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66화 (67/224)

066장. 두루치기 회식 - 3

박산호의 말에 기가 막혔는지, 김한올이 목메는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방송국을 강탈하려고!”

“워워. 말씀이 심하십니다. 강탈이라뇨. 보다시피 회장님이 담보로 내놓은 주식은 우리 손에 들어와 있습니다. 방송국뿐만이 아닙니다. ST 미디어 계열사들 지분도 담보로 잡아 놓으셨더군요.”

박산호는 방송국을 담보로 잡은 서류 외에도 계열사 지분이 잡혀 있는 서류도 추가로 내놓았다.

“…….”

“솔직히 제 맘 같아선 이대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기다리고 싶습니다. 빌린 돈이 만만치 않으신데, 당장 갚을 여력을 없으실 테고. 그렇다고 다시 빚을 내자니 그땐 명동 사채를 찾아야 할 텐데. 아시잖아요. 명동에 발 잘못들이면 발모가지 날아간다는 거.”

박산호는 서류를 탁탁 두들기며 다시 말을 이었다.

“ST 미디어까지 다 날려 먹어야 정신을 차리시겠다면야. 저야 환영이죠. 방송국뿐 아니라 제작사, 기획사, 기타 등등까지 모두 집어삼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기 이보시게.”

“한국 지부장 박산호 입니다만.”

“아, 그래. 박산호 지부장. 그러지 말고 우리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겠소.”

“건설적이라면…… 어떤.”

“방송국이란 게 그냥 가지고 있다고 해서 돌아가는 게 아니지 않소. 경영은 물론 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필요하고…….”

박산호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내키는 제안이 아니군요.”

“그럼 우리 ST 미디어에 투자하면 어떻겠소.”

“투자요?”

“그래. 투자. ST 미디어가 다른 기업들처럼 제조업이나 공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간 만들어온 음악과 드라마, 영화 또 그 이상의 콘텐츠가 수없이 많소. 그걸 공유할 기회를 드리겠다는 거요.”

박산호는 제이코에게 김 회장의 말을 전했다. 나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코는 비릿한 미소를 지을 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럼 이건 어떻겠소. 이번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준다면…….”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다 잡은 물고기에게 밥을 주다뇨.”

박산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러면.”

“우리 고문 변호사께선 복잡한 게 싫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손에 넣은 지분만큼 깔끔하게 방송국을 넘겨달라고 하십니다.”

“방송국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제작사나 콘텐츠 문제는 이 자리에서 나눌 얘기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아, 답답하네!”

김한올 회장은 가슴을 탁탁 내리치더니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도 내키지 않는 제안이라면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김한올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더니 제이코와 박산호를 바라봤다.

“GO 컴퍼니 산하로 받아주시오.”

“네?”

박산호도 이번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살짝 놀란 표정이 됐다.

“어설프게 지분을 챙겨가봤자, 방송국이 됐든 다른 계열사가 됐든 원하는 대로 운영이 되지 않을 것이오. 이쪽 바닥은 돈만 있다고 해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거든.”

박산호의 설명을 들은 제이코가 이번엔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김한올을 바라봤다. 꿈쩍도 하지 않던 제이코가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김한올은 사력을 다해 방송, 연예계 쪽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른 기업들은 공장과 함께 인력도 함께 받아 낼 수가 있지만, 이쪽 분야는 사람 중심의 산업이니 언제든 다른 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이 말이군요.”

“그렇지!”

김한올은 이제야 말이 통한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 회장님은 이 분야에 전문가고 탄탄한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말이!”

김한올이 빙고를 외쳤다.

박산호는 제이코에게 김한올 회장의 말을 전했다.

“박 부장.”

“네. 고문님.”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도 이쪽 분야는 잘 몰라.”

“그거야 저도 그렇습니다만…….”

“저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음…….”

박산호는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이 됐다. 김한올 말대로 그가 이쪽 세계의 전문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사업을 키우고 운영해 오면서 보였던 양아치 같은 짓들을 생각하면 고개를 흔들고 싶다.

박산호의 설명을 들은 제이코는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보스. 제이콥니다.”

― 모두 조용. 제이코 전홥니다. 한 국장! 조용히 좀!

“…….”

― 아. 미안해요. 여기 분위가 좀 그래서.

“아닙니다.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 네. 얼마든지.

“김한올 회장이 ST 미디어 그룹을 GO 컴퍼니 산하에 받아 달라고 합니다.”

―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랍니까? 방송국 하나면 된다고 하세요.

“저 역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제이코는 이곳에서 있었던 대화를 빠르게 전달했다.

― 그러니까. 경영권을 보장해 달라 이런 말이군요.

“네.”

― 그런데 그거 알아요?

“어떤…….”

― 그 사람 나를 만나러 나와서는 GHB를 먹이려 했던 사람입니다. 내 이름이 라벨로 찍힌 포르노 DVD를 갖고 싶어 하더라고요.

“네? 그게 무슨!”

― 아마, 그 사람 집이 됐든 사무실이 됐든. 금고를 열어보면 돈보다 자체 제작한 포르노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보스.”

― 네.

“전권을 주시겠습니까?”

― 하하. 그렇게 하세요. 아, 진짜. 한 국장님! 미안해요. 제이코.

“아닙니다. 그렇게 알고 끊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제이코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박 부장.”

“네. 고문님.”

“돌아갑시다.”

“네?”

“저 사람. 보스의 포르노를 찍으려고 했다던데. 알고 있습니까?”

“아…….”

박산호는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이런 협상을 해요?”

제이코가 잔뜩 화난 얼굴로 책망을 했다.

“죄송합니다.”

제이코가 화를 내며 일어서자, 김 회장은 당황한 표정이 됐다.

“아니 왜…….”

“박 부장. 내 말 똑똑히 전해요.”

“네. 고문님.”

“한국에 없다면 미국에서 미국에 없다면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이쪽 분야의 전문가를 데려오겠다. 그러니 당신은 필요 없다! 감옥에 갈 준비나 해.”

박산호는 빠르게 제이코의 말을 전했다.

“가지.”

“네. 고문님.”

“자…… 잠깐!”

대화가 잘 풀려간다 싶었는데, 난데없이 감옥이나 가라니. 김한올은 박산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가면 나는 어쩌라고!”

“그걸 왜 나에게 묻습니까. 본인이 알아서 해야죠.”

박산호는 신경질적으로 옷을 털어내더니 제이코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 저희 고문님 말씀이. 돈거래 내역이 적힌 서류는 검찰로 보내시겠답니다.”

“뭐얏!”

김한올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쫓아 나갔다.

이 나이에 돈도 없이 지분도 다 털린 채 잡혀갔다간 제명에 죽지도 못할 것이다.

그동안 자신에게 당했던 인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잠깐! 잠깐만!”

“왓!”

제이코가 미간을 찌푸리며 김한올을 내려다봤다.

“머…… 사…… 정도는.”

“왓?”

“에이 진짜.”

김한올 회장이 신경질 섞인 목소릴 내자, 제이코와 박산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하지만 뒤이어 흘러나온 말은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예상을 깨 버렸다.

“그래도…… 먹고 살 정도는 남겨줄 거지? 그렇잖아. 지분이고 뭐고 다 털어가면 나는 빚만 남게 되는데. 최소한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하는 거잖아.”

박산호의 통역을 전달받은 제이코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 부장.”

“네. 고문님.”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지? 아, 혹시 한국에서는 M&A를 하면서 먹고 살 만큼 챙겨주는 전통이라도 있는 건가?”

“그럴 리가요.”

박산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제이코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시끄러운 것보단 조용히 정리하는 게 좋겠지. 전해줘. 먹고 살게는 해주겠다고. 깔끔하게 모든 걸 넘겨준다면.”

“정말입니까?”

“그래. 이번 일은 전권을 부여받았으니. 내 결정이 보스 결정이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어.”

“그렇게 해주신답니다. 단! 지분 관계를 깔끔하게 모두 정리해주신다면 말이죠.”

“거…… 검찰과 대왕 그룹의 보복은?”

“당연히 막아 드려야죠.”

검찰과 대왕을 막아주겠다고 하자 다 죽어가던 김한올의 얼굴에 조금은 빛이 살아났다.

“들어가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까요?”

“그래. 그래야지. 임 비서. 여기 차라도 좀 내 와. 그렇게 멀거니 보고만 있지 말고.”

“네…… 회장님.”

* * *

일을 마치고 일식집으로 들어선 제이코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여자 목소리에 코끝을 찡그리더니 테이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보스. 다녀왔습니다.”

“휴우. 왔어요.”

내가 지친 표정으로 숨을 내쉬자, 제이코는 테이블 분위기를 살폈다.

다른 사람들은 딱히 문제랄 것 없이 무난하게 자리를 즐기는 것 같은데,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여자 한 명이 문제인 것 같았다.

이번 작전에서 사주 일가의 체포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낸 여자다.

“도와드릴까요?”

“제이코가요?”

나는 한성희를 힐끔 바라보며 ‘리얼리?’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널리스트 흉내를 내며 콧바람 좀 날리는 것 같은데, 저 정도는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습니다.”

“땡큐! 제이코.”

나는 곧바로 제이코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천기득 실장의 말도 대중없이 씹어대던 한성희다.

한 마디로 술 먹고 개가 된 상태인데, 그런 한 국장을 어떻게 요리하겠다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 그 여자가. 방송국을 맡을 겁니다.”

“설마요.”

제이코가 장난하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문제라도 있나요?”

“방송국을 맡는다는 건 말 그대로 경영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저널리스트에게 그런 자리를 맡겼다간 일 년도 버티지 못하고 방송국을 닫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 미안해요. 방송은 아는 게 없어서.”

“굳이 방송국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스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습니다.”

“…….”

간만이다. 조언 겸 야단을 맞는 거.

이번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동안 제이코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일 뿐 아니라 틈틈이 칭찬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다 싶은 일이 눈앞에 드러나니 곧바로 내가 아는 그 제이코로 돌아갔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설마, 이 분위기에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맘대로 사인을 한 것은 아니겠죠?”

“물론이죠. 그건 제이코와 함께 있을 때 할 일이니까요.”

“그럼 됐습니다. 일단 대화부터 나눠보죠. 어느 정도 사람인지 알아는 봐야죠.”

제이코는 들고 왔던 서류를 나에게 넘겨주더니 술잔을 들어 탁 소리 나게 테이블을 때렸다.

“누구야?”

“예의를 갖추시죠. 나는 GO 컴퍼니 법률고문을 맡은 제이코 코엔이라고 합니다.”

“에?”

“당신의 계약서를 검수하고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에에?”

“보스는 성격이 좋아서 그냥 넘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예의 없고 개념 없이 위아래 구분도 없는 짓을 반복했다간 인생이 얼마나 고달파질 수 있는지 실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

“자세부터 똑바로 하시죠. 고용계약서를 작성할 겁니다.”

“누구라고?”

한성희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제이코를 노려봤다. 마치 니가 뭔데 나타나서 분위기를 깨냐는 그런 눈빛이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하대를 받을 이유도 없고, 그런 일을 당하고도 묵묵히 참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모든 발언, 행동은 법적으로 공증을 받을 겁니다.”

“아…… 누구신지.”

“제이코 코엔. GO 컴퍼니 법률고문입니다. 컴퍼니 내의 자금과 고용계약서는 모두 제 손을 거친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아…….”

“참고로 인사권을 가진 사람은 보스이지만, 그런 보스의 결정을 한 번쯤은 손바닥 뒤집듯 밀어붙일 수 있는 힘 역시 가지고 있다는 점. 명심했으면 좋겠군요.”

“…….”

“참고로 방금 이곳에 도착하기 전, ST 미디어를 보스 자산 목록에 포함시킨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방송국이 됐든 뭐가 됐든.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면 고용계약서를 작성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고 대표가 아까 사장…….”

“구두로 진행된 사항은 도의적 책임은 있을망정. 법적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

“지금이라도 대화를 그만두고 싶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니요…….”

한성희는 언제 취기에 휘둘렸냐는 듯 반듯한 자세가 됐다.

한쪽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이익현 차장과 정진호, 한중근이 살짝 놀란 표정이 됐다.

그렇게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여자가 제이코의 말엔 제대로 반응을 했기 때문이다.

천기득이 담담함 목소리로 등장인물의 정체를 알려줬다.

“제이코 코엔. 미국에 있는 에이스 로펌의 대표이면서 고주몽 대표의 자문, 교육, 법률책임자이고 수백조가 넘는 현금 자산의 금고지기. 그리고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고 대표의 결정이라도 해도 한 번쯤은 뒤집을 수 있는 최측근 권력자라고 보면 되네.”

“…….”

“처음 이 일을 진행할 때 고 대표가 처음 한 일이 뭔지 아나?”

“글쎄요…….”

“제이코 코엔. 저 사람의 전화번호를 주더군. 통화부터 하라고.”

“그렇다면 형님은 직접 겪어보셨다는 말인데, 어떤 사람이던가요?”

정진호가 궁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멋진 친구더군.”

“멋진 친구요?”

“미국에서 자신의 로펌을 가질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왜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로망을 품고 있다고나 할까.”

“야망이 아니고 로망입니까?”

한중근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제이코를 바라봤다.

“지금 시대가 아니라, 고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건국 재상과 같은 인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군.”

천기득의 설명에 세 남자가 ‘오……’ 하는 소리를 냈다.

야망이 아니라 로망이라는 단어를 끌어온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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