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장. 엑소더스(exodus) 러쉬 앤 캐쉬?
대한당 대표 류전국과 원내 대표 심정희 그리고 긴급 소집에 부리나케 달려온 대한당 의원들은 하나 같이 걱정 섞인 표정이 됐다.
“의견들 있으면 말씀들 좀 해 보세요.”
류전국은 의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다들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표정들이다.
뒤늦게 모습을 나타낸 3선 나관종 의원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어린놈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나관종의 발언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나 의원.”
“네. 대표님.”
“고주몽과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혹시 뭐라도 아는 게 있습니까?”
류전국의 말에 나관종은 별거 없다는 듯 턱을 내밀었다.
“별거 없습니다. 돈벼락에 맞아 맛이 좀 간 것 같더라고요.”
“맛이 갔다?”
“국적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중국적이라뇨. 지금이라도 문제를 삼아야 합니다.”
다른 때 같으면 나관종 계파로 분류된 의원들이 거수기를 자청하며 맞장구를 쳤겠지만, 오늘만큼은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허허. 청문회를 보지 못한 거요?”
류전국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관종을 바라봤다.
“봤죠.”
“그런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네?”
나관종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류 대표를 바라봤다.
“미국과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거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여기서 미국이 왜 튀어나옵니까?”
나관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류 대표를 바라봤다.
“청문회 봤다면서요.”
“보긴 봤죠.”
“나 의원!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청문회를 봤다는 사람이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 류 대표는 물론이고 다른 의원들 역시 표정이 좋지를 않았다.
‘뭐야. 청문회 내용이야 거기서 거기잖아.’
나관종은 대표와 다른 의원들의 반응에 되레 의아한 표정이 됐다. 어차피 뻔한 내용 TV 앞을 지키고 있을 이유도 없겠다 싶어, 이런 저리 오가며 띄엄띄엄 방송을 본 것이다.
“대왕 그룹이 저놈 손에 들어갔다는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래봤자 별것 없습니다. 사주 일가라면 모를까. 뒤에서 돈만 투자한 놈이 뭘 그리 대단하다고.”
나관종의 말에 류 대표는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됐다. 설사, 나관종의 말처럼 직접 기업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그저 투자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가 가진 파워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기업을 장악하고 있는 사주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돈이 많아서? 아니다. 그가 쥐고 있는 인사권 때문이다. 수십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생살여탈권. 고주몽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단순히 지배지분이 아니라 바로 그 인사권인 것이다.
“또 뭘 봤습니까?”
“창당 운운하던데, 나이 서른도 안 되는 놈이 날뛰어 봤자죠. 정치가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전부입니까?”
“그거 말고 별 게 있었습니까?”
“나 의원!”
“……?”
“내 앞에서 다시는 청문회 봤다는 소리 하지 말아요. 사람이 왜 그렇게 정신이 없습니까!”
류 대표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자, 나관종은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의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의사당 앞에서 인터뷰한다고 합니다.”
“TV 좀 틀어봅시다.”
류 대표의 말에 말석에 앉아 있던 의원이 잽싸게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 대표님. 신당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기자의 질문이 흘러나오고 고주몽이 답변을 시작했다.
“허허. 저런 말도 안 되는…….”
“선거법에 걸리는 것 아닙니까?”
“은퇴 축하금? 지금 돈으로 의원들을 사겠다고 하는 겁니까?”
대한당 의원들은 고주몽의 발언이 계속될수록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그러나 누구 한 명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의사당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주몽의 인터뷰는 청문회장에서 했던 발언보다 더 강도가 세고 그야말로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종국에 가선 대한민국 보수 언론의 맏형격이라 할 수 있는 조성일보와 전쟁을 치르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저…… 저!”
“나 의원 말처럼 정말 맛이 간 것 아닙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의원들은 황당하다 못해 분노한 표정들이 됐다.
인터뷰가 끝나자 말석 의원이 TV를 껐다.
의원들은 류 대표의 눈치를 보며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시를 내려달라는 표정들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연락 넣으세요. 그리고 고주몽의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좋으니까 다 찾아오시고. 조성일보 회장과…… 아니 언론사 대표들과 미팅 잡아봅시다.”
“네. 대표님.”
“그리고 나 의원.”
“네. 대표님.”
“법무부 장관이셨던 나관형 님이 이번 선거에 출마를 하실 거라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입니까?”
“네. 저도 그렇게 듣기는 했습니다.”
“듣기는 했다? 나 의원과는 형제분 아닙니까. 그런데 따로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다는 겁니까?”
“그렇기는 한데,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사이가 그다지…….”
“쯧.”
나관종의 대답에 류 대표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아도 그렇지. 형제가 총선에 출마한다는데 따로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정확히 확인 좀 부탁합시다. 출마 의사가 있다면 우리 쪽 비례대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봐 주시고.”
“비례대표를 말입니까?”
나관종이 의아한 표정으로 류 대표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봅니까?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청와대에서도 밀려났고 우리 당 사람도 아닌데…….”
“그걸 왜 나 의원이 신경 씁니까.”
“하하. 왜 신경을 쓰냐니요. 당연히 형제 일이고…….”
“됐습니다. 내가 직접 연락을…….”
“아닙니다. 연락하겠습니다.”
나관종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차기 대권 후보로 불리는 류 대표에게 찍혀서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류 대표는 하나같이 마음이 안 든다는 듯 나관종을 흘겨보다 다른 의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내 단속들 잘하세요. 나 의원 말대로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만, 막말로 정치에 돈 빠지면 될 일도 안 되는 거 다들 알지 않습니까.”
“네. 대표님.”
“특히, 지방자치단체장들. 행여 딴마음 먹지 못하도록 지역구도 한 번씩 돌아보시고.”
“하하. 아무리 그래도 투자금 좀 받겠다고 당적을 바꾸기야 하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거대한 댐도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지는 겁니다. 총선이 장난입니까?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요!”
“네…… 넵! 대표님.”
이런 현상은 대한당만의 일이 아니었다. 제1야당인 민국당은 물론이고 녹색당 역시 주몽의 창당 선언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특히 청문회장에서 주몽을 공격했던 민국당 분위기는 그야말로 복잡하기만 했다.
총선 분위기 획책용으로 선택을 한 것뿐인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대한민국 최대 기업주를 겁박한 셈이 된 것이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신당이고 뭐고 다 떠나서 고주몽 대표가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현직 의원들에 해코지할 것도 아니고.”
“어허. 모르는 소리! 대왕과 선진, 진영 그룹은 전국 각지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구에 그들을 유치해와도 모자랄 판에 억하심정으로 다 떠나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민국당 대표 문지호의 외침에 별일 있겠냐며 걱정할 필요 없다던 의원들이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거기다, 고주몽이 만든다는 신당이 우리가 내세우는 이미지를 갈아먹게 생겼지 않습니까.”
“신당이 우리와 이미지가 겹친다는 말입니까?”
“답답하네. 이 사람들아. 신당 소속이 되면 각서 아니 계약서를 작성한다지 않나. 21세기 청백리도 아니고 비리가 됐든 뭐가 됐든 문제를 일으키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말이 그렇지. 누가 의원직에서 물러나겠습니까.”
다른 의원 하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저저저. 저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소송한다잖아. 그것도 손해배상! 당신 같으면 의원 배지 지키려고 집안 날려 먹을 거야? 엉?”
“우리나라가 미국도 아니고. 집이 날아갈 정도로 소송이 걸리겠습니까?”
“아 진짜! 답답한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그래서 계약서를 쓰게 한다잖아!”
“아…….”
민국당 대표 문지호는 숨넘어가는 표정으로 의원들을 돌아봤다. 이렇게 한심한 인간들을 데리고 당을 이끌어왔다니, 여태껏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의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민국당 청년 비례대표로 들어온 이진석 의원이다.
“저기…….”
“어. 그래. 이 의원.”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자치단체장들이 투자 적합평가에 점수를 높이려고 신당으로 당적을 바꾸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막말로 자치단체장뿐 아니라 총선 승리를 위해서 신당으로 자리를 옮기는 의원들도 생길 것 같고.”
이진석 의원의 말에 당 대표는 물론이고 다른 의원들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럴까 싶으면서도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장 교섭단체 지위마저 흔들릴 판이다.
“다들 내 말 명심해. 만에 하나 당적 버리고 저쪽으로 옮겨타다가 걸리면…… 여의도에서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만들 거니까.”
문지호 대표는 행여나 헛생각하는 놈들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라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론입니다.”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그런 놈이 있다면 제 손으로 목을 분질러 버리겠습니다!”
민국당 의원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지역구로 내려가.”
“네?”
“지역구로 내려가서 우리 당 소속 자치단체장들 관리 들어가야지!”
“아! 네.”
“그래야죠. 그럼요.”
의원들은 분분히 몸을 일으키더니 허겁지겁 당사를 벗어났다.
청문회에서 사주 일가 처벌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녹색당 박상중 의원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천장만 바라보다 주섬주섬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부총리님. 저 박상중입니다.”
― 아, 박 의원님.
“방송 보셨습니까?”
― 네. 봤습니다.
“음…….”
박상중이 말끝을 흐리자 함상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 신당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하하. 이러면 안 된다 싶으면서도 자꾸 관심이 갑니다.”
― 다른 분도 아니고 박 의원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지 몰랐습니다.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변할 리 있겠습니까 만은.”
― 가족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겠죠.
박상중 의원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 제가 다리를 한 번 놔드릴까요?
“부총리님이요? 고 대표와 연결 고리가 있으십니까?”
― 사실, 얼마 전에 찾아갔다가 대차게 까인 적이 있습니다. 박 의원님에게 연락을 드리기 전에 말입니다.
무소속 출마로는 힘들다는 생각에 녹색당에 연락을 취했던 함상호다.
여당이든 제1야당이든 자신과는 맞지도 않고 그쪽에서 받아줄 리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상중은 함상호의 입당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고주몽이라는 예기치 못한 카드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 말씀은…… 찾아가봤자…….”
― 입당 조건에 합의한다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들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고 대표는 정치 쪽엔 문외한입니다. 이럴 때 박 의원 같은 분이 합류하게 된다면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잠시 고민을 하던 박상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아닙니다. 당연히 도와야죠. 박 의원님이 계시는 곳이 저 역시 있을 곳 아닙니까.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 * *
호텔로 돌아온 나는 목을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방송 잘 봤습니다.”
김덕영이 반가운 표정으로 물을 내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덕영 씨가 물을 내오십니까?”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없어서 말입니다. 엘리스 양도 그렇고 정은영 씨도 그렇고.”
“아아. 그랬죠.”
엘리스는 미국으로 쫓겨났고, 정은영 역시 퇴사 처리했다. 물론 녹취내용이나 사생활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대외적으론 일주일 전 있었던 외출 사건이 문제가 된 것으로 처리했고 정은영 같은 경우엔 대왕 전자 자재과로 원상 복귀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네. 말씀하세요.”
“어떻게 제 연락처를 알았는지. 하하.”
김덕영은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벌써 연락 오는 곳이 있습니까?”
김덕영에게 연락이 왔다는 말은 정치 신인이나 입문자 쪽은 아닐 것이다.
“함상호 전 경제부총리에게 연락이 왔는데 이게 건더기가 좀 큽니다.”
“건더기요?”
“네. 녹색당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모를 수가 없죠. 오늘 청문회장에서도 봤는데.”
“네. 그 녹색당이 신당에 합류하면 어떻겠냐는…….”
“당이 통째로요?”
“네. 대표님.”
녹색당 소속 의원 중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나 싶었는데, 당이 통째로 이동한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몇 명이나 되죠?”
“모두 일곱 명입니다.”
“일단 만나보죠. 미팅을 잡아 주세요.”
“넵. 대표님. 그리고…….”
“할 말이 더 있습니까?”
“대한당과 민국당 쪽에서도…….”
“네?”
“아, 이쪽은 당이 움직이는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쿠흐흐. 재미있네요. 이러다 기존 정당들 스펀지처럼 숭숭 구멍 나는 거 아닙니까.”
“엑소더스가 따로 없습니다. 저도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지는 상상을 못 했으니 말입니다.”
“따로 만날 이유가 있나요. 한꺼번에 해치우죠. 아, 그리고 입당계약서 말입니다.”
“네. 대표님.”
“그거 인터넷에 공개하세요. 딱히 감출 것도 아니고.”
“네. 알겠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신당 입당서는 네티즌들 사이에 ‘정치인고용계약서’라는 이름을 바꿔 불렸다.
공개된 내용이 마치 회사에서 직원 뽑듯 계약서 형태로 작성이 됐기 때문이다.
보통의 입당 원서는 당원 숫자를 늘리기 위해 최대한 약식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주몽의 입당 원서는 페이지 수만 30장이 넘었고 당에서 지원하는 혜택도 어지간한 대기업 뺨치는 수준으로 작성돼 있었다.
물론 넘치는 혜택만큼 무시무시한 손해배상도 걸려 있는 그야말로 초유의 입당서였다.
▶ 와, 저거 뭐냐. 나 회사 때려치우고 신당에 들어간다.
▷ 미친. 일반 당원은 아예 받지도 않네.
▷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보통 당원이 되면 당비 내면서 봉사 뛰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 맞음. 당원 되면 당비 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당원 활동하려면 당비는 물론이고 사비 탈탈 털면서 윗사람 챙겨야 하고.▶ 의원으로 당선되면 당에서 다달이 오천만 원씩 지원금이 나온다고? 저기 정치자금법 위반 아닌가?
▷ 응. 아님. 당에서 나오는 돈은 별개임.
▷ 의원 사무실도 지원해 주네.
▷ 보좌관들도 활동비 따로 지급한다고 함.
▷ 은퇴 축하금이 30억이다. 저거 받으면 비리 없이 의정 생활했다는 증거가 되는 건가? 검증 방법이 축하금이라니. 기발하긴 하네.
▷ 헛짓거리하다가 당 윤리위원회에 걸리면 그야말로 결딴낸다고 함. 영혼까지 털어버릴 생각임.▶ 나 대한당 의원 보좌관인데. 울 영감 방금 탈당서 냈다.
▷ 왓? 리얼리?
▷ 난 민국당 의원 보좌관임. 울 영감님도 탈당서 내고 튀는 중.
▷ 여기 완주 시청입니다. 울 시장님. 당적 옮기는 거 도와 달라고 비서진들 닦달하고 있음.
▷ 방금 들어온 소식! 녹색당은 통째로 신당에 들어갔음. 현직 의원 일곱 명!▶ 뭐야. 고주몽 당은 만들어지자마자, 원내교섭당 되는 거냐? 미친다.
▶ 고주몽 당이 아니라 러쉬 앤 캐쉬 당이다. 다른 당 의원들이랑 자치단체장들 빤스 벗고 러쉬 중이다. 캐쉬 땡기러~
▷ 뭐야. 그럼 다른 당들은 엑소더스 당이냐?
▷ 캘캘캘. 노예로 살던 정치인들이 엑소더스해서 러쉬 앤 캐쉬, 가나안 땅으로 빤스런 하고 있음.
“러쉬 앤 캐쉬 당이요?”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김덕영을 바라봤다. 김덕영은 태블릿을 들고 네티즌들이 가져다 붙인 당 이름을 줄줄이 읊어댔다.
“모세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정치고용당, 용역당, 돈지랄당에 노예계약당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나마 무난하게 부르는 이름이 대표님 이름을 붙인 당입니다. 고주몽당. 고구려당. 뭐 이런 식이죠.”
“헐!”
“다른 건 몰라도 일단 당명이라도 빨리 정해놔야 할 것 같은데. 이러다 국민들 뇌리에 신당 이름이 괴상하게 박힐 것 같습니다.”
김덕영은 당명 좀 해결해 달라며 나를 바라봤다.
“이름을 내가 지어달란 말입니까?”
“대표님이 만드는 당 아닙니까. 당연히 이름도 지어주셔야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박상중 의원이나 함상호 부총리에게 도움을 청해 보세요. 작명 쪽엔 소질이 없어서.”
“당연히 물어봤죠. 그런데 다들 대표님이 짓는 게 좋겠다고 그러는데 어찌합니까.”
“그렇게 갑자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면…… 에이. 이것도 인터넷에 올립시다. 당명 지어 달라고 하고 선정되면 상금도 주고. 그리고 청와대 그 뭐더라.”
“어떤….”
“국민들이 들어가서 글 쓰는 게시판 있지 않습니까.”
“아아. 청원게시판 말이군요.”
“그거 우리도 만드세요. 청와대보다 더 빵빵하게.”
“넵!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