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장. 거부할 수 없는 역제안
유엔에 묶여 있는 5%의 복권 수익금.
미국 시민권을 받는 순간, 이 돈은 미국의 것이 된다.
하지만 다른 나라 국적을 선택하게 되면 미국은 그 나라와 분배 관련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복권이 판매된 곳은 미국인데 시민권 한 장 때문에 다른 나라와 돈을 나누어야 한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다?
언뜻 보기엔 이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좋다고만 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미국 쪽 손을 들어주는 게 좋지 않나요?”
내 질문에 제이코는 물론이고 로버트와 금융팀까지 고개를 저었다.
이봐. 당신들 전부 미국 시민권자라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원정 출산한 애들은 뭐가 돼!
나는 이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아 재차 질문해야 했다.
“내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면 위험한 일이라도 일어나는 겁니까?”
“위험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포괄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이코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일단 설명해 드리기 전에 먼저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건 보스를 중심으로 고민하고 제안하는 입장이라는 걸 인지해 두셔야 합니다.”
“…….”
“우리가 보스에게 돈을 받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보스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고 보스의 즐거움이 우리의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점.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제이코. 나 방금 감동 먹을 뻔했다. 진정한 프로란 무엇인가를 당신을 통해 이해하게 됐어.
어찌 보면 대놓고 나를 '돈줄' 취급하는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든든함이 느껴졌다. 이율배반적인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상무 앞에서 비굴하게 일했던 내 모습이 또 한 번 부끄러워지는구나.
저렇게 자신의 위치와 업무 내용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부러울 정도다.
그래, 제이코. 절대 잊지 않을게.
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코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보스의 나라입니다.”
한국이 문제가 된다고? 아니 왜?
“일단 보스의 이미지는 배신자 또는 매국노가 될 확률이 100%입니다. 그 이유는 보스가 가진 돈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본인들 돈이 아님에도 국적 변경이 일어나는 순간, 그 돈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 테니까요.”
배신자, 매국노라는 말에 절로 헛바람이 튀어나왔다.
한국으로선 내가 그대로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5%의 반 땅은 해 먹을 수 있는데 그걸 미국에 가져다 바친 격이 될 테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면서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라도 누군가가 886조를 들고 다른 나라로 튀어버리면 신나게 욕을 해 댈 테니까.
거기다.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과 키보드 화력을 생각하면 아마 인터넷 공간에서 영원토록 까이고 씹히고 사골 우리듯 쪽쪽 빨릴 것이다.
새로운 을사오적이 나타났다니 배은망덕이니 뭐니 해가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계시는 가족분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끄덕. 끄덕. 나도 다 알아들었어.
“물론, 가족분들을 미국으로 데려올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겁니다.”
미국까지 와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무슨 소리를 해도 미국엔 안 오실 분이거든. 아니구나. 어쩌면 당장 달려와서 내 모가지를 꺾어버리실지도. 그리고 삽자루를 꺼내 들어 나를 파묻은 다음, 호적에서 개운하게 파 버리시겠지.
고구려, 만주 벌판을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다.
그런데 장손자가 나라를 배신하고 역적 짓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떤 심정이 되시겠는가.
이건 내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였다.
“그리고 말입니다.”
“네. 계속 이야기 해줘요.”
“돈이 많다는 가정하에.”
“네.”
“가장 안전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바로 한국입니다.”
“에?”
“자본주의의 최선봉이며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이지만, 그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총알이 날아다니고 테러가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죠. 비록 북한과 맞닿아 있고 전쟁 준비국이란 별칭을 달고 있지만…….”
“제이코 말대로 돈만 있다면 못할 게 없는 나라기도 하죠. 재벌공화국이란 단어가 사전에 등재될 정도니.”
나는 제이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재벌 밑에서 구르고 빌어먹었으니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 것이다.
“맞습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자세한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런 부분에서 한국은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스는 세계 최고의 현금 보유자니 말입니다.”
제이코의 말에 로버트가 한 마디 덧붙였다.
“굳이 적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그대로 국적을 유지한다면 어느 나라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게 될 테니까요.”
로버트의 말이 맞다. 있는 적도 줄여야 할 판에 껄끄러운 대상을 늘릴 필요는 없다.
그것도 일 개인이 아니라 G20 상위 국가들과 얼굴 붉혀서 뭐 좋아질 게 있겠는가.
그때 전직 씨티은행 예금관리팀장이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G20 국가들에 당첨금을 분할 예치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분할 예치?”
“그거 나쁘지 않군요. 어느 나라든 간에 달러가 자국 금고에 들어오는 일을 싫어할 이유가 없으니 말입니다.”
제이코가 손가락까지 딱! 튕기며 굿 아이디어를 외쳤다.
“아군을 늘리는 전법이군요. 제 생각에도 나쁘지 않은 의견 같습니다.”
로버트도 찬성했다.
“예치된 또는 투자되는 금액만큼 보스의 사회적 위치와 권한 역시 늘어나게 될 겁니다.”
투자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예치만 하지 말고 투자도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뜻이다. 물론 그쪽 분야에 전문가인 자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달라는 의미도 듬뿍 담겨있다.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고 방법론이 만들어졌다. 곰곰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말입니다.”
“네. 보스.”
“그 제안들 다 받아들여도 되는 것 아닙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이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도 예치하고 투자도 하려면 그 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 말에 변호사 한 명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보스 말씀은 G20 국가의 시민권을 모두 취득하겠다는…….”
“생각해봐요. 5%의 수익금도 750억 달러에요. 지금, 이 상태라면 미국과 한국이 이 돈을 나눠 가지겠죠.”
“하지만, 각국 시민권을 모두 얻게 된다면…… 750억 달러도 G20이 모두 나눠 갖게 될 수도 있겠군요.”
이론상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결과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제이코는 코끝을 만지작거렸다. 말은 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권이랑 세금 혜택. 거기다 각국 투자팀의 자문은 물론이고 신변 보호까지 받을 수 있어요. 한 나라가 독점을 한다면 나머지 국가에서는 불만을 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나라마다 국적에 관한 법률이 다르고…….”
“에이. 갑자기 아마추어같이 왜들 그럴까. 그걸 가능하게 해줄 돈이 내 통장에 있다는 거 아닙니까. 싫으면 꺼지라고 해요. 내가 아쉽나? 자기들이 아쉽지.”
나의 통 큰 결정에 회의실 안은 잠시 침묵이 스쳐 갔다.
그때 복권팀 팀장이 ‘와이 낫.’ 하고 중얼거렸다.
자기들 나라에 손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안될 이유가 뭐냐는 뜻이다.
“그래. 와이 낫! 싫으면 꺼지라고 하자고요.”
내가 일단 결정을 내리자, 회의 내용은 다국적 시민권 획득과 각국이 제시한 내용을 공통으로 확약받는 쪽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제안을 받는 게 아니라, 역으로 제안을 하는 쪽으로 회의가 마무리됐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4개국 방문자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제안서는 잘 읽어봤습니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알렉스가 차분한 어조로 답을 요구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같은 제안이라면 선택지는 미국밖에는 없다는 그런 눈빛이다.
마치 자신이 내민 제안서는 거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알렉스 씨. 실망을 줘서 미안해. 나는 제안을 받는 쪽보다 하는 쪽이 성격에 맞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준비했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아니 거부해도 상관은 없는데 그러면 네가 우습게 되는 그런 제안이랄까?
내 손짓에 지시를 기다리고 변호사가 한 장짜리 서류를 각국 대표들 앞에 탁탁 내려놨다.
당연히 저들이 내민 제안의 답변이 아니라 내 의견이 100% 반영된 역제안서다.
답변이 아닌 역제안서를 받아든 방문자들은 이게 뭔 헛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재무부 차관 알렉스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 제안서를 툭 던져버렸다.
어쭈. 어디서 뻥카를 치고 지랄이야.
나는 엘렉스가 그랬던 것처럼 차분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싫으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오케이 한 국가와 진행하면 그만이니까요.”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흘러나온다.
그냥 자신들 국가와만 거래하면 되는데 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냐는 말도 흘러나왔다.
뭐. 이 정도는 이미 예상 범위에 있는 일들이지.
“G20 국가 모두가 내 제안에 동의한다면 G20이 동의한 수익금 분할 방식에 따라 각각 37억 5천만 달러씩. 그리고 내 개인 돈에서 100억 달러가 추가로 투자, 예치될 겁니다. 빠지는 국가가 늘어날수록 금액은 더 올라가겠군요.”
싫으면 관둬. 그런데 관두면 다른 나라가 이득을 볼 거야.
수익금은 물론이고 내 투자금까지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될 테니까.
“참고로 저는 시간이 돈입니다. 결정할 시간은 딱 10분 드리죠. 제안을 거부하겠다면 자리에서 일어나셔도 무방하니 편할 대로 하시면 됩니다.”
나는 내 제안서를 툭 집어 던졌던 알렉스에게 시선을 맞췄다.
자, 이제 어떻게 할래. 맘에 안 들면 지금이라도 뛰쳐 나가봐. 그러면 네 공무원 인생도 그때부터 먹구름이 잔뜩 낄 테니까.
750억 달러를 통으로 삼키는 게 목적이었겠지만, 내가 그쪽 손을 들어주는 순간 다른 나라와는 적이 되는 거라고.
이럴 때는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보다 모두가 환영하는 쪽으로 계산을 때릴 수밖에 없잖아.
수익금 37억 5천만 달러와 +100억 달러를 내팽개칠 거야?
그럼 재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일할 생각을 버려야지. 안 그래 알렉스?
나와 눈이 마주친 알렉스. 자존심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뻔히 보인다.
알렉스만 그러겠는가.
다른 나라들 역시 말도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자신이 엉덩이를 떼는 순간 자국에 투자될 돈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걸 알면서 어떻게 일어서겠는가.
단순히 돈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G20 모든 국가에서 시민권을 인정받겠다니.
이건 국적을 초월해 버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시라고 추가로 서류 한 장을 더 던져줬다.
툭툭. 각국 담당자 앞에 떨어져 내린 또 다른 제안서.
이건 또 뭔가 하는 표정으로 눈알이 테이블에 내리꽂힌다.
● 제안서에 기재된 내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분께는 투자금의 0.1%가 성공보수로 지급됩니다.
어때. 내 제안이.
이왕 하는 일. 겸사겸사 돈도 벌고 그러면 좋지 않겠어?
두 번째 제안서를 받아든 방문자들은 마른 침을 꿀꺽 집어삼켰다.
100억 달러의 0.1%. 천만 달러!
머리 좋은 인간들이라 계산도 빠르다.
그런데 성공수익을 주자는 제안은 내가 아니라 로버트가 제안한 안건이다.
그럴 필요가 있냐는 제이코의 말에 로버트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 천만 달러. 엄청난 금액이라는 것 잘 압니다.
하지만 그 돈은 저들을 옭아매는 밧줄이 되어줄 겁니다.
시민권을 얻는다고 해도 저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는 것과 단순 투자자로 움직이는 것엔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각국 정치인이나 고위급 인사들과 인연을 맺어둘 필요가 있고, 저들은 보스의 인맥 관리자가 되어줄 겁니다.
일종의 로비 자금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많은 금액도 아니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로비를 빙자한 비리 공무원을 만들고 두고두고 부려 먹자는 그런 의미다.
제이코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나랏일에 사적 이득을 받아먹은 게 들키면 반역자 취급을 해서 박살을 내놓는다고 했다.
알렉스가 대화를 거부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알렉스 한 명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이 일에 동참한다면 충분히 먹힐 수 있는 제안이라고 부연했다.
이 선택이 저들 나라에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먼 제안이기 때문이다.
음성적 거래를 통해 불법 자금을 받아 챙기는 게 아닌, 정당한 거래를 통해 자국 이익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떡고물이니 성공수익을 받는 부분도 거부감이 크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흔쾌히 찬성했다.
만약 제안이 먹혀 로버트의 아이디어가 성공한다면, 내 ‘제안을 거부’ 한 알렉스 그 인간을 손아귀에 넣고 흔들 수 있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거기다 재무부 차관이라면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지 아무도 모를 일 아닌가.
적진에 5열로 박아두는 것이니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었다.
“참고로. 두 번째 제안은 여기 계시는 네 분에게만 드리는 겁니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 발 빠르게 찾아오시지 않았습니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듯이 여러분의 부지런함에도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놈 저놈 다 챙겨주는 것보다, 이들을 한통속 또는 같은 울타리에 묶어 놓는 게 좋다고 했다.
비리도 같이 저지르면 일종의 동지 의식이 생긴다나 뭐라나.
내가 의구심 섞인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과거 한때 내사과에서 끗발 좀 날리셨단다.
그 때문에 공직자들의 비리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신다고 하니 그야말로 스페셜 스킬을 장착하고 내 품에 뛰어든 꽃사슴이 따로 없다.
아무튼, 이들 국가 중 한 국가만 내 제안을 받아들여도 다른 국가들 역시 숟가락을 얹을 수밖에 없다.
고개만 끄덕이면 복권 수익금과 투자금 100억 달러가 들어오는데, 어떤 병신이 자리를 박차겠는가. 아니 그러고 싶어도 타국의 통장 잔고를 높여주는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다.
“러시아는 미스터 고의 시민권을 취득에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좋아. 역시 러시아가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주는군. 정치인 비리 1등국다워!
“영국도 마다할 이유가 없죠. 미스터 고 같은 능력 넘치는 분이 시민이 되어주시겠다는데 말입니다.”
영국이 숟가락을 얹었고!
“독일은 오래전부터 이민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당연히 환영합니다.”
독일도 숟가락질에 나섰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
자, 알렉스. 너도 숟가락을 들어야지. 어서!
“미국 시민권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국은 미스터 고의 투자 활동에 어려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협조할 것입니다.”
크아~ 잘했다. 알렉스!
네 개 나라가 만장일치로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축하할 일이지.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다국적 스파이가 아닌 이상 이렇게 많은 국적을 동시에 취득한 일은 결단코 없었으니까.
변호사들은 각국 담당자 앞에 계약서 한 부를 내려놨다.
성공보수가 적힌 한 장짜리 계약서다.
나의 변호가 제이코가 앞으로 나섰다.
“사인하시면 됩니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1초의 딜레이도 없이 바로 입금처리 될 겁니다. 당연히 각자 원하는 방식, 바라는 형태로 입금처리가 될 것이니. 전달 방식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쓱쓱쓱.
여기저기 펜대 굴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알렉스의 표정을 살짝 훔쳐봤는데, 사인을 하는 와중에도 복잡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음 같아선 제안을 뿌리치고 어디서 이런 협잡질이냐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래봤자 다른 나라만 득을 볼 판이니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자신이 자리에서 빠진다 해도, 자칫 입을 잘못 놀렸다간 성공보수에 동의한 타국 협상자들을 저격하는 꼴이 될 테니 외교적 부담감까지 끌어안아야 했다.
고구마 백 개쯤 처먹은 얼굴로 사인을 마무리한 알렉스가 지친 표정으로 펜을 놓았다.
750억 달러를 날름 삼킬 생각으로 달려왔는데, 단숨에 이십 분의 일로 줄어버렸으니 속이 쓰릴 것이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가족 같은 관계가 될 분들인데, 언제든 도움을 청하시면 적극적으로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흐흐흐. 왈버트 은행장이 말했던 가족 같은 관계를 내가 들먹이게 되는구나.
방문객들이 제안서와 성공보수 약정서를 품에 넣고 사라졌다.
성공보수를 받고 싶다면 하루라도 빨리 내 제안서를 현실화시켜야 할 테니 한눈팔 시간도 없을 것이다.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운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당첨자의 삶을 준비해 볼까나.
“나머지 나라들도 진행하세요.”
“네. 보스!”
“아, 한국은 제욉니다. 그쪽은 꼼꼼히 살펴서 제대로 된 제안을 해 볼 생각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국은 제외. 나머지 국가는 수익금 분할과 시민권 그리고 100억 달러 투자 제안.”
제이코는 알렉스에게 넘겨받은 G20 국가들의 연락처와 담당자 리스트를 펼쳐 들고 본격적으로 시민권 취득 작업에 나섰다.
그야말로 유례가 없는, G20 국가 유일 시민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