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장. 시선의 문제.
주왕시에 내려온 박 실장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심각한 대화가 오갈 것으로 생각하며 내려왔는데, 예상과 달리 이곳은 술판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팀장님. 이게…….”
박 실장은 자신을 맞이한 로버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만났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내일…….”
박 실장은 걱정 섞인 눈빛으로 안쪽을 바라봤다.
주몽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막걸리를 주고받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로버트는 박 실장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 상황을 물었다.
“준비는 잘 끝났습니까?”
“네.”
“잠시만 기다리시오.”
로버트는 경호원 한 명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잠시 뒤, 주몽이 모습을 나타냈다.
“오셨군요.”
“네. 대표님.”
“전임자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필리핀에서 데려온 사람을 제외하곤 큰 문제는 없습니다.”
사람을 빼내는데 들어간 돈도 그렇지만, 1년 넘게 이어진 열악한 생활 때문에 몸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다들 동의는 했습니까?”
“다섯 명 중에 두 명은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 변호사가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에 나섰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에 참여했다가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울타리마저 부서지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네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방송국 근처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장 변호사가 방송 전에 데리고 이동할 것입니다.”
“정은영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내 질문에 임 과장이 대답했다.
“처음엔 적잖게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급히 내려오느라 식사도 하지 못했을 텐데.”
“아닙니다. 저런 분위기엔 익숙지가 않아서. 괜찮다면 로버트 팀장과 함께 움직이고 싶습니다.”
박 실장은 내일 벌어질 일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일이 끝나기 전까진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알았습니다. 로버트.”
“네. 보스.”
“박 실장과 이쪽 사람들 좀 챙겨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식사 중인 비서팀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은 이국적인 음식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몇몇은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음식을 떠나 바닥에 앉는 것 자체가 불편한 듯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불편한 사람은 로버트 팀장에게 말해서 따로 음식을 공수받아요. 이곳에 당장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있어도 됩니다.”
“네. 보스.”
비서팀은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엘리스를 데리고 잠시 대문을 나섰다.
담벼락을 타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곧장 로버트와 경호팀이 따라붙었다.
언제 어디서든 경호원이 함께할 거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안쪽 분위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는 못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엘리스가 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라는 말은 제이코에게 충분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엘리스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엘리스의 업무는 내 지시에 따르는 것이지. 당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니 말입니다.”
내 말에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건 의뢰를 맡아 일 처리 하는 계약 변호사라면 모르겠지만, 엘리스는 에이스 로펌이 아니라 GO 컴퍼니 비서실 소속입니다. 그 말은 위계질서가 분명한 조직에 속했다는 말이고 언행도 최소한 그걸 인지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습니까?”
엘리스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엘리스가 했던 행동은 그런 위계질서에 혼란을 준 겁니다. 내 말보다 당신의 말이. 내 생각보다 당신의 생각이 앞섰다는 말입니다.”
엘리스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엘리스 당신이 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변호사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그런 상황이었다면 저라도 해고처리를 했을 겁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성격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스 당신은 나를 보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 눈치를 보며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면, 나는 더는 당신 보스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엘리스는 이번에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나를 보고 웃어 달라거나 아부를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조언자로서 나서는 것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임무이고 또 주어진 권한입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한 뒤로 매사에 부정적이고 불만 가득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당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표를 쓰겠다는 등의 말도 거침이 없습니다. 생각은 자유지만 자신의 위치나 상대의 감정을 고려치 않는 그런 행동은 매우 불쾌했고 화가 났습니다. 내가 당신과 일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입니다.”
며칠간 엘리스에게 느낀 내 생각과 감정을 차분한 어조로 늘어놨다.
“보스의 말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엘리스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할 말은 없는 겁니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나는 엘리스의 대답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통보가 아니라 대화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행동을 보이는군요.”
“네?”
“나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번에도 마치 그랬냐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입니다.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
엘리스는 찌푸려진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뒤늦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당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최소한 이유 정도는 설명해야 하는 겁니다. 나 혼자 떠들고 나 혼자 화내고. 상대를 바보 취급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엘리스는 당황한 눈빛으로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제 잘못을 충분히 인지했기에 그랬던 겁니다.”
엘리스의 대답에 나는 팔짱을 끼고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는…….”
“네. 말씀해주세요.”
“보스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엘리스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보스가 원하는 결과를 일분일초라도 빨리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생각하는 최적의 생각을 행동에 옮겼습니다.”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그랬다는 말이군요.”
“일만 생각했지, 보스의 기분을 전혀 고려치 못했습니다. 그동안 변호사 일을 해 오면서 한 번도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었기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객과 한 번도 문제가 없었다는 말입니까?”
“네. 그들은 자신이 낸 돈 만큼, 최적의 결과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과정은 관여치 않았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네.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만 하면 사소한 것들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자, 우측에 서 있던 로버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로버트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버트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네. 아무래도 보스와 엘리스 사이엔 문화적, 직업적 이해가 서로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문화적, 직업적 이해라는 말에 좀 더 설명을 요구했다.
“미국은 사소한 싸움도 법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는 성질 급한 인간들도 있습니다만, 어지간해선 변호사를 앞세워 일을 처리합니다.”
“네. 계속 이야기해주세요.”
“변호사를 앞세웠다는 말은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과정은 상관없으니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 얻어내면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당연합니다. 이것저것 끼어들며 지시를 내려야 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할 이유가 없죠. 의뢰인은 자신이 낸 돈의 가치에 맞게 변호사가 최선을 다해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면 땡큐 소 머치. 그 외의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
로버트의 말에 엘리스가 말했던 최적의 결과란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특히나 엘리스처럼 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들은 그런 일 처리에 능숙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로 인정을 받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캐치해 효율적으로 일을 마무리 짓기 때문입니다. 법적 충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고객으로선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변호사는 그저 무능할 뿐이죠.”
로버트의 말에 엘리스를 바라봤다.
미국적 마인드에서 바라본다면 굉장히 효율적이고 능력 있는 변호사라는 뜻이다. 하지만…….
로버트는 이번엔 엘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리스.”
“네. 로버트.”
“엘리스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은 철저히 결과 우선주의야. 빠르게 결과만 요구하는 기존의 의뢰인을 생각한다면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엘리스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변호사가 아니야. GO 컴퍼니에 소속된 조직원이라고 봐야 하지.”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버트가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엘리스, 네 행동이 의뢰를 맡아 처리하는 변호인으로선 나쁘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이 직장 상사. 그것도 최종명령권을 가진 사람의 의도를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건 결코 좋은 행동이라고 할 수 없지. 조직은 단순히 결과만 바라보고 움직이는 개인과는 성격부터가 다르니까. 이건 네가 보스를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선에 대한 문제…….”
“엘리스. 변호인 역할에 충실해지고 싶다면 로펌으로 돌아가는 게 맞아. 그게 아니라면 엘리스가 비서실 소속이고 직책도 변호사가 아니라 보스의 의견과 목적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는 비서임을 먼저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로버트의 설명에 내가 다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단번에 나와 엘리스 사이의 문제점을 딱딱 집어냈다.
로버트는 나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개인적 성향과 결과 우선주의의 변호사 마인드와 오랫동안 상사를 모시며 조직 생활을 했던 보스의 마인드가 절충되지 못한다면 결국, 감정만 상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조직을 생각한다면 엘리스가 적극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게 맞겠지만, 문제는 엘리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보스가 엘리스의 직업적 특성과 미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가 그 자리에 있던 불편한 관계는 계속될 겁니다.”
로버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캐치하지 못한 ‘내 문제점’ 까지 말미에 살짝 끼워 넣었다.
“로버트 조언 고마워요.”
“별말씀을.”
로버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한 걸음 물러났다.
로버트는 변호사도 아니면서 제이코만큼 말을 잘하는구나.
이런 게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사람의 연륜인가 싶었다.
복잡한 이야기 필요 없이 핵심을 집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충분히 배워둘 만한 가치가 있었다.
좀 더 복합적으로, 넓게 바라보는 시야를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차려진 밥상에 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엘리스. 내 말이. 저 말입니다.”
엘리스는 자신의 성격은 둘째치고 업무에 임하는 자세 자체가 잘못돼 있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나이만 생각하면 나보다 더 어린 사람이다.
어쩌면 이런 관계에 익숙하지 못한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로펌으로 돌아가겠다면 내일 서울에 올라가서 바로 헤어지면 될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단 옵서버 정도로 자리를 비워두죠.”
엘리스는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옵서버’를 선택했다.
“보스. 가족분들이 기다리십니다.”
“아. 네. 들어가야죠.”
나는 로버트에게 고맙다고 눈인사를 했다.
제이코가 능숙 능란한 책사 느낌이라면 로버트는 뭐랄까. 오래된 집사 느낌을 받는다고 할까.
집사는커녕 그 비슷한 것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로버트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 * *
가족과 해후를 마친 나는 일행과 함께 서울로 이동했다.
방송국에서 마련해준 게스트 대기실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국에서 박 실장을 따라왔었던 변호사가 재빨리 달려와 인사를 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네. 장 변호사님이시죠?”
“하하. 네.”
장 변호사는 함께 있던 사람들을 소개했다.
대왕 그룹 불안증 때문에 거부를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가 이번 소송에 함께하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들. 고주몽입니다.”
“아. 네…….”
“선배… 라니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습니다. 이진상 얼굴에 똥물을 뿌릴 수만 있다면.”
똥물 운운한 사람은 복장은 깔끔했지만, 얼굴엔 병약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필리핀에서 빼 왔다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에서 소송까지 벌이신 겁니까? 그리고 이 방송은…….”
네 사람은 각각 반응을 보이며 이진상에 대한 울분과 이번 일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방송까지 섭외한 내 능력에 궁금증을 표했다.
나는 장 변호사를 바라봤다.
“나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한 것 같군요.”
“보안 때문에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이제는 알아도 상관없을 겁니다. 방송이 코 앞이니 말입니다.”
“그것도 그렇군요. 네 분에게 잘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따로 대기실이 준비돼 있다는군요.”
“물론입니다.”
“경호원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하하. 아무리 대왕 그룹이 막 나가도 방송사 보도국에 난입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랬다간 진짜 난리가 날 테니 말입니다. 거기다 대표님이 오늘 어떤 일을 벌일지 방송국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준 뒤, 내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기실에 설치된 TV에서 저녁 뉴스가 한창이다.
JTB 방송의 보도국 국장 한성희 아나운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종군기자를 마다하지 않았고 특파원으로 세상을 뛰어다니며 일세를 풍미했던 특종의 여왕 한성희 기자.
이젠 보도국 국장 겸 저녁 뉴스 매인 앵커가 된 그녀가 뉴스를 마치며 클로징 멘트를 시작했다.
― 이걸 뉴스라고 해야 할지. 프로그램 홍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청자 여러분들이 깜짝 놀랄 소식이라 전해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한성희 아나운서는 잠시 말을 멈추며 시청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 오늘 밤. 10시. 바로 이 스튜디오에 놀라운 분이 찾아오십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G20 글로벌 복권을 모두 아실 겁니다. 네, 바로 그 복권의 당첨자가 오늘 이곳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한성희 아나운서의 멘트에 대기실 밖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안을 철저히 했다고 하더니, 보도국 직원들도 알지 못하게 했던 모양이다.
― 글로벌 복권 당첨자가 왜 한국에서 그것도 JTB 보도국에 나타나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 궁금증을 풀고 싶으시다면 오늘 밤. 10시. 특별 생방송으로 편성된 ‘G20 글로벌 복권 당첨자와 이야기하다.’ 편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한때 한성희가 던지는 질문은 독극물에 맞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까칠했던 그녀가 예능 MC 못지않은 호기심 유발 능력을 선보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한성희의 생방송 예고 멘트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대한민국 전역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어떻게 하면 주몽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일까 고민하고 있던 대통령 역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아니. 고 대표가 왜!”
최대한 정보를 틀어막고 꽁꽁 싸매놨더니 자신의 그런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사자가 폭탄을 터트려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당장 알아봐!”
“네. 대통령님.”
소란이 일어난 것은 청와대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G20 글로벌 복권은 전 세계가 참여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글로벌 이벤트였다.
정계와 재계는 느닷없이 들려온 소식에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주몽에게 시민권을 제공했던 나라들 역시 '고 대표가?' 하는 표정으로 주몽의 행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한성희 앵커가 예고했던 대로 정확히 한 시간 뒤.
‘G20 글로벌 복권 당첨자와 이야기하다.’ 가 생방송으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결방된 드라마 때문에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TV 앞에 앉아 있던 대다수 국민들은 JTB에 채널을 고정했다.
광고도 대단한 홍보도 없이 뉴스 앵커의 예고만으로 시작된 방송이었지만, 방송 전 광고 시청만으로도 이미 시청률 40%를 훌쩍 뛰어넘는 괴력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