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장. 전화하세요.
“아닙니다. 조용히 가겠습니다. 3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십시오.”
청해유통 사장 박만천은 전화를 끊자 곧바로 인터폰을 눌렀다.
“밖에 누구 있냐?”
― 네. 사장님.
“이 부장한테, 차 대기시키라고 해라.”
― 네. 알겠습니다.
사장실을 나서려던 박만천은 문을 열려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씨발…… 남은 애들이라도 챙겨서 가야 하나.”
찾아와서 이실직고하고 선처를 받거나, 아니면 한국을 떠나 아마존으로 기어들어 가라는 말이 떠 올랐다. 다른 놈이 그런 말을 했다면, 아구창을 날려버렸겠지만…….
“아마존…… 십팔. 엿 같네.”
이대로 도망을 칠까도 생각해 봤지만, 상대는 대한민국 대기업 몇 개를 통으로 집어삼킨 놈이다.
어설프게 대응을 했다간 뼛조각도 남기지 못하고 갈려 나갈 것이다.
자신에게 이 일을 지시한 자에게 연락할까 고민을 하다가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장수철 이 개새끼…….”
마흔 명이 넘는 놈들을 보냈는데,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모조리 총 맞고 쓰러졌다고 했다.
남은 애들 몇 데려간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러다 괜히 심기를 건드려봤자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죽기로 싸워야 하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한 상대다.
박만천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에이 시팔!’하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이 부장이 허리를 숙였다.
“나오셨습니까. 사장님.”
“시끄럽고. 이 주소로 달려. 20분 준다.”
“네. 사장님.”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한 이 부장이 뜨악한 표정으로 박만천을 바라봤다.
“사장님. 여기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한때 총알택시의 일인자로 도로를 질주했던 이 부장이지만, 목적지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시팔놈아. 가라면 가! 신호 따져가며 느긋하게 갈려면 너를 뭐하러 불렀겠냐!”
“네…… 넵.”
박만천의 심기가 엿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박 부장은 두말하지 않고 안전띠부터 챙겼다.
“출발하겠습니다.”
“아직도 안 갔냐?”
“…….”
이 부장은 입을 꾹 다물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박만천의 차가 트랙을 달려나가는 경주용 자동차처럼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 *
“박 부장님.”
“네. 대표님.”
“차들 좀 빼죠.”
마을로 들어오는 외길을 꽉 틀어막고 있는 승합차들을 가리켰다. 제이코든 칼잡이들의 두목이든 길을 열어둬야 마을로 들어올 수 있다.
“네.”
전성진과 차량 키를 가진 자들을 찾아내 칼잡이들이 타고 온 승합차를 마을 공터 쪽으로 모두 이동시켰다. 그제야 외부와 연결로가 확보됐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 부장님.”
“네. 대표님.”
“전파 차단기가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입니까?”
“그럴 리가요. 저런 장비는 최소 ‘기관’은 되어야 보유하고 사용합니다.”
“그러니까요. 요즘 조폭들이 첨단을 달린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은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 안보수석인가 하는 자가 손을 쓴 것 아니겠습니까.”
박 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조폭들의 차를 이동시킨 로건이 나에게 다가왔다.
“보스.”
“네. 로건.”
“한 번 보시겠습니까.”
로건은 자신의 스마트 폰을 내밀었다.
“뭔가요?”
“차 안을 찍은 겁니다.”
로건에게 스마트 폰을 건네받아 사진을 살피는데, 허허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산호 부장도 궁금한 표정으로 액정을 바라보는데 그 역시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로건이 찍어 온 사진에는 전파 차단기뿐 아니라 공업소에서나 사용할 법한 금속 절단기와 용접기 등이 잔뜩 실려 있었다.
로건에게 스마트 폰을 돌려줬다.
박 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롤스로이스를 조각내 버릴 생각이었나 봅니다.”
“덤으로 나와 여러분들도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겠죠.”
내가 타고 다니는 차량이 로켓탄까지 막아내는 방탄 성능을 지녔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 충격을 이겨 낼 용도다.
이렇게 절단기와 용접기로 자르고 녹여버리면 방탄 차량이 아니라 장갑차라고 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안보수석이라는 자.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박 부장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신사적으로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초청에 응하기까지 했죠.”
나는 마흔 명의 칼잡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국의 안보수석이라는 자가, 채신머리없이 이런 짓을 벌였네요.”
내가 눈을 번뜩이며 이야기하자, 박 부장이 근심 섞인 목소리가 됐다.
“상황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긴 했습니다만…….”
“네. 나도 압니다. 내가 아무리 잘나가도 청와대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거.”
“…….”
“한 대 맞았으니 나도 때리겠다고 덤벼들었다간, 기다렸다는 듯이 공권력으로 나를 밀어버리겠죠. 아무리 잘나가도 개인의 힘이 국가를 넘어설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안태완이라는 자가 계속 청와대에 있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을 두고 대응책을 준비하겠습니다.”
박산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시간을 두고 대응할 성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칼잡이들의 대장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기다려 보시죠.”
“대표님. 이건 대표님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위쪽 인간들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박산호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왜 그렇게 민감해요. 내가 총 들고 청와대를 공격이라도 할 것 같습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박 부장이 뭘 걱정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박 부장도 너무 앞서가지 말고 일단 지켜봐요. 나도 당장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네. 대표님.”
박 부장과 후속 대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 멀리서 뿌연 먼지가 일었다.
“누가 오는 것 같습니다.”
로건과 경호원들이 마을 진입로를 차단하며 등장인물을 맞이했다. 그런데 달려 들어오는 차량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부아아아앙! 부아앙! 부앙부앙!
액셀을 얼마나 거칠게 밟아 대는지 엔진 소리가 일대를 소란스럽게 했다.
시골 비포장 외길을 마치 서킷 달리듯 하는 차를 바라보며 다들 ‘미쳤나?’ 하는 표정들이 됐다.
그렇게 달려온 차량이 마을 입구에 다다라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멈춰 섰다. 벌컥 차량 문이 열리고 뒷좌석에서 누군가 구르듯 내려섰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사내는 아랫배를 부여잡더니 허리를 구부렸다.
“우에에에엑!”
걸쭉한 토사물이 흙바닥을 적시며 추악― 흩뿌려졌다.
로건과 경호원들은 물론이고 나와 박 부장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그때 차량에 기대있던 전성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혀…… 형님?”하고 중얼거렸다.
“형님? 저자가 나와 통화했던 자입니까?”
내 질문에 전성진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립니다.”
전성진의 말에 나와 박 부장이 약속이나 한 듯 시간을 확인했다. 통화하고 30분 남짓 지난 시점이다.
“목숨 걸고 달려오셨네.”
내 말에 박 부장이 한 마디 덧붙였다.
“아마존 오지는 취향이 아니었나 봅니다.”
한참을 웩웩거리며 오바이트를 해 대던 사내는 운전기사가 건네준 물병을 받아 입을 헹궜다.
“너 이 새끼!”
“20…… 20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고 하셔서.”
이 부장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박만천을 바라봤다.
“이따 보자.”
박만천은 핼쑥해진 얼굴로 한 마디 툭 던지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덩치가 산만 한 외국인들이 자신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고, 마을 한쪽에 피를 질질 흘리며 무릎 꿇고 있는 부하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고주몽과 그의 부하로 보이는 사내 한 명. 그리고 차량에 기대있는 전성진을 확인했다.
고주몽이 앞으로 걸어 나오자, 경호원들이 길을 열었다.
“통화하신 분?”
“아. 네…….”
“고주몽입니다.”
“바…… 박만천이라고 합니다.”
박만천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준 뒤 운전기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라고 했는데, 굉장하시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이…… 이 부장이라고 합니다.”
“전직 레이서?”
“네? 아니요. 그냥 나라시 좀 몰았습니다.”
“아. 나라시.”
도로의 난폭자. 일명 총알택시로 불리는 나라시 운전수. 일반 도로에서는 프로 레이서들도 한 수 접어 준다는 광폭운전자들.
“택시 운전하시던 분이 조폭으로 전향을 하셨네요.”
“네?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을 몰고 있습니다.”
자신을 이 부장이라고 소개한 운전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내 저었다.
“아아. 제가 오해를 했군요. 미안합니다.”
“아…… 뭐…….”
이 부장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정상은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기 쓰러져 있는 놈들처럼 칼이나 들고 설치려고 회사에 들어온 건 절대 아니다.
거기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끼지 말아야 할 곳에 끼어들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 죽을 것 같았다.
사장이 미친놈처럼 윽박지르는 통에 이곳까지 달려오긴 했지만,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연봉은 얼마나 받습니까?”
“네?”
이 부장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저분 밑에서 얼마나 받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건 왜…….”
“이 부장님만 괜찮다면 스카우트를 할까 해서 말입니다.”
“스카우트요?”
“네. 혹시, 저를 아십니까?”
내 질문에 이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 부장을 탐낸다는 걸 눈치챈 박산호 부장이 명함을 꺼내 이 부장에게 건넸다.
“GO 컴퍼니…… 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듯 명함과 박 부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왕 그룹은 아십니까?”
“대왕 그룹이야 당연히 알죠.”
“여기 이분은 그 대왕 그룹의 소유주이십니다.”
“에?”
“쉽게 이야기해서 대왕 그룹의 회장님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어…… 어…….”
이 부장은 선뜻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박 부장님.”
“네. 대표님.”
“이 부장님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죠. 먼저 해결할 일이 있으니.”
내 눈짓에 박 부장은 이 부장을 잡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이 부장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박 부장을 따라갔다.
“박만천 씨라고 했나요?”
“네네. 회장님.”
박만천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전화하세요.”
“네?”
“당신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
“전화해서 나를 바꿔줘요.”
“에?”
내 지시가 예상 밖인가? 박만천은 물론이고 박산호 부장도 ‘에에?’ 하는 반응을 보였다.
“뭐가 이상합니까?”
“그게…… 아무 데도 연락하지 말고 오라고 하셨는데…….”
박만천이 왜 갑자기 연락하라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반만천 씨가 통화하면 그건 보고가 되겠죠.”
“…….”
“하지만 내가 통화를 하면 그 사람에게 기회가 되는 겁니다. 박만천 씨도 나와 통화하고 여기에 왔지 않습니까. 아마존보다는 이쪽이 났다고 생각해서 왔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저야…… 일개…….”
“일개 조폭이고 당신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은 별개의 신분을 가졌다는 그런 뜻인가요?”
박만천은 바로 그 말이 자신의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