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65화 (66/224)

065장. 두루치기 회식 - 2

“이번 일을 추진하면서 요구한 사항은 두 가지네.”

천기득의 말에 이익현 차장도 호기심을 보였다.

“첫째. 사주 일가와 같은 비리, 범죄를 저지르지 말 것.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리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두 번째는요?”

“돈이 필요하면 다른 데 가서 말하지 말고 총 회장에게 먼저 이야기를 할 것.”

천기득의 말에 한성희는 ‘이게 지금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이 됐다.

“그게 전부란 말인가요?”

“그렇네. 이 두 가지만 지킨다면 경영권 보장을 약속했지.”

“잠깐만요. 경영권 보장이요?”

한성희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한 국장 생각이 맞네. 대왕 그룹과 선진그룹 그리고 진영그룹의 지주회사는 모두 고 대표 소유가 됐네. 우리가 그를 총 회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일세.”

천기득의 말에 정진호와 한중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희는 물론이고 이익현 차장도 그건 미처 몰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왕 그룹만 해도 대한민국 재개 1위의 대기업이다.

그런데 8위와 13위에 랭크된 선진과 진영까지 그의 손에 들어갔다면 대한민국에선 그야말로 정점에 선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조만간 JTB 방송도 총 회장 손에 들어갈걸세.”

“바…… 방송국까지? 아니 어떻게.”

한성희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천기득과 나를 번갈아 봤다.

“한 국장이 이 자리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은.”

“…….”

“나와 같은 조건으로 사장 자리를 제의하기 위해서겠지. 안 그러신가? 총 회장.”

“그 총회장이라는 호칭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들을 때마다 불편해서 죽을 것 같은데. 그냥 평소대로 고 대표로 불러주시죠.”

“뭐. 그거야 밖에선 당연히 그렇게 불러야겠지. 다른 사람들 보기엔 나나 여기 이 친구들이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자리를 빼앗은 것으로 일단락될 테니까.”

한성희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을 들었다는 듯 한동안 넋이 나간 표정이 됐다.

방송국이나 사장 제의는 둘째 치더라도 대기업 세 곳이 한 사람 손에 들어갔다는 건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한성희는 한중근 앞에 놓인 로열 셜롯을 잡아 들더니 빈 컵에 촬촬촬 술을 부었다.

벌컥. 벌컥!

이번에도 거침없이 술 컵을 비워낸 한성희가 입을 쓱 닦고 반쯤 식어버린 두루치기를 입에 밀어 넣었다.

“방송국. 진짜 나 줄 겁니까?”

와, 이 여자 태세 전환하는 것 봐라. 조금 전까지 개새끼, 소새끼 해가며 이민 가면 그만이라더니.

“아니요.”

“아니 왜?”

“주는 건 아니고. 사장 자리만 제의하는 겁니다.”

“아…… 그렇지.”

한성희는 잠시 헷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내 잔에 공손히 술을 따랐다.

“두 가지 조건만 지키면 되는 거죠?”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할게요. 사장.”

“지금은 고민 중입니다.”

“아 왜!”

“한 국장님 같으면 한 국장님에게 방송국 맡기고 싶겠어요? 뭔 일만 있으면 쫓아와서 내 멱살을 잡고 흔들 것 같은데.”

“어…….”

한성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래서 조건을 추가해야겠습니다.”

“일단 들어는 보죠.”

이 아줌마가. 들어는 보는 게 아니고, 당연히 들어야 하는 거라고!

“광고는 여기 있는 기업들이 아쉽지 않게 밀어 줄 겁니다.”

“그건 나쁘지 않지만, 그 광고로 입막음하는 거라면…….”

한성희가 그건 곤란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저기. 한 국장님? 뭔가 헷갈리시는 것 같은데. 나는 제의를 하는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면 사장! 싫으면 이민 가시는 겁니다. 정신 차리세요!”

“…….”

이민 이야기를 꺼내 들자 한성희가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한국에 있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니 나를 찾지 말아요.”

“네?”

한성희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키웠다.

“필요한 게 있으면 천 실장님이나 여기 계시는 세 분을 통해 요청하세요. 나는 그 어떤 요구에도 응할 생각이 없으니.”

“저기……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한성희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건 오히려 자신이 해야 맞는 말 아닌가 말이다.

방송국을 소유했다는 핑계로 툭하면 나타나 이것저것 간섭을 하고 지시를 내리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니 이게 무슨 소린지 싶다.

“패기도 있고, 능력도 있고. 다 좋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다신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

“할 겁니까?”

“…….”

“말 겁니까?”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네. 그러시죠.”

“내가 불편하세요?”

“아니요.”

“그럼 왜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하는 거죠?”

“올해 구설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말 많고 고집 센 여자는 최대한 피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방송이나 언론. 이런 거 알지도 못합니다. 어설프게 끼어들어 머리 아프고 싶지 않군요.”

“그러니까. 소유는 하되, 간섭이나 지시는 하지 않겠다는 거네요.”

“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 한 국장님도 내 인생에 끼어들 생각하지 마시고. 방송일이나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한성희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럴 거면 방송국은 뭐하러 접수를 한 거죠?”

“아직 손에 넣지는 못했습니다만.”

“뭐. 아무튼.”

“약속 지키는 겁니다. 책임지겠다는.”

“아…….”

“그러니까. 술 좀 좋게 마셔요. 욕도 그만하고. 고막 나가는지 알았네.”

사주의 간섭이 없는 방송만을 위한 방송국. 그간 꿈꿔왔던 환경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오케이. 받아들이죠.”

“자자, 두 사람 이야기는 그쯤 했으면 된 것 같고. 이 차장?”

천기득이 분위기를 정리하더니 이익현 차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실장…… 회장님.”

“그냥 실장이라고 하게.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하하. 네. 말씀하시죠.”

“검찰 쪽 분위기는 어떤가?”

“증거가 명확하니 위쪽에서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편하게 말하게.”

“대한민국에서 재벌을 법대로 처벌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로라하는 법무법인이 인맥을 동원하고 권력자들에게 선을 대기 시작하면 만만치 않은 싸움이 이어질 겁니다.”

이익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도움을 주려고 하네.”

“도움이요?”

천기득과 정진호, 한중근이 전해준 금융자료들만 하더라도 엄청난 자료다. 그런데 여기서 또 도움을 준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졌다.

“그 많은 비자금이 어디서 나왔을 것 같은가?”

“그거야 당연히 회사에서 빼돌렸거나, 세금을 포탈했겠죠.”

“맞네. 그래서 횡령으로 고소를 할 생각이네.”

“그룹에서 말입니까?”

이익현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네. 조만간 사주 일가는 모든 자리에서 쫓겨날 걸세. 사주가 그들의 횡령 사실에 분노해 인사권을 휘두를 예정이니까.”

“아…….”

이익현과 한성희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네. 다 자를 겁니다. 빼돌린 돈도 모두 되돌려 받을 거고. 그러자면 지금 가지고 있는 지분은 물론이고 개인 자산들까지 모두 압류절차에 들어가겠죠. 훔쳐 간 돈을 돌려받기 전까진 재산권에 쇠고랑을 채워놔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법무법인 불러오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갈 텐데. 땡전 한 푼 없는 그들이 무슨 수로 그들을 고용할지 궁금해지는군요.”

“깔깔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성희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을 처벌하려면 돈과 기업, 인사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걸 두고 한 말이었군요.”

“네. 그 힘을 빼앗지 못한다면 결국 벌금이나 내고 끝나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 벌금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상태가 되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죠. 더는 재벌이라는 말은 쓸 수 없게 될 테니까.”

“지금 이거 특종 주는 거 맞죠?”

한성희는 이 와중에도 특종 운운했다.

“이익현 차장님과 한성희 국장을 오늘 이 자리에 부른 것은 바로 그 사안을 조절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말에 한성희가 시큰둥한 표정이 됐다.

“뭐야.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시작부터 청탁입니까?”

“싫으면 가세요. 특종은 다른 방송국에 주면 그만이니까.”

나 역시 시큰둥한 표정으로 한성희를 바라봤다.

“누가 싫다고 했나.”

“나도 강요한 적 없다고 말한 겁니다. 싫든 좋든. 당신 선택이니까.”

“방송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성희가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땐 어땠기에 그럽니까?”

“이렇게 야무지고 똑똑한지는 미처 몰랐거든요.”

그러니까. 그때는 야무지지도 똑똑하지도 않게 보였다는 말인가?

“뭐랄까. 돈벼락은 맞았지만, 어딘지 어설픈 공상가? 뭐 그런 느낌?”

한성희의 말에 천기득이 크큭 웃음을 보였다.

“이번 일을 설계한 사람도. 운영한 사람도 고 대표. 총 회장님일세. 장기 말은 한 국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였다고 봐야지.”

한성희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천 실장님이 아니라…… 고 대표가 설계했다고요?”

한성희의 말에 천 실장은 물론이고 정진호와 한중근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총 회장님이 돈만 댔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군. 한 국장. 우리 총 회장님 어설프게 봤다간 캐나다가 아니라 우간다에 이민 가는 수가 있어.”

한중근은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한성희 귀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과거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들을 휘하에 둔 고주몽이다.

그가 진짜로 독한 마음을 먹고 일을 추진한다면 버텨낼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 * *

대왕 그룹 비자금 사태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전염병이라도 된 양, 다른 그룹들로 퍼져나갔다. 얼굴 한 번 볼일 없는 사장, 회장들이 검찰청을 들락거렸고 그럴 때마다 방송과 뉴스 미디어는 쉼 없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번 사건을 진두지휘한 특수부와 담당 검사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특종을 터트린 한성희 국장은 미디어 스타로 지면을 장식했다.

어디에서나 웃는 이가 있다면 우는 이도 존재하는 법.

ST 미디어 김한올 회장은 며칠 새 볼이 홀쭉해졌다. 비자금 명단이 검찰 손에 넘어갔다는 말에 노심초사 시달린 결과다.

세상이 잠잠해질 때까지 해외로 도피라도 해 버릴까 고민했지만, 그러다 공항에서 떡하니 잡혀버리면 그보다 더한 망신도 없다.

그런 김한올의 걱정을 하는지 모르는지, 비서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회장님. 점심 식사는…….”

“됐다.”

김 회장은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손을 내 저었다.

“회장님.”

“됐다니까!”

“그…… 그게.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뭐!”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에 김한올의 얼굴이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거…… 검…….”

“GO 컴퍼니라고 하면 아신다고.”

“어디?”

“GO 컴퍼니입니다.”

검찰이 아니라는 말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GO 컴퍼니가 찾아왔다는 말에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GO 컴퍼니 누구?”

“제이코 코엔이라는 분입니다.”

고주몽이 아니라 제이코 코엔? 김한올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들어오라고 해.”

“네. 회장님.”

제이코란 이름도 그렇고 회장실에 모습을 나타낸 이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이다. 그 옆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도 한 명 동행을 하고 있었다.

“GO 컴퍼니에서 오셨다고?”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GO 컴퍼니 한국 지부장 박산호입니다. 이쪽은 GO 컴퍼니 본사 고문 변호사이시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에이스 로펌의 대표 제이코 코엔 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인지.”

“대표님께서 이 서류를 보여드리면 알 거라고 하셨습니다.”

박산호는 제이코가 건네준 서류를 김한올에게 넘겼다.

“이게 뭔데…… 응? 이…… 이게 왜.”

김한올은 깜짝 놀란 얼굴로 박산호와 제이코를 바라봤다.

“어디서 쓰시려고 그 많은 돈을 대출받으셨는진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저당 잡힌 지분의 권리가 우리에게 넘어왔지 뭡니까.”

김한올은 대왕 그룹 지주회사에 돈을 밀어 넣기 위해 자신이 가진 돈은 물론이고 방송국과 ST 미디어 계열사 지분까지 저당을 잡았었다.

이자가 높긴 하지만, 일단 지주회사 지분만 손에 넣으면 얼마든지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한올은 당혹감을 감추며 박산호를 바라봤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뇨. 당연히 돈을 갚으셔야죠.”

“아직 기간이…….”

“아, 기간 말씀입니까?”

“그렇소. 지분을 맡기고 돈을 빌린 것은 맞지만, 약속한 기한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찾아온 것은 무례한 일 아니요?”

김한올은 채무이행 날짜를 짚으며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 서류는 어떻습니까.”

제이코가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어헉!”

서류 내용을 확인한 김한올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이…… 이게 어떻게?”

서류엔 자신의 돈이 이진상에게 어떻게 흘러 들어갔고 어떤 용도로 이용될 예정이었는지 일목요연하게 기록돼 있었다.

비자금 명단이 넘어갔다고 해도 그걸 증명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렇게 자금 흐름이 기록되고 돈 주인이 누군지까지 친절히 적혀 있는 문서가 검찰에 들어가면, 그땐 때도 박도 못 하고 끌려가야 할 것이다.

“그거 구하느라 저희 대표님께서 헛돈을 많이 쓰셨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은 천 실장이 잘 챙겨서 넘겨준 서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이유는 없다.

“…….”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죠. 이 서류를 검찰에 제출하면 김한올 회장님 신세가 굉장히 난처해질 것 같은데…….”

“저기. 이건…….”

“회장님.”

“…….”

“갚지도 못할 이자와 원금을 쥐고 계시느니. 지금이라도 빨리 해결해 버리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고 대표에게 연락할 수 있게 해주게. 내가 고 대표 부탁을 들어주느라 지금 얼마나 난처한 입장에 처했는지…….”

“대왕 그룹과 선진, 진영그룹의 공격 말씀이군요.”

“…….”

“대표님 말씀이. 선택을 잘하시면 그것도 막아주시겠다고 합니다.”

“선택이라면…….”

김한올이 불안한 눈빛으로 박산호를 바라봤다.

“이 자리에서 돈을 당장 갚던지. 아니면 방송국이라도 내놓으셔야죠. 왜 그렇게 눈치가 없으실까요.”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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