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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52화 (53/224)

052장. 전격 X맨 작전! - 1

천기득 비서실의 VIP 병동 방문은 새벽녘 조용히 이뤄졌다.

“왔나.”

대왕(大汪) 그룹 총수 이태주에게 천기득이 허리를 숙였다.

“네. 회장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딱히 달라질 게 있나.”

올해 초, 갑작스레 찾아온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고령 때문인지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 생활이 오래되니 체력까지 떨어져 최근엔 거동마저 힘들어했다.

그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다.

“어찌됐노.”

이태주는 주몽과 협상 결과를 물었다.

“전쟁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놈은 이번 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버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버릴 생각으로 싸운다고?”

“젊어서 그런지, 다분히 감정적이었습니다.”

천기득의 설명에 이태주가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런가.”

“죄송합니다.”

“자네가 미안할 게 뭐 있노. 자식 관리를 못 한 내 잘못이제.”

이태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팔백조가 넘는다고 했나?”

“네. 회장님.”

“클클클. 무시무시하구먼.”

이태주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기득아.”

“네. 회장님.”

“방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도 고놈이 공격해 오면 골치가 아프겠제?”

“대외적 목표는 전자를 말했지만, 공격이 시작된다면 계열사부터 치고 들어올 것입니다. 싸움이 시작되면 국지전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룹의 순환출자입니다.”

천기득의 말에 이태주가 ‘으음.’하고 한숨을 쉬었다.

“더 늦기 전에 지주회사 전환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후계 작업도 이번 기회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이 말이제?”

이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득이 니 말이 맞다. 덩치만 크다고 좋은 시절은 다 갔다.”

“…….”

“이번 기회에 몸집도 줄여라. 핵심 계열사를 중심으로 주식을 끌어모으고 어쭙잖은 것들은 그 밑으로 집어넣거나 치워 버려라. 지주회사 작업하려면 돈 필요할 거 아니가.”

순환 출자된 지분을 정리하고 다시 끌어모으는 것도 일이지만, 지주회사가 강력한 지배력을 휘두르려면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시장이 풀린 주식도 일부 되가져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식을 쥔 자들이 쉽사리 내놓을 리 없다.

남은 방법은 신주발행을 통해 주식량을 늘리고 다른 이들의 주식 지분율을 떨어트리는 것뿐이다.

새로 발행할 주식을 지주회사로 끌어 오려면 당연히 추가 자금이 필요했고, 이태주는 그 돈을 기업을 팔아 마련하라고 한 것이다.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번 기회에 회장님 자금을 양성화시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천기득의 말에 이태주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게 해라. 이러다 내가 팍 죽어버리면 골치 아플 수도 있겠다.”

명의를 감춘 돈이라 관리하던 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웃기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태주가 비자금 이동을 허락하자 천기득은 곧바로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룹 개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건설, 생명, 조선, 전자.”

이태주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답을 내주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 밑으로 밀어 넣어라. 어중간한 것들은 아까 말한 대로 팔아 치우고.”

“네. 회장님.”

“지주회사 지분구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광수 앞으로 돌려야제.”

이태주 회장의 큰아들이자 현(現) 대왕 전자 사장. 결국, 그가 후계자로 낙점이 됐다.

“다른 아이들은 그룹 개편하면서 먹고 살 만큼만 쥐어서 내보내라. 지주회사 지분을 나눠서 괜히 분란 만들 필요 없다. 주식 끌어모으면서 소모한 돈은 나중에 지주회사 주식 팔아서 충당하면 된다. 대왕의 컨트롤 타워 아니가. 쪼매만 팔아도 이번에 쓴 돈 다 만회하고도 남을끼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기업이었던 미래 그룹이 자식들의 상속 전쟁으로 조각나 흩어진 적이 있다.

이태주는 대왕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큰아들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줄 생각이다.

“그라고…….”

“네. 회장님.”

“기득이 니랑 사장들 말이다.”

“네.”

“지주회사 마무리되면 물러나그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않겠노.”

“물론입니다. 그에 맞춰 준비하겠습니다. 혹, 버티는 놈들이 있으면 제가 잘 다독여서 물러나게 만들겠습니다.”

천기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니한테 고마워하는 것 알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말로 회장님 모시면서 인생 신나게 살아봤지 않습니까.”

천기득은 재차 고개를 숙였다.

“알았다. 고만 가봐라.”

천기득은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병실을 벗어났다.

병원 복도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는 동안 천기득의 얼굴은 몇 번이고 일그러지길 반복했다.

“이방원이 한 짓을 떠올리라고 했던가.”

그래도 내심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던 천기득이다.

스스로 의리를 입에 담았을 만큼 이태주 회장과의 관계가 돈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킥. 머슴은 아무리 잘나봐야 머슴이란 말이지.”

* * *

알렉스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전담팀 직원 짐이 알렉스를 바라봤다.

“너무 조용하잖아.”

“네?”

짐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고주몽 말이야. 고주몽!”

“고주몽이 뭐 말입니까?”

“이런 답답한. 대왕 전자를 공격하겠다는 선언을 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알렉스가 짜증을 토해내자, 짐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다 대왕이 바보도 아니고 멍청하게 맞고만 있을 놈들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최소한 시늉은 해야 정상 아닌가?”

“고주몽의 공격 선언 때문에 주식값만 더 올라갔습니다. 지분 전쟁이 벌어지면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갈 겁니다. 어떤 미친놈이 주식을 내놓겠습니까. 버티면 버틸수록 비싸게 팔 수 있는데.”

짐의 말에 알렉스는 ‘흐음’하는 소리를 냈다.

“다른 계열사 쪽은?”

“조용합니다.”

“쯧.”

알렉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더니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렇게 포기를 한다고?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큰소리까지 쳐 놓고?”

알렉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분석팀에 다녀온 샤론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뭐지?”

“대왕 그룹. 지주회사 전환 작업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

알렉스가 서류를 받아 들었다.

“흠. 자신들 약점을 이번 기회에 없애버리겠다는 뜻이군.”

“고주몽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만, 분석팀에서는 후계 구도를 확정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주몽이 아니더라도 결국 진행될 일이었다 이 말이군.”

“네. 고주몽이 움직이지 않는, 아니 못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설프게 공격해봤자, 꼬리 자르기를 해 버리면 돈만 날리고 껍데기만 남은 기업을 끌어안아야 하니까요.”

알렉스는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주몽 자금 흐름은?”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왜?”

“은행들이 비협조적입니다. 범죄에 사용된 돈도 아니고 함부로 개인 자료를 제공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고주몽의 자금을 조사하려면 명확한 명분이 있거나, 그가 범죄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자칫 함부로 건드렸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흥. 누가 감히 정부 일에…….”

“다른 G20 국가들이 문제 삼을 겁니다.”

샤론의 말에 불만을 토로하던 알렉스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부터 통합시민권이니 뭐니 하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짓이었어!”

알렉스는 벌컥 짜증을 내더니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왜 저렇게 고주몽 일에 신경질인지 모르겠네. 솔직히 고주몽이 잘못한 게 있나? 제안했고 우리는 받았고. 덕분에 짭짤하게 챙겼고. 도대체 뭐가 문제야?”

샤론이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자 짐이 입을 열었다.

“좌천됐다고 생각하니까.”

“좌천?”

“그렇잖아. 잘나가던 재무부 차관에서 졸부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신세가 됐으니.”

짐의 말에 샤론이 킥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그렇다고 개인감정을 앞세우면 안 되지.”

샤론은 알렉스의 태도를 오히려 문제 삼았다.

“뭐 어쩌겠어. 저러는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는 알렉스의 판단은 정확했다.

겉으론 평정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물밑에선 미친 듯이 자금이동이 이뤄졌다.

수백 개의 페이퍼 컴퍼니가 만들어지고 소액으로 쪼개진 자금은 몇 차례 회전을 거쳐 본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도록 철저히 감춰졌다.

기습 공격에 성공하려면, 상대방에게 위치를 들키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 * *

천기득은 비밀리에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고, 그룹 개편과 지주회사 설립을 위해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주식을 끌어모으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태주 회장의 지시사항을 전달되자 사장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인사권을 움켜쥐고 있는 기업 총수에게 반항할 방법이 없다.

지주회사 설립 작업은 천기득의 지휘 아래 전광석처럼 진행이 됐다.

대왕 전자 이광수 사장이 천기득을 따로 찾아왔다.

다른 사장들과 달리 이번 지주회사 설립은 그룹을 물려받을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실장님. 순환 출자된 주식 이동을 시키는 작업은 어려울 게 없지만, 지주회사가 힘을 발휘하려면 그것만으론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지.”

“지주회사 설립에 들어갈 자금은 어떻게 마련을 하실 생각입니까?”

“회장님이 마련해주시기로 했네.”

“그 말씀은…….”

“해외에 나가 있던 자금이 그룹으로 들여올 것이네.”

“아…….”

해외에 나가 있던 자금. 이태주 회장이 그동안 감춰뒀던 비자금을 뜻했다.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세탁이 끝나면, 그 돈으로 부족한 지분을 획득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게.”

“그렇다면야.”

이광수 사장은 씩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지주회사 작업이 단순히 그룹 체질 개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이미 전해 들었다. 드디어 후계 작업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족해. 그러니 이 사장도 힘을 보태야 할 것 같네.”

천기득의 말에 이광수의 웃는 얼굴이 싹 사라졌다.

“지주회사 작업이 이 사장 후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 알고 있지?”

“네.”

“어차피 자네 거야. 그러니 감춰두지만 말고 이번 기회에 내놓게.”

“…….”

“이번 작업은 번개 치듯 순식간에 이뤄져야 해. 중간에 돈이 부족해서 문제가 불거지면 곧바로 적들에게 공격을 받게 될 거네. 그걸 모르진 않겠지?”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비자금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이야.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른 형제들을 확실히 밟아 두려면 지분을 높이게.”

천기득이 다른 형제들을 들먹이자, 이광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다들, 지주회사 지분을 노리고 돈을 내밀고 있어. 진상이는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돈부터 들이밀더군. 그런데 이 사장 자네는 빠지겠다고?”

“얼마면 되겠습니까?”

“얼마?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다 내놓게.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사장이 얼마를 내놓든 부족한 상황이야.”

“네?”

이태주 회장의 비자금과 자신의 비자금 그리고 계열사에서 끌어모은 돈은 물론이고 그룹 내 유보금까지. 어마어마한 돈이 될 것이다.

사내 자금을 지주회사 설립에 사용하는 건 차후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만 끝나고 나면 얼마든지 무마시킬 힘이 있다.

“이 사장. 대왕 전자만 해도 300조짜리 기업이야. 170조 정도는 외국인들 손에 들어갔고, 70조는 연금공단이 나머지 25조는 시장에 풀려있지. 실질적으로 우리가 쥐고 있는 지분은 35조. 그것도 계열사 출자로 흩어져 있네.”

“알고 있습니다.”

“지주회사는 산하 기업의 생사권을 쥐어야 하네. 그런데 10%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게 가능할 것 같나? 그러니 이번 기회에 최대한 끌어모아야 해. 또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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