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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59화 (60/224)

059장. 대왕 그룹 상륙작전! - 1

오전 10시. 대왕 그룹 본사.

천기득 실장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비서실 소회의실에 회장 이태주를 제외한 이씨 일가 전체가 한자리에 모였다.

미소 띤 얼굴로 안부를 묻고 담소를 나누고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온갖 꿍꿍이가 가득한, 가면 쓴 얼굴들이다.

소회의실 문이 열리고 오늘 행사의 주관자 천기득 실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천기득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씨 일가의 시선이 그가 들고 있는 서류철에 집중됐다. 대왕 그룹의 모든 것이 결정될 지주회사 설립 문건이다.

“아침은 든든히 먹고들 왔나.”

천 실장의 물음에 다들 웃음 띤 얼굴로 한마디씩 했다.

“혹시, 아침 잘못 먹고 체할까 봐. 그냥 굶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절대 빠질 수 없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하하하.”

“일 끝나고 푸짐하게 먹으면 됩니다.”

천기득은 그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들고 있던 파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오늘 이후 우리 대왕은 불안전한 구조를 타파하고 하나의 대왕으로 다시 태어난다. 회장님의 서명은 어제 병원에서 받아두었으니 이제 너희들만 남은 상태다.”

이씨 일가의 눈에 빛이 번뜩이며 다들 기대감 섞인 얼굴이 됐다.

“일정은 간단하다. 한 명씩. 내 방으로 들어와 자신의 몫을 확인하고 사인을 하면 된다.”

“모두 보는 자리에서 하는 게 아니라, 한 명씩 말입니까?”

“그러게요. 그냥 이 자리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은데.”

병원재단을 맡은 이순영과 백화점을 맡은 이순희가 번거롭게 그럴 필요 있냐고 했다. 그러자 대왕 전자 사장 이광수가 모르는 소리 말라며 한소리 했다.

“너희 둘이야 출가외인이니 대충 사인만 하고 끝내도 그만이지만, 대왕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우리는 챙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조용히 하고 천 실장님 말대로 해.”

큰오빠 이광수의 말에 이순영과 이순희는 입술을 삐죽였다.

“아주 대놓고 외인 취급이네. 오빠 그러는 거 아니다. 출가외인이든 뭐든 나도 대왕 사람이야.”

“고모. 그냥 시키는 대로 해요. 일에는 순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대왕 전자 상무 이진상이 이순영에게 한마디 했다.

“어머. 애 웃기는 것 봐라. 내가 왜 네 고모냐? 족보 꼬이게.”

“그럼 누님이라고 불러드려요?”

이진상은 시큰둥한 얼굴로 ‘누님’을 들먹였다.

“쯧쯧쯧. 하여간 천한 피는 못 속인다니까.”

이순희가 언니 순영 편을 들며 이진상을 깎아내렸다.

“다들 조용!”

천기득이 와락 인상을 쓰며 탁자를 내리치자 쫑알거리던 입들이 꾹 다물어졌다.

“내가 이번 일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고 해도 대왕을 나가기 전까진 너희들 윗사람이다. 대왕에 기둥을 세우는 중차대한 날에 한심한 소리나 하고 있을 것이냐!”

“나는 그냥 저 녀석이 버릇없이 굴어서…….”

이순희가 천 실장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서류 작업이 끝나고 각자 몫이 결정된 뒤라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천기득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게 맞다.

이순희가 꼬리를 말고 입을 다물자, 다른 이들도 입조심을 했다.

“이광수 사장.”

“네. 실장님.”

“먼저 들어오게.”

천 실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자 이광수가 그 뒤를 따랐다.

천기득과 이광수가 회의실에서 모습을 감추자, 남겨진 이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 어떤 일이 있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막상 지주회사 설립이 현실화한다고 생각하자 스멀스멀 욕심들이 꿈틀거렸다.

후계자 자리야 대왕 전자 이광수에게 돌아갈 것이니 거기까지는 욕심을 내지 못하겠지만, 그다음 자리는 자신들이 차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큰오빠 자리야 건드릴 수 없다고 해도. 2대 주주는 당연히 내 자리지.’

백화점 이순희는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자신이 가진 비자금은 물론이고 남편에게까지 돈을 끌어왔다. 문제는 이순희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병원재단을 맡은 이순영도 자신의 돈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집어넣었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까지 이 일에 끌어들였다.

다른 그룹도 아니고 대한민국 1위 대왕 그룹의 지주회사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보니 다른 그룹들 역시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고, 알게 모르게 자금을 집어넣은 상태다.

이진상은 눈을 감고 자신의 차례만 기다렸다.

자신을 천한 놈이니 피가 더럽니 하며 무시했던 자들을 하나씩 되새겼다.

‘연놈들. 하나도 빠짐없이 쫓아내 주마. 다시는 내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게!’

이광수의 둘째 아들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이광수의 친아들이자 큰아들인 이진형 건설 이사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자신은 다른 이들처럼 흙탕물 싸움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주회사를 물려받을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서자이자 이 자리의 막내인 이진선은 지루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다른 이들이야 꿍쳐둔 돈도 많고 여기저기 끌어다 쓸 인맥도 넘쳐나지만, 자신은 그나마 가진 돈도 미국에서 날려버렸고 아는 이들도 없다.

대왕 일가이기에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품위 비는 받고 있지만,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하면 끝날 정도다.

‘멍청한 이진상. 네가 평소 행동만 똑바로 했어도.’

주몽이 복권 당첨자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이진선 머릿속엔 그 돈이 모두 자신의 것으로만 느껴졌다.

주몽 정도는 얼마든지 구워삶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진상이 미친 짓을 연달아 터트리는 바람에 자신까지 그 밥에 나물이 되어버렸다.

‘이대로 포기 못 하지. 대왕이야 어차피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고주몽이 가진 돈은 말 그대로 눈먼 돈이니까.’

주몽이 가진 돈의 1%만 뜯어 먹어도 그게 모두 얼마인가.

이리떼고 저리 떼고 잘라먹고 나눠 먹어도 넉넉히 5조는 떨어질 것이다.

머릿속에 온통 주몽을 털어먹겠단 생각밖에 없는 이진선은 오늘 행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나같이 꿍꿍이가 가득한 얼굴인데 그 안에서 유일하게 별생각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광수의 장녀 이연아다.

이진선처럼 주몽을 털어먹니 마니 하면서 머리를 굴리는 것도 아니고 이 자리를 지루해하는 표정도 아니다. 그저 담담히 가족 행사에 충실히 하는 딱 그 정도의 표정이다.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고 있던 이진선이 이연아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

“응.”

“어떻게 생각해?”

“뭐가.”

“우리 가족들.”

“가족이 가족이지.”

이연아는 특별할 게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누나는 욕심도 안나? 다들 눈이 빨개져서는…….”

“내가 욕심을 내면 되는 일인가?”

이연아가 담담한 눈빛으로 진선을 바라봤다.

“어? 아니. 그건 아니지.”

이진선은 히히 소리를 내며 웃음을 보였다.

이연아는 그런 진선의 모습에 마주 보고 웃음 짓더니 ‘그런데 뭐하러 힘을 빼?’ 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진선이 유일하게 가족으로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

음흉하게 침이나 흘리고 다니는 이들과 달리 스스로 미래를 꿈꾸는 사람.

누나라고 부르지만 나이 차이라곤 달랑 두 달 뿐인 남매이면서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정상’인 사람이다.

“누나.”

“또 왜?”

“나는 언제나 누나 편이다.”

“당 떨어졌니? 흰소리 그만하고 조용히 있어. 괜히 어른들 눈에 띄어서 혼나지 말고.”

두 사람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천기득 실장의 방과 회의실을 오가는 이들은 멈춤이 없다.

이광수와 이순영, 이순희가 방을 다녀오고 이진상의 차례가 됐다.

“실장님.”

“그래. 앉아라.”

이진상은 천기득과 마주 보고 자리를 잡았다.

천기득은 바로 서류부터 내밀었다.

하나는 각각 지분이 정리된 표였고, 다른 하나는 진상 앞으로 배정된 주식지분. 다른 하나는 뒷구멍으로 받아들인 진상의 돈을 확인하는 서류다.

“연기금 끌어들인 것은 진짜 신의 한 수네요. 실장님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됐을 겁니다.”

이진상은 희희낙락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확인했으면 사인이나 해라. 오전 중에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네네. 그래야죠. 그나저나 그건 잘 처리된 거죠?”

“물어 뭐해. 네가 드러나지 않게 페이퍼 컴퍼니로 처리해 뒀다. 다른 녀석들에겐 네 지분이 0.5%가 전부로 보일 거다.”

“흐흐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따로 질문할 게 있으면 하고.”

“실장님이 알아서 다 해주셨는데 물어볼 게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이번 일 끝나면 은퇴하신다는 게 정말입니까?”

“다 들어놓고 묻기는. 회장님 지시다. 윗사람이 바뀌면 아랫사람도 같이 물러나는 게 맞고.”

“쯧. 아버지도 너무하시지. 실장님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이진상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더니 서류에 사인을 마쳤다.

“진형이 오라고 할게요.”

“그래. 그렇게 해. 나가서 표정 관리 잘하고. 다들 자기들 지분이 더 많은지 알고 있으니까.”

“하하. 제가 애도 아니고. 그 정도야 껌이죠.”

이진상은 으쌰!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흥겨운 얼굴로 방을 나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기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너 역시 나를 챙겨 줄 마음은 없잖아. 맘에도 없는 소리 지껄이기는.”

천기득은 서류를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이진상이 사인한 서류는 지주회사 지분에 관련된 서류가 아니라, 이진상이 불법 자금을 들여왔다는 증명 서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대왕뿐 아니라 진영그룹과 선진그룹에서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한 시간에 걸쳐 개인 면담을 끝낸 천기득이 다시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고생했다. 서류는 준비가 끝났으니, 오후에 자금 집행할 거고 그렇게 되면 지주회사 설립도 마무리가 된다.”

천기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은 실장님이 하셨죠.”

“그럼요.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아침도 부실하게 먹었는데, 가서 식사라도 해야겠습니다.”

“이제 일어나도 되는 거죠?”

작업이 마무리되었다는 말에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한 마디씩 꺼냈다. 하지만 천기득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문제요?”

이광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기득을 바라봤다.

“지주회사가 아니라 외부 일이다.”

“외부 일이라면 어떤…….”

“다들 알고 있겠지만, 글로벌 복권 당첨자와 우리 대왕 사이에 껄끄러운 일이 있었다.”

“아, 그 고주몽인가 하는. 진상이 수발비서였다죠?”

이순영이 아는 척을 했다.

“하긴 급하게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하게 된 것도 그 사람 때문이었지.”

가족들의 시선이 이진상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미워하는 눈빛이라기보단, 마치 덕분에 고마웠다는 그런 표정들이다.

“지주회사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룹의 소유권을 확고히 하는 것에 불과하다.”

천기득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지주회사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누군가의 공격을 피해 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 고주몽이라는 놈 이야기를 꺼내시는 걸 보니. 따로 해결책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광수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뭐가 되었든 그룹에 위험요소가 있다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 그래서 그와 협상 자리를 마련했다.”

“네? 뭘 해요?”

“협상이라뇨. 이건 진상이 개인적 문제잖아요.”

“그래요. 진상이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될 일을 우리까지 나설 이유가 있습니까?”

가족들이 우르르 들고일어나자, 이진상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하필이면 이 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꺼내다니.

이진상은 짜증을 쏟아내며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천기득을 노려봤다.

‘서류 준비 끝났으면 등록 작업이나 마무리 짓고 집에 가서 손주나 볼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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