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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49화 (50/224)

049장. 천기득을 만나다.

― 대왕 전자는 두 가지 방법을 준비 중입니다. 하나는 공매도입니다.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돈은 넘쳐나지 않습니까.

“공매도는 차익을 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대왕 전자 주식을 손에 넣는 것과는 상황이 다를 텐데요.”

― 물론입니다. 그건 곤란하게 하는 정도죠. 그 와중에 떨어지는 주식도 틈틈이 주워 먹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건 주식을 손에 넣기보다 들고 있는 자들 협박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용도라면….”

― 일단 나머지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테니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왕 전자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대왕의 계열사를 공략하는 겁니다. 목표에서 벗어난 변두리를 공략하는 전법이기에 대왕에서 곧바로 대응하지 못할 겁니다. 보스가 방송에 나와서 ‘내 목표는 대왕 전자다!’라고 선언을 해준 덕분이죠.

그 때문에 혼이 나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칭찬이 날아들었다.

“내가 한 말 때문에 주식을 모으기가 더 힘들어진 거 아니었나요?”

―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합니다만, 보스는 상황이 다릅니다.

“어떻게요?”

― 대왕 전자를 손에 올려놓는 방법이 꼭 대왕 전자 주식을 손에 넣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제이코. 그냥 쉽게 설명해요.”

내가 툴툴거리자, 제이코가 칵칵칵 웃음을 보였다.

― 보스의 목표는 대왕 전자가 아니라 이진상 아닙니까.

“네. 그런데요?”

― 이진상의 목표는 대왕 그룹 후계자 자리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계열사들의 지지도 굉장히 중요하죠. 그룹이 혼란한 틈을 타서 계열 분리라도 해 버리는 날엔 닭 쫓던 개가 되니 말입니다.

“그 말은 전자를 괴롭히고 인수·합병할 것처럼 공격하면서 뒤쪽으로 계열사들을 잡아먹겠다 그런 뜻인가요?”

― 빙고!

“하지만, 결국 계열사일 뿐이잖아요.”

― 한국 기업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왕 그룹은 순환출자 방식으로 서로 물고 물려있더란 말입니다. 지주회사를 따로 두고 관리하는 미국에선 보기 힘든 구조지만, 덕분에 틈이 많습니다.

“아!”

제이코의 말에 뒤늦게 깨달음이 몰려왔다.

“계열사에서 쥐고 있는 대왕 전자의 주식이나 다른 계열사 주식을 손에 넣겠다는 발상이군요.”

― 네.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왕을 흔들기 위해선 전자가 아니라 다른 계열사들을 먼저 치는 게 좋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물론, 전자 쪽은 꾸준히 괴롭힐 겁니다.

“완전히 악당이 되는 거네요.”

― 전쟁을 선언했는데 악당이 어디 있습니까. 이기면 최고죠. 그리고 그렇게 흔들어대면 50% 이상의 주식을 쥐고 있는 외국계 자본들이 불만을 드러낼 겁니다.

“아,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 협박용이라는 게.”

― 그때가 진짜입니다. 우리 목적은 대왕 전자가 아니라 자격 없는 경영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주식 가치를 유지하고 싶다면 우리의 손을 잡으라고 할 겁니다. 그들로서도 망나니 사고뭉치가 경영권을 가져가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생각할 테니. 계산기를 튕기겠죠. 이득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히 손을 잡아 줄 겁니다.

“하긴 대왕같이 큰 기업을 돈만 있다고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죠.”

―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제이코 만약에 말입니다.”

― 네.

“내부자가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일이 더 편하겠죠?”

― 내부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진상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고 말입니다.”

내 말에 제이코가 카카칵 웃음을 터트렸다.

“헤어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웃음소리가 왜 그렇게 변한 겁니까?”

― 저는 재미있으면 그렇게 웃음이 나옵니다. 아무튼, 그게 가능하다면 시간이 단축될 겁니다. 보스의 목적은 기업 경영이 아니라 복수에 있으니 말입니다.

“일단 알았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연락해줘요.”

― 네. 보스. 아, JTB 말입니다.

통화를 끝내려던 제이코는 깜빡했다는 듯 JTB 방송 이야기를 꺼냈다.

“네.”

― 알아보니, 조만간 종합편성 재인가 시즌이더군요. 이번 사건으로 상당히 궁지에 몰린 것 같습니다. 그쪽을 파고들어 볼 생각입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이쪽은 분야를 막론하고 워낙 끈끈히 이어져 있어서.”

― 외국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면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밖에서 떠들어 댄다고요?”

― 네. 한국 종합편성사의 문제점을 심층 보도할 생각입니다. 아무리 한국 내부의 일이라고 해도 재인증을 밀어붙이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주식을 최대한 끌어모아야겠지만 말입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 그리고 사이트 오픈은 보름 정도 더 시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나도 할 말이 있어요.”

― 네. 보스.

“한국에 제대로 된 조직을 꾸려야겠어요. 지금 있는 팀들은…….”

―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의견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제이코 역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한국뿐 아니라 각국 투자집행을 위해선 현지 사정을 아는 사람들로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GO 컴퍼니 현지 운영팀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 네. 보스 변동 사항이 생기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제이코와 통화를 끝낸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천기득은 아무런 욕망이 없는 걸까? 남의 손에 들어갈 물건을 그렇게 애지중지한다고?”

대왕 회장이 그룹 외부의 일을 책임진다면, 내부 단속은 천기득의 몫이다. 그 말은 누구보다 그룹 내부조직과 얽히고설킨 지분구조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이고.

“이씨 일가가 아니라 천기득이 그룹을 손에 넣는다면…… 내가 그렇게 만들어준다면.”

천기득을 만나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만약 그가 심중에 야망을 품고 있다면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천기득의 정보를 취득하고 이진상이 아닌 다른 후보와 손을 잡는 방법도 남아 있으니 상황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연락이 닿자, 천기득은 당일 바로 만나기를 바랐다.

나야 보잘것없는 놈이라 치부해도 그만이지만, 내가 가진 돈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친놈 하나가 감정적으로 돈질을 하겠다고 나오니 사고가 터지기 전에 막고 싶을 것이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튀는 피와 살을 집어 먹으려고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떼가 나타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진다.

제이코에게 천기득과의 만남을 이야기했더니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 계획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마디 해 줬다.

― 제이코. 되면 좋고. 안되면 본래 계획대로 가면 됩니다. 혹시 압니까. 그 양반도 속으론 대왕 그룹에 욕심을 내고 있을지. 그래서 뻥카를 어마어마하게 날려 볼 생각입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제이코는 시도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적당히 시간을 끄는 쪽으로 조언을 했다.

천기득에게 읽어 들인 기억이 별 볼 일 없다면 나 역시 안 되는 일에 힘 뺄 생각이 없다.

제이코는 곧바로 팀을 소집하더니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한 대응책들을 마련했고 그걸 실시간으로 나에게 전달했다.

제이코와 투자팀의 조언을 떠올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엘리스가 얼굴을 내밀었다.

“천기득 실장이 왔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스의 안내를 받아 천기득이 모습을 나타냈다.

“고마워. 엘리스.”

“네. 보스.”

엘리스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주몽입니다.”

“천기득일세.”

단단한 체구에 세월이 묻어나는 얼굴. 마주 선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준다.

과연 이 사람은 세간의 평가처럼 그룹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전력투구하는 사람일지. 아니면 자신의 내심을 감추고 모두를 속이고 연기를 하는 효웅일지 궁금하다.

천기득과 독대한 나는 곧바로 그에 대한 ‘기억’을 불러왔다.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능력이니 기회가 있을 때 써먹어야 했다.

► 천기득 실장. 계열사 분리 시도!

► 재계의 숨은 실세. 교통사고로 별세.

대단한 인물 치곤 달랑 두 줄의 정보뿐이다. 하지만, 계열사 분리를 시도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정보다.

내 것도 아닌데, 애지중지한다는 의문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

결국, 천기득 역시 심중에 야망을 품고 있었다는 말이고 그걸 알아차린 이진상이 천기득을 밀어버렸다는 뜻이다.

먹다 버린 사과도 남이 건드는 건 용서 못 하는 소시오패스 이진상이라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천기득이 대왕 그룹의 충신이 아니라 기회를 엿보고 있는 효웅임을 알게 되자 협상에 임하는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업계 전설로 회자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신가.”

천기득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분초를 쪼개서 사용할 정도로 바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먼저 연락을 했으니, 용건도 먼저 꺼내시죠.

“쪼개 쓰는 분초를 이어 붙여서라도 이 자리를 의미 있게 만들어야겠지.”

“실장님은 분초를 쪼개고 이어 붙어야 할 정도로 바쁘고 애타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릅니다. 분초 단위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돈이 불어나는 중이라서 말입니다.”

“하하하.”

천기득은 짧게 웃음을 흘렸다.

“원하는 걸 말씀하시게.”

“급하신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만, 차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허허허.”

대화의 맥을 끊어버리는 나를 보며 천기득이 웃음을 흘렸다.

“진상이 수행비서로 전전했다고 들었는데, 보기보다 강단이 있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저를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떨려 죽겠다. 기억을 확인하든 아니면 그가 원하는 것 정도만 확인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자리를 만들긴 했는데, 이게 직접 마주하고 보니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다른 그룹의 회장들도 천기득 앞에선 불편해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듯 보였다.

“녹차로 하겠네.”

나는 인터폰을 눌러 녹차와 커피를 부탁했다.

잠시 뒤, 정은영이 차를 내놓고 밖으로 나갔다.

“저 아이가 여기에 와 있었군.”

천기득은 정은영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높으신 분이 자재과 직원 신상명세까지 파악하고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기조실 아이들이 찾는다기에 잠시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네.”

“뭐, 그렇다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요. 맞습니다. 이진상이 찾는 그 사람. 가만두었다간 누군가의 인생이 구렁텅이로 빠질 상황이라 제 쪽으로 데려왔습니다.”

“동서양 미녀를 좌우에 둔 다라. 남자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이지.”

천기득은 흥미롭다는 듯 눈웃음치더니 차를 들이켰다.

엘리스와 정은영을 ‘다른 의미’로 바라보는 천기득의 말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나 역시 조용히 커피를 즐기며 입을 다물었다.

찻잔이 반쯤 비어갈 때쯤, 천기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만 먹어가는데, 고 대표는 시간이 흐를수록 돈이 늘어나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실장님이 불공평을 입에 담으시니. 그것만으로도 신기한 구경을 하는 느낌입니다.”

“허허허.”

내가 까칠하게 반응하자 천기득은 다시 한번 웃음을 흘렸다.

“굳이 싸울 필요가 있는가? 대왕 전자는 고 대표에게도 친정 같은 곳일 텐데.”

“도발하시려는 거라면 성공하셨습니다.”

“도발을? 내가 그럴 이유가 있나?”

“제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뻔히 아시는 분이 친정 운운하니 그러는 겁니다.”

천기득은 빙그레 웃는 눈을 하더니 찻잔을 내려놨다.

“진상이가 인재를 옆에 두고도 몰라봤군.”

인재 운운하는 천기득을 보며 나 역시 빙그레 웃어줬다.

“그러게 말입니다. 여자 인생이나 망치고 사람이나 죽이고 다니는 놈에게 그런 눈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비극 아니겠습니까.”

나는 웃기는 소릴 들었다는 듯 피식 실소를 흘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천기득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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