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74화 (75/224)

074장. 나보고 청문회에 나오라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여자의 관심 표명에 나는 어떤 답도 주지 못했다.

둘 중 한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면, 복잡하게 고민할 것도 없었겠지만, 동시에 두 사람이 고백하고 빤히 쳐다보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일단 알았다.’ 정도다.

아름다운 여자가 좋다고 해주니 기분이야 좋았지만, 면전에서 누군가를 선택하고 진도를 나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다 고백이라는 이벤트가 발생했는진 모르겠지만, 상황이 갑작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앞선 상태가 아니다 보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과거처럼 평범하게 돌아다니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계획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인생은 과거로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자리까지 이동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계속 돌아다닐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그대로 호텔로 돌아왔다.

실컷 놀고 올 것처럼 나갔던 내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복귀해 버리자, 로버트와 제이코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딱히 상황을 설명할 것도 아닌지라, 그저 생각이 바뀌었다고 둘러댔다.

눈치 빠른 두 사람은 나와 두 여자 사이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지만 더는 묻지 않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좀 야비한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양손에 떡을 쥐었단 생각이 들자 내심 뿌듯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복권 당첨자가 아니고 평범한 고주몽이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지. 여자들이 미쳤다고 고백을 하겠어. 애초부터 저런 여자들과 인연이 있을 리 없잖아.”

돈은 내 인생을 바꿔 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그 때문에 사람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조차 과거와 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호감’까지도 진실성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저들이 보이는 호감이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돈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그런 생각이 흘러들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래서 재벌들이 평범한 결혼보다는 정략에 집중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들처럼 사랑만으로 인생을 결정하기에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여자의 관심에 잠시 들떴던 기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고 오히려 엿 같아졌다.

과거엔 어떻게든 연애 한번 해보는 게 꿈이었다면, 이젠 연애마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인생이 돼 버렸다.

“어이가 없네.”

침대에 누워 혼자 한참을 구시렁거리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엘리스와 정은영, 두 사람은 별다른 티를 내지 않고 평소처럼 움직였다.

나도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선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나마 유지되던 분위기마저 다 망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작스레 날아든 통지서 한 장 때문에 여자 문제에 신경 쓰고 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뭘 하라고요?”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박산호를 바라봤다.

“청문회에 출석하라고 합니다.”

“아니.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청문회를 왜 나갑니까?”

“대표님의 국적과 세금 혜택 등을 문제 삼겠다는 것 같습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를 이제 와서 다시 꺼내 들겠다고요? 도대체 이유가 뭐랍니까?”

“표면상 이유는 현 정권이 국회를 무시하고 권력을 남용했다는 겁니다.”

“본질적 이유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군요.”

내 질문에 김덕영이 설명을 했다.

“곧 선거철이 돌아오지 않습니까. 야당에선 이번 일을 이용해 의석수를 하나라도 더 챙길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이런다는 겁니까?”

내가 정치인들 선거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표님에게 준 혜택을 문제 삼아, 형평성을 따지고 들 겁니다. 시작은 대표님이지만, 결국 목표는 여당과 청와대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미끼 삼아, 여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지렛대로 사용하겠다?”

“시민권과 혜택을 주는 대가로 정부 여당에 뭔가를…….”

“뭔가는 돈이겠군요.”

“네.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이슈를 만들고 나면 여당 때리기 용으로 뉴스를 양산할 수 있으니까요. 뉴스가 쏟아지면 뭔가 비리가 있으니 저러는 거라고 다들 의심할 겁니다. 그 와중에 청문회 스타도 도전해 보고 선거전에 TV에 얼굴도 비추겠다는 의도죠.”

“정부와 대표님을 한데 묶어서 부패로 몰아가겠다는 의도입니다.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데 성공하면 선거는 야당에 유리하게 흘러갈 겁니다.”

박산호가 부연설명을 했다.

“어이가 없네. 그 사람들 지금 뭘 건드리는지 알고는 이런답니까?”

그들 입장에선 그저 돈 많은 졸부 하나 두들겨 패서 표를 거둬들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때리는 것은 나에게 시민권을 준 다른 나라 정부를 함께 두들겨 패는 것과 같은 일이다.

“알면 저러겠습니까.”

김덕영도 저들의 행태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야 개과천선을 했지만, 과거에 누구보다 먼저 멍청한 짓을 벌였던 김덕영이기에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꼭 나가야 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김덕영의 말에 박산호가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이슈 거리가 될 겁니다. 뭔가 감출 게 있으니 숨는다고 떠들어 대겠죠.”

“하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이라는 소리네요.”

나는 잠시 생각에 들어갔다.

“나가죠.”

“네?”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딱히 감출 것도 없는데 왜 숨습니까. 나가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봐야겠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이코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보스.”

“네. 제이코.”

“강태공 작전 있지 않습니까.”

“네. 그게 왜요?”

“어차피 청문회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걸 이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청문회에서 강태공 작전을요?”

“저들이 보스를 이용해 득을 보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라고 그걸 이용하지 말라는 법이 없죠.”

제이코는 음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야당 때문에 체면이 손상됐으니 너희들도 한번 당해봐라?”

“보스를 이용해 표를 얻는 게 아니라, 보스 때문에 표가 우수수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습니까?”

“김덕영 씨.”

“네. 대표님.”

“이거 선거법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딱히 문제 될 건 없어 보입니다. 대표님이 선거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투자자로서 이야기하는 것뿐이니까요.”

“좋습니다. 한번 해보죠. 이거 잘만하면 청문회가 아니라 홍보대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갑작스러운 청문회 출석에 어리둥절했던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출석 일자가 언제죠?”

“일주일 뒤입니다.”

“오케이. 그 건을 그렇게 진행하기로 하죠. 그 밖에 따로 알아야 할 일이 있나요?”

“거주지는 이대로 계속 호텔에 계실 생각이신지.”

김덕영이 궁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 그래도 고민 중입니다. 생활 공간과 업무 공간이 혼재돼 있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래서 말입니다.”

김덕영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네. 의견 있으면 말씀하세요.”

“대표님 취향을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취향이요?”

“주택을 선호하시는지. 아니면 아파트 같은 공간을 선호하시는지 알아야 물건을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주택은 아무래도 외부의 간섭이 적지만 관리에 손이 많이 가고.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의 주거공간은 편리성은 앞서지만, 외부인 출입을 막기 어렵다는 점이 있습니다.”

“제이코는 어때요?”

“그건 제가 아니라 로버트에게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보안을 책임지는 사람이니.”

제이코 말에 로버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로버트. 어느 쪽이 좋을까요?”

“당연히 저택입니다. 수용인원도 그렇고 자체적으로 보안설비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김덕영 씨. 저택으로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회사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도.”

“네. 대표님.”

“또 이야기할 내용이 있나요?”

다들 별다른 말이 없자, 정은영이 입을 열었다.

“10분 뒤, 전(前) 경제부총리 함상호 님과 미팅이 예정돼 있습니다.”

“소(小)회의실에서 만나겠습니다.”

“네. 대표님.”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청문회 그거 별것도 아닌데 괜히 식겁했네요.”

나는 곧바로 자리를 옮겨 함상호 전 경제부총리를 기다렸다. 잠시 뒤, 엘리스의 안내를 받아 함상호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오랜만입니다. 부총리님.”

“하하. 그만둔 지,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이젠 그냥 야인이나 다름없죠.”

함상호 전 부총리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악수를 청했다.

“앉으시죠.”

“네. 대표님.”

서로 간에 자잘한 안부를 물으며 티 타임을 가졌다.

“그런데 왜 갑자기 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신 겁니까?”

“사실은 그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함상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총리께서 물러나신 이유 때문에 찾아왔다는 말씀인가요?”

“네. 제가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고 대표님과 관련이 있어서입니다.”

“저와 관계가 있다고요?”

따로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나 싶었는데, 함상호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혹시 안보수석을 기억하십니까?”

“안보수석이라면…… 아, 그때 미국에 함께 찾아왔던 분 말입니까?”

“네.”

“기억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때 잠시 스치듯 본 게 전부라. 하지만, 암살 운운했던 사람이 안보수석이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죠.”

“하하하. 네. 저도 방송을 봤습니다. 리벤지 재단이라고 했었죠?”

“네. 어떻게 보면 웃기는 재단이지만, 나름 방어책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함상호 전 부총리는 나름 신선한 내용이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대통령은…….”

“정일표 사무관을 통해 짧게 전해 들었던 내용이군요.”

허수아비 대통령. 기득권들이 손을 잡고 정권을 창출했고 그들의 입맛대로 법을 건드리고 있다는 부분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았다고 해서 내가 맞서 싸우거나 할 부분은 아니라 생각했다.

“안보수석을 그들의 메신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저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셨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고 대표님 때문에 자리에서 밀려났다기보다, 고 대표를 이용해 저를 쫓아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군요.”

함상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만요. 지금 그 말은 의도적으로 암살 운운하는 말을 꺼내서 부총리님을 흔들고, 내가 피드백을 보이자 그 이유를 핑계 삼아 경질을 했다는 그런 이야깁니까?”

“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정권을 만든 기득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말로 이용했다는 말에 잠시 기분이 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피해를 본 것도 없다.

오히려 나를 죽여버리는 방법으로 재산을 강탈할 수도 있다는 방법을 알려준 거나 마찬가지니 어쩌면 도움을 받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요?”

“네?”

내가 반문을 하자, 함상호 전 부총리는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들이 고 대표를 이용했다고…….”

“네.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어서일까. 함상호 전 부총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나를 이용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번엔 함 부총리님에게 이용을 당해달라 뭐 그런 뜻입니까?”

“고 대표….”

“재미있네요. 예전의 저였다면, 발끈하고 흥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거 어쩌죠. 그간 저도 밥만 먹고 누워 있던 게 아니라서 머리가 많이 굵어졌는데 말입니다.”

“하하. 뭔가 오해를…….”

“오해라. 최근에 오해란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

“한국을 떠났습니다. 영원히.”

“고 대표. 말씀이 심하십니다. 미국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알려줬죠. 그게 함정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함 부총리는 대번에 불편한 표정이 됐다.

처음 회의실에 들어올 때 지었던 사람 좋은 얼굴은 더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만약 그들의 목표가 처음부터 함 부총리님이었다면, 지금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나 역시 그들의 관심사가 됐겠군요.”

“크흠.”

함 부총리는 연신 헛기침을 흘리며 딴청을 부렸다.

‘이 아저씨가 지금 무슨 꼼수를 부리려고 나를 찾아온 거지?’

안 그래도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넘쳐나는데, 이젠 남의 집 싸움에 장기말 취급이라니.

나를 뭘로 보고 이런 수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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