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32화 (33/224)

032장. 알게 뭡니까.

한국 대표단과의 미팅이 끝나고 하루 뒤, 긴급히 전해야 할 정보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로버트의 도움을 받아 피자 배달부 복장을 한 정일표 사무관이 펜트하우스에 들어섰다.

“사무관이셨죠?”

“네. 대표님. 외교부 소속 정일표라고 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변장까지 하고 찾아와야 했는지 궁금하군요.”

정일표는 자신이 가지고 온 정보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이고 제이코와 로버트까지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하하. 이거야 원.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이런 위험요소가 존재한다는 걸 생각지 못했다니.”

제이코가 헛웃음을 보였다.

“경제부총리님과 외교부, 법무부 장관님은 이를 긴급하고 위중한 위협으로 판단하셨고 고 대표님께 저를 보내셨습니다.”

각국과 협상도 잘 마무리됐고 이제 어느 정도 안전도 확보했다 생각하고 있던 나 역시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상속세라니.”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스 미안합니다. 내가 미리 생각을 해야 했던 부분인데, 가장 기본적인 걸 놓치고 있었습니다.”

제이코가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제라도 알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대책을 세워야죠.”

나는 정일표 사무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가지고 왔을 땐,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누군가의 목숨과 관련된 정보는 더더욱.

“배가 침몰을 하고 있습니다. 손에 잡히는 게 뭐든 일단 붙잡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일표의 말에 제이코가 입을 열었다.

“그 배가 어떤 배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설마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 테고.”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정일표는 한숨 섞인 답변을 내놓았다.

“집권당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한 겁니까?”

“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 정부는 식물 정권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레임덕입니까?”

제이코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부분은 외교부 육성철 장관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공무원 신분이라 그쪽의 내밀한 사정엔 눈이 밝지 못해서 말입니다.”

“네. 들어보죠.”

“이명환 대통령 본인만 놓고 본다면 크게 결격 사유가 없습니다. 인권변호사로 시작해 정치에 입문했고 큰 소음 없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말입니다.”

“네. 그런데요?”

“문제는 그를 둘러싼 세력입니다. 이명환 대통령은 사람만 놓고 본다면 나쁘지 않습니다만, 능력을 이야기한다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했습니다.”

정일표의 말에 제이코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십상시 같은 거라도 있는 겁니까?”

“어?”

미국인 변호사 제이코의 입에서 십상시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정일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삼국지는 동양인만 읽는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모양이군요.”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계속 이야기해 보시죠.”

“네. 장관님 말씀에 따르면, 이명환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 정부를 아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자들은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정일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급히 대화를 멈췄다.

“잠깐만요. 지금 여기서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나는 정치와 무관한 사람입니다.”

“정치와는 무관해도 한국인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돈이 많지만, 실질적인 힘은 없는.”

정일표는 내 상태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을 던졌다.

돈만 많고 힘은 없다는 소리에 내심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정일표의 말에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대표님. 누군가 돈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죽음을 입에 담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상속세를 받아내기 위해서.”

돈은 많지만, 실질적인 힘이 없는. 그래서 슬쩍 죽여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존재.

정일표는 지금 이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스. 일단 끝까지 들어보고, 그다음에 판단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죠.”

정일표는 두 시간 넘게 현 정국을 이야기했고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문제와 비리까지 떠들어댔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혐오가 일 정도다.

“그러니까. 이명환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그가 집권하는 동안 자신들의 문제점을 모두 해소해 놓으려는 계획이었다 이 말인가요?”

“육 장관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흠.”

제이코는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경제부총리와 두 장관도 같은 편이지 않습니까.”

제이코가 의문 섞인 표정으로 정일표를 바라봤다.

“이명환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이 아니듯이, 정부에 속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한편일 수는 없습니다.”

정일표는 굳은 표정으로 부총리와 두 장관을 옹호하고 나섰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로버트가 한 마디 던졌다.

“그러니까.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고 식물인간으로 만든 다음.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이나 결과를 얻어내는 중이라는 말이군. 정부 인사 중 몇몇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저 전전긍긍 중이고.”

“아…… 그게 그렇게 요약이 되는군요.”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놨던 정일표가 쾌변이라도 본 사람처럼 속 시원한 표정이 됐다.

“이상하군요.”

“네? 뭐가 말입니까.”

“그 안보수석이라는 사람 말입니다.”

“아, 그 부분은 장관님들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행에 옮길 계획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앞에서 떠들 일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우리 쪽에 경고를 한 걸까요?”

제이코는 ‘당신들을 메신저 삼아서’라는 의미를 담아 정일표를 바라봤다.

자신들 입맛대로 정부를 움직이고 있는데, 거기에 주몽이 끼어들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까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을 했고 경제부총리께서는 상속세 때문에 나머지 G20 국가와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판단하셨습니다.”

정일표의 말에 나와 제이코, 로버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부총리의 걱정이 그저 기우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혜택은 ‘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돈이 주인 없는 상태가 되면 G20 시민권은 혜택이 아니라 '머니' 전쟁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각국은 피라냐처럼 우르르 달려들어 한 점이라도 더 물어뜯으려 난리를 칠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정보를 전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세 분의 걱정을 알려드리는 임무를 맡았을 뿐입니다.”

“난파선에서 내리고 싶다는 말.”

“네.”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제이코의 말에 정일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시는 길도 우리 쪽에서 도와드릴 겁니다. 한국에 들어가면 다시 연락하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정일표가 돌아가고 나와 제이코, 로버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보스.”

“네. 제이코.”

“유언장부터 쓰셔야겠습니다.”

“유언장이요?”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제이코를 바라봤다.

“네. 그것도 아주 파격적인 유언장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

“아주 유명해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본래 전략처럼.”

“아이언맨 전략 말이군요.”

“네. 피할 수 없습니다. 보스의 안전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비록, 미친놈 소리를 들을지라도 말입니다.”

“아니 왜요?”

내가 나를 밝히는데, 왜 미친놈 소리를 듣는단 말인가.

“크흠. 그건 해보시면 압니다.”

* * *

한성희는 심각한 어조로 연신 ‘암살’과 ‘상속세’를 들먹였다.

나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유언장을 쓰기 전에는 충분히 위협적인 사항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요?”

한성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가 저를, 기필코 죽이고자 한다면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몸이 강철로 이뤄진 것도 아니니 결국 위험에 처하겠죠.”

“그 말은 여전히 위험하다는 말 아닌가요?”

“그래서 유언장을 준비한 겁니다.”

내 대답에 한성희는 더욱 궁금한 표정이 됐다.

“오늘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유언장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라 하셨죠.”

“네.”

“지금 그 내용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세세한 내용까지 밝힐 수는 없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큰 맥락은 지금 말씀드리도록 하죠.”

내가 유언장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하자, 잠시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제가 목숨을 잃게 된다면.”

“네.”

“가족들에게 전달될 소소한 금액을 제외한.”

“네.”

“나머지 모든 재산으로 재단이 만들어질 겁니다.”

“재단이요? 혹시 사회 환원을 위한 공익재단을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네. 보통은 그런 재단을 만들 겁니다.”

“그 말씀은 기존과 성격이 다른 재단이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나는 불이 들어온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맞습니다. 제 사후에 만들어질 재단은 복수재단입니다. 영어로는 ‘revenge foundation’이 되겠군요.”

한성희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기 죽음에 대해 대놓고 복수전을 펼치겠다니. 그것도 전 재산을 쏟아부어 재단까지 만들어서 말이다.

“지금 고주몽 씨는 사적 복수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이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이거 왜 이러세요. 나는 이미 죽어버렸는데, 법이고 뭐고 알게 뭡니까?”

“에?”

한성희는 망치라도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 됐다.

“한 국장님에게 팔백팔십육조라는 거금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현금이죠. 그냥 원화가 아닌 달러입니다. 그것도 명심하세요.”

“아. 네…….”

“그런데 그걸 써 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네요. 병에 걸려 죽은 게 아니라 어떤 괘씸한 놈 때문에 덜컥 죽어버린 겁니다.”

“…….”

“억울하겠어요. 안 억울하겠어요?”

“그게…….”

한성희는 머릿속에 온갖 말들이 떠돌아다녔지만,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문명인이니 법과 질서니 하는 말들도 살아 있을 때 이야기다.

주몽의 말처럼 자신은 이미 죽어버렸는데,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송에 나와 리벤지를 천명하다니.

“어때요. 국장 님도 머리가 복잡해지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

“그 많은 돈을 한 푼도 써 보지 못하고 죽어버리다니. 통탄할 일이죠. 그런데 무슨 법을 따지고 있습니까. 나를 그렇게 만든 놈을 찾아내 박살을 내 버려야죠. 사돈의 팔촌은 물론이고 관련된 조직, 그리고 그가 속한 국가까지!”

제이코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라고 코치를 했지만,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해 버렸다. 주먹까지 불끈 쥐고 열변을 토해버렸다.

“예를 들어, 제가 한국에서 죽었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럴 일은 없겠…….”

“가정입니다. 가정!”

“네.”

“리벤지 파운데이션은 가장 먼저 한국 경제를 망가트릴 겁니다. 첫 번째 공격지점은 증시가 되겠군요. 한국 경제가 얼마나 탄탄한지는 모르겠지만, 일거에 수백조 공매도를 쳐 버리면…….”

수백조 공매도라는 말에 한성희는 창백한 표정이 됐다.

자신도 모르게 그 현장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한강에 있는 다리는 모조리 다이빙 명소로 둔갑해 버릴 것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사모펀드들도 신나서 따라 들어 올 겁니다. IMF 때처럼 바겐세일이 시작될 테니까요.”

“…….”

“덩치 크고 경제 구조가 탄탄한 나라요? 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일을 봐주는 변호사 말에 따르면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분탕질을 치고 화풀이는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한성희 국장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지금 그 말씀은…….”

“네. 리벤지 파운데이션! 말 그대로입니다. 건드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건드리세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졸부라고.”

“…….”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몽둥이를 드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도 맞아 죽을 각오를 하라는 거죠. 나는 맞아 죽을 판인데, 거기서 법을 찾아요? 나는 이미 죽어서 묻혀 버렸는데 용서 운운하며 저세상으로 갈 생각 없습니다. 내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찾아내세요. 그리고 재단에 찾아오세요. 당신이 상상하는 게 얼마가 됐든 간에 더 많은 돈으로 환영을 해줄 테니 말입니다.”

나의 과격, 파격, 폭력적인 언어 구사에 한성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 여러분. 제가 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팔백팔십육조가 있습니다. 이걸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감정이입이 자동으로 될 겁니다.”

이런 생각이 이상해? 나만 쓰레기야? 당신들도 내 입장이 되면 아마 나보다 더한 생각도 하게 될걸? 이런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노려봤다.

“아무튼, 유언장에 담긴 내용은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만, 이 정도만 공개해도 충분할 거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이 먼저 나에게 까불지 말라고 경고를 날렸다. 그러면 그냥 맞고만 있어? 놈들도 함부로 까불다간 처맞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날려줘야지.

“현금 팔백팔십육조에 맞아 죽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기는 하네.”

“네?”

“아, 혼잣말입니다.”

한성희는 리시버에서 들려오는 PD의 간절한 외침에 흐트러졌던 정신을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방송 중입니다. 적절치 못한 발언은 자제를 부탁드릴게요.”

뭔 소리야. 그럼 지금까지 한 말은 방송에 적절했다는 소린가?

그 대단한 한성희도 오늘만큼은 멘탈에 금이 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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