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6화 (7/224)

006장. 데자뷔?

“우리 장손. 한 잔 더 받아부러.”

할아버지 완전히 신이 나셨다.

하긴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그때도 집안에 대학생이 탄생했다고 동네 사람들 불러 모아 잔칫상을 차렸으니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낄낄대는데, 뒤늦게 옆 마을 이장 어른이 얼굴을 내미셨다.

“회사 하나 들어간 거시. 뭐가 고로코롬 대단하다고 잔치까지 벌인다냐.”

종말리 터줏대감이 우리 할아버지라면 시큰둥한 얼굴로 마당에 들어서신 이분 왕건호 이장님은 옆 마을 을왕리의 터줏대감 되신다.

할아버지가 고주몽 태(太)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점과 동네 터줏대감이라는 간판 빼면, 딱히 내세울 게 없는 반면 왕건호 할아버지는 을왕리 터줏대감에 이장이라는 감투까지 쓰고 계셔서 어깨에 뽕이 상당하시다.

거기다 진짜 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 없지만, 왕건의 직계 후손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하시는 분이다.

그 때문에 종종 정통성 시비가 붙곤 한다.

할아버지 왈, 왕건의 고려는 옛 고려의 이름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쓴 놈이라고 타박을 하시고 왕건호 이장님은 당나라 군대 따위에 망해 버린 옛 고려를 어디 삼한 통일의 왕 씨 고려에 비교하냐며 노발대발한다.

“왕가야. 나가 부르도 안 했는디 뭐하러 와서 진상이냐?”

막걸리 거나하게 취하신 할아버지께서 곧바로 배틀에 나서셨다.

“별것도 아닌디, 옆 동네까지 소란을 떨고 지랄이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육갑 떨고 앉아 있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부러.”

와우. 할아버지. 오늘 화력 충만하시네.

“뭐가 어쩌고 어째?”

“나가 틀린 말 했어? 남의 집 잔치에 발을 들였으면 엄한 소리 내지 말고 막걸리나 처먹어. 어디서 동네 이장이 대(大) 대왕 그룹 앞에서 깝치고 지랄이여.”

아이고. 할아버지. 말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커험! 대…… 대왕 그룹에 들어간 거였어?”

얼래? 이건 또 뭐다냐. 어깨 뽕 빵빵하신 왕건호 이장님 한 수 물러나시네.

내가 대왕 그룹 들어간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그려. 대왕 그룹! 알제? 서울대 나온 놈들도 비리비리해서 거기 들어갈려믄 피똥을 싸는 거.”

“아…… 알제.”

“그러니까. 와서 축하나 해. 막걸리는 퍼지게 사다 놨으니까.”

“크흠. 뭐. 그러자고. 주몽이가 을왕리 출신은 아니어도 넓게 보면 한천면 식구 아닌감.”

“당연하지. 한천면이 뭐여. 주왕시에서도 손뼉 칠 일이어. 일루와서 머리 고기에 한 사발 해.”

“안 그래도 목이 컬컬했는디. 그래 불까나.”

오잉.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이냐.

왕건호 이장님, 우리 할아버지에게 뭐 책잡힌 거라도 있나?

할아버지 손짓에 왕건호 이장님이 군말 없이 자리를 잡는다.

“저 없는 사이에 두 분 무슨 일 있었습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께 슬쩍 질문을 드렸다.

“뭔 일은. 네 주변을 둘러봐라. 여그 젊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아버지 말씀에 마당을 쓱 둘러봤다.

흠흠. 언제 이렇게 다들 나이를 드셨다냐. 또래는 찾아볼 수도 없고 여기저기서 총각, 막둥이 소리 듣는 분들도 최하가 마흔, 쉰 줄이 태반이다.

참고로 저분들이 우리 동네 청년회 멤버시란다.

그래서일까. 우리 할아버지와 왕건호 이장님이 꽁냥꽁냥 주고받는 말들이 그냥 시빗거리로 들리질 않는다.

뭐랄까. 함께 늙어가는 죽마고우가 아직 정정하다는 것을, 과시 또는 확인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다.

“종말리랑 을왕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동네도 젊은 놈들은 다 빠져나가서 주왕시도 이름만 시(市)지 시골 군(郡)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

“아. 네…….”

시골 농촌 평균 나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소릴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확인을 하고 나니 진짜 피부로 와닿았다.

나도 며칠 후엔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니…….

마을 평균 나이는 여기서 다시 한번 올라가겠구나.

“그러니까. 니는 종말리고 을왕리고 할 것 없이. 우리 자랑이지.”

아버지가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시는데 이게 울컥울컥 우는 소리로 들린다.

괜히 코끝이 찡해지네.

시골 풍경이 이렇게 된 게 온전히 내 잘못도 아닌데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울 장손. 주몽아!”

“네. 할아버지.”

“어서 이리 와봐. 을왕리 이장님한테 인사 올려야제.”

“네. 할아버지.”

후다닥 달려가 허리가 부러져라 이장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주몽이가 인사 올립니다. 그간 건강하셨지요.”

“건강이고 뭐고 할 것도 없다. 이제 늙어서 삐걱 안 대는 데가 없어야.”

이장님이 주름진 얼굴로 내 손을 잡으신다.

“주몽아.”

“네. 이장 할아버지.”

“내가 느그 할배랑 불알친구인 거 알제?”

“그럼요. 종말리와 을왕리의 산증인이시고 역사 그 자체 아닙니까.”

“크하하. 대학물 먹은 놈이라 말빨이 다르네. 조다야. 우리보고 역사의 증인이란다.”

왕건호 이장님이 할아버지에게 조다야~ 이렇게 불렀는데 이게 별명이나 그런 게 아니고. 할아버지 본명이다.

장수왕의 아들이자 태자 자리만 일평생 지키다가 왕은 해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비운의 그분.

종종 이 쪼다 같은 놈이라는 말의 어원이 바로 고조다 왕자님을 빗대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오해가 막심한 부분이 있어서 잠시 바로 잡고 싶다.

고조다 왕자님께서는 그야말로 효자셨고 장수왕을 도와 수많은 업적을 만들어내신 일세의 영웅이셨다.

단지, 아버지가 너무 오래 사시는 바람에 (그래서 장수왕이잖아) 뭐,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망국 후에 당나라에 끌려간 유민들을 이끄셨던 불세출의 명장. 고선지 장군이 바로 아버지 존함 되신다.

삼대가 고구려 사람 이름을 가져다 붙여 놓는 바람에 동네는 물론이고 주왕시에서도 나름 유명세 떠는 소문난 집이 됐다.

“주몽아. 내 술 한잔 받아봐라. 다른 데도 아니고 대왕 그룹에 들가 부렀으니. 앞으로 출셋길이 열렸다.”

누가 보면 장원급제라 한 줄 알겠다. 동네 분들이 너도나도 칭찬을 해주시니, 어깨가 으쓱이다가도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넵!”

졸졸거리며 채워지는 막걸릿잔을 바라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으으?’ 하는 소리를 내신다.

“주몽아. 니 얼굴이 왜 그렇게 까매져부렀다냐.”

“에?”

내 얼굴이 왜 까매?

“어구어구. 왜 그런다냐. 울 주몽이 눈깔 탕이가 없어져 부렀어!”

내 눈깔이 어쩐다고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왕건호 이장님이 따라준 막걸리가 찰찰 넘치는 소리가 났다.

“어이쿠. 술 아깝게.”

이러면서 잔을 들어 올리는데.

어라? 내 손이 왜 이래.

마치 숯가마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시커멓게 타버린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엔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어라? 누가 내 눈을 가렸나? 장난치지 말아요. 나 지금 무서워지려고 그래.

“우리 장손. 왜 이렇게 새까맣게 타버린 거여! 주몽아. 너 갑자기 왜 이러냐! 눈깔에서 피는 왜 흘리고 지랄이여!”

할아버지가 기겁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온몸이 욱신거리고 눈알을 억지로 파내기라도 한 듯 격통이 밀려들었다.

“아윽!”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의 통증이 밀려들자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키며 냅다 비명을 질러버렸다.

“아아아아악!”

* * *

“아아아아악!”

퍽!

“컥!”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누군가 질겁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응? 여긴 어디. 너는 누구?

“어이 딱쇠.”

어? 이건 개진상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하는…… 아! 이런 제기랄. 깜빡 졸았구나.

“네. 상무님.”

“정신 안 차리냐? 어디 수행비서 따위가 처자고 지랄이야!”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그동안 시정했던 것만 리스트로 만들어도 백과사전 찜 쪄먹겠다.”

‘응?’

나도 모르게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상황인데…….

내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진상 상무께서 목청을 높이셨다.

“딱쇠 주제에 입가에 침 흘린 거 봐라. 내가 진짜 더러워서 못 봐주겠네.”

“후루룹.”

나는 재빨리 입가를 훔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어라? 이것도 어디서 본듯한 장면인데.

“잘리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 상무님!”

“뭘 멀뚱멀뚱 보고 있어?”

이쯤에서 아라를 데려오라고 이야기하려나?

“가서 아라 데려와야지!”

“…….”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서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가 벌어졌다.

뭐야. 이거. 데자뷔인가?

그런데 데자뷔치곤 너무 성능이 좋은데?

“이 자식이. 잠이 덜 깼나. 빨리 안 가!”

“네. 상무님.”

뜬금없는 데자뷔 현상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서 더 머뭇거렸다간 개새끼 소새끼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다.

일 초라도 빨리 아라를 데려오는 게 신상에 이로웠다.

“새끼. 어리바리해서는. 어쩌다 저런 게 내 비서로 와서 속을 썩일까.”

호텔 방문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떡후 이진상의 짜증스럼까지 또다시 데자뷔를 일으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손끝이 바늘에라도 찔린 듯 통증이 밀려들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윽!”

급히 손을 회수하고 눈두덩을 급히 비볐다.

흩어졌던 시력이 다시 돌아오자 곧바로 손가락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떤 상처도 문제도 발견할 수 없다.

“아. 뭐야. 그 꿈 때문인가.”

이 상무에게 뒤통수를 맞고 깨어나기 전 꾸었던 꿈. 입사를 축하며 동네잔치가 벌어졌고……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내 몸에 불이 붙는 꿈.

“눈에서 피도 났고.”

장면만 떠올려 보면 끔찍한 꿈이긴 한데, 꿈속에 불이 나거나 피를 본다면 대운이 들어오고 돈을 만지게 된다는 길몽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꿈속의 일을 떠올리는 사이 찌릿찌릿하던 손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상으로 돌아갔다.

“뜬금없이 그런 꿈을 꿔서는.”

최아라가 묵고 있는 호텔로 운전해서 가는데, 거리 풍경이나 신호등. 오가는 사람들까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장면이다.

“데쟈뷰가 이렇게 오래 꼼꼼히 지속되는 거였나?”

자꾸만 기분이 묘해졌지만, 일단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호텔 앞에 도착하니 변장에 변신을 거듭한 박아라가 새초롬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라 씨. 타세요.”

박아라는 도도한 몸짓으로 뒷좌석이 아니라 조수석에 올라타겠지?

이게 데자뷔든 아니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아라의 행동을 예측해 봤다.

‘진짜 조수석에 타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저기. 아라 씨. 뒷자리에 타시는 것이.”

뒤에 타면 멀미를 한다고 하려나?

“뒤에 타면 멀미해요.”

“…….”

이게 무슨!

이 정도면 흐리멍덩한 긴가민가한 데자뷔 따위로 치부하기엔 너무 생생한 거 아냐?

자다 깨보니 예지력이라도 생긴 건가? 아니, 아니야. 하루 이틀 자는 것도 아닌데.

그럼 개진상이 뒤통수를 쳐서 내 뇌에 이상 증상이 생긴 건가?

특정 조건이 발동하면서 각성해 버린 초능력자처럼.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자 박아라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안 가고 뭐 해요?”

“아. 네. 가야죠.”

이대로 출발을 할까. 아니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확인해 볼까.

확인하자.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내 착각일 뿐인지 아니면 진짜 나에게 특별한 뭔가가 일어난 것인지 확인을 해 두는 게 좋겠어.

“상무님께서 불편해하십니다.”

“뭐요?”

“뒷좌석이 귀빈석입니다.”

“멀미한다니까요.”

“…….”

여기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졸라 짜증 내면서 차에서 내리겠지? 아라야 그래 줄 거지? 제발 그래 주라.

“아 짱나. 운전이나 하는 주제에.”

내가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자, 신경질적으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간 박아라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냥 길에 서 있다. 어서 달려와 뒷문을 열어달라는 것처럼.

아우! 뭐야. 진짜 뭐냐고!

나는 재빨리 운전석에서 내려 차량 뒷문을 정중하게 열어줬다. 그리고 아라가 다음에 취할 행동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피식 웃음을 흘리며 올라타는 박아라의 모습이 내 각막에 낙인처럼 찍어 박힌다.

‘이거 데자뷔 아니지? 누가 봐도 이건 데자뷔 따위가 아니잖아. 그렇잖아!’

아라야. 네가 그렇게 ‘피식’ 웃을 거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면 너는 내 말을 믿어 줄 수 있겠니? 아마도 미친놈 취급하며 미간을 찌푸리겠지.

장난이라면 모를까… 누가 이런 말을 일을 믿어주겠냐고.

그런데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났잖아. 진짜 일어났다고!

와! 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일단 일반적인 데자뷔와는 상대도 되지 않은 기현상임은 확인이 됐다.

나는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았다.

뒷자리에서 실실 쪼개고 있는 아라 저년을 이 상무 방에 밀어 넣을 때까지 그때까지도 내 예지가 맞아떨어진다면…….

나 초능력자가 되는 건가? 그것도 미래를 볼 수 있는!

설마, 아까 꾼 그 꿈이 이런 상황을 미리 점지해준 그런 꿈이었던 건가?

딱쇠 2년 차. 떡식회 운짱 전문 고주몽이 뒤통수 얻어맞고 초능력자가 되다니!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나는 믿기지 않는 심정을 억눌러 진정시키며 진상이가 기다리고 있는 호텔 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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