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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45화 (46/224)

045장. 그래서 뭐?

“인터넷 동향 보고서 부탁드립니다.”

“악성 코멘트 캡처 자료 추가됐습니다.”

“과학기술부에서 미팅 요청 있습니다.”

“BBC와 ABC 방송에서 인터뷰 요청 있습니다.”

“제일 법무법인에서 사이트 오픈 관련 문의 들어왔습니다.”

“호텔 측을 통해 대왕 그룹 비서실에서 미팅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엘리스 팀장. 보스는 아직입니까?”

누군가 보스를 찾자, 팀원들의 시선이 엘리스에게 향했다.

“나는 옵서버…….”

“지금 이걸 보면서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그렇게 계속 지켜만 보려거든 그냥 방을 나가던가, 아니면 뭐라도 좀 도와요.”

“아니면 보스라도 깨우던가.”

“미국으로 돌아가 로펌에 합류를 하든 아니면 여기에 남아 팀을 이끌던. 둘 중에 하나만 해요.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으면 인력 낭비입니다.”

팀원의 불만 섞인 표정에 엘리스는 난감한 표정이 됐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로버트가 입을 열었다.

“엘리스.”

“네. 로버트.”

“보스 깨어나셨는지 확인 좀 해 봐. 혹시 자고 있다면 깨우는 게 좋겠다. 피곤하시겠지만, 밀려드는 일도 그렇고 식사도 해야지.”

“제가 말입니까?”

“옵서버가 됐든 팀장 대리가 됐든. 이곳에 있고 싶다면 뭐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면 가서 짐이라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보다.”

엘리스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스에게 가 보겠습니다.”

“이왕 들어간 김에 거처도 확실히 해 둬. 어중간하게 있지 말고.”

“네.”

엘리스는 주몽의 방 쪽으로 이동을 하더니 똑똑 문을 두들겼다.

* * *

똑똑하는 노크 소리에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시선이 이동했다.

“네.”

“보스. 엘리스입니다.”

엘리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문을 두들겼다는 사실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쯤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방안으로 엘리스가 들어왔다.

“일어나셨군요.”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아니 그것보다 아직 남아 있었어요? 지금쯤 미국으로 출발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보스.”

“네. 엘리스.”

“한국에 남고 싶습니다.”

“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엘리스를 바라봤다.

“저는…….”

“제가 먼저 이야기하죠.”

“네. 보스.”

“나는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아요. 엘리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 역시 비서 생활을 했었고 또 그 과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비서 일이라는 게 변호사처럼 법률처리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때로는 조언자 역할도 필요한 게 비서 업무입니다. 하지만 엘리스는……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 성격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엘리스 성격이요? 그건 나도 모르죠. 개개인의 성향을 좋다, 나쁘다 할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왜…….”

“말했잖아요. 비서 일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고. 그런데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로봇처럼 돌아다니는 것은 제가 불편해서 힘듭니다.”

“로…… 로봇이요?”

엘리스는 예상치 못한 단어를 들었다며 미간을 찡그렸다.

“표현이 과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최소한 평범한 분위기. 그 정도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엘리스 때문에 내가 긴장하면서 일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

엘리스는 잠깐 말이 없어졌다. 이제 됐거니 싶어서 나가보라고 하려는데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노력하겠습니다.”

“네?”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왜요?”

엘리스의 대답에 나는 반문을 했다.

“보스와 일을 하고 싶습니다.”

“…….”

“보스가 원하는 모습을 바로 맞출 수는 없겠지만, 업무적인 측면에서라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엘리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게 그저 반발심에서 나오는 말인지. 아니면 그런 것조차 자신의 능력으로 커버를 칠 수 있다고 믿어서 하는 말인지. 그도 아니라면 진짜 비서 업무에 충실해 보겠다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부탁드립니다.”

엘리스는 살짝 고개까지 숙여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어떤 부분인지 말씀해주시면 설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엘리스는 졸부 근성을 경멸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새벽에도 봤다시피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고 또 그 감정에 흔들리면 돈을 먼저 앞세웁니다. 엘리스가 원하는 보스는 아니었을 텐데요. 엘리스는 냉철하고 치밀한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그런 보스를 원했지 않습니까. 지금 모습은 전혀 엘리스답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저답지 않은 겁니까?”

“내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엘리스도 내가 원하는 비서 상(像)은 아니니까요.”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른데 노력까지 해가며 서로 불편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보스는…….”

“네.”

“제 외모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뜬금없이 지금 대화에서 외모가 왜 나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엘리스를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궁금합니다.”

“혹시, 외모 때문에 안 좋은 일을 겪었던…… 아, 미안합니다. 이건 할 질문이 아니군요.”

“괜찮습니다. 면접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하신 말씀 맞습니다.”

“어…… 그래요?”

“네.”

엘리스는 이번 기회에 속내를 말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자신이 겪었던 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홉 살에 납치를 당했습니다.”

“네. 납치요. 네? 뭘 당해요?”

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엘리스를 바라봤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말입니다.”

“…….”

“다른 사람에게 발견이 되어 빠르게 구출이 되었습니다.”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혹시 그 납치가 외모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묻지 않아도 내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얼굴이 아니라 돈 때문이었다고? 그 말은 집에 돈 좀 있었다는 그런 의미인데. 금수저 출신인가?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돈은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부차적인 문제라면 뭔가 따로 원하는 것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네. 납치범은 소아성애를 앓고 있었으니까요.”

“크흠. 불편한 이야기군요.”

“두 번째 납치는 열두 살에 이뤄졌습니다.”

“납치를 또 당했다고요?”

“네. 이번에도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아니라…….”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겠으니까. 그런데 이미 한 차례 그런 일이 있었는데.”

“조심하지 않았냐고 묻는 거라면. 네. 혹시 그런 일이 생길까 나름 대책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과거 이야기지만 입 밖에 내기 쉬운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마네킹 같던 엘리스지만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게 불편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불편해 보입니다. 그쯤 하는 게…….”

“강간당할 뻔했습니다.”

“…….”

“고등학교 때도. 대학에 들어가서도. 친근감 있게 다가섰던 이들이 결국에 노리는 것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고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개새끼들이!”

“네?”

“아. 아닙니다. 그래서요?”

“납치 사건이 있은 뒤로 어려서부터 꾸준히 호신술을 익히고 주변을 경계했기에 큰일은 없었습니다만,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일종의 트라우마인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경계하게 되는. 그래서 업무적 관계 외엔 차갑고 냉정하게 행동을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 나와버렸다.

“네?”

다행히 한국어라 엘리스가 알아듣지 못했지만, 하마터면 인상 구길 뻔했다.

“트라우맙니까? 일정 거리 이상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

“일단 알겠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럼…….”

“아니요. 그 말은 내가 잠정적 강간범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네? 아니. 그건…….”

“자칫 실수라도 벌어지는 날엔.”

벼락부자. 비서에게 강간범으로 피소? 갑질에 소송까지 했던 벼락부자 이번엔 여비서에게 역 갑질? 뭐 이런 헤드라인이 뜨지 않을까 싶다.

“무서워서 일하겠어요?”

“…….”

나름 다른 반응을 기대했던 건가? 엘리스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막말로 옷깃만 스쳐도 이상한 생각 한다며 고소해 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거기다 엘리스는 변호사 아닙니까. 독하게 마음먹고 나를 갈아버리면 못할 것도 없는.”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그게 끝이 아니죠. 천문학적인 소송을 걸어서 내 통장을 반 토막 낼 수도 있는 문제고.”

엘리스는 뜨악한 표정이 됐다.

오호, 저런 표정은 또 처음 보네. 통나무처럼 딱딱한 얼굴만 고수하던 엘리스가 다양한 감정을 내비치니 그건 그것 때로 묘하게 쾌감이…… 집중하자 고주몽. 변태도 아니고 그런 거로 느끼면 이상하잖아.

“아닙니다. 절대 그럴 생각 없습니다.”

“트라우마가 무서운 이유가 뭡니까? 자신도 모르게 격한 반응을 하거나 제어되지 않는 행동을 보일 수 있어서 ‘병’으로 취급하는 겁니다. 나 역시 말도 안 되는 비서 생활을 겪으면서 적잖게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게 느껴지고 또 어떤 면에선 이해도 됩니다.”

“…….”

“하지만, 이해가 된다고 해서 내가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건 아니죠.”

“…….”

“내 말이 이상한가요?”

“아……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럼 이 이야기는 끝난 거죠?”

나는 이쯤 해 두자며 그만 나가보라는 모션을 취했다. 그런데 엘리스는 아직 끝난 게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노력하겠다고 말입니다.”

“노력. 좋은 말이죠. 하지만 이런 말도 알아뒀으면 좋겠습니다.”

“…?”

“노력은 시간을 연료로 한다. 흘러버린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그 결과마저 돌이킬 수 없다면.”

“예정되지 않은 미래를 예단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도 없다!”

엘리스는 내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나오지도 않은 결과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불합리하다고 했다.

“지금 싸우자는 거죠?”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쭈. 언성까지 높이네. 이거 겉으로만 얼음 땡이고 사실은 다혈질에 폭력적 성향을 지닌 거 아냐? 그리고 보니 호신술을 오랫동안 익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지나가다가 옷깃이 스쳤다고 엎어치기라도 당하는 날엔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겠다.

“단순히 납치 몇 번 당하고 강간 위협에 처했다는 경험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뭡니까? 자기합리화가 됐든. 아니면 변명이 됐든. 엘리스가 내놓은 이야기입니다. 이제 와서 다른 이유라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아, 놔. 피곤하네. 내가 왜 이런 일로 언성까지 높여야 하는데!”

이번엔 내가 되려 소리를 질러버렸다.

“…….”

엘리스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야. 내 목소리가 그렇게 컸나? 그렇게까지 볼 일은 아니잖아. 언성도 네가 먼저 높였고!

“보스!”

“아 왜!”

“얼굴이 왜…… 눈가가 퀭합니다!”

“엉?”

“로버트! 보스가…….”

아, 내 얼굴 때문에 놀란 거였어? 야! 그렇다고 로버트까지 찾으면서 뛰어나갈 건 아니잖아.

“잠깐!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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