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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53화 (54/224)

053장. 전격 X맨 작전! - 2

잠시 말이 없던 이광수가 연기금을 들먹였다.

“연기금에서 우리를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연기금은 물론이고 시장에 풀린 주식을 다 끌어모아도 50%가 되지 않아. 만에 하나 누군가 전자를 손에 넣으려 마음먹는다면…….”

“그 누군가가 고주몽을 말하는 겁니까?”

“잘 아는군. 대놓고 공격 선언을 한 상태네. 위험은 최대한 방지를 해 놔야지.”

이광수는 고개를 저었다.

“돈이 있으면 주식을 살 수 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시장에서나 가능한 논리입니다. 규모를 넘어선 주식은 돈이 있다고 해도 절대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쯧쯧. 주식을 뭐하러 손에 넣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외국계 자본의 지지성명만 받아도 끝장이란 걸 왜 몰라! 고주몽에게 필요한 지분은 총회를 신청하고 열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해. 그 이상은 가질 필요도 없다고.”

“그들이 뭐하러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이광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바보 같은 소리. 고주몽이 공매도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 주주들이 어떤 생각을 할 것 같나. 잊을만하면 쥐어 터지는 대왕 전자! 흔들리는 주가! 무능한 경영진! 거기에 오너 리스크까지 들먹이겠지.”

“…….”

“그때 고주몽이 그러겠지. 대가리들만 싹 바꿔버리면 더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거기다 대대적 투자도 약속하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돈을 보고 모인 자들은 결국 돈을 좇아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지.”

“빌어먹을!”

이광수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놈은 100조든 200조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던질 놈이야. 그러니 몇 푼 아끼고 숨겨두려다 회사를 날려 먹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 특히나 대왕 전자는 이번 기회에 지배권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해.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회사니까.”

“후우. 이진상 이 새끼 때문에.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이광수가 자신의 막냇동생을 들먹이며 신경질을 부렸다.

“하지만, 덕분에 후계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지. 지금처럼 불안전한 지배가 아닌 확고한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협조하게.”

“알겠습니다.”

이광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기득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금액이 얼마나 되는진 모르겠지만, 그룹으로 가져오려면 문제가 있겠지?”

“네. 비자금이란 게 다 그렇죠.”

“내가 잘 빨아서 깨끗이 만들어 줄 테니. 이번 기회에 자네 재산으로 만들어. 겸사겸사 지주회사 지분도 높이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나야. 이번 일이 끝나면 물러날 사람이야. 유종의 미는 거두고 떠나야지.”

“아니. 실장님이 물러나시다뇨. 옆에서 절 도와주셔야 합니다.”

“쯧쯧. 그런 소리 말게. 회장님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으니.”

“아…….”

이광수가 안타깝다는 듯 반응을 보였지만, 눈 속에 일렁이는 기쁨은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천기득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물러날 사장들도 선정해야 하니, 자네가 데리고 가기 껄끄럽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명단을 만들어주게. 지주회사 설립과 함께 모두 내칠 테니.”

“언제나. 실장님에게 힘든 일만 부탁하게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동안 만들어 놓은 명단이 있으니. 곧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광수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다시 홀로 남겨진 천기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힘든 일만 부탁한 다라. 광수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날 위해 내밀 손은 한 치도 없는 모양이구나.”

이태주가 됐든, 이광수가 됐든. 노고는 위로할망정, 그에 합당한 포상은 없다.

오히려 자신이 떠난다는 말에 되레 박수를 친다.

“그 박수 소리. 떠날 때 듣는 게 아니라, 대왕을 손에 넣고 받아야겠다.”

천기득은 대포폰을 꺼내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판이 짜이고 있으니 스케줄을 맞출 시간이다.

* * *

천기득과 진행하는 대왕 그룹 집어삼키기 작전을 위해 미국에서 일을 보고 있던 제이코도 급히 서울에 들어왔다.

호텔에 도착한 제이코는 시차 적응을 하기도 전에 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대왕 일가의 비자금을 지주회사에 끌어들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보스가 가진 돈으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한데 말입니다.”

“지주회사에 비자금을 끌어들여요? 누가요?”

“누구긴요. 당연히 보스 아닙니까.”

“미쳤어요. 그 인간들 돈을 지주회사에 밀어 넣게.”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제이코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설마 천기득 실장이 보스의 허락도 없이 그런 짓을 벌였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니죠.”

내가 고개를 젓자 제이코가 아리송한 표정이 됐다.

“무슨 생각이신지 설명을 해주시죠.”

“제이코. 쉽게 생각해요.”

“쉽게요?”

제이코는 더더욱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지주회사를 가로채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잖아요.”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지금처럼 지주회사 작업을 하는 사람이 우리 쪽 사람이라면.”

“제가 보기엔 50%? 뭐 그 정도 보고 있어요.”

성공과 실패가 반반이라는 말에 제이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성공확률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요?”

“네. 이씨 일가가 바보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볼 텐데. 그게 맘대로 되겠어요?”

“아니, 그러면 안 되죠. 이 작업하려고 분산시켜 놓은 돈이 얼만지 아십니까? 이거 잘못되면…….”

“그래서 비자금이 필요한 겁니다.”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제이코가 킁! 하고 콧바람을 토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씨 일가의 자금이 들어오면 안 되는 겁니다. 그들이 지주회사 지분을 손에 쥐게 되면 싸움이 지저분해질 겁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리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보스. 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주회사에 그들의 자금이 들어오면 지분이 분산되지 않습니까. 물론, 대주주는 보스가 되겠지만 불안정한 요소를 남겨 둔다는 게…….”

“아, 답답하네. 지주회사에 비자금이 들어갈 일 없다니까요!”

“그러니까요. 더더욱 비자금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이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생각해봐요.”

“네!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주회사를 손에 넣었다고 하죠.”

“당연히 손에 넣어야 합니다. 이거 실패하면 보스 재산이 순식간에 반 토막 나는 겁니다.”

제이코는 연신 콧바람을 쏟아내며 살짝 흥분된 얼굴이 됐다.

“첫 번째. 지주회사 작업이 들어갈 때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할 것. 둘째! 지주회사 작업과 상관없이 이씨 일가의 자산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셋째! 재기불능 상태를 만들어 반격의 여지를 없앨 것.”

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씨 일가의 비자금을 설명했다.

“에?”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제이코와 엘리스가 눈을 껌뻑였다.

“하나 물어볼게요. 제이코. 비자금이 무슨 돈이죠?”

“그거야…… 회삿돈을 빼돌렸거나. 세금을…… 설마!”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지주회사 작업 들어가기 직전에 이씨 일가의 비자금을 터트릴 겁니다.”

“아…!”

“그러려면 그들의 숨겨놓은 비자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숨겨놓은 비자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순순히 내놓을 인간들입니까? 욕심에 눈이 멀어 스스로 내놓게 만들어야죠.”

“…….”

“비자금 사건이 터지는 순간, 대왕 그룹엔 최대 악재가 될 겁니다. 말 그대로 사주 일가의 비리가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거니까요. 이태주 회장뿐 아니라 아들의 아들들까지. 모두가 비자금을 만들고 빼돌려 왔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내 말에 제이코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기업 신뢰도가 떨어질 테니, 대왕 그룹 주식도 동반 하락하겠죠. 그렇게 되면….”

“지주회사 전환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돈도 지금보다는 절약이 되겠죠.”

“하!”

제이코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법이라는 듯 눈을 껌뻑였다.

“무엇보다 지주회사 작업을 하는 동안 이쪽으론 신경 쓸 틈을 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지주회사 작업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비자금은 말 그대로 불법 자금이죠. 검찰과 국세청에서 미친 듯이 물어뜯을 겁니다. 가지고 들어온 돈 대부분이 반 토막 나거나 홀딩되겠죠.”

나는 악당처럼 흐흐 웃음을 보였다.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는 건 뭔가요?”

엘리스가 질문했다. 나는 제이코를 바라보며 답했다.

“재벌의 힘은 돈, 사람. 이 두 가지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죠.”

“지주회사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씨 일가를 횡령을 고소할 겁니다. 회삿돈을 자기들 맘대로 쓰고 빼돌렸으니, 되돌려 받아야죠. 비자금에 탈세 거기다 횡령까지 검찰은 물론이고 국세청까지 들고 일어나 난리를 치겠죠. 그 와중에 지주회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있겠습니까?”

“앞가림하기 바쁘겠죠.”

“그 사이에 지분 정리 끝내버리고 지주회사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겁니다. 그동안 재벌로 살면서 만들어 놓은 인맥이 있으니 오래 잡아두지는 못할 겁니다. 어쩌면 하루도 안 돼서 검찰청 밖으로 걸어 나올 수도 있죠.”

“비자금과 탈세로 잡혀가도 말입니까?”

검찰과 국세청이 움직였다는 말은 증거가 명확하다는 말이다.

아마도 천기득이 직접 자료를 만들어 준비했을 테니 꼼꼼하게 증거를 만들어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루면 풀려나온다는 말에 제이코는 이해하기 힘든 얼굴이 됐다.

“증거가 확실하다고 해도 그걸 무마시키거나 몇 년이고 지연시킬 힘을 가진 자들이 대한민국의 재벌입니다.”

“놀랍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대한민국의 법조계를 믿을 수 없다고 해야 하나요?”

“오랫동안 반복해 왔던 습관이라고 해 두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그 하루가 우리에겐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니까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지주회사에 돈을 밀어 넣고 주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런 황금 같은 시간이죠.”

“그들이 풀려나서 방해하려 든다면…….”

엘리스의 말에 나는 씩 웃음을 보였다.

“그땐 이미 늦었지. 그나마 손발처럼 움직일 회사마저 내 손에 들어온 다음이고 그들이 가진 돈과 재산은 모두 압류시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려받을 테니까. 과연 그때도 그들이 재벌일까?”

“…….”

“돈과 사람을 모두 잃어버렸는데 재벌은 무슨. 그냥 범죄자들이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보스.”

“네. 제이코.”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죠?”

“너무 영악해 졌습니다.”

“음. 실망스러운가요?”

“실망이라뇨! 원더풀입니다. 나는 보스의 돈으로 지주회사만 만드는 데 집중했지만, 보스는 사전작업은 물론이고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설계를 하셨지 않습니까.”

“설계라고 하니까. 괜히 사기꾼이 된 기분인데요.”

“오! 노! 사기꾼이라뇨. 머니 전쟁은 지는 사람이 멍청한 게임입니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죠. 오히려 낄낄대고 웃을 일입니다. 그러니 이건 사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전략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처음엔 천 실장을 꼬셔서 뒤통수치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만만치 않겠더라고요. 이씨 일가가 두 눈 멀쩡히 뜨고 감시를 하고 있다면 실패할 확률이 충분하니까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씨 일가의 자금을 가져온다기에 기겁을 했습니다.”

“하하하. 천 실장도 다른 의미에서 기겁하기는 하더군요. 이건 단순히 회사를 뺏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를 거지로 만들어버리는 거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천 실장도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는데. 성공하면 영웅이지만, 실패하면 반역도가 되니 무조건 협조하기로 한 겁니다.”

내가 왜 이씨 일가의 비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는지 설명이 끝날 때쯤, 천기득 실장에게 전화가 왔다.

“천 실장이네요.”

“어서 받아보십시오.”

“네. 고주몽입니다.”

― 고 대표. 나 천기득이네.

“네. 실장님.”

― 늦어도 보름이면 판이 짜질걸세.

“오, 굉장히 빠르네요.”

― 그리고 고 대표 말대로 다들 욕심에 눈이 멀었네. 꽁꽁 감춰두고 절대 내비치지 않던 비자금들을 모두 쏟아내는군.

“하하하. 그럴 수밖에 없겠죠. 지주회사에 지분을 손에 넣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요.”

― 그리고 동병상련 말인데.

“네.”

― 두 곳 정도 동참을 할 것 같네.

“두 곳이나요?”

― 고 대표가 따로 시간을 한 번 내줬으면 하네만.

“당연히 그래야죠. 연락 주십시오.”

― 알겠네. 다시 연락하지.

통화를 끝내자 제이코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계획대로 되고 있답니다. 그리고 대왕 말고도 두 곳 정도가 이번 일에 동참하겠다네요.”

“다른 그룹도 말입니까?”

“천 실장처럼 한 맺힌 사람들이 많나 보죠.”

“자금 규모를 더 늘려야 할 수도 있겠군요.”

“어쩌면?”

내가 씩 웃음을 보이자, 제이코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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