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장. 어디, 그래 보시던가!
한국을 제외한 G20 국가에 역제안 작업이 마무리됐다.
앞서 다녀간 나라들과 같은 결정을 할지, 아니면 다른 결정을 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쪽엔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의 선택에 따라 나 역시 선택을 하면 그만인 일이다.
제이코는 자신을 시작으로 이직한 모든 이들의 계약서 작업에 들어갔다.
일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다 보니 다들 구두계약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내 일을 도와줬기 때문이다.
오늘 이후로도 사람은 계속 필요할 것이고 또 늘어나겠지만, 시작을 함께한 이들이다.
내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이들에겐 모험이나 다름없는 선택이다.
나는 고용계약서 작성에 에누리를 담지 않았다.
이직 결정이 인생 최대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화끈한 대우를 해줬다.
그래 봐야 이들이 받아가는 돈은 내가 숨 쉬면서 버는 돈의 소소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제이코는 가칭 ‘GO company’의 조직도를 만들어 앞에 내려놨다.
“코퍼레이션(법인)이 아니라 그냥 컴퍼니(회사)네요.”
“개인 회사가 아닌 법인 작업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자금을 모으거나 또는 세금을 줄이거나.”
“네. 그렇죠.”
“하지만 보스에겐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법인을 만들 경우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이코의 말에 금융팀장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시민권과 보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나라에 한정입니다만, G20 국가는 세계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국가는 상황에 맞춰 조율하면 된다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코의 말대로 내가 전부인 개인 회사는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내가 포함된 법인은 일반적인 과세 대상이 된다.
제이코의 말대로 코퍼레이션이 아니라 컴퍼니가 되어야 맞다.
“이제야 모든 분의 이름을 보는군요.”
제이코와 로버트를 제외하곤 이직자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일을 진행했다.
“하하하. 네. 통성명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다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 GO company
● boss ― (고주몽)
● legal team (GLT) : Chief(제이코 코엔)
전(前) ACE 로펌 소속 파트너, 시니어 급 변호사 12인
● security team (GST) : Chief(로버트 구스)
전(前) 샌프란시스코 경찰국 소속(인원수 예정)
● finance team (GFT) 관리팀 : Chief(샘 길버린)
전(前) 씨티은행 자금관리 1팀 소속 5인
● finance team (GFT) 투자팀 : Chief(조나단 캘트)
전(前) 씨티은행 투자운용 1팀 소속 6인
● finance team (GFT) 운용팀 : Chief(닐스 바우어)
전(前) 씨티은행 예금관리 1팀 소속 4인
“나를 포함해 33명이군요.”
“보안 쪽은 아직 확정된 인원이 없어서 미정입니다.”
“네. 그 부분은 로버트가 차차 준비한다고 했으니까요. 일단 이렇게 알고 있을게요. 다들 갑자기 움직이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휴식 시간 좀 갖죠.”
내 말에 다들 ‘후우― ’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굉장히 긴장했던 모양이다.
복권 당첨과 관련된 자잘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머릿속 한쪽에 밀어뒀던 다른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정신없고 긴 하루를 보내고 있듯, 이진상과 나상선도 나 못지않은 이벤트가 있는 날이다.
내 신변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둘이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다.
“로버트 국장님. 잠시 이야기 좀.”
“네. 보스.”
로버트 국장을 데리고 회의실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네. 말씀하십시오.”
“한 가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로버트는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흠. 그러니까. 호텔에 투숙 중인 대왕 전자의 이진상 상무와 그 일행의 행보.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양자물리학 연구소에 변동이 있지 않은지. 이렇게 두 가지입니까?”
“네. 얼마나 걸릴까요?”
로버트는 전화기를 꺼내 들더니 ‘30분?’ 하고 입 모양을 만들었다.
이럴 땐 사설 경비업체가 아니라 경찰국에 직접 보호 요청을 한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 로이. 지급으로 알아볼 게 있어.”
로버트는 통화하다 말고 따로 더 지시할 게 있냐는 듯 주몽을 바라봤다.
“그거면 충분해요.”
로버트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신호를 하더니 통화를 이어갔다.
“제이코.”
“네. 보스.”
“복권 관련 방송이나 인터넷 상황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제이코는 어려울 게 있냐는 듯 TV를 켰다.
그렇군. 그냥 TV를 켜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일이었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궁금한 표정으로 TV 화면을 바라봤다.
“내 개인정보가 방송국에 넘어갔을까요?”
신분 공개를 꺼리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연예인들처럼 대놓고 이름과 얼굴을 팔 생각은 없다.
“그럴 리가요. 알렉스를 포함해 각국 방문객들이 내밀었던 첫 번째 제안이 신변 보호였습니다.”
“하지만, 은행에 들어올 때 방송국 차량도 쫓아 왔었고…….”
“보스의 얼굴은 한 컷도 제대로 찍힌 게 없을 겁니다. 헬기에서 찍은 건 거리가 멀어서 동양인 정도만 확인이 됐을 거고, 방송국 카메라야 로버트 국장이 알아서 커버를 쳤습니다. 은행에 들어올 때도 특공대가 시야를 모두 차단했으니까요.”
“아…….”
제이코의 대답에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로버트 국장을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맞추진 로버트가 그 정도는 기본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혹, 얼굴이 찍혔다 해도 모두 모자이크 처리될 겁니다. 정부에서 그걸 허락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개인정보 보호법은 둘째치고 ‘지구에서 가장 현금이 많은 사나이에게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라는 한 줄 메시지가 발송되었을 겁니다. 허튼짓해서 방송국을 날려 먹고 싶진 않을 테니. 내부에서 검열 작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겁니다.”
제이코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줬다.
언론의 자유도가 높은 미국이지만, 그만큼 보도된 내용에 법적 책임도 무겁게 진다고 했다.
범죄 고발 형식의 기사를 제외하곤, 개인정보를 밝히는데 민감하고 철저히 한다고 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한국 언론이 미국에 진출한다면 기사를 쓰는 족족 고소, 고발, 소송에 시달리다 문을 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가 신분을 감추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저도 이렇게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알렉스를 비롯한 방문객들을 만나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5%의 수익금 말이군요.”
“네. 괜한 짓을 해서 경쟁자를 늘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보스가 경찰까지 대동하고 은행에 나타나는 바람에 아마 화들짝 놀라고 정신들이 없었을 겁니다. 그들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푸흣. 일이 또 그렇게 돌아가네요.”
제이코의 말대로 TV에서는 천문학적인 당첨자. 행운의 사나이 등의 표현을 쓸 뿐 내 정보는 한 줄도 등장하지 않았다.
‘동양인?’ 등의 의문부호가 담긴 멘트가 공개된 정보의 최대치였다.
“100억 달러 투자금 유치를 위해서라도 더더욱 보스의 정보 관리에 신경을 쓸 겁니다. 어설프게 정보 유출이 일어났다간 다른 G20 국가에서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모두가 경쟁자이면서 모두가 감시자인 상황입니다.”
“G20 국가의 통합시민권을 요구한 보스의 결정이 신의 한 수였던 거지.”
로버트가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나로선 역발상을 해 본 것뿐이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결정적 수였다고 칭찬하니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며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경찰특공대 한 명이 얼굴을 내밀었다.
“방문객입니다. 한국 영사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로버트와 제이코가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겠냐는 표정이다.
“연락 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요?”
“아무래도 보스가 한국인이어서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럼 만나봐야죠. 들여보내세요.”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곧바로 방문객‘들’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샌프란시스코 영사 김덕영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영사라 소개한 김덕영은 활짝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고주몽입니다.”
가볍게 손을 잡아주고 자리를 청하자, 함께 온 사람과 함께 회의 테이블에 착석했다.
“정말 깜짝 놀랐지 뭡니까. G20 슈퍼복권의 당첨자가 한국인이라니.”
“네.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웃으며 응대하자 김덕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어떻게 하다니요?”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다는 듯 영사를 바라봤다.
“제가 묘한 소식을 들었지 뭡니까.”
김덕영은 그게 사실이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사실일 겁니다.”
“허허. 이거야 원.”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던 김덕영은 입술 꼬리를 말아 올렸다.
“한국은 완전한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그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김덕영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제이코가 입을 열었다.
“보스. 영어로 대화를 나눠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한국어는 배우질 못해서 말입니다.”
“아, 그렇죠. 내가 실수를 했네요.”
나는 곧바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바꿨다. 그러자 김덕영 영사가 저 사람은 누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고문변호사입니다.”
“아. 변호사.”
김덕영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법을 이야기하는데 미국 변호사가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상관이 있을지 없을지는 이야기해 보면 알겠죠.”
국적은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내심 한국의 반응이 궁금하기는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렇게 까칠하게 나올 줄은 예상 밖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나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보다는 적절한 협의에 나설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흠.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뭘 모르시는 것 같은데…….”
“헤이! 미스터. 스피크 잉글리쉬!”
김덕영이 계속 한국말로 이야기하자 제이코가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김덕영은 제이코의 거칠어진 언성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를 미스터라고 한 거요?”
“제이코 코엔입니다. 에이스 로펌의 대표이자 보스의 고문 변호를 맡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보스와 관련된 대화를 저 역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쪽이야말로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이건 미국 변호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니.”
김덕영 영사와 함께 왔던 나이 지긋한 남자 한 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화하고 싶다면 소개부터 하는 게 예의겠습니다만.”
“나 말이요? 허허 이거 참.”
사내가 헛웃음을 보이자, 김덕영 영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분은 대한당 3선 국회의원이신 나관종 의원이십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의 친형이 되시기도 하죠.”
3선 국회의원에 법무부 장관의 친형?
그게 뭐 어떻다고 저렇게 거드름을 피우는 거지?
아저씨. 여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그러다 큰코다쳐!
“고주몽…… 군이라고 불러도 되겠나?”
“실례입니다. 미스터를 붙여주시거나. 아니면 '씨' 자를 붙여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의원님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언행에 유의해주십시오.”
대수롭지 않게 호칭을 가져다 붙였던 나관종은 느닷없이 날아든 공격에 ‘허!’하는 소리를 냈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나가주시죠. 솔직히 이 자리에 왜 국회의원이 자리했는지도 의문입니다.”
나가 달라는 내 말에 나관종 의원은 오히려 느긋한 표정이 됐다. 양손을 깍지끼며 두툼한 아랫배에 올려놓더니 한심하다는 듯 말을 뱉었다.
“쯧쯧. 하여간 젊은 사람들은 주머니에 뭐 좀 들어오면….”
나관종의 말에 제이코가 김덕영 영사를 바라봤다.
“통역하거나. 그게 아니면 영어로 이야기하시오. 마지막 경고요.”
김덕영은 제이코가 문제를 제기하든 말든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한국 영사고. 고주몽…… 씨는 한국인이요. 한국어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점을 밝히는 봐요.”
나는 제이코에게 잠시 물러나 달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기에 저렇게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지 궁금했다.
“김덕영 영사님. 찾아온 이유를 말씀해주시죠. 그 외의 것들은 시간만 낭비될 것 같습니다.”
“이미 말했잖소.”
“네?”
“우리는 고주몽 씨의 다국적 시민권을 인정할 수가 없소.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통한 제한적 이중국적이라면 모를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걸 밝혀두는 바이오. 그것이 대한민국의 법이요.”
그래.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굳이 이 자리에까지 찾아와서 그걸로 핏대를 세울 일은 아니잖아.
“원하는 게 뭡니까? 단지 그 때문이라면 직접 찾아올 필요 없이 팩스 한 장이면 충분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이거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는군요. 우리는 원리원칙에 따를 뿐입니다.”
김덕영 영사의 말에 나관종 의원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법에 예외를 둘 수 있는 게 나 같은 국회의원이지. 예를 들면 특별법을 제정해서 고주몽 씨의 국적 문제를 해결해 준다든가 말이야.”
하…… 그냥 한숨이 나온다. 지금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서 떠드는 건가?
나는 제이코에게 방금 나눴던 대화를 통역해줬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조언을 구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헛소리군요.”
“그런가요?”
“당연하죠. 다른 나라는 시민권을 주지 못해서 안달인데, 어떻게 자국민에게 국적 박탈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만약 저 사람들이 미국인이었다면 국가반역죄로 잡혀가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이코는 외교관 신분을 가진 김덕영은 물론이고 함께 찾아온 국회의원도 이해 못 할 인간들이라며 말을 격하게 내뱉었다.
제이코의 말에 김덕영의 표정이 섞은 호박처럼 문드러졌다.
미국 변호사 따위에게 반역자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와 나관종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군요. 그럼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습니다.”
“허허. 이래서 젊은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니까. 이렇게 성격이 급해서야. 서로서로 좋은 방법이 분명히 있지 않나. 이번 기회에 우리 당에 들어오면 어떻겠나. 내가 비례대표 자리를 하나 알아봐 줄 수 있는데.”
나관종의 말에 이건 또 무슨 개소린가 하는 표정이 됐다.
그러니까, 지금 자기네 당원이 돼서 돈 좀 내놔라 이 말인가?
그러면 국회의원 자리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이 인간들 미친 건가? 아니면 머릿속 계산기에 오류가 생긴 거야?
이거야 원. 진짜 이런 인간들이 현실에 존재하네. 드라마나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허구,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헛소리를 더 듣고 있다간 내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나관종 씨. 그만 나가주세요. 김 영사님과도 더는 나눌 말이 없군요.”
“이것 봐요. 고주몽 씨!”
“우리 대한당이 반대하면!”
그래. 그냥 반대해라. 결과가 어찌 될지 정말 궁금하다.
“일단 한국 정부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안 그래도 복권 수익금 5% 때문에 미국이 안달 중인데. 그쪽엔 좋은 소식이 되겠군요.”
“응? 복권 수익금?”
김덕영 영사와 나관종은 그게 뭐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 인간들. 지금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국적 문제 하나 들고 대뜸 찾아온 거야?’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이제 보니 정부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저 소식만 전해 듣고 무작정 찾아온 모양이다. 그런데 내 정보는 보호 중이지 않나? 어떻게 영사관에서 나를 알고 찾아온 거지?
“로버트 국장님.”
“네. 보스.”
로버트는 뒷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부하들을 불러들였다.
완전무장한 경찰특공대의 등장에 김덕영과 나관종은 당황한 표정이 됐다.
“이분들 내보내.”
“넷!”
“이게 지금 무슨 짓을! 나는 한국 외교관이다. 이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어!”
김덕영과 나관종은 나에게 삿대질까지 해대며 ‘법무부 장관, 국적 불가!’ 등을 외치다 밖으로 끌려나갔다.
제이코와 로버트가 나를 바라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씨발. 병신 짓은 재들이 했는데,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 거야.
“한국 정부에 연락 넣으세요. 이곳 영사와 의원 하나가 찾아와서 내 국적 박탈을 선언했다고. 원치 않는 일이지만, 눈물을 머금고 뜻에 따르겠다고. 하지만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국적을 박탈한 한국 정부에 있다고 그렇게 보내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만에 하나 이곳 영사관이나 나관종 의원에 의해 내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다면 미국법에 따라 소송을 할 거라고 말입니다. 대상은, 유출 당사자와 그들이 소속된 대한민국 정부가 될 겁니다.”
“네. 보스!”
이것들이 시작부터 빡돌게 하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울 할아버지 체면을 생각해서 나름 도움이 되는 안건을 고민해 놨는데. 쓸데없는 짓이었구먼.
타국 인사들은 발 빠르게 달려와 온갖 혜택을 제안하기 바쁜데, 한국은 이렇다 할 반응은 고사하고 저런 인간들이 설치게 두다니.
설마, 잡아 놓은 물고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면 곤란할 텐데.
국가마다 G20 복권팀이 따로 존재했기에 소통 창구도 그곳을 통하는 중이다.
제이코의 항의서한은 복권팀을 거쳐 곧바로 한국 정부에 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긴급회의를 열고 고주몽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해야 가장 이상적일지 고민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그야말로 뜬금포를 얻어맞았다.
살살 달래서 국적 유지를 부탁해도 부족할 판에…….
“이게 무슨 개소리야! 누가 감히 국적을 박탈해! 어떤 미친 새끼가 헛소리를 하고 다녀!”
대통령의 입에서 험악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정부 요인들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사태 파악에 나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