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77화 (78/224)

077장. 꽝 하고, 청문회장에 벼락 떨어지는 소리.

민국당 의원들의 질문이 끝나자, 곧바로 녹색당 의원들의 질의가 시작됐다.

녹색당 의원들의 질의는 내가 아니라, 오후 증인으로 참석한 다른 기업인들에게 집중이 됐다.

특히, 이번 비자금 사태의 중심이 된 대왕 그룹과 선진 그룹, 진영 그룹이 타겟이 됐다.

“대왕 그룹 천기득 임시 회장님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네. 의원님.”

“사주 일가의 비리로 인해 대한민국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지 알고 싶습니다.”

천기득 임시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그룹 책임자로서 여러 의원님과 국민 여러분 앞에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립니다.”

천기득은 그룹을 대표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말만 그렇게 하고 결국엔 사주 일가 모두 풀려나는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 재벌이 제대로 처벌받은 역사가 없는데 말입니다.”

녹색당 박상중 의원은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사주 일가의 비리와 비자금 조성, 불법적 행위는 법적 절차에 따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언제는 법에 반한다고 했습니까. 매번 말만 그렇지. 결과가 없지 않습니까. 그룹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지원에 나설 것 아니냐 이 말입니다.”

“대왕 그룹 전(前) 회장 이태주는 물론 사주 일가 모두 어제부로 해고처리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 봤자, 그게 그거 아닙니까!”

“의원님.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라, 해고처리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해고…… 어?”

박상중 의원을 말을 하다 말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지금 해고라고 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그룹의 자금을 함부로 가져다 쓴 것에 대해 횡령으로 고발조치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주 일가의 비자금 대부분은 탈세와 그룹 유보금을 오랜 세월 빼돌려 만든 것입니다. 회사로선 돈을 도둑맞은 것입니다. 당연히 회수를 위해 횡령으로 고발조치 했습니다. 그와 관련해 사주 일가가 소유하고 있던 그룹 지분 역시 모두 차압에 들어갔습니다.”

웅성웅성.

천기득 임시회장의 발언에 청문회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형 로펌을 움직이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를 했니 마니 하면서 5.3 법칙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룹에서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횡령 배임으로 고발을 했다고 하니 다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 됐다.

“발언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선진 그룹의 새로운 회장 정진호가 손을 들었다.

의장이 의원들을 바라보더니 정진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진 그룹 역시. 대왕 그룹과 마찬가지로 사주 일가를 고발조치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진영 그룹 한중근입니다. 진영도 다른 두 곳과 마찬가지로 사주 일가를 고발 조치했습니다. 사주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도 모두 동결시켰고 십 원짜리 한 장까지 그룹에 돌려받을 계획입니다.”

이번 비자금 사태의 중심에 있는 세 개 그룹이 약속이나 한 듯 사주 일가를 고발했다는 말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다른 기업인들은 물론이고 질의하고 있던 의원들 역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됐다.

“지금 그 말씀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청문회장에 도착하기 전에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다음 질문을 준비하고 있던 박상중 의원은 들고 있던 서류를 만지작거리다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십 원짜리 한 장 남기지 않고 횡령금을 회수하겠다는 말에 더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질의 마칩니다.”

박상중 의원이 마이크를 꺾어버리자, 대한당 권함직 의원에게 바통이 넘어갔다.

“제가 알기로 세 그룹은 지주회사 설립을 준비 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천기득이 대표로 대답을 했다.

“문제가 된 비자금이 지주회사 설립에 사용될 예정이었다고 하던데, 문제는 없는 겁니까?”

“당연히 문제가 됐습니다. 이번 지주회사 설립 건은 그룹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였습니다.”

천기득의 말에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그룹의 지배구조가 무너지고 그룹 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갈 위기였습니다.”

웅성웅성.

대한민국 1위 그룹이 휘청일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는 말에 의원들이 연신 웅성거렸다. 대왕그룹이 흔들린다면 그건 단순히 기업 하나가 흔들리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전체가 휘청일 일이다.

“하지만, 의로운 투자자를 만나 위기를 극복했고 그룹은 사주 일가의 횡포에 시달리던 때보다 더 탄탄하고 안정된 지배구조를 갖게 됐습니다.”

“지금 투자자라고 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은 대왕 그룹의 지주회사가 사주 일가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는 의미 아닙니까!”

대왕 그룹이 휘청거렸다는 말보다 더 큰 충격파가 청문회장을 휩쓸었다.

“진영 그룹도 천기득 회장님의 소개로 투자자를 만났고 그분의 도움을 받아 그룹을 안정시켰습니다.”

“선진 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영과 선진 그룹의 회장들 역시 대왕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받아 회사를 지켰다고 하자, 의원들뿐 아니라 증인으로 나와 있던 기업인들 역시 입이 쩍 벌어졌다.

“투자처가 아니라 투자자입니까?”

“네. 투자자입니다.”

― 지금 저게 무슨 소리야?

― 그럼 대왕과 진영, 선진이 한 사람 손에 들어갔다는 말이야?

― 미친! 재계 1위와 8위, 13위가 한 집안이 됐다고?

청문회장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연이어 밀려드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왕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에선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상을 넘어선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의원들은 자신의 차례가 아님에도 중구난방으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의장은 흐트러진 분위기를 잡으려 노력했지만, 의원들은 의장의 지시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룹이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한 사람 손에 들어갔다는 말인데, 아무리 기업이 위험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천기득 회장!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의원들의 외침에 천기득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외국계 자금에 그룹을 넘겼어야 했다는 말입니까?”

“…….”

“…….”

“무엇보다, 위기를 넘기게 도움을 준 투자자는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한 분입니다.”

천기득의 말에 정진호 회장과 한중근 회장도 같은 말을 했다.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됐을 텐데, 그저 돈만 밀어주고 기업에 간섭하지 않는다고요? 초등학생도 믿지 못할 말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의원님 자유입니다만, 투자자분이 내 세운 조건은 두 가지뿐입니다.”

“조건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사주 일가처럼 비리와 범죄를 저지르고 말고, 직원들을 노예처럼 대하지 말 것.”

“…….”

“돈 필요하면 사채 따위 쓰지 말고 투자자에게 먼저 연락할 것.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천기득의 말에 청문회장이 조용해졌다. 다들 저걸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들이다.

“잠깐! 대한민국에 누가 그런 돈을 운용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막말로 한국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이 대왕 그룹 회장이었습니다.”

천기득은 말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쪽을 가리켰다.

“왜 없습니까. 누구보다 깨끗하고 선명한 돈을 가진 사람이 저기에 있지 않습니까.”

의원들은 물론이고 증인들과 카메라까지 천기득의 손끝을 쫓아 움직였다.

“고…… 고주몽?”

“GO 컴퍼니 고 대표?”

“글로벌 복권 당첨자!”

“잠깐, 아까 ST 그룹도 저 사람 손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어?”

청문회장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던 국민까지 한순간 공황상태에 빠졌다.

청문회 내내 헛소리를 찍찍 뱉으며 공격에 나섰던 민국당 의원들은 사색이 됐다.

운 좋은 애송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말 대잔치를 벌였는데, 자신의 손으로 제 목을 조른 꼴이 된 것이다.

민국당 최웅선 의원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정말입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내 입에 집중됐다.

“네. 사실입니다. ST 미디어 그룹도 대왕 그룹과 선진 그룹은 물론 진영 그룹까지 모두 내 것입니다.”

“…….”

“그리고도 수백조가 아직 남아 있네요.”

쿵!

대한민국 대기업 네 개를 집어삼키고도 수백조가 남아 있다는 말에 다들 현기증이 밀려들었다.

담담한 내 답변 하나가 청문회장을 침묵으로 몰아넣었다.

다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들이다.

청문회를 운영해야 할 이정국 의장 역시 멍한 표정으로 망치만 들고 있었다.

정회하든 속개를 하든 해야 함에도 순간 머리가 굳어 버린 것이다.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의장님. 잠시 발언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의원님들과 국민 여러분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네.”

이정국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청문회장을 찍고 있는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가를 지키기 위해주식 시장에 돈을 집어넣었던 것처럼, 몇몇 사람들의 욕심과 범죄 행위 때문에 대한민국 기업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다들 강의를 듣는 학생들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법과 정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사주 일가를 보셨듯이 기업을 개인의 사유물처럼 사용한다면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될 겁니다. 그래서 천기득 회장님 말씀대로 소유와 경영은 분리했고 저는 그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오…….”

몇몇 사람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그리고. 이렇게 방송에 나온 김에 안내 말씀드립니다.”

뜬금없이 안내 방송을 하겠다는 내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청문회장에 나와 안내 방송이라니 이 역시 헌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누구 한 명 반대하거나 막아서는 사람이 없다.

“서울과 광역시를 제외한 전국 시군 지방자치권에 말씀드립니다. 국내에 들여온 이공계 투자금 집행과 관련해 학자들과 개발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연구단지 조성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 연구단지?

― 지금 지방에 투자하겠다고 말하는 건가?

“투자유치를 위한 제안서를 제출해주십시오. 최소 백억에서 최대 1조까지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 트…… 특종이다.

― 데스크에 올려!

― 멍청아. 이거 생방송이야!

기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흘러들었다.

나는 기자들을 향해 슬쩍 웃어주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와 함께 이번 총선을 위해서도 투자를 할까 합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총선에 투자하다니.

― 고 대표가 선거에 나온다는 말인가?

―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당선이지. 방금 이야기한 투자금이 지역구를 비껴가진 않을 테니까.

“새로운 정당을 만들 생각입니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인재, 미래를 꿈꾸는 정치 신인들에게 고합니다. 전화 주세요.”

쿵!

연구단지 설립을 위해 지방에 투자한다는 것만으로도 전국에 들썩일 일인데, 아예 대놓고 창당을 입에 담았다.

청문회장에 있는 의원들을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던 다른 정치인들 역시 정수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바보가 아닌 이상 고주몽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왕이면 투자하는 것, 신당 소속의 의원들이 자리 잡은 지역구를 먼저 들여다볼 것이다.

그 말은 이번 총선이 기존 정당들에 엄청나게 불리한 구도로 흘러갈 거란 사실이다.

― 기업인이 창당한다고? 그게 되려나?

― 안될 건 뭐야. 이미 선례가 있는데.

― 아, 고(故) 왕 회장님이 있지.

― 그런데 고 대표가 기업인이긴 하나? 그냥 투자자 위치로 만족하는 것 같은데.

― 알 게 뭐야. 창당한다는 소릴 청문회장에 나와 했다는 게 대박이지.

―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다른 정당들은 완전히 난리가 나겠는데.

청문회장에서 난데없이 창당 선언을 해 버린 고주몽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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