을 알려줘?”
“야야. 수철아.”
검사에 임관되고 초창기 시절을 제외하곤 서로의 호칭은 언제나 선배, 후배였다.
“이제 막 이름 부르고 그러시네. 공사 구분 못 한다고 존나게 깔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장수철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형상진은 더 다급해졌다.
“어떻게 할까? 여기서 옷이라도 벗고 춤이라도 춰? 어? 뭐든 말을 해 봐.”
“내가 형님이 한 짓 생각하면…….”
“수철아.”
“됐고. 이제 한 15분 남았네.”
“15분?”
“내가 형님 인생이 걸린 정보를 준다고 하지 않았소.”
“그랬지.”
“그리고 그 정보를 들으면 선택을 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해 줬고.”
“고주몽. 아니, 고 회장과 끈이 닿았구나!”
“하여간, 그렇게 좋은 눈치를 가지고 왜 인생을 이렇게 살아.”
“시팔!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겠냐. BH에서 뚝 떨어진 거라고.”
“뭐? BH?”
“그래. 너 같으면 앞뒤 다 캐물어 가면서 일하겠냐.”
“아. 빌어먹을. 이거 점점 일이 커지네.”
“봐. 너도 막막하잖아.”
“막막은 개뿔. BH가 아무리 막 나가도 현직검사 그것도 지검장을 때려죽이지는 못하지. 끽해야 옷 벗기는 게 전부야.”
“…….”
“하지만, 저쪽은 어떨 거 같아. 우리가 옷 벗고 검찰을 나갔다고 오냐 하면서 봐줄까?”
“그간 대왕이 해 왔던 일을 생각하면…….”
“완전히 갈아 마셔버리겠지. 거기다 호가호위하던 천 실장이 쿠데타까지 일으켜 왕좌에 올랐으니…….”
“입조심 좀 합시다. 천 실장이 뭡니까. 지금은 대왕의 회장님입니다.”
“그래. 그렇지.”
어찌 보면 고주몽보다 고주몽이 소유하고 있는 대왕을 더 꺼리는 분위기다. 어차피 대왕이 고주몽 소유니 도긴개긴이지만 말이다.
“고 회장님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설마…… 고 회장 아니, 회장님이랑 이미 이야기가 된 거야?”
“이야기되기는. 형님 같으면 말 몇 마디에 이게 해결될 일이요?”
“…….”
“공을 세워야지. 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공!”
장수철의 말에 형상진이 눈을 빛냈다. 살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굳이 매를 청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내 뒤에 누가 있는지, 누굴 공격하려 한 것인지 계속 물은 거였군.”
“그러니까 말해봐요. BH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 말고.”
“그걸 왜 너한테 이야기하냐.”
“네?”
“말을 해도 고 회장님에게 해야지.”
“…….”
“가자. 어디 계시냐.”
“어어. 이 형님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시네.”
“야. 장수철. 너 자꾸 선을 넘는데.”
“선은 무슨. 내 모가지가 달려있는데.”
장수철은 형상진을 다시 의자에 끌어 앉혔다.
“먼저 말해 두자면, 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했소.”
“둘 중 하나?”
“인천공항으로 가서 브라질 티켓을 끊고 아마존 오지로 들어가 나오지 않거나.”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말이 안 돼? 정말?”
“…….”
“그렇게 도망쳐도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말라고 합디다. 그 순간 내 모가지가 슈캉 날아갈 거라고.”
“다른 하나는?”
“뭐겠소.”
장수철은 손가락으로 형상진을 가리켰다.
“너…….”
“맞소. 나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자. 법무부 검찰국장 형상진을 잡아 대령하는 것이지.”
“이 새끼!”
형상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끝까지 들어요! 그나마 내가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
“끙.”
“형님이 아는 거 다 털어놔요. 그럼 그걸 가지고 나도 살고 형님도 살려줄 테니까.”
“내가 왜? 고 회장 앞에서 이야기하면 그만인데.”
“내가 그걸 두고 볼 것 같습니까? 그러면 나만 낙동강 오리 알 되는데.”
“그럼 뭘 어쩌자고!”
“나처럼 하면 될 것 아닙니까.”
“뭐?”
“나처럼. 이렇게. 지금 보는 것처럼!”
“…….”
“형님도 억울하잖아. 뭣도 모르고 뒤통수 맞은 건데. 안 그래요?”
“그…… 그렇지.”
“나를 봐요. 그래서 내가 형님 매기는 중 아니요.”
“이 새끼가 말을 해도. 매기는 게 뭐냐.”
“그럼. 고 회장님이 원하는 대로 형님 목이라도 따서 가져갈까?”
“제기랄. 장난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어찌할 거요. 이제 5분도 안 남았어. 나도 살고 형도 살아야지!”
“하, 진짜. 연락은 안보수석이 했다.”
“그게 끝?”
장수철은 서로 다 아는 사이에 장난하지 말자며 계속 입을 털라고 했다.
“안보수석이 조성일보 회장 사위야.”
“어? 그거 진짜요?”
“그래. 사위 맞아.”
“아니. 그거 말고. 조성일보가 뒤에 있다는 말.”
“조성일보만 있겠냐? 센터랑 동양도 끼었겠지.”
“와 놔.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 일전에 그 방송에서 한 말 때문에 앙심을 품고 이랬다는 거요?”
“쯧쯧. 조성, 센터, 동양일보에 원한 품은 인간들이 한둘이야.”
“그럼 뭐?”
“당연히 돈이지!”
“아…… 돈.”
‘겨우 돈 때문에?’
고주몽이 가진 돈이 천문학적이라는 건 장수철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천문학적인 돈이 사후 어떤 용도로 이용될지 이미 유언장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다.
고주몽이 죽든 말든 남은 돈을 강탈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거기다 고주몽이 가진 시민권 때문에 자칫 외교 문제까지 비화할 수 있는데 단순히 돈 때문에 고주몽을 죽인다?
이건 BH도 엄청난 부담을 끌어안아야 할 일이다. 뭔가 앞뒤가 맞질 않았다.
“고주몽이 가진 돈 때문에 여의도가 시장통이 됐잖아. 대놓고 조성일보를 저격하기까지 했고. BH도 이번 총선에 변수가 등장하는 걸 원치 않았을 테고. 대충 그림이 그려지잖아.”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아 됐소. 시간도 없는데 일단 일어납시다.”
장수철이 식당 밖으로 나오자, 인천지검 에이스들이 주르르 허리를 숙였다.
“뭐야. 혼자 나온다면서.”
“형님. 장난하쇼? 상황이 개판 오 분 전인데 혼자는 무슨.”
“끙.”
“정신 바짝 차려요. 잘 타고 가던 비행기가 정글 한복판에 뚝! 떨어져 내린 거나 진배없으니까. 여기서 족장 잘못 골랐다가는 씨 몰살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는 고 회장님을 족장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그런 말이지?”
“그럼 이 상황에 안보수석에게 붙으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까? 누굴 잡으려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우릴 장기판 말처럼 돌린 인간을?”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니까. 제발 잘합시다.”
“내가 애도 아니고. 알았으니까. 빨리 출발이나 해.”
* * *
― 그러니까. 타초경사다?
“네. 일단 어디까지 연결이 되어있나 들여다본 다음에. 일거에 치고 들어갈 생각입니다.”
― 그래.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소. 안보수석 뒤에 누가 웅크리고 있는진 대충 짐작이 되니. 우리도 그에 맞춰서 준비하리다.
천기득 회장은 내 의견에 동조를 해줬다.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료진들 입 막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 허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실까. 우리 총회장님께서.
천기득은 웃음 띤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 아, 그리고 이 차장 말인데. 그쪽으로 출발했다고 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이 차장이 이쪽으로 말입니까?”
― 조폭들 어르는 데는 우리보단 검사가 제격 아니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겠습니다.”
― 그럽시다. 언제나 몸조심하시고.
천기득 회장과 통화를 마치는데, 차창 밖에서 똑똑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네. 박 부장님.”
“장수철 인천지검장이 도착했습니다. 검찰국장 형상진도 함께입니다.”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빨리도 왔네요. 검찰 쪽에도 나라시 드라이버가 있는 모양입니다.”
내 말에 박산호가 크큭하고 웃음을 보였다.
“만나봅시다.”
“네.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