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85화 (86/224)

085장. 밀항선에 태워 보내?

안보수석이라는 자가 이렇게 막 나갈 줄이야.

조폭 양아치 새끼도 아니고! 이건 완전히 상식을 벗어났다.

“이런 식으로 나를 잡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미치지 않고서야 왜 이런 무리수를?

“설마…….”

기껏 일을 벌여서 납치나 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길 가던 고 아무개도 아니고.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을 뻔히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은…….

나를 이곳에서 묻어버려도 뒷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소린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는 걸 떠나 황당해서 넋이 나갈 것 같다.

대충 마흔 명 남짓해 보이는 검은 양복쟁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회칼을 들고 주변을 둘러쌌다.

“그나마 총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우리 쪽 경호원 숫자는 박 부장을 포함해도 열두 명. 평소 이 숫자가 적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떼거리로 몰려오니 나름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창문을 살짝 내리고 경호팀 책임자 로건에게 손짓을 했다.

“네. 보스.”

“막을 수 있겠습니까?”

로건은 양복쟁이들이 든 회칼을 슬쩍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총을 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트렁크 열어 줄게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우리 편이 죽게 생겼는데,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로건은 안도하는 표정이 됐다. 아무리 단련된 이들이라고 해도 한꺼번에 몰려들어 칼질해대면 막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버튼을 조작하자, 롤스로이스 트렁크가 철컥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로건은 재빨리 트렁크 덮개를 벗겨내더니 안에서 알루미늄 상자를 꺼내 들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잠금장치를 해제하자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 다섯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호팀 손에 권총이 들리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양복쟁이들 눈에 ‘어?’하는 당혹감이 스쳤다. 설마 총이 등장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한 표정들이다.

회칼로 장난을 치며 실실 쪼개고 있던 양복쟁이들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총이 있다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양복쟁이들의 항의에 뒤쪽에서 이들을 지휘하고 있던 이도 당황한 눈빛이 됐다.

“로건. 죽이지는 말고 제압해요.”

“네. 보스!”

미국에서부터 함께한 경호원들은 칼이나 몽둥이보다 총이 익숙한 이들이다. 명령이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발사되자, 회칼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양복쟁이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악!”

“시펄! 이게 뭐야! 아악!”

“피해! 컥!”

소음기가 달려 있다고 해도 생각보다 총소리가 크다. 이곳이 도심지였다면 사태가 더 심각해졌겠지만, 다행히도 인적없는 산골 마을이다.

저들 입장에선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손보기 좋은 장소라 생각했겠지만, 덕분에 우리도 총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됐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타났던 칼잡이들은 총구를 피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다.

몇몇 용감한 자들은 도망을 치기보다 오히려 앞으로 달려 나왔지만, 다른 이들보다 먼저 바닥을 뒹굴 뿐이다.

로건과 경호원들은 순식간에 탄창 두세 개씩을 비워냈다. 15발들이 탄창이 장착된 권총 다섯 자루의 화력은 생각보다 막강했다.

서로가 총질해대면 모를까, 한쪽만 일방적으로 쏴대는 형국이니 칼로는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던 박산호는 마흔 자루가 넘는 회칼에 한번 놀라고, 망설임 없이 발사되는 총탄 소리에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이 됐다.

나름대로 험한 일을 하고 살았던 박산호지만, 총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도 놀라는 중이다.

한국은 총기 안전국이라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로버트는 언제나 최악의 사태에 상정해 준비해야 한다며 차량 안에 몰래 총기를 비치해놨다. 어떻게 한국까지 총기를 가지고 들어왔는진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로버트의 선견지명이 내 목숨을 살린 셈이다.

이렇게 눈앞에서 정신없이 쏴 재끼는 걸 보고 있으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경호원들은 쓰러진 양복쟁이들을 한쪽으로 모으고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모두 수거해 치워버렸다.

“보스. 끝났습니다.”

차 문을 열고 내리니 화약 내음과 피 냄새가 요동을 쳤다.

구역질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희한하게도 이런 장면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세 번째 전이를 일으켰던 또 다른 나의 기억 때문인 듯싶다.

“박 부장님.”

“네? 네. 대표님.”

“책임자를 찾아와요.”

“네!”

박산호는 경호원을 대동하고 양복쟁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더니 한 사람을 끄집어냈다.

“이 자가 책임자입니다.”

내가 손짓을 하자, 책임자로 지목된 이를 앞으로 끌고 왔다.

칼잡이들과 마찬가지로 다리에 총상을 입어 제대로 걷지도 서지도 못했다.

“이름이 뭡니까.”

“…….”

“총을 다리에 맞아서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계속 피를 흘리면 쇼크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 전성진입니다.”

“네. 전성진 씨. 서로 좋지 못한 상황에 인사를 나누게 됐네요.”

“…….”

“저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물론 그랬겠죠. 그런데 진짜 양아치도 아니고 한 나라의 안보수석이라는 사람이 이런 꼼수를 부릴 줄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네?”

전성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눈치를 보아하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새다.

“전파 차단했던데, 그것부터 풉시다.”

전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타고 온 차를 가리켰다.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으로 달려간 로건은 기기를 찾아 스위치를 내렸다.

“신호 살아났습니다.”

박산호가 반가운 표정으로 스마트 폰을 바라봤다.

나는 제이코에게 연락을 취하려다, 천기득 회장에게 먼저 연락을 넣었다.

“회장님.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 문제라뇨?

“안보수석이 얼굴 좀 보자고 해서 잠시 바람 쐬러 나왔는데, 초대한 사람은 없고 칼잡이들만 마흔 명 넘게 기다리더라고요.”

― 네? 그게 무슨! 심하게 다친 겁니까?

“하하. 다행히도 몸은 멀쩡합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 말씀하십시오.

“맨몸으로 회칼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라…… 총을 좀 쐈습니다.”

― 네?

총을 쐈다는 말이 나오자, 천기득은 깜짝 놀란 목소리가 됐다. 회칼 든 조폭들도 문제지만 한국에서 총기 사용은 완전히 다른 개념의 문제다.

“다행히 인적도 없고 산골 마을 비슷한 곳이라 밖으로 새나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대신 총상 환자 마흔 명이 생겨나서 좀 곤란한 상황입니다.”

― 위치를 알려주시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네. 그것도 그렇고. 이익현 검사에게 귀띔이라도 해 놨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 이 검사에게는 따로 연락을 넣겠습니다.

“바쁘신데 이런 부탁이나 드리고. 미안합니다.”

― 아닙니다. 그나저나 안보수석이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날 건드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사람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쪽에서도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나는 곧바로 제이코에게 연락을 넣었고 이쪽 상황을 설명했다.

안보수석의 만남 요청이 함정이었다는 말에 제이코 역시 깜짝 놀랐고, 곧바로 이쪽으로 이동을 하겠다고 했다.

통화하는 동안 지혈을 했는지, 전성진의 다리에 넥타이가 묶여 있다.

“전성진 씨?”

“네…….”

“이야기해 봐요.”

“네?”

“나를 어떻게 할 생각으로 이렇게 몰려온 건지.”

전성진은 입을 열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유지했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까?”

“…….”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데 이러시네.”

내가 눈짓을 하자, 로건이 총구를 전성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저…… 정말입니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시키더냐는 말입니다.”

“이곳에 가서 보이는 족족 치워버리라고…….”

“보이는 족족?”

“…….”

“그러니까.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왔다는 소립니까?”

“네.”

하긴, 나를 건드리면 리벤지 재단을 만들어서 기필코 복수를 하겠다고까지 천명을 했는데, 치워 버릴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칼 들고 달려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라던가요?”

“인천으로…….”

“인천으로?”

“밀항선에 넘기면 된다고 했습니다.”

묻지만 살인을 한 다음, 시체는 밀항선에 실어서 보낸다?

“어디로 말입니까.”

“상하이로 가는 배입니다.”

“그러니까. 죽여서 잘 포장한 다음. 인천으로 가져가서 밀항선에 태우기로 했다? 그것도 상하이로 가는 배에?”

“네. 제가 아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단순 무식한 계획이기는 한데, 만약 이들 작전대로 일이 진행됐다면 내 시체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 쪽에서 발견이 됐을 거란 소리다.

“그 와중에도 리벤지 재단이 신경 쓰이기는 했나 보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시체가 그쪽에서 발견되면 뭘 하겠는가. 내 흔적이 한국에 남아 있는 이상 금세 들통날 일이다.

“이렇게 금세 탄로 날 일을 꾸몄다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꾸만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말장난 몇 번으로 부총리를 날려 버린 자가 안보수석이다.

그런 자가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꾸몄을 리도 없고, 내가 모르는 다른 뭔가가 더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맞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걸 이용해 다른 뭔가를 노리는 술수가 숨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이없긴 하지만,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았으니 나도 그 이상으로 돌려줘야 할 것 같은데.”

안보수석 쪽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적대할 생각도 없었고 서로 이야기만 잘 되면 소 닭 보듯 지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 한마디 주고받지도 않고 대뜸 칼질이라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나는 전성진을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그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래서 지시를 했다는 사람이 누굽니까?”

“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면서요. 그렇다면 이 일을 지시한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게 저희 형님이…….”

“지금 통화되죠?”

“그…… 그렇긴 합니다만…….”

“전화 걸어서 나 좀 바꿔줘요.”

“에?”

“지금 당장!”

머뭇거리는 전성진 이마에 다시금 총구가 겨눠졌다.

“네…… 네!”

전성진은 스마트 폰을 꺼내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 폰.”

“아. 네.”

전성진이 스피커 폰으로 전환을 하자, 몇 차례 신호음이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끝났나?

대뜸 끝났냐고 묻는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전성진이 내 눈치를 봤다.

“형님.”

― 왜?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 문제? 그게 무슨 소리야?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목소리에 전성진 대신 내가 대답을 했다.

“나랑 이야기하죠.”

― 누구야?

“아,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일을 저질렀다고 했었죠.”

― ……?

“죽여서 밀항선에 태우라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데려간 애들이 몇인데!

상대는 작업이 실패했다는 말에 대뜸 신경질을 냈다.

“형님! 우리 애들은 물론이고 저도 총에 맞았단 말입니다!”

― 뭐! 뭔 소리야 총에 맞다니!

작업에 동원된 숫자만 마흔 명이다. 칼잡이 마흔을 총으로 제압하려면 권총 한두 자루가 아니라 그 이상의 화력이 동원됐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국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간 당장에 군부대가 출동할 일이다.

“형제간의 대화는 나중에 따로 하시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 넌 뭐야?

“고주몽이라고 하면 아시려나요. 요즘 내 이름이 꽤 유명한데.”

― 고…… 고주몽? 고주몽. 설마…!

“맞습니다. 그 설마가 바로 접니다. 그리고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도 잘 알아야 할 텐데 말이죠.”

― 아니 왜…… 당신이 거기에.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당신 만큼 정말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칼잡이 수십 명이 달려드는데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 …….

상대는 크게 당황을 했는지,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이쪽으로 와서 이실직고하고 선처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마존 오지로 도망가서 영원히 숨어 사시겠습니까?”

― …….

“답하기가 어려운가?”

― 원하는 게 뭡니까.

“말귀가 어둡네요. 내가 움직이면 그때부턴 죽어도 감당 못 할 텐데. 그걸 원하는 겁니까?”

―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오면서 여기저기 전화도 때리고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도 하고. 그러면서 오시겠죠?”

― 아닙니다. 조용히 가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 정도 눈치도 없으면, 여길 오는 것보다 아마존 행을 택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오래 기다려야 할까요?”

― 3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케이. 마음 바뀌기 전에 빨라 와야 할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