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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60화 (61/224)

060장. 대왕 그룹 상륙작전! - 2

“조용! 조용!”

천기득은 소란스러워진 회의실을 둘러보며 언성을 높였다.

“진상이가 잘못했다고 해도 지금 이 문제는 그룹 전체의 일이다. 너희들이 일개 직원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밖엔 행동을 못 하는 것이냐?”

천기득의 호통에도 다들 입을 다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문제를 일으킨 놈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적인 일을 그룹에까지 가지고 들어온 저놈이 멍청한 거죠.”

“우리가 협상을 왜 합니까? 그냥 진상이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요.”

“실장님 이건 아무리 봐도 오지랖 같은데요. 그룹 대표는 실장님이 아니잖아요. 이런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쯧. 지분 정리가 끝났다. 이거냐?’

순식간에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이다.

‘이런 놈들을 믿고 그룹을 지켜왔다니. 그간 내 인생이 정말 한심해지는구나.’

천기득은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어버렸다.

어차피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치워버릴 놈들이지만, 끝까지 쓰레기 인증을 해대니 냄새 때문에 코가 썩어버릴 것 같다.

자식들을 이따위로 키워낸 이태주 회장마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태주 형님.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룹을 끝장내고 말았을 것 같소. 그게 오늘이 됐든 아니면 내일이 됐든!’

그때 회의실 문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비서실 직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실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비서실 직원이 ‘손님’ 운운하자, 소란스럽던 회의실이 잠시 진정이 됐다.

“모셔와. 정중히.”

“네. 실장님.”

직원이 물러가자 이순영이 의아한 눈빛으로 천기득을 바라봤다.

“손님이라뇨? 오늘 이 자리에 외부인은 올 일이 없지 않나요?”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그룹을 위해서 고주몽과의 일을 좋게 마무리 짓는 게 좋다고.”

“아 진짜.”

이순희가 짜증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우리까지 모아놓고 하냔 말이죠.”

“그럼 고주몽이 주식으로 장난을 치고 대왕을 공격해도 멍청히 구경만 하겠다는 소리냐?”

천기득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주식 정리가 끝나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천기득은 천기득이다.

잠시 우쭐한 얼굴이 됐던 이씨들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천기득과 싸워봤자 득 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천기득의 행동을 ‘용서’할 생각도 없다.

아무리 잘나봐야 마름 주제에 감히 주인집을 향해 언성을 높인 건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오늘까지는 넘어가 주지.’

‘노인네. 그동안 함부로 날뛴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회장님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했지만, 오늘 이후로 그것도 끝이다.’

어려서부터 남들 위에 군림하는 법만 배워왔던 이들이기에 천기득의 존재는 그야말로 계륵이나 다름없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비서실 직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실장님. 모셔왔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네.”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자, 이씨 일족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집중됐다.

나는 회의실 안을 쓱 둘러보고 천기득에게 시선을 맞췄다.

“오라고 해서 왔는데 분위기 좀 그렇네요.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내 말에 천기득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게. 고 대표.”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안으로 발을 들이자, 나를 따라온 일행들 역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GO 컴퍼니 고문변호사 제이코와 그를 따르는 변호사 군단.

GO 컴퍼니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로버트와 그를 따르는 전직 경찰 군단.

박산호를 필두로 새롭게 꾸려진 GO 컴퍼니 비서실 직원들.

통역 및 한국 내 인맥 관리를 맡은 전직 샌프란시스코 영사 김덕영과 수행비서 겸 책임 비서직을 맡은 엘리스, 정은영이 안으로 들어섰다.

소회의실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공간이었는데, 나와 내 사람들이 들어서자 순식간에 꽉 차버렸다.

이씨 일족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올 거라곤 예상 못 했는지 다들 얼떨떨한 표정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GO 컴퍼니 대표 고주몽입니다.”

내가 의자 하나를 꿰차고 궁둥이를 붙이자, 내 뒤로 군단병들이 척척 자리를 잡았다.

“실장님. 이게 지금…….”

이광수 사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천기득을 바라봤다.

협상차 온다기에 고주몽과 변호사 한둘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협상이 틀어지면 이 자리에서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단단히 무장하고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씨 일족을 한 명씩 둘러봤다.

다들 뭐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진상의 얼굴이 가관이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내 멱살을 잡을 것 같다.

“주몽이 형.”

어쭈. 이 와중에도 사이코패스 이진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친한 척이다. 그러고 보면 이놈도 참 일관성 있다. 이젠 저게 연기인지 아니면 진짜 성격이 저런 건지 헷갈릴 정도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이연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선에게 말을 걸었다.

“아는 사이?”

“어. 잠깐 같이 일을 했었어.”

“같이?”

이연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진선이 속닥속닥 진상의 비서실에 잠시 머물렀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쳤구나.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당연히 들켰지.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거고.”

이진선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네.”

“그게 무슨 뜻일까?”

“진상이 오빠가 좀 그렇잖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인상이 그렇고.”

“관심 있으면 소개해 줄까? 저 형이 살짝 둔하긴 한데, 그래도 인성 하나는 끝내주거든. 거기다 지금은 돈도 산더미처럼 많고.”

“됐다. 소개는 무슨.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랑 싸우러 온 사람인데.”

“그래서 더 좋지 않아? 로미오와 줄리엣.”

“까불래?”

이연아는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툭 쏘아붙였다.

나는 천기득 실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협상하자고 부른 거 맞습니까? 아무리 봐도 분위기가 아닌 것 같은데.”

“서로 간에 계속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지 않나.”

“뭐, 그렇긴 합니다만.”

내가 시큰둥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대자, 이진상이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천 실장님. 협상은 무슨 놈의 협상입니까? 우리 대왕이 졸부 따위에게 손을 내밀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졸부인 건 맞는데, 그래도 대놓고 졸부라고 하면 기분이 좀 그렇지.”

“뭐야?”

“당신이 하도 진상을 피워대서 비서들이 개진상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알고 있나?”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릴…….”

“그래도 나는 이진상 상무라고 정중히 불러주고 있잖아. 대놓고 개진상이라고 하진 않는다고.”

“젊은 친구가 말이 심하군.”

“누구신지?”

“누구신지? 허허. 지금 나를 모른다고 하는 건가?”

대왕 전자 사장 이광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알아야 합니까?”

“허!”

“나는 이 방에 들어오면서 최소한 내가 누구인지는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만… 그 쪽분은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분 같군요.”

“나 전자의 이광수 사장이네.”

“아! 이광수 사장님이셨습니까?”

나는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

“나는 사장님의 젊은 친구가 아닙니다. 공적인 자리니 제 직함을 불러주셨으면 좋겠군요.”

“뭐…… 뭐야? 감히. 비서실 잡무나 담당하던 놈이 지금 누구 앞에서!”

“워워. 뭘 그렇게 흥분을 하십니까. 네. 맞습니다. 예전엔 저기 앉아 있는 이진상 상무 밑에서 개처럼 굴러다니긴 했죠.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내가 지금도 이진상 상무 아니 대왕 전자 직원입니까?”

“…….”

“그리고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 두죠. 군대에서 경례를 붙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가 가진 계급장에 붙이는 겁니다. 과거엔 내가 이등병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졸부니 뭐니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만, 액면만 놓고 이야기합시다. 솔직히 돈은 내가 이 사장님보다 많잖아요? 그러니 예의 없는 행동은 삼가셨으면 좋겠군요.”

“허!”

이광수 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저기 끄트머리에 매달려 보이지도 않던 놈이 면전에서 큰소리를 쳐 대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계속 그렇게 막 부르시던가요. 협상이니 뭐니 하자고 불러놓고 이렇게 망신 줄 생각이었는가 본데……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고 말씀드립니다.”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내는 날 보며 이씨 일족들 모두 하나같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무리 돈 좀 생겼기로서니 대왕 그룹 주인들 앞에서 저렇게 막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순희가 입을 열었다.

“천 실장님. 협상이 아니라 싸우자고 온 것 같은데. 이거 대화가 되겠어요?”

“그쪽 분은 누구십니까?”

천 실장에게 향한 성난 목소리를 내 쪽으로 잡아끌었다.

“나 대왕 백화점 이순희야.”

“아아. 대왕 백화점 사장님. 알죠. 잘 알고 있습니다.”

“나를 안다고?”

“네. 제가 비서실에 있을 때 들었던 말인데, 이순희 사장님이 그렇게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신다고.”

뜬금포처럼 날아든 아이돌 드립에 이순희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뭐얏!”

“이진상 상무님이 그러시던데. 백화점 행사에 불러다 놓고 사장실에서 쎄쎄쎄 놀이도 하고 짝짜꿍 놀이고 하고…… 뭐 그러신다고.”

이순희 사장의 치켜뜬 눈이 이진상에게 날아 꽂혔다.

“고모. 지금 누구 말을 믿는 겁니까!”

이진상이 헛소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순희의 분노는 쉬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그저 루머에 불과했다면 모를까. 아이돌 불러놓고 사장실에서 노닥거린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끽해야 말단 비서 따위가 윗사람의 은밀한 취미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누군가 함부로 입을 털어댔다는 뜻이고 지금 이 상황에선 당연히 이진상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누가 네 고모야! 더러운 새끼!”

“말씀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심하긴 뭐가 심해. 첩년 자식 주제에. 호적에 올린다고 할 때부터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이순희의 거친 언사에 이진상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올랐다.

“워워. 진정들 하시고요. 협상하자고 불러놓고 당신들끼리 싸우면 내가 민망해지지 않습니까.”

내 말에 얼굴을 붉히고 있던 이진상과 이순희 그리고 다른 일족들 역시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아무렇지도 않게 불을 싸질러 놓고 저게 할 소린가 말이다.

“협상합시다. 협상!”

나는 탁자를 탕탕 내리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까부터 협상 운운하는데, 도대체 무슨 협상을 하자는 거지?”

이광수 사장의 말에 천기득이 입을 열었다.

“대왕 그룹과 화해.”

“화해요? 지금 저놈이 하는 짓을 다 보셔놓고 그런 말씀이 나옵니까?”

이광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천기득을 바라봤다.

“그러면 그렇게 계속 집안 망신을 시키고 앉아 있던가.”

“네?”

“한심해서 그런다. 외부의 적이 나타났는데 서로 힘을 합치지는 못할망정. 남 탓이나 하며 서로를 헐뜯고 있지 않냔 말이다.”

천기득의 말에 이씨 일족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왜 이런 분위기가 됐는진 모르겠지만, 천기득 말대로 자신들끼리 물고 뜯을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이광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원하는 게 뭔가?”

“그걸 왜 나에게 묻습니까?”

“협상하고자 한다면 바라는 게 있을 게 아닌가.”

“협상 내가 하자고 한 적 없는데 말입니다. 이쪽에서 먼저 불러서 왔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나 볼 겸 일단 응했을 뿐입니다.”

“그 말은 협상에 응할 생각은 있다는 거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들어는 보죠. 나도 무작정 싸움만 하는 사람은 아니니. 적당하다 싶으면 협상에 응할 생각입니다.”

내가 협상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이광수의 시선이 천기득 쪽으로 향했다.

“고주몽 대표를 이 자리에 불렀을 땐, 뭔가 생각이 있으니 불렀겠죠?”

천기득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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