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장. 신에겐 아직 육백조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성장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가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 방식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급진적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요. 사회가 그렇듯 산업도 단계에 걸쳐 발전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물론 입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은.”
“오늘이 있게 한 어제를 추억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방법이 내일도 유효하다는 생각엔 동의하지 못하겠군요.”
뭔가 반론을 내놓으려던 한성희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채팅창에 이런 말이 올라오는군요.”
내 말에 한성희가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몬트 아인쉬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수학 선생님으로 인생을 끝마쳤을 것이고. 빌 게츠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PC 서비스 센터 직원으로 생을 마감했을 거라네요.”
“인터넷에 종종 돌아다니는 말이네요.”
한성희는 익히 알고 있던 말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그런가요. 일부 과장된 표현으로 보입니다만, 이런 성격의 이야기는 사실 현실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청년 부자 숫자를 생각하면 전혀 없는 말도 아니니 말입니다.”
청년 부자의 숫자를 들먹이자, 채팅창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모두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실리콘 밸리를 만들려 하지 않죠. 투자하고 상대의 능력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아이디어나 사람 자체를 손에 넣어버리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국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성희는 주몽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기존 질서를 구축해온 자들에게 선전포고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성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일부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게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한성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안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반반인가요? 답을 내기 어려울 땐 그것도 나쁘지 않죠.”
한성희 답변에 내가 짧게 논평을 하자, 채팅창에서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라는 글들이 주르륵 올라왔다.
채팅창을 확인한 한성희는 뜨끔한 마음이 들었는지 곧바로 이슈를 전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말이 조금 더 빨랐다.
“거기에 부합되지 않은 이들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해도 결국엔 묻혀 버리고 말죠. 하하. 개천이 말라버려서 다시는 용이 날 수 없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군요.”
“지금 그 말씀은 이공계 또는 기초과학 분야에 십조를 전부 투자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한성희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생각하시는 바는 저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연구를 위해선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네. 장소도 필요하고 관련 장비, 기기도 갖춰져야 하겠죠.”
“맞습니다. 기초과학 분야는 그런 제반 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그 부분은 국장님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번듯한 연구환경을 꾸리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든 분야가 당장 그런 환경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자칫 돈만 노리는 몰염치한 이들이 나타날까 걱정이군요.”
한성희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거라고 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발각되는 즉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졸부에게 몽둥이를 들려고 마음먹었을 땐 자신도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거라고. 아, 한국은 사기꾼들의 형벌이 그렇게 크지 않죠?”
“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그런 편이죠.”
“한국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저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등 경제사범에 대한 제재가 강력한 국가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겁니다.”
“그건 좀 어렵지 않나요? 비록 죄를 지었다고는 하지만 한국 국민입니다. 다른 나라의 사법권이 침투할 여지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건 그때 가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뭐. 좋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이곳에서 왈가왈부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와 관련해 토론하는 자리도 아니고요.”
한성희는 범죄 관련 처벌에 대한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기업이 아니라 개인에게 투자하려면 소통 창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원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을 모두 만나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텐데 말입니다.”
“오늘 방송 시간에 맞춰 지원 사이트를 공개하려고 했습니다만, 작업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네요. 소통 창구는 조만간 따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웹사이트를 준비하셨군요.”
“네. 국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원자나 투자자인 저 역시 소통 편의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죠.”
“시청자의 반복되는 질문이 있어서 물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네. 얼마든지.”
“투자하신다고 했는데, 개발자의 지분은 얼마나 인정을 해주나요. 하고 물어보네요.”
“6대 4입니다.”
“투자금엔 환경조성금도 포함이 되어있으니, 구조만 놓고 본다면 기존 연구소나 회사와 다를 바 없는 투자입니다. 그런데 아이디어만으로 4할의 지분을 인정한다는 말씀인가요?”
한성희는 예상치 못한 지분율에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오해가 있군요. 4가 아닙니다. 6이 개발자, 연구자 몫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는 저는 투자자가 되려는 것이지. 누군가의 연구결과나 기업을 빼앗고자 함이 아닙니다.”
“아…….”
한성희는 놀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입니다. 고주몽 씨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시민권자라고 들었습니다. 연구 투자지원은 한국에서만 하는 건지에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그럴 리가요. 한국에 백억 달러를 투자한 것처럼. 제가 시민권을 가진 G20 모든 국가도 똑같이 백억 달러의 투자금이 유치된 상태입니다. 다른 나라에 계시는 분들도 공통으로 적용이 될 겁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백억 달러씩 투자금이 준비됐다는 말에 한성희는 또다시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 그 말씀은…… 이백조 가까운 돈을 이번 투자에 사용하겠다는. 그러다 실패라도 하는 날엔.”
한성희는 투자가 실패 했을 때 리스크를 들먹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돈을 다 잃어버려도…….”
“…?”
“저에겐 아직 육백조가 남아 있으니까요.”
“헛!”
나는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한성희나 시청자들 입장에선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갔다.
현실감 없던 당첨금이 조금씩 피부에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 질문이 있습니까?”
“사실 질문은 끝없이 올라오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할 것 같네요. 마지막 안건을 들어봐야 할 시간이 됐으니까요.”
“벌써 세 번째 이야기할 시간이 되었군요.”
“앞의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오늘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설마 세 번째까지 그러는 건 아니겠죠?”
한성희는 힌트라도 달라는 듯 지긋이 나를 바라봤다.
“경중을 이야기한다면…… 글쎄요. 이 부분은 제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서.”
“안건을 가져오신 분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란 말씀인가요?”
“네. 이 이야기는 초대 손님을 모시고 난 뒤에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초대 손님까지 모시고 나눌 이야기라니. 세 번째 안건도 기대가 되는데요.”
“국장님에겐 오늘 마지막 안건이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 초대 손님 들어오고 준비하는 동안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나와 한성희의 리시버에 PD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한성희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메인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시청자 여러분 초대 손님을 모시고 잠시 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스튜디오 화면이 광고로 전환되자, PD가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한성희는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스피치 학원이라도 다녀오신 건가요? 지금 그 정도 언변이면 백십 분 토론에 나오셔도 되겠어요.”
한성희는 무슨 말을 그렇게 잘하냐며 당장이라도 섭외할 듯이 나를 바라봤다.
“학원은 모르겠고. 엄한 선생님이 한 명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토론 방송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밀려 있거든요.”
* * *
유언장 폭탄 발언으로 정신이 없던 전담팀은 주몽의 연구발전 투자 선언에 또다시 정신이 없어졌다.
현재 주몽이 투자하기로 한 돈은 국가 규모의 돈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투자하기엔 일정 규모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담팀이 예상하는 투자 형태는 대부분 주식이나 현물 등에 국한될 거로 생각했다.
“자국에 유치된 투자금의 용도가 기존 기업이나 산업이 아니라, 아이디어라고?”
알렉스는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그 의미를 깨닫자 또다시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알렉스는 작성하고 있던 보고서에 재빨리 문장을 추가해 넣었다.
― 미스터 고의 목표는 지식 보유에 있음. 미래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허와 연구자료를 노리는 것으로 판단됨! 자국 인재들에 대한 추가 투자와 적극적 관리가 필요함.
알렉스처럼 주몽이 노리는 바를 곧바로 캐치해 낸 사람이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짓에 돈을 날리려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했고,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가 어려운 또는 미흡한 나라들은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 의사를 비쳤다.
아이디어 보유자나 개발자, 연구자들이 한국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자국 영토에서 새롭게 도약할 기회가 생겼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는 주몽이 한국만의 주몽이 아니라, 자신들 나라의 주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몽의 연구, 개발투자는 자국 시민이 자국민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주몽에게 통합시민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관료들은 이번 발표를 통해 자동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랬지. 미스터 고를 우리 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걸 보라고. 그때 반대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 거 같아?”
* * *
“시민권 박탈?”
일본 수상 호시노 테츠히로 총리대신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전담팀 스즈키를 바라봤다.
“고주몽은 위험분자입니다. 만에 하나 그가 일본에서 사고라도 당하는 날엔…….”
“이보게 스즈키.”
“네. 각하.”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고 자네를 전담팀에 보낸 거네.”
“도둑 하나를 열 사람이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느니 요소를 제외해버리는 쪽이.”
호시노 수상은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스마트 폰을 내밀었다.
“보게나.”
수상의 스마트 폰은 너튜브 고주몽의 생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투자금 백억 달러. 기억하지?”
“물론입니다.”
“그걸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하겠다는군.”
“기업이 아니라…….”
“일단 앉게. 그렇게 서 있으니 바라보기가 힘들군,”
“하잇.”
스즈키가 자리에 앉자 호시노 수상은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고주몽이 처음 통합시민권을 요청해 왔을 때 기억나나?”
“그렇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자네는 반대를 했었지?”
“그렇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상황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호시노 수장은 과학 분야 투자를 이야기하고 있는 화면 속의 주몽을 콕 짚었다.
“그 정도 돈은 고주몽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이디어에 백억 달러를?”
“…….”
“누가 어떻게 판단을 하고 또 투자한다는 말이지?”
호시노 수상의 말에 스즈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우리 일본은 관료주의에 의해 돌아가는 나라야.”
“물론입니다. 그 때문에 어느 나라보다 더 체계적이고…….”
“아니지. 과거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일본은 글쎄.”
호시노 수상이 일본의 자랑인 관료주의 행정 시스템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고주몽이 이렇게 말하고 있군.”
“네?”
스마트 폰에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고 있다. 생방송이기에 따로 자막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주몽의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다는 소린지 모르겠다.
호시노 수상이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블르투스 이어폰을 발견했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방송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어디선가 통역이 부지런히 방송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리라.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다. 그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어제의 방법이 내일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호시나 수장의 말에 스즈키는 복잡한 표정이 됐다.
“일본의 엘리트 관료주의는 수명이 다했네. 지금은 그저 관성에 따라 흘러가고 있을 뿐. 백억 달러를 기초과학에 투자하겠다고? 그 정도 규모의 돈을 집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야 하는지 자네는 알고 있나?”
“…….”
“시제품도 없이 그저 아이디어만 들고 온 일본 청년에게 자네는 그 돈을 선뜻 내줄 수 있냐고 묻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백억 달러.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투자를 받아가며 신진 세력이 성장할 때 우리는 그걸 구경만 하고 있자고? 나에게 야베 전임 수상과 같은 바보짓을 하라는 말인가? 그 때문에 우리 경제가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네가!”
스즈키는 수상의 호통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고주몽이 일본에서 죽을 수도 있으니 아예 배제를 해 버리자니. 어이가 없군.”
호시나 수상은 굳은 표정으로 스즈키를 바라봤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자네 임무고! 우리 일본이 배척당하지 않게 관리를 하는 게 나의 일이야. 그런데 시민권을 박탈하자고? 지금 그걸 의견이라고 들고 온 건가. 고노 스즈키 군.”
스즈키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장 자네 자리로 돌아가게. 그리고 일본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해보길 바라네.”
“하잇!”
스즈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 * *
각국 정부가 주몽의 발표 내용을 검수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뜻을 파악하려 고민하고 있을 때, 대왕 전자 이진상 상무는 술병을 입에 물었다.
“빌어먹을 노인네. 끽해야 비서 주제에!”
이진상은 자신이 겪은 불쾌감을 기필코 갚아 주겠다는 듯 연신 씩씩거렸다.
“최아라. 오빠가 오늘 기분이 더러우니 네가 위로 좀 해야겠다.”
금요일에 만나요 걸(girl). 최아라가 진상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TV 화면만 바라봤다.
“뭐 하고 있어?”
“오빠. 여기 이 사람…….”
“뭔데?”
“오빠 직원 아니야?”
“뭐?”
이진상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TV 앞으로 다가갔다.
“맞지. 그 사람. 고 대리 맞잖아.”
“아니. 저 새끼가 왜 방송에 나와?”
이진상은 황당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박 실장이 그렇게 뒤지고 다녀도 머리카락조차 찾을 수 없다던 놈이 방송에? 그것도 한국에서?
이진상은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 됐다.
“고 대리가. 그 당첨자래!”
“당첨자?”
“내가 이야기해 줬잖아. 복권!”
“아아. G20…… 뭐? 누가 뭘 당첨됐다고?”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던 알코올이 순식간에 휘발됐다.
이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은 것이다.
갑작스레 등장한 변호사도 기조실에서 움직였음에도 놈을 잡아낼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단박에 이해가 됐다.
“이런 씨팔!”
손에 들려 있던 양주병이 TV와 부딪히면서 와장창 박살이 났다.
“꺄악.”
“시끄러워! 이년아!”
“오…… 오빠. 나한테 왜 이래.”
파편과 술을 뒤집어쓴 최아라가 겁먹은 표정으로 이진상을 올려다봤다.
“돌아가. 지금 너와 노닥거릴 때가 아니니까.”
이진상은 반쯤 부서진 TV 화면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소릴 냈다.
“크크크. 그러니까 갑자기 돈 좀 생겼다고…… 나를 기만했다 이거지. 내 밑에서 빌빌대던 딱쇠 새끼가 어디서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