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장. 개진상과 사이코패스, 벼락부자가 방송에 출연했지만, 관심은 다른 사람이 먹었습니다.
“국장님. 아무래도 방송은 힘들 것 같죠?”
한성희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한성희는 리시버를 다시 꽂더니 하 PD 쪽에 신호를 보냈다.
방송 화면이 어수선한 스튜디오에서 데스크 쪽으로 이동했다.
“시청자 여러분. 특별 생방송은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장 여건상 방송을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뭔 소리야. 조폭도 방송해 놓고. 그냥 계속하자!
▶ 옳소. 계속하자.
▶ 내 기억이 맞다면, 스튜디오에 이진상 있음.
▷ 이진상이 미쳤냐? 여길 왜 와?
▷ 아까 잠시 화면에 비쳤음.
▷ 조폭 데리고 와서 소리 지른 사람 맞지?▶ 비서들 말만 듣지 말고, 당사자 말도 듣자!
▶ 이진상에게 기회를 달라!
▶ 이진상! 이진상!
방송을 마치겠다는 말에 너튜브 시청자들이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한성희는 그들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클로징 멘트를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시청해주신…….”
인사말을 전하던 한성희가 잠시 말을 멈췄다. 카메라 너머에 있던 이진상이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로버트와 경호팀이 앞을 막아서며 내 쪽을 바라봤다.
― 보스. 어떻게 할까요?
관계자에게 헤드셋을 받아든 로버트가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할까.’
이대로 방송을 끝내는 게 맞는지. 아니면 이진상의 진입을 용납할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면, 대응법은 이미 준비를 해 둔 것 같은데…….’
지금까지 방송만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거의 얻어 냈다. 딱히 아쉬울 건 없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버트가 이진상에게 길을 열어줬다.
작별 인사말을 내놓던 한성희가 눈치 빠르게 멘트를 수정했다.
“늦은 밤까지 시청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피곤하시겠지만, 채널 고정 부탁드립니다.”
한성희는 스튜디오 바깥으로 시선을 맞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대왕 전자 이진상 상무를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 워워워! 진짜 나와?
▶ 조폭을 데리고 온 사람이 이진상 본인이라고?
▶ 방송 미친다! 드라마 결방했다고 지랄하던 놈들 다 버로우해라.
▶ 이게 영화라면 천만 각. 인정?
▷ 이진상 상무님 회사에서 젠틀하고 일 잘하시기로 유명합니다.▶ 대왕 직원분. 아직 안 주무셨어요?
▷ 잠이 오겠냐? 초비상이겠구만.
▷ 대왕분들 자다 일어나 댓글부대에 입영하셨습니다.
▷ 떡상. 가즈아~ 코인은 비토코인!
한성희의 소개말에 이진상이 스튜디오 안쪽, 데스크에 다가갔다. 그러자 내부고발 비슷하게 이진상을 디스하고 있던 전직 수행비서들이 불안한 표정이 됐다.
“국장님. 초대 손님들이 불안해하시는데 합석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한성희가 전직 비서들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멘트를 쳤다.
“시청자 여러분. 두 번째 초대 손님을 모시기 위해 잠시 데스크 조정을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평소의 방송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 방송은 룰 브레이커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방송 중간에 사람이 빠지고 좌석 배치가 새로 되는 장면까지 그대로 송출이 됐지만, 이걸 문제 삼거나 방송 똑바로 해라고 딴지를 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오, 좋아. 현장감 있어.
▷ 이게 리얼이구나.
▷ 생방송의 신기원이다.
▷ 다른 방송도 이렇게 하자! 말만 생방이지 시나리오 짜놓고 그런 척 하는 거잖아.
▷ 옳소!
데스크 정리가 끝나자 한성희가 중앙에 내가 우측, 이진상이 좌측에 자리를 잡았다.
한성희가 사회자 포지션을 잡고 나와 이진상이 각각 반대진영 토론자가 된 모양새다.
그때, 스튜디오 뒤쪽에서 구경꾼을 자처하고 있던 나상선이 하 PD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어. 누구십니까?”
방송 관계자 외엔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다. 뭐, 이미 조폭이 왔다 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들어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몽이 형이랑 같이 비서 생활했던 나상선이라고 합니다.”
“주몽이 형? 아. 고주몽 씨의 동료분?”
“하하. 네.”
“네. 말씀하시죠.”
“저도 방송에 출연할 수 있을까요?”
“네?”
하 PD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상선을 바라봤다.
“저 출연하면 시청률이 폭등할 겁니다.”
하 PD는 당당한 표정으로 시청률 운운하는 상선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장님에게 물어는 보죠. 하지만, 비서분들 인터뷰는 일단락된 상태라.”
“네. 상관없습니다. 아, 주몽이 형에게도 물어봐 주세요. 비서실에 있을 때 제가 제일 친했거든요.”
하 PD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성희에게 연락했다.
― 국장. 고주몽 씨 직장 동료라는 분이 방송 출연을 요청했습니다. 함께 비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하 PD의 연락에 한성희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PD 옆에 서 있는 젊은 남자를 확인하더니,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출연 신청자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출연 신청자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한성희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나상선 미친 사이코패스다.
이진상이 목적성이 확실한 미친놈이라면, 나상선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미친놈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하더니 삼촌 조카 간에 쌍으로 미쳐 날뛰고 있다.
나는 한성희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진상이야 이미 터진 폭탄이니 그럭저럭 상대할 만하지만, 나상선은 타이머 없는 살인 폭탄이다.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을 내 옆에 앉히고 싶지 않았다.
한성희의 신호를 받은 하 PD가 상선에게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말한 거 맞아요?”
“네. 그러니 물러나 계시길 바랍니다. 스태프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상선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스튜디오 구석으로 조용히 물러났다. 하지만 데스크 쪽을 바라보는 상선의 눈빛은 그 어느 때 보다 번득였다.
처음엔 이진상이 악수를 두었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상선은 이진상이 직접 이 자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의심스럽다는 듯 숨겨진 목적을 찾아내고자 연신 눈알을 굴려댔다. 그러다 뭔가 힌트를 잡아냈는지 눈을 번쩍였다.
“진짜 그거라면 이렇게는 안 되지.”
“미안합니다. 뒤쪽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하 PD가 다시 한번 물러나라고 요청을 했다.
“그러면 주몽이 형 직장 동료 말고. 대왕 전자 가족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고 전해요. 만약 내 출현을 막으면 편파 방송이라고 고소하겠습니다.”
“네? 누구요?”
“저기 앉아 있는 이진상 상무가 내 큰형입니다.”
하 PD는 상선의 말에 눈을 껌뻑이더니 재빨리 한성희에게 무전을 날렸다.
― 국장. 아까 고주몽 씨 직장 동료하고 했던 사람 말입니다. 대왕 전자 가족이랍니다. 이진상이 큰형이라고 하는데요.
리시버에서 들려오는 내용에 한성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 출연 안 시키면 편파 방송이라고 고소 넣는답니다. 어떻게 해요?
망가질 대로 망가진 방송에 고소를 넣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은 새롭게 나타난 인물이 정말 이진상의 동생이 맞는다면 이건 고민해 볼 문제다.
“고주몽 씨.”
“네. 국장님.”
“한 분을 더 모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내가 슬쩍 고개를 저으며 반대 의사를 보였지만, 한성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방금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여기 계시는 이진성 상무님의 동생분이 스튜디오에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한성희의 멘트에 이진상은 물론이고 시청자들 역시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 뭐냐. 오늘 여기서 대왕 가족 행사라도 하는 거냐?
▶ 동생이라고? 이진상 동생 정보 좀 뿌려봐!
▶ 빨리 대왕 족보 좀 털어봐라.
▷ 둘째가 이진형 건설 이사고 셋째는 이연아 유통 이사다.
▷ 워, 이진상도 젊은데 동생들은 더 어리지 않나? 그런데 건설이랑 유통 이사야? 이진상 몇 살이냐?
▷ 이진상 36살. 이진형, 이연아는 33. 26.
▷ 어처구니가 없네. 서른 초반에 상무, 이사?
▷ 재벌가는 다 그렇게 함.
▷ 재벌가는 다 그렇다고 함.
▷ 숟가락 색깔이 다르잖아. 새삼스럽게 놀라는 척하기는.
▷ 이연아는 이십 대 중반임. 나 서른 하난데 이제 대리 달았음.
▷ 난 마흔셋인데. 아직도 과장님.
▷ 만년 과장이 무슨 자랑이라고.
▷ 만년 과장이 우습냐? 안 잘리고 버티려면 직장 생활 만렙 찍어야 가능.
▷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어디서 한탄 질이야.
동생이 현장에 찾아왔다는 말에 이진상이 급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진형과 이연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하 PD와 1번 카메라를 방패 삼아 모습을 감추고 있던 나상선이 성큼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어?”
나야 나상선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저 미간을 찡그린 정도지만, 이진상은 굉장히 놀란 눈빛이다.
하긴, 죽었다고 알려진. 아니 당연히 죽었어야 할 나상선이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죽였지 않았던가.
이진상 옆에 의자가 추가되고 나상선이 웃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FD 한 명이 재빨리 대왕의 가족 정보를 한성희에게 전달했다.
“이진상 상무의 동생분이라고 했는데, 간단하게 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한성희의 말에 나상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진상 상무의 동생. 이진선이라고 합니다.”
“네?”
한성희는 FD가 전해 준 파일을 확인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진형 이사가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알기론 이진상 상무님의 남동생은 이진형 이사라고 알고 있는데요.”
“아, 대외적으론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만.”
나상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셋째 이진선 맞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느라 그동안 국내엔 없었죠. 형님. 잘 지내셨죠. 어렸을 때 보고 처음이니까. 20년은 넘었네요?”
나상선은 헤어졌던 가족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이진상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진상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동생이 아니라고 했다간 무슨 소리를 해댈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저 그렇게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시끄러워져봤자 꼬인 족보만 공개될 뿐이다.
한성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해 듣기로, 여기 계시는 고주몽 씨의 직장 동료였다고 하셨는데. 그건 무슨 말인가요?”
“동료 맞습니다. 잠깐이지만 같이 비서실에 있었거든요. 물론 주몽이 형은 제가 이진선인지 몰랐을 겁니다.”
그래. 몰랐었지. 하지만 지금은 알아.
중증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무슨 생각으로 여길 찾아왔는진 모르겠지만 이번엔 병신같이 당하지 않을 거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저 비서실 막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나는 상선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니까. 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일반 직원으로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하셨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랬었죠.”
“그랬었다는 말은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그런 말씀인가요?”
“보다시피요.”
나상선은 스스로 신분을 밝히지 않았냐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좋습니다. 신분은 여기 계신 두 분이 보장을 해주시는 것 같으니, 4부 방송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한성희가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스튜디오 안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스태프들과 하 PD는 또 조폭인가 싶어 움찔 놀라는 모습이 됐다. 로버트는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 그들 앞을 막아섰다.
하 PD가 FD에게 눈짓하자,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들의 신분을 물었다.
“어디서 오셨는지…….”
“우리는 대왕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아!”
기조 1팀. 이진상이 방송국에서 사고를 치지 못하게 하려고 쫓아왔던 이들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이미 온갖 사고는 다 터진 뒤라 무의미한 짓이 돼버렸지만, 이진상이 방송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만큼은 기필코 막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 국장. 대왕 그룹에서 나왔답니다.
리시버에서 등장인물의 정체를 알려왔다. 한성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고 하는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스튜디오로 밀려들었다.
“경찰입니다!”
“모두 비켜서세요!”
사복과 정복을 입은 경찰 수십 명이 스튜디오 안과 밖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 대왕 그룹이나 경찰이나 방송을 막으려고 온 것 같은데 말입니다.
경찰은 국정원 지원 요청을 받아, 주몽을 보호하려고 달려온 것이지만, 앞서 있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게 오해 할 만도 했다.
하 PD의 말에 한성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시청자 여러분. 오늘 방송 참 스펙터클한 것 같습니다. 또 새로운 손님들이 스튜디오에 도착하셨네요.”
한성희가 카메라 너머를 가리켰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들이 방향을 바꿔 스튜디오 안을 비췄다.
로버트와 외국인 경호원들. 대왕 그룹 기조실 직원들 그리고 사방을 에워싼 경찰들까지. 그대로 방송에 노출이 됐다.
기조실 직원이 곧바로 문제를 제기했다.
“상대방의 허락을 받지 않고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그때 차분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가 기조실 직원을 막아섰다.
“저스트 모먼트!”
“누구십니까?”
스튜디오 구석에 조용히 박혀 있던 엘리스가 또깍또깍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엘리스는 ‘익스큐즈미’와 함께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기조실 직원은 아찔한 미모의 금발 아가씨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껌뻑였다.
“명함 확인해.”
엘리스의 미모에 넋 놓고 있는 직원에게 기조 실장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아. 네.”
재빨리 명함을 확인한 직원이 실장에게 정보를 건넸다.
“에이스 로펌이라는 곳의 변호사입니다.”
“에이스 로펌?”
기조실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소송을 넣은 미국 법무법인의 이름도 에이스 로펌이다.
생긴 것만 봐선 전혀 변호사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로펌 소속의 변호사라면 함부로 움직이기가 어렵다. 자칫 물리적 충돌이라도 일어날 경우 차후 소송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상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건을 늘어놨다.
“당신들은 사유지에 허가받지 않고 발을 들였으며, 명백히 방송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방송국이며 카메라 촬영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입니다. 화면에 찍히기 싫다면 우리 쪽이 아니라 당신들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와…… 왓?”
“겟 아웃.”
엘리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스튜디오 입구를 가리켰다.
로버트가 헤드셋을 빌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 옵서버로 참여 중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제가 요청을 했습니다.
로버트의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와 관련해선 로버트가 책임자이니 이 상황에 엘리스를 앞세웠다고 해서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대기실에서부터 엘리스를 눈여겨봤던 한성희는 눈을 반짝였다. FD에게 재빨리 손짓해 호출하더니 감독들에게 엘리스를 집중적으로 찍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엘리스는 대왕 그룹 기조실 직원들뿐 아니라 경찰들에게도 명함을 건넸다.
“이 방송은 외부인에 의해 위협, 협박,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스튜디오 보호를 요청합니다.”
“에? 네?”
명함을 받아든 경찰이 당황한 눈빛으로 엘리스를 바라봤다.
“부탁드립니다.”
엘리스가 재차 요청하자 경찰은 동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누구…… 영어 할 줄 아는 놈 있냐?”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던 동료 경찰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범죄 관련 언어라면 사전을 만들 정도로 모르는 게 없지만, 영어는…… 글쎄다.
▶ 어억! 누…… 누구?
▶ 캑. 물 마시다 죽을 뻔! 누구시죠?
▶ 뭐야. 미스 유니버스가 여기서 왜 나와.
▶ 눈이 호강 중입니다.
▶ 마음도 호강 중입니다.
▶ 천사에 카메라 고정해주세요. 오징어들은 질렸습니다.
▶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정보 좀 파봐!
엘리스의 얼굴이 화면에 잡히는 순간, 너튜브 채팅창이 엉뚱한 방향으로 폭발했다.
재벌 4세 갑질 개진상과 중증 사이코패스, 글로벌 벼락부자가 방송에 출연중이지만,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관심은 엘리스 R 고든이 다 먹어버렸다.
화면에 슬쩍 비친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너튜브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한숨을 내 쉬었다.
▶ 오징어 삼형제는 빼 버리고 여신을 데스크로!
▶ 옳소. 오징어 질렸음.
▶ 한 국장. 뭐하냐. 빨리 일해라.
▶ 벼락부자에 재벌 4세 섭외력을 여신에게도 보여주시오!
▶ 한 국장. 우린 당신만 믿습니다.
순식간에 방송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엘리스의 미모 이야기가 화면을 도배해 버렸다.
빌어먹을 외모 지상주의. 이래서 누가 방송에 집중을 하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