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장.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연구소 폭발사고로 죽었다고 알려진 나상선이 인천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짐을 챙겨 들고 공항 밖으로 이동하던 상선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상선과 함께 입국한 대머리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 없는 사이 한국에 재미난 일이라도 생긴 건가?”
“네?”
“잠시만.”
상선은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머리 사내는 한 차례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내를 호위하듯 거리를 유지했다.
“저기 말씀 좀 물을게요.”
상선은 중년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네?”
여인은 무슨 일이냐는 듯 상선을 바라봤다.
“한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상선이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아. 방금 입국하셨나 보구나.”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TV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상선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손끝을 쫓았다.
“글쎄. 글로벌 복권 당첨자가 한국 사람이라지 뭡니까.”
“한국 사람이 당첨자라고요?”
상선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그렇다니까요. 얼마라더라. 아무튼, 어마어마한 부자가 한국에 탄생했다고 다들 저러고 있는 겁니다.”
상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람들 틈 사이로 TV 화면을 바라봤다.
“어? 뭐야.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상선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TV 화면 속 주몽을 바라봤다.
“이동하셔야 합니다.”
“어. 그래. 가야지.”
상선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대머리가 이동할 시간임을 알렸다.
“와. 이거 믿어야 해 말아야 해.”
상선은 발길을 돌리면서도 TV 쪽으로 자꾸만 고개가 돌아갔다.
그때 몇몇 사람이 스마트 폰으로 방송을 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너튜브다.
차에 탑승한 상선은 곧바로 스마트 폰을 꺼내 너튜브 방송 채널을 찾아 들어갔다.
“동양계라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그게 주몽이 형일 줄이야. 이거 생각할수록 충격이네. 뒷골이 띵할 정도야.”
주몽의 방송을 지켜보던 상선은 갈증 난 사람처럼 자꾸만 입을 쩝쩝거렸다.
“형. 아무리 돈이 썩어 돌아도 그렇지. 연구비에 무슨 200조를 투자해. 기간 시설이면 몰라도 사람에게 그 돈을 다 투자하는 건 무리지.”
상선은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안 되겠다. 빨리 가서 돈 쓰는 법을 좀 알려줘야지. 이러다 우리 주몽이 형 금방 거지 되겠어.”
상선은 키득키득 웃음을 흘리며 잔뜩 기대 어린 표정이 됐다.
“지금 이거 어디서 방송을 한다고 했죠?”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던 차량 기사가 재빨리 대답했다.
“네. 도련님. JTB 방송국입니다.”
“그게 어딘지 알아요?”
“물론입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요.”
“네?”
기사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됐다.
“왜 그런 표정이죠?”
“그게. 회장님께서…….”
“에이.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실까. 차가 밀린다고 해요. 도로 사정이 엉망인데 어떻게 합니까.”
상선의 투덜거리는 말에 기사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올슨. 기사님이 내 말을 듣기 싫다고 하시네.”
상선은 조수석에 올라탄 대머리를 바라봤다.
“죽일까요?”
올슨이라 불린 대머리 사내는 능숙한 한국어로 ‘죽음’을 입에 담았다.
“오. 노! 여긴 한국이라고. 아무 때나 사람을 죽이면 되나.”
상선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사 아저씨.”
“네…… 네. 도련님.”
“JTB로 갈 거죠?”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요. 와, 한국 도로 사정 진짜 거지 같다. 저거 봐요. 길이 엄청~나게 막히잖아요.”
“그렇습니다.”
시원하게 뻥 뚫려서 시속 200KM를 밟아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도로지만, 기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뭐해요.”
“네?”
“보고해야죠. 아무 말 없이 늦으면 할아버지가 짜증 내실 것 같은데.”
기사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블루투스 연결이 되어있어서 차량 스피커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 아, 박 기사.
“과장님. 교통 상황이 좋지 않아, 한두 시간 정도 더 걸릴 듯합니다.”
― 이 시간에?
자정이 넘어가니 막혔던 길도 뚫려야 정상이다.
과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반문하자 기사는 재빨리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어디서 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쯧쯧. 하필이면. 잠시만 기다리게.
“네. 과장님.”
과장이라는 사람은 잠시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이미 늦은 시간이야. 회장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내일 아침으로 스케줄을 바꾸도록 하지.
“내일 아침이요.”
― 그래. 오늘은 호텔로 모시고 가고. 시간은 따로 문자 보내놓겠네.
“네. 과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사가 전화를 끊자, 상선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시네.”
상선의 칭찬에 기사는 머쓱한 표정이 됐다.
“오늘은 일단 호텔…….”
“그건 내가 알아서 하죠. 기사님은 운전이나 신경 쓰세요.”
“네. 도련님.”
주몽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상선은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주몽의 등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 씨발. 지금 몇조라고 한 거야? 저거 공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
▷ 하나, 둘, 셋, 넷…… 니미. 나 수학과 나왔는데, 도무지 셀 수가 없다.
▷ 하나, 둘, 젠장. 나 통계학과 나왔는데 세다가 포기했다.
▷ 횽아들. 내가 세 봤는데 열네 개야. 참고로 나는 유치원 다녀.▶ 돈 있다고 자랑하러 나온 거네. 안 그래도 오늘 회사 잘렸는데, 기분 졸라 기분 엿 같다.
▷ 응. 엿 먹어.
▷ 너는 회사에 다녀보기라도 했지. 나는 인생 자체가 엿 같다.
▷ 응. 엿 먹어.
▷ 그러지 말고 한강 가라. 살아서 뭐하냐.
▷ 응. 엿 먹어.
▷ 이 새끼 뭐야? 너 뭔데 자꾸 엿 먹으라 말라야?
▷ 응. 엿.
▷ 너 어디야? 현피 한 번 뜰까!
▷ 초딩이랑 말싸움하지 맙시다.
▷ 응. 엿.
▷ 떡상. 가즈아~ 코인은 비토코인!▶ 정부만 신났네. 저거 세금이 얼마야.
▷ 병신이냐? 세금을 왜 내.
▷ 어. 글로벌 복권 세금 없음.
▷ 와 씨발. 저기서 먼지 만큼만 떼어 주면 좋겠다.
▷ 구걸하고 싶으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서울역으로 가라.
▷ 그래서 줘도 안 받겠다고?
▷ 당연히 받아야지.
▷ 주겠냐? 한심한 놈들.
▷ 떡상. 가즈아~ 코인은 비토코인!▶ 로또만 되어도 원이 없겠다. 제기랄.
▷ 로또는 세금 30프로 떼고 나면 남는 것도 없음.
▷ 로또는 되고 나서 떠들어라.
▷ 로또는 일단 사고 나서 떠들어라.
▷ 떡상. 가즈아~ 코인은 비토코인!▶ 와. 씨발. 나 방금 지렸다. 저 새끼 죽으면 상속세가 얼마라고?
▷ 암살 위협에 시달리느니 그냥 이대로 살다 죽으련다.
▷ 암살 위협을 받아도 좋으니 저 돈 나 줬으면 좋겠다.
▷ 그냥 암살해라. 꼴시려서 못 보겠다.
▷ 대가리 빠가냐. 한국에서 죽으면 엿 되는 거야. 한강 다리에서 단체 미팅 할 일이 있냐.
▷ 떡상. 가즈아~ 코인은 비토코인!
▷ 야, 누가 저 코인충 좀 치워라. 안 끼는 데가 없네.상선은 댓글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살? 이건 뭔 소리야.”
상선은 재빨리 검색창을 돌렸다.
<글로벌 복권 당첨자 암살 위협에 시달려!>
<상속세는 과연 얼마?>
<공매도 협박! 과연 정당한가!>
<사적 복수 운운. 법적 제재 가능성은?>
<실정법 위반! 국적 문제 이슈>
<대한당. 고주몽 국적, 세금 관련 청문회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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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은 기사를 클릭해 내용을 읽어내렸다.
“푸하하하하!”
상선은 폭소를 터트리며 뒷좌석을 굴러다녔다.
“이야. 주몽이 형. 머리 잘 굴렸네. 하도 찐따 같이 굴어서 뇌는 집에 두고 다니나 싶었는데.”
상선은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사 아저씨.”
“네. 도련님.”
“내가 주몽이 형을 빨리 보고 싶거든요.”
“네? 주몽이가 누구…….”
“그러니까. 속도 좀 올려요. 팍팍. 오케이?”
“네. 도련님.”
“지지리도 병신 같이 산다 싶었는데, 막판에 대박이 터진 건가.”
상선은 히죽거리며 웃음을 보이다가 ‘아하’ 하는 표정이 됐다.
“그랬네. 아침에 아파서 못 움직인다고 그러더니. 그게 다 쇼였던 거네.”
노벨상 운운하는 주몽의 모습에 상선이 눈을 반짝였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이백조라도 투자하시겠다? 안 그래도 어디서 돈을 뽑아낼까 고민스러웠는데 나야 땡큐지. 주몽이 형. 그 돈 엄한 놈 주지 말고 나한테 투자하자.”
상선은 히히거리며 연신 웃음을 흘렸다.
“내가 기똥찬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금 형한테 가고 있으니까. 거기서 딱 기다리라고!”
* * *
최아라를 돌려보낸 이진상은 샤워실로 들어가 물을 뒤집어썼다.
꿇어 오르는 화를 그렇게 진정시킨 이진상은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대왕 그룹 이태주 회장의 복심이라 불리는 비서실장 천기득.
직책은 비서실장이지만, 비공식적으로 부회장이라 불리는 그룹의 이인자.
이태주 회장이 폭군이라면 천기득 실장은 폭군의 손끝을 쫓아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는 피에 젖은 망나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정·재계에서는 이태주 회장보다 오히려 천기득 실장을 더 두려워하고 피해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잠시 뒤 천기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직 할 말이 남은 거냐?
천기득의 허스키한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올라왔지만, 진상은 차분한 어조로 통화를 시작했다.
“혹시, 지금 방송 보고 계십니까?”
― 방송? 복권 당첨자 말이냐?
팔백조가 넘는 현금 보유자의 등장은 국민뿐 아니라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네.”
―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놈이 바로 그놈이라고!’
이진상은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 참고 말을 이었다.
“소송. 방송에 나온 그놈이 건 겁니다.”
― …….
“실장님?”
― 듣고 있다.
“경쟁 그룹이 뒤에 붙은 게 아니었습니다.”
― 알았다. 더 할 말은.
‘빌어먹을. 나야말로 묻고 싶다. 놈이 복권 당첨자라는데 기껏 한다는 말이 그것뿐이야?’
“대응책을…….”
―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러니 너는 조용히 있는 게 돕는 거다.
천기득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씨―이―발!”
가까스로 진정시켰던 화가 다시 폭발해 버렸다.
이진상은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을 벽에 던져버렸다.
와장창!
자동차 바퀴에 깔려도 부서지지 않는다고 광고했던 자사의 스마트 폰이 레고 조각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괴성을 질러대며 기물을 부수던 이진상은 지친 얼굴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하악. 하악. 뭐? 조용히 있어? 지금 나를 망부석 취급하겠다는 거야?”
이진상은 일그러진 얼굴로 빠득 이를 갈았다.
“그렇게는 못 하지. 다른 놈도 아니고 노예나 다름없던 놈이 주인을 물었는데.”
이진상은 전화를 걸려고 스마트 폰을 찾다가 산산이 조각난 파편을 발견했다.
“아우. 씨발! 되는 게 없어! 야! 밖에 누구 없어?”
진상의 외침에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후다닥 방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기존 비서진이 물갈이되고 기조실에서 임시로 뽑아 올린 직원인데, 요 며칠 사이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 중이다.
“네. 상무님.”
“전화기 내놔.”
비서는 자신의 스마트 폰을 이진상에게 건넸다.
“장난해? 화면 잠겼잖아!”
“엇, 죄송합니다.”
잠김 화면을 재빨리 해제해서 다시 넘겼는데, 이진상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너 이 새끼…….”
이진상이 스마트 폰의 주인을 노려봤다.
“딱쇠 새끼 보고 있었어?”
“네?”
비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진상의 손 터치에 눌려 멈췄던 너튜브 생방송이 플레이됐다.
― 이제 초대 손님을 모실 시간이네요.
한성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곧바로 주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서의 스마트 폰을 바닥에 내 던지려던 이진상은 멈칫한 표정으로 영상을 들여다봤다.
― 고주몽 씨.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 물론입니다.
주몽은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한 분씩 소개를 드리기 전에, 이분들은 저와 공통점이 있는 분들임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군요.
― 공통점이요? 설마, 이분들도 복권에 당첨되신 건가요?
― 하하. 아쉽게도 그건 아닙니다. 이분들은 제가 다녔던 회사의 선배님들입니다.
― 고주몽 씨가 다녔던 회사요?
― 네. 대왕 전자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세계적인 기업이니까요.
― 대왕 전자.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한성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몽이 계속 말을 이었다.
― 오늘, 이 스튜디오에 나오신 분들은 모두 대왕 전자에 근무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짓을!”
영상을 노려보고 있던 이진상은 분을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몸을 떨어댔다.
초대 손님으로 스튜디오에 나온 사람들의 면면이 스멀스멀 기억났기 때문이다.
― 호, 이공계 분야에 투자를 생각하신 것도 고주몽 씨가 전자 회사 출신이셨기 때문이군요.
한성희가 주몽의 투자 이유를 대왕 전자에서 찾았다.
― 아쉽게도 그건 아닙니다. 저나 선배님들은 모두 비서실. 그러니까 수행비서 출신이거든요.
― 수행비서라면…… 비서 중엔 최측근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저와 선배님들은 다른 의미에서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진상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다.
“막아…….”
“네?”
“방송 막으라고!”
“저…… 상무님. 이건 생방송입니다.”
“그래서 뭐? 막으라면 막을 것이지 무슨 말이 많아!”
이진상은 손에 들고 있던 비서의 스마트 폰을 바닥에 내 던져버렸다.
파삭!
액정 나가는 소리에 비서는 울상이 됐다. 아직 할부서류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신품이었다.
“저 방송국이 어디라고 했지?”
“JTB입니다.”
“차 대기시켜. 방송국으로 간다. 뭐해! 빨리 움직이지 않고!”
“네. 상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