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64화 (65/224)

064장. 두루치기 회식 - 1

변두리 허름한 일식집.

‘CLOSE’ 팻말이 걸린 이곳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체포된 사주 일가를 대신해 대왕 그룹을 총괄 지휘 중인 천기득을 비롯해 진영그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한중근, 선진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른 정진호.

미디어 스타로 떠오른 한성희 국장과 비자금 사건을 수사 지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차장 이익현까지.

이번 사건을 주도한 실무진들이 얼굴을 맞댔다.

천기득과 한중근, 정진호야 설계 단계부터 발을 담갔기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지만, 차장 검사 이익현과 JTB 한성희 국장은 서로 이름만 들었을 뿐 얼굴을 마주하기는 처음이었다.

한성희는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였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 차장님. 이번에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선진그룹의 새로운 회장 정진호가 이익현 차장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회장님들 덕분에 스타가 되었지 않습니까. 제가 감사 인사를 드려야죠.”

실질적으로 회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정진호 한 명뿐이지만, 이익현은 세 사람 모두를 회장이라 칭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천기득이 한성희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성희 국장. 오랜만입니다. 십 년 정도 됐죠?”

“네? 아. 네.”

“많이 놀랐나 보군요.”

“하하. 네. 솔직히 좀 그렇습니다. 간단히 식사나 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랄 분들을 뵙게 되었네요.”

한성희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 차장님도 큰일을 했지만, 한성희 국장의 도움도 잊지 않겠습니다.”

“도움이요?”

한성희는 이게 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대충 눈치를 채신 것 같은데. 모른 척하실 필요 있습니까.”

한중근 비상대책 위원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성희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는 말씀인가요?”

한성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보다시피.”

한중근은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희가 이걸 믿어야 해. 말아야 해. 하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는데, 이익현 차장이 입을 열었다.

“총 회장님은 늦으시나 봅니다.”

“그럴 리가 있나. 이미 오셨네.”

한성희는 총 회장이라는 처음 듣는 호칭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고, 이익현 차장이 좌우로 고개를 돌려 식당 내부를 둘러봤다.

“이미 오셨다고요?”

이익현 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저기 주방에 계시지 않나.”

천기득 대신 정진호가 웃음기 섞인 얼굴로 대답을 했다. 정진호의 말이 신호가 됐는지, 열심히 칼질하고 뭔가를 만들던 주방장이 냄비를 들고 좌석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두루치기입니다.”

이번에도 일식집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지만, 천기득은 물론이고 정진호와 한중근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대접해야 하는데, 매번 얻어먹기만 해서 어쩌죠.”

“에이. 우리 사이에 대접씩이나. 집에서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주셨는데, 이게 기가 막히게 익었더라고요. 찌개를 끓일까 하다가 안주로 먹기엔 두루치기가 낫겠다 싶어서 한번 해 봤습니다.”

하하 웃음을 보이며 냄비를 내려놓자, 흑인 한 명이 의자를 가지고 왔다.

“땡큐.”

“아닙니다. 보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흑인 사내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더니 또 금세 모습을 감춰버렸다.

“이익현 차장님은 오늘 처음 보는 거죠?”

“네. 실장님에게 말씀만 전해 들었었습니다. 이익현입니다.”

“고주몽입니다. 이번 일에 도움을 주신 점 잊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어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손도 못 대고 있었습니다. 총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앞으로 좋은 관계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이익현과 악수를 한 나는 한성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왜 그렇습니까?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지…… 지금. 이게.”

“알면서 꼭 그렇게 물으시더라. 머리 좋으신 분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번 비자금 사태가…… 반란…….”

“에헤이. 좋은 말 놔두고 반란이 뭡니까. 혁명이라고 합시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아무튼, 그러니까…….”

“네. 여기 계시는 분들과 손잡고 한탕 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성희는 ‘흐으……’하며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

“자자. 음식 앞에 두고 제사 지낼 일 있습니까. 일단 한 잔씩 하고 그다음에 이야기를 나누죠.”

일단 먹고 놀자는 내 말에 정진호 회장이 의자 밑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한산 곡주라고. 전통주인데 이게 꽤 마실만 해서 한 병 가져왔습니다.”

“저도 한 병 가져왔습니다. 로열 셜롯으로.”

한중근도 의자 밑에서 술병을 들어 올렸다.

“이 사람들이 빈손으로 온 나는 어쩌라고.”

천기득이 이거 반칙 아니냐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실장님이 빈손이요? 에이. 우리가 애도 아니고 그 말에 속을 것 같습니까. 빨리 꺼내 보시죠.”

“크흠. 나는 그냥…… 소주 가져왔네. 그렇게 비싼 술은 입에 맞질 않아.”

천기득은 자신의 말처럼 평범한 소주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런데 병 크기는 절대 평범하지가 않았다. 예전 말로 됫병이라 부르는 사이즈의 빨간 뚜껑 페트병 소주를 턱 하니 내놓은 것이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주가 뭡니까?”

“소주가 뭐가 어때서. 공사판에서 처음 구를 때부터 지금의 대왕이 되기까지 나는 소주만 마셨어.”

“어이쿠. 죄송합니다. 그걸 제가 깜빡했네요.”

“자네야말로 두루치기에 양주가 뭔가?”

“이거 왜 이러십니까. 두루치기가 얼마나 고급 안주인데. 이 정도는 되어야 합이 맞는 겁니다.”

천기득과 정진호가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오라는 연락만 받아놔서…….”

이익현 차장이 어정쩡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이 차장과 한 국장은 손님 아닌가. 신경 쓰지 말고 한 잔들 하세.”

천기득이 소주병을 들어 각각 잔을 채웠다.

이렇다 할 건배 제의나 축하의 말도 없이 여섯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과 두루치기를 먹어치웠다.

한성희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선뜻 나서기 난처했는지 조용히 술잔만 기울였다.

그렇게 술병이 비어가고 안주가 바닥 날쯤, 한성희가 살짝 혀 꼬인 말투로 한탄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이런 건지도 모르고…… 그냥 좋다고 마이크 들고 미친년처럼 뛰었네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한성희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는요. 나도 모르게 재벌가 집안싸움에 이용을 당했다는 거죠.”

“흠.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간 있었던 사정을 짧게라도 설명을 하려는데, 한성희는 그새를 못 참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느끼는 게 사실인 거죠!”

나는 한성희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한 국장님이 화를 낼 일입니까?”

“그러면 박수를 칠까요?”

“박수 치지 못할 일은 또 뭡니까?”

“허!”

한성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익현 차장이 나와 한성희의 대화에 잠시 눈치를 봤지만, 천기득과 다른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잔을 나눴다.

이익현 차장이 조심스럽게 한중근에게 말을 건넸다.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총 회장님을?”

“아니요. 한 국장 말입니다. 저러다 총 회장님께 실수라도 하면…….”

“이 차장. 술자리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 뭔지 압니까?”

“네?”

“남의 싸움에 끼어드는 겁니다.”

이게 왜 남의 싸움이란 말인가. 한성희가 밖으로 달려나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기라도 하는 날엔 또다시 세상이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술이나 마십시다.”

“아니. 그래도…….”

이익현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이번엔 천기득까지 나서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두시게. 서운해서 그러는 것 같으니.”

“서운하다뇨. 이번 일로 한 국장은 보도 분야의 스타가 됐지 않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네만. 총 회장님 덕분에 한 달 가까이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방송 쪽엔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이익현이기에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한성희가 어떤 상태였는지 아는 바가 없다.

“그러니까. 저쪽은 신경 쓰지 말고 술이나 마시게.”

“네. 실장님.”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이익현이었지만, 일단 지켜보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바보들도 아니고 한성희가 사고를 친다고 해서 그걸 가만히 지켜볼 사람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나에게 접근을 하신 건가요?”

“아까부터 단어 선택이 좀 그렇습니다.”

“아니란 말인가요?”

“당연히 아니죠.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데, 굳이 한 국장님을 이용할 이유가 있습니까? 누가 됐든 간에 얼씨구나 하고 받아먹었을 아이템인데.”

“훗.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시네요. 다른 사람들이 이걸 냉큼 받아 챙겼을 거라고요?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대왕 그룹을 건드립니까.”

“한 국장님은 하셨지 않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나니까 할 수 있는 거고요.”

“이거. 다른 언론인들이 들으면 바로 한소리 할 것 같은데요.”

“언론인은 무슨. 받아쓰기나 하고 클릭 수나 팔아먹는 놈들을.”

한성희는 소주잔으론 성에 안 차는지, 물컵을 가져와 술을 따랐다. 40도 가까이 되는 한산 곡주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쿠아!’하는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놨다.

“내가 무슨 생각까지 한지 알아요?”

“무슨 생각까지 하셨기에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요?”

“한국에서…….”

“네?”

“한국에서 살 생각을 포기했다고요! 이번 일 준비하면서 캐나다 이민까지 알아봤는데. 그런데!”

이민까지 생각하고 일에 동참했다는 말에 살짝 놀라는 마음이 됐다.

“그 정도였습니까?”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압박이 심할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내 말이! 압박이 얼마나 심했는데! 회장은 날 자르지 못해 안달이지. 사장은 틈만 나면 찾아와서 개지랄이지. 방송국 창고까지 밀려나서 청소부나 다름없는 신세로 한 달을 보냈다고요!”

“하하…… 하.”

“내가 오죽했으면 이민까지 고민했을까!”

한성희는 그렁대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내가 기자 정신을 가지고 쫓겨날 각오로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이 모든 게 재벌들 재산 싸움에 장기 말로 쓰인 것뿐이었다니!”

한성희는 컵을 쥔 손을 부르르 떨어댔다. 여기서 더 흥분하면 컵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질 분위기다.

“전쟁터를 뛰어다니다 폭탄 파편에 맞아 어깨가 날아갈 뻔하고, 공장 오수에 혀를 담갔다가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어도! 내가 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고 또 모두가 알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

“그랬던 난데. 이게 뭐냐고!”

한성희는 뭐가 그리도 원통한지 결국 눈물까지 내비쳤다.

아무래도 실컷 이용만 당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당신이 나 책임진다며! 그런데 그래놓고 한 달 내내 연락 한 번 안 하더니. 이런 일에 끌어들여? 돈도 억수로 많은 놈이 도대체 뭘 더 뜯어 먹겠다고!”

술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는지, 한성희는 쌍욕까지 해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 끝났으니 불러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 생각이었나? 오 요요요. 잘했다. 이러면서? 내가 당신들 개야? 앙! 개냐고!”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천기득을 바라봤다.

“실장님.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크흠. 한 국장 성격 모르셨던 모양이군.”

“성격이요?”

“지금이야 많이 순해졌지만, 예전엔 내 멱살도 거침없이 잡고, 지금보다 더 찰지게 욕을 늘어놓던 여자네.”

“네?”

이게 순한 거라면 예전엔 도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거야?

“술상 엎어지기 전에 빨리 설명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기. 한 국장님.”

“뭐!”

“뭔가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일단 내 말 좀 들어보고. 그다음에 화를 내면 어떻겠습니까.”

“들어봐도 오해를 풀 수 없으면 싸대기 날려도 되냐?”

한성희는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일단 설명부터.”

“좋아. 해 봐.”

나는 그간 있었던 사정과 대왕 그룹 사주 일가의 비리, 범죄에 대해 빠르게 설명을 했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그들을 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거 한 국장님도 이해하시죠?”

“…….”

“무엇보다. 재벌이 가진 특수성. 돈과 기업. 그리고 거기에 엮여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인사권을 빼앗지 못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

“에이 씨! 때리려면 때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네. 때려. 나도 폭행으로 고소할 테니까!”

대답은 하지 않고 멀거니 노려만 보는 한성희의 태도에 나도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서요?”

“그래서 뭐요?”

“당신은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들과 다른 길을 갈 거라는 증거가 있냔 말입니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 사람만 바뀌었을 뿐 달라질 게 뭐가 있냔 말이야!”

“그건 내가 대답을 하지.”

한성희의 질문에 천기득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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