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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1화 (12/224)

011장. 저도 이직하겠습니다.

재무부 차관 알렉스 피트는 이번 G20 복권의 출발과 끝 그리고 분배와 얽힌 상황을 요령 있게 설명했다.

딱히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기에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고개를 모로 꺾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알렉스는 내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문제는 당첨자이신 미스터 고의 국적과 구입처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그건 당신네끼리 알아서 치고받고 할 일이지 내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잖아.

“미스터 고 입장에선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네.”

나는 짧고 간결하게 ‘당신들 문제에 끼고 싶지 않아’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알렉스는 방긋 웃는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저는 미스터 고를 불편하게 하거나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등의 억지를 부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스터 고를 돕기 위해…….”

나와 알렉스의 대화 사이에 제이코가 슬쩍 끼어들었다.

“보스. 이런 일에 보스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제이코는 ‘말꼬리 잡히면 순식간에 잡아 먹힙니다’ 이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이코의 눈짓에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맞다. 협상은 변호사에게 맡기고 세금 계산은 회계사에게 맡기란 말이 있지 않은가.

쥐뿔도 모르면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간 순식간에 덤터기를 쓸 수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짓이 총알값 아낀다고 맨주먹으로 싸우다가 총 맞아 죽는 놈 아니겠는가.

내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뻔했다.

변호사가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거다.

새롭게 합류한 금융전문가들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나는 격하게 반성을 했다.

내가 제이코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코는 흡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학습 태도 훌륭한 제자를 바라보는 그런 스승의 눈빛이랄까.

제이코는 곧바로 알렉스에게 말을 건넸다.

“제안하실 내용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알렉스가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이코의 말대로 나를 껍데기도 벗기지 않고 통째로 잡아먹을 생각이었구나.

만약 미련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당첨금을 수령하러 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리바리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알렉스 같은 놈들에게 팬티까지 벗겨져 알몸으로 내쫓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선을 돌린 알렉스가 뒤쪽으로 손짓을 했다.

보좌관처럼 보이는 사내가 큼지막한 서류봉투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에 발맞춰 다른 나라에서 찾아온 방문객들도 각자 준비한 봉투를 올려놨다.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제이코의 말에 소속 변호사가 나서서 탁자 위 서류봉투를 수거했다.

“시간을 넉넉히 드릴 수 없는 사항이라서 말입니다.”

러시아 방문객이 러시안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빠른 결정을 요청했다.

“참고하겠습니다. 그런데 알렉스 차관님 말대로라면 지금 이곳에 계신 분들 외에도 더 찾아올 분이 계신다는 의미겠죠?”

알렉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미국은 미스터 고가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지지할 것임을 밝혀둡니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알렉스 피트라는 이 남자 말을 참 잘한다.

압박인 듯 압박 아닌. 묘하게 사람을 건드는 말투임에도 그게 싫지 않게 느껴진다.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데 재무부 차관까지 올라갔다는 말은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다는 거겠지?

내가 입맛을 다시며 알렉스를 바라보자, 제이코가 다른 이들은 들리지 않게 속삭이듯 물었다.

“탐나십니까?”

제이코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코가 방긋 웃는 얼굴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알렉스 차관님.”

“네. 제이코 대표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이코의 요청에 알렉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거부합니다.”

왓 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저는 미국을 대표해 이 자리에 나온 겁니다. 사적인 대화, 거래, 요청 등에는 응할 수 없음을 밝혀 둡니다.”

와, 이 단호한 인간 보소. 아마도 내가 어떤 제안을 할지 이미 꿰뚫어 본 게 틀림없다. 하지만 들어보지도 않고 단박에 거절하다니.

“저희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복잡한 내용은 아니니 곧바로 검토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알렉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방문자들도 알렉스와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회의실 안에는 나와 내 편들만 남아서…….

“은행장님?”

이 아저씨는 왜 안 나간 거야.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니, 별로야.

최애 고객이 될 나를 두고 저런 압박감들을 잔뜩 몰고 온 당사자잖아.

그냥 나가주셔.

내가 고개를 젓자, 투자팀 팀장이 곧바로 회의실 문을 열어줬다.

왈버트 은행장은 ‘크흠’하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투자팀장을 바라봤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명령에 따르던 사람이 이젠 축객령을 내리고 있으니 심사가 복잡할 것이다.

왈버트까지 회의실을 떠나자 제이코는 경찰청 국장 로버트를 바라봤다.

아, 저들도 임시고용자들이지. 동석할 상황은 아니구나.

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로버트 국장이 부하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렸다.

경찰 두 명이 작은 안테나가 달린 장비를 꺼내 들더니 회의실 곳곳 구석구석을 탐지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청장치를 찾는 건가요?”

“없으면 좋은 일이고. 있다면 없애야 할 일이죠.”

제이코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삐빅―

방문자들이 앉았던 탁자 밑에서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경찰들이 찾아낸 도청장치는 그야말로 코딱지만큼 작은 사이즈를 자랑했다.

“쯧쯧.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렇게 총 일곱 개의 도청장치를 수거할 수 있었다.

“와…… 뭐가 이렇게 많아.”

방문객은 넷인데 도청기는 일곱 개라니!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제이코와 로버트 국장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앞으론 일상이 될 겁니다.”

“보스가 장난스럽게 집행하는 돈도 누군가에겐 블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블록?”

뭔가 비유를 하는 말 같은데 단박에 알아듣기가 어렵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말입니다.”

“아아.”

나는 뒷북 터지는 소리를 내며 뒤늦게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버트 국장은 대원들을 회의실 밖으로 내보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그런데 부하들은 내보내면서 정장 로버트 국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가 의아한 눈빛을 띠자 제이코가 짤막하게 설명했다.

“안 그래도 설명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네. 설명해주세요.”

“돈을 쓸 때마다 변호사를 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을 한 적이 분명히 있다. 제이코의 에이스 로펌을 주머니에 넣을 때 말이다.

“그럼…….”

설마 경찰국 전체를 내 주머니에 넣어주겠다는 말은 아닐 테고…….

“네. 로버트 국장도 우리 쪽에 참여하고 싶다고 합니다. 물론 결정은 보스께서 내리셔야죠.”

내가 로버트를 바라보니 기대감 섞인 얼굴로 눈을 반짝인다.

“공무원이 그래도 돼요?”

내 질문에 로버트가 방긋 웃었다.

“와이 낫?”

와! 저거 저러다 유행어 되는 거 아냐? 몇 번 듣지도 않았는데 은근히 중독성 있네.

로버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지금 당장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 바닥에 인맥도 친분도 없는 내 입장에선 썩 나쁘지 않은 제한인 것도 분명했다.

“일반 경호업체가 무력을 중심에 둔, 군 출신들로 이뤄진 반면, 경찰 조직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읽히고 설킨 밑바닥 정보조직과 맞먹는 존재들입니다.”

전격적인 이직신청자 로버트가 자신들만의 장점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군 출신들은 실전 경험이 부족합니다.”

“네?”

군 출신들이 실전 경험 부족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들이 한 번 써먹기 위해 키우는 돼지라면, 우리는 쉼 없이 부려먹어야 할 개와 같죠.”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군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전쟁터를 전전한 역전의 용사는 아니란 뜻이다.

오히려 전쟁터보다 더 많은 총질 아니 총격전을 벌이는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바로 미국 경찰들인 것이다.

“설명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메리트가 있네요.”

로버트는 당연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 쪽으로 오려면 서류 한 장을 작성해야 하거든요. 혹시 그건 들으셨나 모르겠어요.”

로버트가 방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코 대표에게 들었습니다.”

“불편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경찰 고위직이신데.”

“어디에 사인하면 될까요?”

로버트는 고민할 거리도 안 된다며 곧바로 계약서를 요구했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로버트의 이직 신청은 다른 이들과 달리 묘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제이코와 다른 이들은 누군가 껴들 겨를도 없이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로버트는 말 그대로 미국 경찰. 그것도 고위직 인사다. 그런 자가 돈을 좇아 졸부 밑으로 들어온다고?

내 의구심을 알아차린 것인지, 제이코가 한 마디 도움을 건넸다.

“로버트 국장은 올해로 은퇴를 합니다.”

“아!”

“조직 생활을 오래 한 이들은 홀로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위협에 노출이 되죠. 로버트 국장은 그게 싫은 겁니다. 무엇보다 연금만으론 아이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는군요.”

“아이요?”

언뜻 봐도 육십 줄은 돼 보인다.

그런데 아직 키울 아이들이 있다고? 결혼을 늦게 한 건가?

“입양아들입니다. 경찰로 근무하던 중에 인연이 된 아이들인데, 거리에 둘 수가 없어서 받아들였다는군요.”

“그런 일이…….”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적잖게 놀랐다.

남의 아이. 그것도 거리의 아이들을 거둬들일 정도의 인격자라니.

인생을 살아온 ‘격’ 자체가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물이다.

덕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기부’란 단어가 떠올랐다.

주변 정리가 끝나면 이 부분도 고민해 볼 일이다.

“받아주시겠습니까?”

로버트가 재차 이직 요청을 했다.

어차피 미국에 있는 동안은 로버트 국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정쩡하게 엮이느니 이럴 때 확실히 손을 잡아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거기다 은퇴를 앞둔 아이들의 아빠가 아닌가.

이런 훌륭한 남자가 돈 때문에 괴로워하는 걸 멍청이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더는 고민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드릴 말입니다. 보스!”

로버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조만간 정식으로 팀을 꾸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경찰국의 지원을 받으시면 됩니다.”

단단한 로버트의 아귀힘이 나를 뿌듯하게 만든다. 아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다.

그렇게 새로운 식구가 추가되고 나서야 서류봉투 개봉이 시작됐다.

변호사팀과 금융팀은 내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일목요연한 한 장짜리 서류를 작성해 냈다.

서류를 받아든 나에게 제이코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각국의 제안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서류를 확인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으로 제안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시민권 제공.

● 세금 혜택.

● 투자자문 제공.

● 신변 보호.

어찌 보면 고만고만한 항목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또 그렇지가 않다.

세금 혜택이라는 부분은 혜택을 주더라도 자신들은 무조건 이익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886조짜리 남자가 낼 세금이니 당연한 일이다.

투자자문은 자기들 입맛대로 내 돈을 굴려보겠다는 뜻이고 신변 보호는 그것을 빙자해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제이코와 로버트 국장. 금융팀 팀장들은 각각 분야를 나눠 숨은 뜻을 설명해줬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시민권 관련이다.

이건 단순히 국적을 바꾸는 것을 넘어, 선택되지 못한 국가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걸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할 정도로 국적 선택 부분은 함부로 결정해서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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