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장. 정글의 법칙. - 2
― 과는 공으로 상쇄시켜야죠
― 저쪽에 붙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 기회를 줘도 잡지 못한다면 별수 없죠.
― 일과 중에 마무리합시다.
통화를 마친 장수철 지검장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
“박만천, 이런 미친 새끼! 감히! 자료를 만들어?”
장수철은 “으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만들었으면 들키지를 말든지!”
장수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고주몽은 방송에 나와 대놓고 복수 운운하는 미친놈이다.
지검장이고 뭐고 간에 이놈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봐야 했다.
거기다 놈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어서 최악의 순간엔 국적을 포기하고 이 나라를 떠 버릴 것이다.
“그때는 아마존이든 어디든 진짜 기어들어 가야 할지도…….”
손톱을 물어뜯으며 전전긍긍하던 장수철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 사실을 형 국장에게 알리던지…… 아니면 형 국장을 고주몽 앞에 데리고 가던지…….”
어느 쪽을 선택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선택의 여지가 없네.”
위쪽에서 왜 고주몽을 건드리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렇게 결정을 내렸으면 깔끔하게 끝을 내야 했는데, 이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아버린 격이다.
당장 목덜미를 물려 죽을 판인데 사고만 치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인간들에게 보고서 따위를 쓴다?
주몽이 말했던 것처럼 깔끔하게 손절매 당하고 혼자 다 뒤집어쓴 채 인생이 끝장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장수철은 시간을 재차 확인했다. 법무부에 들어가 형상진을 잡아 오기엔 시간도 부족했다.
“너구리 같은 양반이 눈치라도 채는 날엔, 법무부에서 내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웃기는 소리다. 30년 가까운 검찰 인생에 범인 잡겠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굴에서 끄집어내는 게 먼저지.”
살살 머리를 굴리던 장수철은 결심이 서자 곧바로 형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 신호가 가고 형상진 검찰국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안 그래도 전화를 해 볼까 했는데. 딱 맞춰서 연락했군.
“아. 네.”
― 내가 부탁한 것 말일세. 그거 어떻게 됐나?
‘부탁한 것? 남의 인생 벼랑 끝에 밀쳐 놓고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그런데 이거 뭐라고 답을 하지? 일이 틀어져서 다 죽게 생겼다고 이야기를 해?’
형상진 검찰국장의 여유 있는 목소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혀는 달콤하게 굴렸다.
“잘 되고 있답니다. 마무리하고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 흐흐. 그래?
“그런데 누굴 잡으려고 밑에 애들까지 움직인 겁니까?”
― 나중에 이야기해줌세.
‘나중 좋아하네. 하는 꼴을 보아하니, 일 어긋하면 나를 털어버릴 작정이었구먼.’
장수철은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하하. 무슨 일은요. 존경하는 선배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 이 사람 싱겁기는. 무슨 일인데?
“재미난 정보가 하나 들어왔는데 말입니다.”
― 재미난 정보?
“네. 그런데 이게 선배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재미난 정보. 큰 도움이라는 말에 형상진이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 무슨 정보기에 그렇게 들뜬 목소리신가?
“이게 전화상으로 이야기하기엔 좀 그렇고 말입니다. 괜찮다면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 만나서 할 이야기라…….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정보이긴 한데, 이게 밖으로 새나가면 남 좋은 일만 시킬 수가 있어서 말입니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 지검장 부탁인데, 시간 내는 거야 어려울 게 없지. 오늘 저녁 어떤가?
“그때는 너무 늦고…… 지금 어떻습니까?”
― 지금?
“네. 저녁때쯤엔 정보 가치가 반 토막 날 겁니다. 지금 들으셔야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습니다.”
재미난 정보. 도움이 되는 큰 정보.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져 반 토막 날 정보. 기회를 잡는다면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는 정보!
장수철은 형상진을 낚기 위해 떡밥을 무작위로 뿌려댔다.
“만나서 자세히 말씀드려야겠지만, 소소하게 한 토막 풀어내자면 말입니다.”
― 어. 그래.
한 토막 풀어낸다는 말에 형상진의 입맛 다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였다.
“법무부 장관 자리와 관련된 겁니다.”
― 장관? 법무부 장관 바뀐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형상진이 의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래서 재미난 정보가 아니겠습니까.”
― …….
“크흠. 어쩌시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보다는 선배님이 이걸 먼저 손에 넣었으면 하는데…….”
― 이 사람 이거. 당연히 만나야지. 그래. 어디서 볼까?
“둘이서 조용히 봤으면 하는데.”
― 그래. 민감한 정보 같은데. 그렇게 해야지.
“인천이나 서울은 좀 그렇고…… 제가 가게 하나 알려드릴 테니. 그쪽으로 오시겠습니까?”
― 오케이. 문자 보내줘.
“네. 선배님.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가진 정보를 확인하시기 전까진 다른 사람에게 티 내시면 안 됩니다. 이거 진짜 큰 건이거든요.”
―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문자나 보내게.
형상진은 살짝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친 장수철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비릿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저는 나를 사지로 몰아넣고 지 좋은 정보 있다고 하니까.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장수철은 콧방귀를 킁 날리더니 자유로 외곽에 있는 식당 주소 하나를 날려 보냈다. 종종 입맛 없을 때 직원들과 함께 찾아가던 식당인데 털게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선배님. 자유로 타고 일산 지나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아지메 털게탕이라고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주소 보내드립니다.]
[지금 출발하네.]
몸이 달았는지, 답장이 바로 날아들었다.
“오늘은 털게가 아니라 털보를 잡아먹게 생겼군.”
장식품이나 다름없이 서랍 속에서 잠들고 있던 수갑 뭉치를 꺼내 들었다. 일이 잘 풀린다면 모르겠지만, 행여 몸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그땐 이거라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털게탕 집으로 출발을 하려던 장수철은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전화기를 들었다.
― 네. 지검장님.
“김 부장. 우리 라인 애들이 몇이나 되지?”
― 갑자기 그건 왜…….
“답이나 하게.”
― 직계만 따지면 모두 일곱입니다.
“좋아. 지금 하던 일 다 멈추고. 애들 데리고 주차장으로 내려오게.”
― 무슨 일 터진 겁니까?
“일은 무슨. 자네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고 이번 기회에 든든한 줄 하나 잡아야지.”
― 지검장님…… 지금 그 말씀은?
“시간 없으니까. 바로 움직여.”
― 네!
김 부장은 기합이 잔뜩 든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지검 소란스럽게 않게 조용히 데리고 나와.”
― 물론입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장수철은 히죽 웃음을 흘렸다.
“투항하려면 화끈하게 하는 게 좋잖아. 형상진 국장 목이야 당연한 것이고, 인천지검 에이스들까지 곱게 싸서 저울에 올려놓으면 눈금이 조금이라도 내 쪽으로 이동을 할 테니.”
* * *
조성일보 회장 방석직과의 술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언제쯤 소식이 들어오겠습니까?”
2차장이 안태완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이 자리가 파하기 전에 고주몽도 마무리가 될 겁니다. 차분히 기다리시죠.”
“하하. 그런가.”
“네. 그런 겁니다.”
2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술병을 들었다.
“한 잔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자주 봐야 할 것 같은데 서로 도울 일 있으면 돕고 이번처럼 공조할 일이 있으면 공조도 하고.”
안태완은 술잔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2차장님이 힘을 보태주신다면 천군만마가 따로 없지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 짓고 있는데, 안태완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발신자를 확인한 안태완이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님.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상석에 앉아 여야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방석직이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룸 밖으로 나온 안태완은 빈방을 찾아 들어갔다.
“안태완입니다.”
― 형상진입니다.
“네. 국장님.”
― 인천지검장과 통화를 했는데, 일은 잘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 마저 소식이 들어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통화를 마친 안태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보고 받은 사람처럼 의아한 표정의 연속이다.
“일이 잘되고 있다고? 하하.”
혼자 웃음을 보이던 안태완은 품속에서 구형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안 입니다.”
― 안 상.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분위기만 띄우려고 했는데, 진짜 고주몽을 잡게 될지도 모르겠어서 하는 말입니다.”
― 혼또니!?
“아무래도 계획에 수정이 필요할 것 같군요.”
― 당연히 그래야죠.
“다른 나라들은 그쪽에서 연락을 취하시죠.”
― 하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태완은 통화를 끝내더니 배터리를 분리하고 구형폰을 우직은 부러트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장기 말로 나름 쓸 만했는데, 아쉽네.”
안태완은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 수석입니다. 네. 제가 부탁드린 거 있지 않습니까. 네. 상하이로 출국한 것으로 정리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하하. 문제라뇨. 제가 일 처리를 그렇게 엉성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배에 탔으면 선장의 지시에 따르시는 겁니다. 네. 정리되면 연락 주시죠.”
다시 룸으로 돌아온 안태완이 참석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고주몽 쪽 일은 곧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오, 그래요?”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역시 안 수석께서 움직이시니.”
다들 복권이라도 당첨된 사람들처럼 화색이 밝아졌다.
의원 하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안태완을 바라봤다.
“저기, 그러면 고주몽의 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히히거리며 말을 주고받던 다른 이들도 번뜩이는 눈빛을 하고 호기심을 자아냈다.
고주몽이 가진 돈이 어디 한두 푼이던가. 손에 묻는 떡고물만 핥아먹어도 삼대가 떵떵거릴 정도다.
“여·야 의원님들이 힘을 쓰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적당한 법안 하나 만들어서 통과시키시죠.”
안태완의 대답에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만 보면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가 따로 없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염불엔 관심도 없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군.’
안태완은 속에서 쓴 물이 넘어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2차장이 채워 놓았던 술잔을 들어 올리는데, 방석직이 은근한 목소리로 안태완을 불렀다.
“안 서방.”
“네. 장인어른.”
“대왕을 비롯해 세 개 그룹이 그놈 손에 들어있다고 하던데.”
방석직의 말에 룸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네. 투자자로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지분. 누군가는 관리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방석직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안태완을 바라봤다.
“고주몽이 죽었다고 해도 가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고주몽도 치워버렸는데, 가족들이라고 별거 있겠나?”
“다른 나라들이 지켜만 보고 있겠습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주몽의 시민권은 각국에서 보장하고 있습니다.”
안태완의 말에 방석직이 비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놈들도 욕심이 나겠지.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거지만, 대왕 같은 대기업은 이럴 때가 아니면 건드릴 수도 없으니까.”
“네. 그럴 겁니다.”
“하지만 말일세.”
“네. 장인어른.”
“고주몽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 땅. 대한민국에 있는 기업들이네.”
“…….”
“협조를 받아내 봐. 놈들도 대왕을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 적당히 잘라 주면 입을 다물 거야. 여론은 내가 만들어 주지.”
“라인을 돌려보겠습니다.”
안태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방석직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내가 죽고 나면 이게 다 어디로 갈 것 같은가. 다 자네에게 갈 것들이야.”
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인 방석직이다. 전혀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안태완 역시 그런 점 때문에 방석직과 손을 잡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서로가 합이 맞아떨어져 쿵 짝을 맞추는 중이랄까. 하지만 아무리 잘나봐야 사위는 사위일 뿐이다.
언제든 수틀리면 잘라버릴 수 있는.
‘아직은 솥에 들어갈 때가 아닐 뿐이지.’
안태완은 나름의 꿍꿍이를 숨기고 아들 같은 사위 역할에 충실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자, 다들 축하주를 들어야지.”
“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필요하신 법안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회장님 말씀처럼 제 놈들이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한국에선 한국법을 따라야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