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장. 굿 아이디어?!
이진상 상무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달려왔던 기조실 직원들은 이 상무가 잔뜩 흥분해서 방송국으로 달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곧바로 천기득에게 보고를 했다.
“저희가 한발 늦었습니다.”
― 후.
천기득의 한숨 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까지 그대로 들려왔다.
“어떻게 할까요.”
― 방송국으로 가. 가서 일이 커지지 않도록 막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조 1팀 팀장은 통화를 끝내고 직원들을 돌아봤다.
“방송국으로 간다.”
“네. 실장님.”
비서실에선 기조 1팀으로 불리지만, 대외적으로 1팀의 공식 명칭은 (1) 기조실이다.
그래서 팀장의 직급은 박산호가 그랬던 것처럼 ‘실장’이고 직원들 역시 그렇게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팀마다 맡은 임무가 있고, 이들은 비서실 지휘하에 움직인다.
이진상 관리 임무를 맡았던 박산호 팀이 규정을 어기고 이진상에게 붙었다가 며칠 전, 공중분해 된 일도 있었다.
기조 1실장은 지금도 박산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진상의 출신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차기 회장이 두 눈 부릅뜨고 있는데 망나니를 선택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짓이었다.
기조 1팀은 이진상의 거처를 나와 방송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실장님.”
“왜.”
“이 상무 말입니다. 이렇게까지 일을 벌일 필요가 있습니까?”
“급했겠지.”
실장의 말에 직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히려 일이 커지고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의 말에 공감한다는 표시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조금 달랐다.
“아는 거야.”
“네?”
“이대로 있다간 그룹에서 배제될 거라는 걸. 무리수를 둬서라도 방송을 막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지.”
기조 1실장은 태블릿 화면을 가리켰다.
“지금 초대 손님으로 나왔다는 놈들. 모두 이 상무의 수발들던 놈들이다.”
“저들이 내부고발자가 되면…….”
“후계 구도에서 영원히 멀어지는 거지. 망나니 재벌 후계자를 누가 인정하겠나. 아무리 그룹의 힘이 세다고 해도 국민감정은 무시할 게 못 되니까. 이 상무는 방송국을 부숴서라도 어떻게든 막고 싶은 거다.”
피가 마르는 이 상무와 달리 다른 후계자들은 TV 앞에서 팝콘 씹을 일이다.
여기서 일이 더 커진다면 시원하게 콜라까지 들이키겠지만, 그룹 전체를 놓고 봤을 땐 이미지 손상이 심각했다.
그룹 비서실과 휘하 기조 팀들은 사태가 확장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하는 처지다.
“평소에 행실을 바로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정통성은 가장 앞섰지 않습니까.”
직원이 안타깝다는 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장은 피식 웃어 보일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이진상을 차기 회장의 맏아들로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는 사람이 이진상이다.
직원의 말처럼 이 상무가 정통성 있는 후계자처럼 행동했다면 차기 회장이자 현(現) 대왕 전자 사장이 완력을 써서라도 망가트렸을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이 상무가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쓴 가면을 쓴 셈인데, 너무 오랫동안 쓰고 있다 보니 어느덧 가면 자체가 얼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를 일이지. 어쩌면, 본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도.”
“네?”
진상에 대해 질문했던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실장을 바라봤다.
“속도를 높여라. 더는 이 상무 개인의 일이 아니라 그룹 전체 이미지가 달린 일이야.”
“네. 실장님!”
* * *
▶ 와. 이거 뭐임? 실화임?
▶ 생방송 아니었어? 깜짝 쇼라면 성공적.
▶ 실카? 몰카? 이거 리얼?
너튜브 인터넷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네티즌들이 미친 듯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 JTB 젓갈 됐네. 이거 방송국 망각 맞지?
▶ 사장이랑 회장이랑 어쩔?
▶ 대왕 전자 이 상무가 누구야? 아는 사람 설명 좀.
▶ 재벌 4세임. 대왕 회장 큰 손자라고 알고 있음.
▷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래서 금요일마다 만난 여자가 누구냐고.
▶ 와 씨발. 필리핀 마약사범이 방송에 나온 거야? 약쟁이 말을 누가 믿어.
▷ 대왕 직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 누가 직원이래? 아니거든.
▷ 네. 그러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 떡상. 가즈아~ 코인은 비토코인!
▷ 에프킬라 뿌려라. 코인충 납셨다.
* * *
보안팀이 도망을 쳐버리자, 스튜디오로 통하는 길이 훤히 열렸다.
“들어가!”
“장비부터 부셔!”
부서진 문 사이로 폭력배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다.
“어!”
선봉대처럼 밀고 들어왔던 조폭 몇 명이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로버트와 그의 경호팀이 앞을 막아선 것이다.
“뭐야. 왜 갑자기 멈춰?”
“움직여!”
조폭 두목이 부하들과 함께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역시 멈칫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건 또 뭐야.”
방송국 직원들 정도나 모여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들이 등장한 것이다.
두서넛 정도면 무시하고 밀어버릴 텐데, 눈대중으로 확인된 것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 거기다 덩치는 왜 이렇게 큰지.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촤차차착!
외국인 덩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삼단봉을 뽑아 들었다.
“형님. 어떻게 합니까?”
폭력배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형님이라 불린 이도 선뜻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헤드셋을 착용한 하 PD가 1번 카메라 감독에게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 조폭들 찍어요. 이거 생방송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 어! 그래.
설마 깡패들까지 몰려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카메라 감독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 역시 모두 긴장된 표정이 됐다. 하지만 하 PD의 지시가 이어지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맡은바 업무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어? 다 때려 부수라니까!”
그때 조폭들 뒤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이진상의 독촉에 조폭이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형님을 바라봤다.
“형님. 어떻게 합니까. 그냥 밀어요?”
“씨펄. 뒷감당은 해 준다잖아. 밀어!”
형님이라는 자가 공격 명령을 내리는 순간, 하 PD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여기 카메라 보이십니까? 지금 전국에 생방송 중입니다. 잘 생각하세요.”
“뭐?”
“생방송?”
조폭들은 그제야 자신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발견했다.
“저기 모니터 보세요. TV뿐 아니라 인터넷에도 생방송 되고 있습니다.”
조폭들의 시선이 모니터 쪽으로 이동했다. 라이브라고 표시된 화면 안에는 야구방망이와 각목, 쇠파이프를 든 자신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니미. 좃도.”
조폭들 몇몇은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흉기를 뒤로 감췄다.
“지금이라도 빨리 물러나는 게 좋을 겁니다. 곧 경찰이 도착 할 테니까요.”
누구도 경찰에 연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찰이 이 시간에 다 처 자지는 않을 테고, TV든 너튜브든 보고 있는 경찰이 있다면 심각성을 알아차릴 것이다.
하 PD는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 보고자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이거 편집해서 얼굴은 가려 드리겠습니다.”
얼굴을 가려주겠다는 하 PD의 말에 조폭들이 웅성거렸다.
“형님. 이거 자리를 잘 못 찾아온 것 같은데 말입니다.”
“네. 형님. 얼굴이라도 팔렸다가는…….”
“지워 준다는데 지금이라도 물러나죠. 이거 자칫하면 빼박입니다.”
부하들의 말에 두목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멍청이들아. 이거 생방송이야. 얼굴을 어떻게 가려!”
“어?”
“아…….”
부하들이 어벙한 표정으로 ‘맞다. 이거 생방송이랬잖아.’, ‘뭐야. 그럼 우리 얼굴이 다 나간 거야?’, ‘엄마가 보면 맞아 뒈지는데.’ 이런 한심한 소리를 지껄여 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는데 그들 사이를 가르며 이진상이 모습을 나타냈다.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걸 보니,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다.
“밀어버리라니까! 뭘 멍청이 있는 거야!”
이진상의 외침에 조폭 하나가 짜증을 냈다.
“이거 생방송이라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다 찍히고 있다는데!”
“그리고 저기 외국 애들. 심상치가 않습니다.”
조폭 두목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며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진상은 뜻대로 일이 되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구겼다.
“이러고 있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돈 받고 싶으면 일을 해라.”
이진상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두목을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막 나간다고 해도 이건 아니죠. 민간인 건드는 게 방송으로 나갔다가는 인생 쫑납니다. 애들아. 뒤로 빠져. 짭새들 오기 전에.”
“네. 형님.”
불안 불안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조폭들이 그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르르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저런 멍청한 새끼들!”
이진상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스튜디오 입구를 바라봤다.
갑작스레 밀고 들어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조폭들 덕분에 스튜디오 안은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
카메라들도 데스크 쪽이 아니라 스튜디오 바깥쪽을 찍다 보니, 한성희와 전직 비서들의 대화도 중지가 됐다.
나는 헛웃음이 났다.
아무리 개진상이라고 해도 이런 멍청한 짓을 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녹화 방송이라면 모를까. 인터넷까지 생방송 되는 스튜디오에 조폭들을 데리고 들어올 줄이야.
이건 스스로 외통수에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 이진상이 멍청하다고?’
물론, 과거에 자신이 알던 이진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하지만, 당첨금을 받기 위해 호텔을 빠져나가던 날 보았지 않았던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안전에 민감한 성격인지.
거기다 기조실 박 실장 말대로라면 여기저기 돈을 날리고 투자 실패를 반복하는 것도 비자금 조성을 위해 쇼하는 거라고 했고, 망나니처럼 구는 것도 대왕 전자 사장인 이복형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마디로 겉보기와는 달리 주변을 속이는 일에 능숙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미 방송을 통해 대왕 그룹에 치명적 스캔들이 터진 상태인데, 그 당사자가 직접 폭력배까지 동원한다? 이건 무덤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이진상이 아니라 다른 이들 모르게 꽁꽁 싸매고 있는 음흉함을 생각한다면 이건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뭘 노리는 거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이진상의 행동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어으. 18. 지금 조폭 들어 온 거?
▶ 이거 실화 맞아? 뭔 놈의 조폭이 튀어나와.
▷ 헬조선 인증 중.
▷ 네. 이제 JTB 회장 보여주세요.
▷ 경찰 뭐하냐! 조폭 들어왔다.
▷ 방송국에 조폭 왔다고 신고했는데. 장난 전화라고 까였음 ―,―▶ 재들 젓갈 됐음. 전국에 조폭이라고 광고 당함.
▶ 네. JTB 조폭 동원이요. 이거 무리수 맞죠?
▷ JTB가 아니라 대왕 그룹이요.
▷ 대왕이든 JTB든 내일 장 열리면 떡락 입니다. 주식 가지신 분들 한강 정모 갑니까?
▷ 떡락쳐도 대왕입니다. 존버가 답입니다.
▷ JTB 주식 가진 사람도 존버 합니까?
▷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 한강 가라. ST 미디어 가진 애들도 초긴장해라. JTB 방송, ST 거다.
▷ 떡상. 가즈아~ 비토코인으로 대동단결!
▷ 코인충 재 좀 어떻게 해라. 안끼는 데가 없어.
▷ 저거 메크로 입니다. 못 막아요.
▷ 코인충도 댓글 부대 운영하나요?
이진상이 왜 저런 미친 짓을 하는지 의아해하던 중에 너튜브 네티즌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너튜브 반응을 확인하고 이진상의 표정을 슬쩍 살폈는데, 휴짓조각처럼 인상을 구겨도 부족할 판에 히죽 웃고 있다.
이 상황에 웃는다고?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스마트 폰을 꺼내 제이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보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계획과 달리 일이 너무 커지는거 아는가 싶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 그런데 갑자기 전화는 왜?
“한가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 네.
“JTB랑 대왕 전자 또는 그룹의 주식이 폭락할까요? 한다면 얼마나 떨어질지 예상해 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 오! 굿 아이디어!
“네?”
― 조나단과 통화를 해야겠습니다.
제이코는 나중에 통화하자며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굿 아이디어라고? 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이진상을 바라봤다.
이진상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방송에 나간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룹 내에서도 궁지에 몰리거나 심하면 내쳐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뭐가 됐든 살아날 궁리를 해야 맞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해외로 도망을 치던지 잠수를 타던지 하는 게 맞는 것이다.
“설마…….”
이진상이 방송에 나간 것보다 더 큰 사고를 유도해서 대왕 전자나 그룹의 주식 가치를 최악으로 떨어트릴 생각이었다면?
만약 그럴 생각으로 조폭까지 동원해 일을 벌였다면 지금의 상황이 얼추 맞아떨어질 것도 같았다.
솔직히 제정신으로 생각해 낼 방법은 아니지만, 이걸 이용해 폭락한 주식을 사들일 생각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룹에서 찍혀 나가거나, 잡혀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작전인 것이다. 말 그대로 궁지에 몰렸으니 살아날 방법으로 아예 벼랑끝 전술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진상 짓에 특화된 이진상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든다.
내가 너무 과하게 상상을 한 건가 싶다가도 이진상이라면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이진상은 진짜 미친놈… 아니 머리 좋은 미친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온갖 의심이 밀려드는 그때, 이진상 뒤쪽으로 익숙하지만 절대 여기서 볼 수 없는. 아니, 봐서는 안 될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
나와 눈이 마주친 ‘그놈’이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나상선?
니가 어떻게…….
죽은 거 아니었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여대던 중증 사이코패스.
그 미친놈이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오면….
안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