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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68화 (69/224)

068장. 작전명 강태공

“한성희 씨.”

“네.”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서로에게 불편하겠죠?”

싸늘하기만 했던 제이코가 조금은 느슨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의견을 물었다.

“네.”

한성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죠.”

“인터뷰를 끝내시겠다는 이야기인가요?”

“네. 나와 당신 때문에 좋은 분위기가 많이 망가졌습니다.”

“…….”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제이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기득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소란스러웠습니다.”

“어이쿠. 소란은 무슨. 제이코 대표 덕분에 침침했던 눈이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하하하.”

천기득은 그런 소리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천기득의 말에 미소를 보인 제이코가 이번엔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보스. 업무 종료를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그동안 제이코와 투자팀도 너무 고생이 많습니다. 오늘은 다 잊어버리고 시원하게 한잔하죠!”

“네. 보스.”

제이코는 언제 화를 내고 정색했냐는 듯 활짝 웃는 얼굴로 착석했다. 그리고 술병을 들어 한성희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한잔하셔야죠. 보도국 전권 책임자로 내정되셨는데.”

“네? 아.”

한성희는 재빨리 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찰랑거릴 정도로 금세 술잔이 채워졌다.

“건배할까요?”

“네.”

짤랑. 잔이 가볍게 부딪쳤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축하를 겸한 건배였기에 단숨에 들이켰겠지만, 제이코는 가볍게 한 모금 넘기는 정도로 잔을 내려놨다.

한성희 역시 제이코의 눈치를 보더니 적당량 머금는 정도로 술을 비웠다.

술 때문에 된통 당했는데, 그걸 지적한 사람 앞에서 넙죽 받아 마시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제이코가 술잔을 비우며 분위기를 풀자, 한동안 싸늘해졌던 식당 안이 다시 부드럽게 달아올랐다.

“로버트도 함께 마시면 좋을 텐데.”

내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하자, 제이코가 고개를 저었다.

“머리에 총알이 박혀도 거부할 겁니다.”

“크크. 그러게요.”

굳이 업무적 특성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로버트는 술을 즐기지 않았다.

“김한올 회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ST 미디어 회장 말입니까.”

“네. 전권을 달라고 하더니, 방송국이 아니라 ST 미디어를 통째로 가져왔다고 해서요.”

“겁이 많은 사람이더군요. 검찰, 대왕 그룹을 운운하며 핑계를 댔지만, 그동안 원한을 많이 쌓은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가진 힘이 있으니 마음껏 휘둘렀지만, 자신을 지켜주던 방벽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자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제이코의 말에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자신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포르노 테이프를 만들려 했던 사람이다.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이들의 영상을 찍고 보관하며 그걸 빌미로 이득을 봐 왔을 것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겠군요.”

“하하. 보스는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국장님 일도 그렇고.”

내 말에 제이코는 고개를 저었다. 한성희는 자신의 이야기 나오자 귀를 쫑긋거렸다.

“실수가 아닙니다. 보스는 약속을 지키고자 하신 겁니다. 오히려 그걸 핑계 삼아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려 한 사람이 문제인 거죠.”

제이코의 말에 한성희가 움찔한 모습이 됐다.

“그러니 의기소침하지 않아도 됩니다.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보스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으니까요.”

제이코의 말에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조언… 더 명심할게요.”

“네. 그거면 됩니다. 보스는 아직 젊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제이코.”

제이코는 내 말에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ST 미디어 김 회장은 미국 영주권을 알아봐 주기로 했습니다.”

“영주권을요?”

“먹고 살 정도는 남겨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떼를 써서.”

“하하하.”

“뭐,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를 하긴 했습니다. 아, 금고 이야기하셨지 않습니까.”

“네.”

“박 부장이 남아서 모두 정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이코의 말에 한성희가 다시 귀를 쫑긋거렸다. 제이코는 그런 한성희의 모습에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한성희 씨.”

“네.”

“그냥 그렇구나 하세요. 매번 그렇게 귀를 쫑긋거렸다간 당나귀 귀가 될 겁니다.”

“그냥.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서요.”

한성희는 딱히 훔쳐 들을 생각은 아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보스.”

“네. 제이코.”

“엘리스 어떻게 한 겁니까?”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스 옆에 있은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제가 알던 엘리스가 아니더군요.”

“제이코.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거든요.”

“그런가요.”

제이코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른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럼 다음 계획을 이야기해 볼까요?”

제이코 입에서 ‘다음 계획’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단숨에 집중됐다.

“다음이랄게 있나요.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내가 별거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제이코는 ‘그럴 리가요’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땅이 좀 필요하긴 한데.”

내가 땅 이야기를 꺼내자, 한성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부동산 투자인가요?”

“네? 투자는 무슨.”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성희를 바라봤다.

“아, 미안해요. 부동산에 목멜 이유가 없죠.”

주몽의 자산규모를 잠시 망각했다는 듯 한성희가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내가 방송에 나가서 했던 말 있잖아요.”

“방송에서라면, 이공계 투자?”

“네. 그 약속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공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땅과 토목이라.”

한성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중근 회장이 슬며시 자리를 이동했다.

“총 회장님. 우리 진영그룹에 쓸만한 땅이 많습니다. 거기다 능력 있는 건설사도 가지고 있고 말입니다.”

한중근의 말에 정진호와 천기득이 ‘허허. 저 친구’하는 표정이 됐다.

“땅은 나도 있습니다. 건설 회사도 진영보다 더 크고 도급 순위도 높죠.”

정진호도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요청 아닌 요청에 나는 살짝 미안한 표정이 됐다.

“미안해서 어쩌죠?”

“네?”

“기업에 있는 땅은 건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따지고 보면 총 회장님 재산이나 다름없는데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땅은 효용 가치가 높은 기업 소유의 땅이 아닙니다. 그 땅들은 기업 가치를 위해 쓰여야죠.”

내 말에 천기득이 관심을 보였다.

“지방 정권에 손을 내밀어 볼 생각입니다.”

“지방 정권이요?”

한성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 수도권이나 신도시 쪽은 피하고 싶거든요.”

“우리 총 회장님이 정치 쪽에도 고삐를 채우시려는 모양이군.”

천기득은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며 웃음을 보였다.

천기득의 말에 정진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치 쪽에 고삐를 채우려면 여의도로 가야지 왜 지방 정권에 손을 내민단 말인가.

“하하. 고삐를 채운다니요. 그럴 생각도 없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천기득의 말에 헛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천기득의 생각은 달랐다.

“지방 자치단체가 가장 목메는 게 투자유치입니다. 고 대표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투자금만 10조. 그 돈 일부를 자신들 지역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흐음.”

“그렇지. 10조 투자유치라면 내가 시장이라도 발 벗고 나서겠네.”

“생산시설은 아니지만, 적잖게 인구 유입이 발생할 것이고.”

“공사비로 투자되는 돈은 지역 경제에 바로 영향을 미치겠지.”

“지방 수령들이 더 좋은 조건을 내세우려고 경쟁을 하게 생겼군.”

천기득의 말에 정진호와 한중근이 연신 말을 주고받았다.

“고삐가 별거겠습니까. 그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뭔가’를 쥐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같을 겁니다.”

천기득의 말에 제이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한국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다. 20개국 모든 나라에 100억 달러의 투자금이 예치되어 있다.

이공계 연구 및 스타트업 지원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를 한 상태니 그게 누구라도 자신들 지역에 투자유치를 하려 들 것이다.

“계획을 세워야겠군요.”

제이코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우리가 계획을 왜 세웁니까. 계획을 세워서 가져오라고 해야죠. 안 그래도 인력이 달리는데 그 작업까지 하려면…… 어휴.”

내가 어깨를 떨며 진저리치자, 제이코 역시 ‘그렇군요. 일에 치여 죽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만 하려 해도 몇 날을 세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프레임만 짜서 던져주고 안에 뭘 넣을지. 어떻게 넣을지는 시, 도에 맡겨보도록 하죠.”

“공무원들이 제대로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한중근은 살짝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무원이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를 그곳에 불러들이기 위해 어떤 혜택을 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들 말입니다.”

“아아. 그런 부분이라면.”

“우리가 먼저 혜택을 요구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들이 주겠다고 하는 건 문제 될 게 없지 않겠습니까.”

“푸하하하하.”

내 말에 정진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완전히 반대로 접근을 하는군요. 우리는 청사진을 들고 찾아가 설득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정진호의 말에 한중근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자신들은 언제나 먼저 고민하고 조건을 만들어 협상에 나서야 했는데,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런 부분까지 고민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저쪽에서 제발 자신들 땅에 들어오라고 부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 국장님.”

“네. 대표님.”

“특종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뉴스거리는 되죠?”

“물론이죠. 전국 지자체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는데요. 가이드 라인만 만들어주세요. 어차피 투자 관련 방송도 제가 했으니, 이슈를 만드는 것도 제가 해야죠.”

“네. 준비되면 알려드리죠.”

나는 천기득과 정진호, 한중근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 기업 모두 건설 회사를 가지고 있으니. 공사는 문제 될 게 없겠죠?”

“이를 말입니까. 공사비 떼일 일도 없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죠. 언제든 신호만 주십시오.”

한중근의 말에 천기득이 한마디 보탰다.

“강태공 작전이군요.”

“강태공이요?”

“네. 10조라는 떡밥과 가이드 라인이라는 낚싯바늘을 던져 놓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말입니다.”

“잔챙이가 됐든 대어가 됐든 걸려들 수밖에 없군요.”

한중근은 벌써 기대가 된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몇 곳이나 공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장 취임 후 자신의 첫 성과가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강태공 작전이라. 네. 이번 작전은 그렇게 정하겠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내 쪽으로 시선을 맞췄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이번 작전은 강태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천 실장님이 지어주셨지 않습니까. 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앞서 벌였던 작전도 이름이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아, 그거요. 그냥 평범하게 지었었죠. 별거 아닙니다.”

“저도 궁금한데요.”

한성희가 슬쩍 끼어들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먼 훗날이라도 이야기를 공개할 날이 온다면. 제목을 짓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격 X맨 작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나 혼자 생각이지만.”

다들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X맨이었다는 말이군요.”

“네. 같은 편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있지만, 사실은 폭탄을 끌어안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X맨이라고 했습니다.”

내 말에 다들 킥킥킥 웃음을 흘렸다.

“크하하하.”

“껄껄껄걸.”

“아니, 왜들 웃는 겁니까?”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한성희가 대신 대답을 했다.

“작전명을 너무 잘 지었다는 뜻입니다.”

“X와이프와 비슷한 의미인 듯 싶은데.”

제이코가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냐는 듯 질문을 했다. 제이코의 말에 한성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국에선 감춰진 배신자를 뜻하지만, 속뜻은 다르지 않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사주 일가와 이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니, X란 단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네요.”

한성희의 설명에 제이코 역시 웃음을 보였다.

“어떤 이름보다 잘 어울리는 작전명이군요.”

일이 잘 끝나서 마냥 칭찬하는 건지, 아니면 작전명이 어찌 됐든 이젠 상관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제이코를 바라봤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닙니다. 맞습니다.”

제이코가 정말이라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이렇게 웃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잘 끝난 작전이니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자자, 한잔하시죠. X맨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기념으로.”

제이코가 잔을 들어 올리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잔을 들어 올렸다.

“X맨을 위하여!”

“위하여!”

“강태공을 위하여!”

“위하여!”

변두리 일식집에서 열린 축하 파티는 두 시간 정도를 더 이어가다 마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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