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82화 (83/224)

082장. 고주몽 관심자.

주몽의 일탈 또는 돌출 행동에 가장 민감한 사람은 대한민국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아니었다.

태평양 건너에서 주몽 관리팀을 맡은 알렉스가 바로 그 관심자…… 아니 관심자였다.

“알렉스 팀장은 어디 갔나?”

사무실을 둘러보던 샤론이 짐에게 말을 건넸다.

“재무부에 들락거리는 것 같던데.”

“재무부를?”

샤론이 궁금한 눈빛으로 짐을 바라봤다.

“그쪽에서 따로 지시 내려온 거라도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그런 일이 있었으면 샤론 네가 제일 먼저 알았겠지. 연락 담당은 너잖아.”

“그러니까. 딱히 연락이 오거나 따로 지시 사항이 내려온 것도 아닌데, 재무부를 들락거린다니까 하는 말이지.”

샤론의 말에 짐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팀이라고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몇 달째 월급 도둑처럼 놀고만 있으니까.”

“뭐라도 일거리가 없나 기웃거린다는 소리야?”

“아니. 재무부로 복귀시켜 달라고 떼쓰러 다니는 거지. 여기서 허송세월을 보내봤자 점점 고위직에서 멀어지기밖에 더하겠어?”

인재가 없다면 모를까,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능력자들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현직에서 물러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존재감이 흐려질 것이고 출셋길 역시 멀어질 것이다.

출세 욕구가 남다른 알렉스로선 짜증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일이 있건 없건 재무부에 얼굴이라도 내비치는 것일 테고.

“하긴, 알렉스 처지에선 답답하기도 하겠네.”

처음 주몽 관리팀이 만들어졌을 땐 나름 일거리도 많고 여기저기 보고서 작성할 일도 적지 않았다.

거기다 방송에 출연해서 재단을 만드느니 연구에 투자하니 하면서 떠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터트릴 것처럼 큰소리친 것에 반해 고주몽은 조용하기만 했다.

처음엔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수시로 주몽의 행적을 파악하려 들던 알렉스도 최근엔 포기한 눈치다.

그렇게 할 일 없이 한 달이 훌쩍 지나버리니 주몽 관리팀은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는 신세가 됐다.

일 중독자 알렉스는 무료함과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재무부 복귀를 노리는 모양이지만, 빈자리가 나지 않는 이상 인사이동은 어려울 것이다.

“그나저나, 고주몽은 왜 이렇게 조용하지? 당장 무슨 일이든 벌릴 것처럼 행동하더니.”

“뱉은 대로 다 이뤄지면 세상에 못 할 일이 뭐겠어.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대왕 그룹이 바보도 아니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그걸 지켜만 보겠어? 말 그대로 재계 1위 기업인데 그걸 벼락부자 손에 쥐여줬다가 사달이라도 나면 경제 전반에 문제가 생길 텐데.”

“하긴, 돈이 있다고 대기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월가의 돈벌레들이 가만있을 리 없지.”

샤론과 짐은 눕다시피 의자에 기댄 채 주거니 받거니, 농담 따먹기를 반복했다. 일 중독자 알렉스야 이런 생활이 힘들고 버거울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입장에선 그야말로 꿀 보직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알렉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당장 한국 방송 확인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빨리!”

알렉스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짐과 샤론을 닦달했다.

“네. 잠시만요.”

너튜브로 들어간 짐이 한국의 라이브 방송 채널을 체크했다.

“됐습니다.”

“샤론! 통역!”

“네네.”

샤론은 뭘 그렇게 재촉하냐는 듯 반쯤 늘어진 자세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청문회 같은데요.”

“그래. 청문회.”

알렉스가 그것 때문에 방송을 켜라고 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청문회에 고주몽이 왜 나오는 거죠?”

“지금 그걸 확인하라는 거잖아.”

알렉스가 그걸 자신에게 물으면 어쩌자는 거냐며 언성을 높였다.

“어…… 어?”

지루한 표정으로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샤론이 놀라는 표정이 됐다.

“뭐? 뭔데?”

“그. 그게. ST 미디어 그룹이 고주몽에게 넘어갔다는데요.”

“ST 미디어? 짐! 뭐 하는 회사인지 확인해!”

“넵.”

짐이 사이트를 열더니 곧바로 ST 미디어 그룹을 검색했다.

“JTB라는 케이블 방송사를 보유하고 있고, 드라마, 예능, 영화 제작을 병행하는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입니다.”

“규모는?”

“규모는…… 22위로 등록돼 있습니다.”

“22위? 그러니까. 한국에서 대기업으로 분류된 회사라는 거지?”

“넵.”

짐과 알렉스의 대화에 샤론이 다시 끼어들었다.

“팀장. ST 미디어만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게 지금…… 내가 들은 게 정확하다면.”

“답답하네. 빨리빨리 말 좀 해라.”

“대왕 그룹과 선진 그룹, 진영 그룹도 고주몽에게 넘어갔다는데…… 이게 지금 말이 되는가 해서.”

“어…… 어디가 넘어가? 대왕 그룹이?”

알렉스 역시 샤론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ST 미디어 그룹이야 그런 곳이 있는가 보다 할 수 있지만, 대왕은 규격 외 품목이다.

“잘 못 들은 거 아냐? 대왕과 고주몽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잘못 해석한 거 아니냐고.”

“아닙니다. 대왕 사주일가가 범죄혐의로 모두 체포가 됐고…….”

“나도 그건 알아. 그런데 그것과 대왕 그룹의 지분이 고주몽에게 넘어간 이유!”

“지주회사 설립 중에 사주 일가의 범죄혐의가 알려졌고, 그 때문에 그룹 지주회사 설립에 문제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고주몽의 자금이 지주회사로 흘러들었고…….”

“쉣!”

알렉스는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모니터를 노려봤다.

“고주몽 감시팀에게 따로 보고 들어온 게 있었나?”

“아닙니다. 별다른 움직임 없이, 투자 관련 작업만 진행하고 있다고…….”

“멍청한! 한국에 나가 있는 놈들 다 경질이야!”

알렉스는 일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버럭 성질을 냈다.

“팀장.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있어?”

“고주몽이 한국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정치를? 국회의원 선거라도 나간다는 건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당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와. 미친놈 봐라. 돈 좀 있다고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네.”

알렉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모니터를 바라봤다.

“알렉스.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단순한 게 아니면?”

“100억 달러의 투자금을 자신이 만든 정당을 통해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고주몽이 만든 정당에 투표해라?”

알렉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렇게 생각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죠?”

샤론도 전혀 예상 밖의 일이라 생각했는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주몽이 소유한 기업들 순위부터.”

“대왕 1위. 선진 8위. 진영 13위. ST 미디어 22위입니다. 주가 총액으로 따지면…… 대략 5천5백억 달러입니다.”

“5천5백억 달러면…… 고주몽이 보유한 현금 자산 대부분이 저 기업들에 투자됐다는 말인가.”

알렉스의 말에 샤론이 고개를 저었다.

“주가 총액과 지배지분은 차이가 있을 겁니다.”

“50%를 잡는다고 해도 3천억 달러는 저곳에 묻었다는 거잖아.”

“비율만 본다면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지만…….”

“좋아.”

“네?”

“미국 기업이 넘어간 것도 아니고, 한국에 있는 기업이잖아. 누가 주인이든 우리 쪽엔 큰 영향이 없다는 소리고. 무엇보다 고주몽의 현금 보유액이 줄어들었다는 거지.”

알렉스는 주몽의 소식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고주몽의 달러 영향력이 낮아졌다는 말이군요.”

“그래. 재무성에서 나를 여기에 밀어 넣은 이유가 뭐겠어. 고주몽이 달러로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게 첫 번째야. 대략적으로 고주몽의 현금 자산을 계산해 봐.”

알렉스의 지시에 짐이 곧바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억 단위로 잘라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그 밑은 고만고만한 금액이니까.”

“당첨금 7천5백억 달러를 기본으로 두고, 각국 투자금이 100억 달러씩. 총 2천억 달러입니다.”

“고주몽이 기업들을 구입한 금액이 3천억 달러 정도라면.”

“2천5백억 달러 정도 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 지출 사항은?”

“경찰국에 사용한 돈이나 기타 소비된 부분을 다 합쳐도 2억 달러 수준입니다.”

“끔찍하군. 저 돈을 쓰고도 아직 2천5백억 달러가 남았다니.”

“여전히 큰돈이긴 합니다만, 지금까지 고주몽이 보여준 성향을 생각하면,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짐의 설명에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고주몽이 성격파탄자가 아님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은행 쪽에선 여전히 비협조적인가?”

“협조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고주몽의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바로 알아낼 수 있을 텐데…….”

알렉스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것만 제대로 돼도 여기서 넋 놓고 뉴스나 검색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재무부로 복귀해 자금 흐름만 손에 쥐고 있으면 될 것이다.

“고주몽이 정치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우리가 택해야 할 전략은 뭐가 있을까.”

“고주몽의 나이나 경력을 생각한다면 당장 한국의 대권에 도전할 일은 없습니다. 문제는 의석수를 어느 정도 장악하냐에 달렸지 않겠습니까.”

“다른 나라들 반응도 체크해봐. 고주몽이 투자금을 미끼로 의회 입성에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군요. 공직에 나가는 것은 어렵겠지만, 정당을 만들고 지원하는 것 정도는 문제 될 게 없으니 말입니다.”

짐의 말에 샤론이 반론을 제기했다.

“고주몽이 20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치는 다른 문제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에선 이걸 순순히 보고만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도 조심할 건 조심하자고. 고주몽이 이번에 사용한 패턴을 반복할 여지는 없는지. 리포트 작성하고 G20 국가 중에 거부감보다 오히려 환영하는 쪽으로 고주몽을 맞이할 나라는 없는지 그것도 체크해. 만에 하나…….”

“한국 의회를 고주몽이 장악하고 다른 나라 의회도 고주몽 손에 들어간다면 각 나라의 정치적 흐름이 고주몽 의지에 좌우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래.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둘 중 하나겠군요.”

짐이 한마디 거들었다.

“둘 중 하나?”

샤론이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CIA에서 암살해 버리거나, 아니면 친미주의자로 만들어서 철저히 미국에 이로운 영향력을 만들어내거나. 팀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암살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에서도 멍청히 지켜만 보지는 않겠지. 관리 되지 않는 변수는 누구도 환영하지 않으니까.”

알렉스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분석팀 부르고 우리 쪽 로비스트들 명단 좀 추려봐.”

“고주몽에게 직접 접근을 할 생각입니까?”

“직접이든 간접이든. 우호적 제스쳐를 취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한국은 로비가 불법인데 괜찮을까요?”

샤론의 질문에 알렉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고주몽은 미국 시민권자니까. 법적으로 내국인에게 접근하는 건데 이걸 문제 삼으면 안 되지.”

“하긴, 생각하기 나름이겠네요.”

알렉스의 말에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라며 샤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단 준비해서 넘겨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주몽이 만나는 여자가 있나?”

알렉스의 질문에 샤론과 짐 모두 어깨를 으쓱였다.

“뭘 멍청하게 보고만 있어? 당장 조사팀에 연락 넣어서 확인해 봐. 딱히 만나는 여자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붙여 줘야지. 언제까지 독수공방시킬 거야. 어설픈 조사팀만 믿고 있다간 계속 뒷북만 맞을 상황이잖아. 방법이 뭐가 됐든 측근으로 붙여 둘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야지!”

“옛 설!”

알렉스는 모니터 속의 고주몽을 말없이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우리끼리 떠들어봤자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야. 이럴 땐 한국통을 찾아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으니까.”

“네. 다녀오십시오. 자료는 준비해 놓겠습니다.”

“준비해 놓지 말고, 준비되면 메신저로 바로 날려. 느긋하게 앉아서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까.”

“넵!”

알렉스가 모습을 감추자, 샤론은 크큭거리며 웃음을 흘려다.

“왜?”

“그냥. 늘어진 개처럼 돌아다니더니, 고주몽이 움직이니까 금세 살아나서 날뛰잖아.”

“카카카. 그러게. 스토커처럼 말이야.”

“내가 예언 하나 할까.”

“예언?”

“재무성에 자리 나도 팀장은 여길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왜?”

“보면 모르겠어? 저 인간 고주몽 중독이야. 고주몽이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어쩔지 모르고 움직이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잖아.”

“푸핫. 말은 그럴싸하다만, 출세의 화신 알렉스 님께서 과연 여기에 짱박힐지는 모르겠네.”

“내기할까?”

“10달러.”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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