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43화 (44/224)

043장. 몽둥이를 들었을 땐, 맞아 죽을 각오도 한 거지?

기조 1팀에서 이진상이 방송국으로 달려갔다는 연락이 왔다.

천기득은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진상이가 아무리 망나니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해도 이건 무리수다. 정상적 대응이 아니야.’

방송국. 그것도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를 치고 들어간다? 내일 아침이면 언론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들고일어날 일이다. 아무리 대왕 그룹이 대한민국에서 월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뭘 노리는 거냐.’

톡톡톡.

손가락 두들김을 반복하던 천기득이 눈을 번뜩였다.

“증권사 사장들 모두 연락해!”

“이 시간에 말입니까?”

“당장!”

“네. 실장님.”

“메시지는 하나다. 공매도 물량을 내놓지 말 것! 만약, 그게 어렵다면 시간이라도 끌라고 해. 대왕 그룹 천기득 이름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면 된다.”

“증권사에서 말을 듣겠습니까? 공매도 물량을 잡아 돌리는 것은 그들에게 만만치 않은 수익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내 이름을 말하라고.”

“알겠습니다.”

비서실은 천기득의 지시에 따라 정신없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연락되지 않는 사장은 현장팀을 이용해 위치를 파악하고 직접 사람을 보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나름 머리를 굴렸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천기득은 스마트 폰을 꺼내 이진상의 번호를 찾았다.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질 않는다.

“이 상무 옆에 붙어있는 놈이 누구지?”

“확인하겠습니다.”

“번호 확인해서 가져와.”

“네. 실장님!”

새벽녘 곤하게 단잠을 자고 있던 인사과 책임자들은 비서실 긴급 전화를 받고 모두 혼비백산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비서실에서 새벽 전화라니. 지시사항을 확인한 책임자들은 곧바로 전화를 돌렸고 10분도 되지 않아 천기득이 원하는 번호가 손에 들어왔다.

“임시로 붙여 놓은 직원이라. 인사 정보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끽해야 10분이지만, 1분 1초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비서실에선 이조차 민망할 일에 속했다.

번호를 받아든 천기득 곧바로 통화를 시도했다.

― 여보세요?

“천기득이다. 이 상무 바꿔.”

― 에? 네. 네.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들더니 잠시 뒤 이진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네.

“그만둬라.”

― 뜬금없네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진상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말을 돌렸지만, 천기득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공매도 작업은 안될 거다.”

― …….

“어디서 자금을 끌어왔는진 모르겠지만, 물량 자체를 잡아낼 수 없을 테니까.”

― 흐흐흐. 그 늙은 나이에도 머리 돌아가는 걸 보면.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생각해 내다니.

이진상은 천기득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자복했다.

“네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천기득의 말에 이진상은 흐흐흐 웃음을 흘렸다.

― 그런데 그게 말처럼 되겠습니까? 증권사가 바보도 아니고 보장된 수익을 포기해요?

“전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만큼은 되지 않을 거다. 그러니 돌아가.”

― 어쩌죠. 그건 안 되겠는데.

“끝까지 가겠다는 거냐?”

― 실장님이야말로 더 늦기 전에 노선을 정하시죠. 전자 이광수 사장. 아니 큰 형님이라고 해야겠군요. 그 인간은 안됩니다. 대(大) 대왕의 수장은 과감해야 하고 치밀해야 하며, 어떤 적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그저 서열이 앞섰다는 것만으로 그룹의 주인이 된다면.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겁니다. 큰형은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진상이 네가 그 옆을 지켜주라고 하지 않았느냐.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차기를 노리면 된다. 내 말대로 한다면 소송 건도 시끄럽지 않게 마무리 지어주마.”

― 누굴 호구로 압니까? 그 인간이 능력은 없어도 욕심은 하늘을 찌르는데. 옆을 지켜요? 죽을 자리로 들어가라고 떠미는 겁니다. 그 좋은 머리가 그쪽으로는 치매라도 걸린 겁니까?

이진상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한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짓이. 주가 조작이냐?”

― 공매도가 왜 조작입니까? 법으로 보장받은 투자 기법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다 막아버렸다니. 천기득이란 이름이 크기는 합니다.”

이진상의 목소리가 처음과 달리 낮아졌다.

― 힘이 빠지긴 합니다만. 그게 안 되면 시원하게 폭탄이라도 하나 터트리고 오죠. 어차피 장이 열리면 하락은 당연할 것이고. 떨어지는 김에 좀 더 떨어지라고 푸시하는 정도는 가능할 것 같으니 말입니다. 공매도가 안 되면 하락장에서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겠습니다.

“흐음. 그동안 챙겨 놓은 주식이 꽤 되나 보구나. 콩고물도 상관없다고 하는 걸 보니.”

― 여기서 차를 돌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 않습니까.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화풀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더는 너를 숨길 생각이 없구나.”

― 숨겨요?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기는 합니까? 망나니 가면도 지긋지긋합니다.

“원하는 걸 이야기해!”

천기득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 그런 거 없습니다. 소송을 떠나서 그룹에서도 쫓겨날 판인데. 방송국 다 와 갑니다. 이만 끊죠.

“잠깐!”

천기득은 전화를 끊으려는 이진상을 급하게 잡았다.

― 이번에도 영양가 없는 소리 늘어놓으면 대왕 전자 사장의 비자금 폭탄도 터지게 될 겁니다. 그 정도 한 수는 오래전부터 준비해 두었으니.

대왕 회장의 복심이라 일컬어지는 천기득이지만 정작 천기득이 가장 꺼리는 것은 회장의 안위가 아니라 대왕 그룹에 피해가 가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완성한 거대 제국! 그 제국에 재상이나 다름없는 인간이 천기득이니 대왕이라는 제국에 손상이 가는 걸 넋 놓고 지켜볼 사람이 아니다.

이진상은 그런 천기득의 성향에 마지막 패를 걸었다. 여기서 거부를 당한다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제국의 주인 자리는 여럿에게 힘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단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정적을 숙청하는 것부터 시작이 된다. 어차피 끝장이라고 생각한 이진상은 죽을 땐 죽더라도 그냥은 죽지 않겠다며 협박을 한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민을 반복하던 천기득이 따지듯 말을 날렸다.

“기회를 준다면!”

― …….

“생각을 바꾸겠느냐?”

― 기회 나름이겠죠.

이진상은 어설픈 회유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냉정하게 말을 건넸다.

“만약.”

― …….

“판을 뒤집을 능력을 보여준다면.”

― 뒤집어 드리죠.

“허!”

이진상이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하자, 천기득은 어이없다는 듯 소리를 냈다.

“네가 발톱을 드러내면 이 사장도 지켜만 보진 않을 거다.”

천기득의 말에 이진상은 알게 뭐냐는 듯 자신의 용건만 이야기했다.

― 인터넷 돌리고 있죠?

“그래.”

― 내가 틈을 만들면 여론을 바꾸세요.

“여론을? 지금 상황에서?”

― 지금이니까 하자는 겁니다. 악의 축이 대왕 그룹이 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좋다. 네가 틈을 만들어 낸다면 이쪽도 전력을 다해 분위기를 바꿔보지. 하지만 실패를 한다면!”

― 조용히 죽어드리죠. 존재가 사라지면 근심도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

― 성공한다면 천 실장님은 제 충신이 되어야 할 겁니다.

“성공한다면.”

천기득은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크크크. 어차피 실패하면 조용히 묻어버리실 분 아닙니까. 소송이든 뭐든 당사자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천기득 실장님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니. 저라고 다를 게 없겠죠.

“지켜보마.”

천기득은 이진상과 통화를 끝내더니 곧바로 구형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인터넷 생방송 채팅창. 그거 좀 건드려야겠네. 누가 구골을 해킹하라고 했나! 애들을 그쪽으로 밀어 넣어서 화면을 장악하라고!”

* * *

여론이라는 게 참 재밌다.

참을 수 없다는 듯 분노를 터트리다가도 금세 돌아서서 욕하던 이를 바꿔버린다.

이진상의 발언은 내가 준비한 갑질이라는 주제를 단박에 박살 내 버리고 국민의 재산권을 지키는, 백기사로 이미지 변신을 했다.

엿 같은 직장 생활과 그로 인해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몇몇 사람의 비극보다 대왕 그룹 주가가 내려가는 것이 더 큰 걱정으로 다가선 것이다.

방송에 나온 재벌 4세의 갑질이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일부 공감하는 정도였다면, 당장 자신의 통장 잔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가 변동은 손톱 밑에 가시다.

인터넷 채팅창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모두 주식에 몸담은 것은 아닐 텐데, 올라오는 글마다 이진상을 환호하고 나를 욕하는 글로 도배가 됐다. 이진상을 욕하는 글이 올라오면 눈 깜짝할 새 다른 글에 밀려난다.

“크크큭.”

웃음을 흘리자, 데스크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고주몽 씨. 그 웃음은 인정을 한다는 말이겠죠?”

이진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인정.”

나는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이진상이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자, 채팅창은 기름이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간간이 매국노, 역적, 진짜 범죄자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런 내용으로 채팅창이 뒤덮였다.

“이진상 상무님.”

“네. 고주몽 씨.”

“내가 인정한다는 것은 주가니 뭐니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왕 그룹의 인터넷 댓글팀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이진상은 내 말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렇게 해주길 원하는 것 같으니.”

“?”

“원하는 대로 해줄게요.”

“지금 대놓고 주가를 조작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이진상은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대놓고 이야기하는 건 조작이 아니죠. 선전포고? 뭐 그런 거라고 해 둡시다. 누구 말대로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니 졸부 근성을 보이고 싶어지네요.”

나는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듯 처절한 눈빛으로 국민 여러분을 외쳤던 이진상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내가 사마리안 콤플렉스도 아니고. 안될 게 있습니까. 이렇게 공개적으로 악당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는데.”

“지금 국민을 상대로 협박을…….”

나는 이진상의 말을 막았다.

“협박은 무슨. 엿 같은 갑질로 사건을 키운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고. 그걸 막아 보겠다고 무리수를 쓴 것도 당신이지. 가만히 자빠져 있었다면 소송 정도로 끝났겠지만! 또 이걸 이용해서 주식에 손대려 한 사람도 당신이잖아. 상선아. 내 말이 틀리냐?”

“네?”

“형 말이 틀렸냐고.”

“…….”

상선은 느닷없이 자신에게 질문이 날아들자 눈만 껌뻑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솔직히 너도 엿 같잖아. 미국에서 이 상무에게 총 맞아 죽을 뻔했다면서. 기조실이랑 이 상무가 손잡고 너 작업 친거, 이야기 다 들었다.”

“!”

설마 여기서 미국의 일이 튀어나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이진상. 나상선은 둘 다 동공이 흔들렸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조카가 삼촌을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삼촌이 그걸 알아차리고 조카 뒤통수를 쳤다가 맞을 것이다.

나는 슬쩍 채팅창을 내려봤다.

“재미있지 않냐? 가족 간에 죽고 죽이는 이야기를 공개했는데, 채팅창은 여전히 주식 이야기뿐이네. 네가 보기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

나상선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기서 그런 말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냐는 그런 눈빛이다. 하지만. 뭐? 너희는 마음껏 떠들어도 되고 나는 안돼?

“병신 호구, 경험 부족. 오케이. 나도 인정.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거든. 하지만 어쩌겠냐. 사는 게 내 마음대로 된다면 내가 이 자리까지 나올 일도 없었겠지.”

내가 자기 비하적 발언을 쏟아내자 상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과거엔 말 그대로 자기 비하일 뿐이지만, 지금 내 위치는 그저 한탄으로 끝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몽둥이를 들었을 땐, 맞아 죽을 각오도 한 거지?”

“고주몽 씨. 말을 가려서 하세요!”

이진상이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딱쇠야, 딱쇠야 하면서 길가에 돌멩이처럼 가지고 놀았는데. 당연히 기분이 상하겠지.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나는 다시는 딱쇠가 될 생각도 없는데. 그냥 개운하게 한 판 붙자. 돈 많은 졸부의 무식함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줄게.”

이진상은 잡아먹을 듯 나를 노려봤지만, 나 역시 지지 않고 그를 노려봤다.

“채팅방에 올라오는 글. 이거 아무리 봐도 정상을 넘어선 거 같지 않냐?”

“국민들의 재산에 흠집을 내려는 게 밝혀졌는데, 넘지 못할 선이 무엇인지 모르겠군.”

이진상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콧방귀를 날렸다.

“아까 이 상무 당신이 상식 운운했잖아. 그런데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이건 상식을 깨는 일이거든. 내가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여기에 나오긴 했어도 얼마 전까진 소시민 그 자체였어. 그런 내가 이 방송을 봤으면 분노해서 벌떡 일어났을 거야. 얼마나 국민을 엿같이 생각하면 카메라에 다 찍히고 녹음까지 됐는데도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큰소리치며 뻔뻔할 수 있는지.”

“난 사실을…….”

“사실? 웃기고 있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게 할 소린가 싶다. 이진상 너는 정말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구나. 그동안은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번엔 안될 거야. 위에서 댓글 팀 돌려서 분위기 바꿔보려고 한 것 같은데. 맘대로 해라. 댓글을 달던 악플을 달던 알 게 뭐야.”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강 미팅? 그거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시작된 거야.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책임져. 몽둥이를 들었을 땐 너도 맞아 죽을 각오를 했을 거라 믿는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진상의 헛소리 따위 더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살인마 나상선과 얼굴을 마주 보고 싶지도 않았다.

“한 국장님.”

“네. 고주몽 씨.”

나의 발언이 너무 과격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성희 국장의 표정은 방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딱딱히 굳어있었다.

“연락하겠습니다.”

나는 한성희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데스크를 벗어났다.

로버트와 경호팀이 재빨리 스크럼을 짰고 이동 경로를 채크했다.

부서진 문 사이를 넘어서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이 개진상. 진상이면 진상답게 살아. 갑자기 사람 흉내 내지 말고. 그리고 상선아. 아니 이진선.”

“어…… 형.”

“지지든 볶든 너희들끼리 해. 엄한 사람 목숨 잡아먹지 말고.”

“…….”

“그러니까. 연락하지 마라. 인생 끝장나고 싶지 않으면.”

“…….”

“그리고 거기 경찰분들. 이진상 상무 꼭 체포하시기 바랍니다. 이거 이대로 넘어가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스튜디오를 나가버렸다.

용기? 분노? 격분? 가져다 붙이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이날 내가 느낀 감정은 상대할 가치가 없는 것들에 심력 낭비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착한 부자? 모두의 선망 받는 존재? 다 부질없다.

내 편이 아니면 그냥 적일 뿐이다. 이미 적임을 뻔히 알고 있는데, 이리저리 재가며 고민하고 돌아갈 이유가 뭔가. 나는 제이코에게 전화를 넣었다.

― 네 보스.

“대왕 전자. 내 손에 올려 주세요.”

― 준비하겠습니다.

“로버트.”

“네 보스.”

“나상선. 사이코패스입니다. 사람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놈이죠.”

“걱정 마십시오. 보스 몸엔 손끝 하나 대지 못하고 만들겠습니다.”

로버트는 두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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