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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4화 (5/224)

004장. 어? 엇! 어어어!

양자물리학 연구소.

겉보기엔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규모를 짐작하기가 어려워졌다.

체감상 지하로 이동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이게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다 보니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감조차 잡기가 어렵다.

온갖 위험 표지가 덕지덕지 붙은 통로를 지나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문 앞에 도착했다.

말이 문이지 생긴 건 어디 지하벙커 무기고에나 설치될 법한 묵직한 철문이다.

이 상무 표정을 살피기 위해 슬쩍 뒤를 돌아봤는데, 저도 ‘이게 뭐지? 내가 뭐에 투자를 한 거야?’ 요런 표정이다.

하…… 아무리 돈이 썩어 돌아도 그렇지. 자기가 어디에 투자한 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케세라세라. 될 대로 되라는 거냐.’

이 상무의 한심한 모습에 두통이 밀려왔다.

‘어쩌면, 불타는 금요일에 결재 서류가 올라갔는지도 모르겠네. 떡 치는 날엔 평소보다도 더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는 인간이니.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싸인을 휘갈긴 거겠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이 상무뿐 아니라 비서실도 쌍으로 욕먹을 일이다.

이 상무야 뉴스 보는 것도 귀찮아하는 인간이니 비서실에서 잘 케어를 했어야 할 일 아닌가 말이다.

승정원 꼰대 자식들.

아무리 이 상무가 묻지마 투자를 한다고 해도 그렇지.

똥인지 된장인지는 알려주면서 떠먹여야 할 것 아니냐고.

평소엔 스카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잘난 척은 다 하더니 아주 일 처리는 개판이로구나.

연구소 안내인이 철문 옆에 서더니 손바닥을 가져다 대고 눈깔을 가져다 댔다.

첩보영화나 봤던 장면이다. 이걸 스크린이 아닌 쌩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그게 끝인가 싶었는데 작은 구멍에다 대고 입김까지 불어댔다.

입 냄새 감별 장치라도 있는 건가? 진짜 별의별 보안장치가 다 있구나 싶다.

삑삑삑.

안내인이 최종적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확인 버튼을 누르니 그제야 단단하게 잠겨 있던 철문이 스르르릉 움직였다.

슬쩍 문 안쪽을 살펴봤는데, 그게 끝이 아닌 것 같다.

안쪽에 다시 철문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인의 손짓에 우리는 철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던 이 상무도 이번엔 어쩔 수 없는지, 나와 상선 옆에 바짝 붙어섰다.

들어왔던 철문이 닫히자 윙윙 소리와 함께 에어 샤워가 시작됐다.

자잘한 먼지까지 모두 털어내는 걸 보니 이 안쪽은 굉장히 민감한 실험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다시 맞은편 철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철제 캐비닛이 주르르 눈에 들어왔다.

안내인은 보호복 비슷한 것을 꺼내더니 환복을 요청했다.

여기까지 들어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우리 셋은 안내인이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에어 샤워를 반복하고 나서야 우리는 최종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워!”

공포감을 조성하는 기다란 통로를 지나 철저한 보안을 요구하는 철문을 통과하고 에어 샤워 2회차까지 마무리한 다음에 도착할 수 있었던 바로 이 장소.

“와우!”

다시 한번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상무님. 도대체 뭐에 투자를 해야.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겁니까?”

내가 연신 감탄한 표정으로 이진상을 바라봤다.

잔뜩 쫄아서는 굳은 표정이었던 이 상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에헴!’ 하는 표정이다.

“내가 설명을 한다고 해서 딱쇠 너 따위가 알기나 하겠어?”

네네. 설명 못한다에 내 전 재산을 걸게요.

“역시. 상무님이십니다. 저는 그저 감탄밖에는 할 게 없네요.”

현대판 내시 수행비서의 임무에 맞게 손바닥을 싹싹 비벼줬다.

시도 때도 없이 비벼서 은퇴할 즈음엔 지문이 닳아 없어지는 거 아닐까 싶다.

함께 들어왔던 상선이도 신천지를 봤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지긴 마찬가지다.

놀란 걸 떠나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눈이 초롱초롱하다.

진짜 말 그대로 SF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를 훌쩍 건너뛴 듯한 거대한 실험 장치가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걸 뭐라고 부르면 될까. 하이테크 스피어? 아니 이건 너무 약해. 울트라 하이테크 슈퍼 스피어?

내가 연구소 지하에서 마주친 그것은 직경 30여 미터 정도의 거대한 금속구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연구소 지하에 마련된 장소는 거대한 돔구장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 이런 어마어마한 공간을 만들어놨다는 점에서 이미 압도를 당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지하 공간 중심에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에 가면 번쩍번쩍 돌아가는 미러볼처럼 30미터짜리 거대한 금속구가 매달려 있다.

한눈에 딱 봐도. 아! 저건 최첨단 뭐시기 거시기가 잔뜩 들어간 바로 그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금속구 주변은 특이한 구조물이 자릴 잡고 있는데, 그 모양이 훌라후프처럼 거대한 링 형태를 가지고 있다.

링 세 개가 교차하듯 금속구를 감싸고 있는 형태라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온갖 전선들과 케이블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 뒤엉켜 있었다.

넋 나간 얼굴로 돔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데 우측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이진상 상무님?”

불그스레한 얼굴에 북유럽 바이킹 같은 수염. 슈퍼맨의 클라크 켄트가 쓰고 다닐 것 같은 뿔테 안경을 뒤집어쓴 대머리 노인 하나가 반가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이 상무가 ‘아 아저씨는 누구?’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이곳의 책임자가 아닐까요?”

나는 최대한 그럴싸한 답을 내놓았다.

“아아. 책임자.”

이 상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머리 바이킹 뿔테 노인네와 악수를 나눴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하하. 그렇지요?”

누군지도 몰랐으면서 그렇지요는 무슨.

“이 상무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하하.”

우리 상무님. 아까부터 ‘하하’만 열심히 반복하고 계신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상황이니 괜히 주둥이 털어서 밑천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간만에 20년 넘게 수련하고 수련하고 또 수련해 왔던 영어 실력이 빛을 볼 시간이다.

“소장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미스터….”

“고. 미스터 고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상무님의 수행비서직을 맡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소장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야. 이 아저씨. 반응이 왜 이러지?’

보통의 대화라는 게 나는 누구. 너는 누구. 간략히 통성명이 오가고 서로 간의 용건을 주고받는 거잖아.

“여기서 계속 서 있을 게 아니라면 적당한 장소로 이동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상무님께 그간 연구 상황도 이야기해주시고 말입니다.”

“아아.”

아아? 이 양반 진짜 반응 이상하네. 지하에서 숫자만 계산하다 보니 성격에 문제가 생긴 건가?

“이동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곧 실험이 시작되니.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결과만 확인하면 됩니다.”

무슨 실험인지는 설명도 없이 그냥 닥치고 구경을 하라고?

이 노인네가 누굴 병신 호구로 보나.

울 상전 얼굴을 힐끔 살펴보니 진상이도 이건 아니다 싶은 모양이다.

“불가합니다. 상무님은 대왕 그룹의 4대 후계입니다. 실험의 성격, 내용도 알지 못하고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딱 부러지게 ‘불가!’를 외쳤다. 그제야 ‘아!’ 하면서 뒷북 터지는 소리를 낸다.

“이런, 이런. 그 생각을 못 했군요.”

뭐? 그 생각을 못 해?

잠을 자다가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눈을 뜨는 게 일인데. 미처 눈 뜨는 걸 깜빡하고 돌아다녔다는 말과 뭐가 달라.

‘이거 나만 수상한 거야?’

투자자가 직접 방문을 했는데. 그것도 그냥 투자자가 아니라 글로벌 전자 기업 대왕 전자의 상무가 직접, 몸소 이곳까지 나셨는데 생각을 못 했다고?

“상선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에?”

에라니. 뭔 놈의 대답이 그 모양이야.

상선아 정신 차려! 지금 넋 놓고 구경꾼 놀이 한때냐!

비서실 인재라는 놈이 왜 그러고 있어.

“여기 이 양반들 뭔가 수상하지 않냐고 묻는 거다.”

“뭐가요?”

허걱! 이게 뭐라는 거야.

너 하버드 나온 거 맞아? 딱 보면 척하고 알아차려야지!

여기 대머리에 홍조든 바이킹 뿔테 노인 하는 짓을 봐. 얼굴에 ‘나 수상한 놈’이라고 써 붙이고 있다니까.

나의 애절한 눈빛은 곧바로 배신, 아니 외면을 당했다.

상선이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되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구나.

이게 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양 책만 들여다본 자들의 현실인 게야.

너 이 새끼. 오늘부터 고문관 확정이다.

내가 그동안 하버드 간판에 속아서 헤롱거렸던 거 철저히 반성한다.

스카이 출신 승정원 애들만 병신인지 알았더니. 하버드도 그 밥에 그 나물이냐.

아니 왜. 지방잡대 출신만도 못하는 건데!

이럴 거면 월급이라도 좀 많이 주던가.

나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이진상 상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응?”

“응이라고 반문하실 때가 아닙니다. 애들 아무리 봐도 하는 짓이 수상합니다.”

“어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여기 모여 있는 자들 중 한국말을 하는 놈은 없는 것 같다. 방금 한 말을 알아들었다면 표정이 변하든 눈빛이 변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부터 제가 상황을 제어해도 되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컨트롤이라는 단어를 뱉으려다 재빨리 한국말로 수정했다.

“그래. 우리 고 대리만 믿는다.”

이야. 우리 고 대리. 입사하고 처음 듣는 호칭이구나.

나는 문어 대가리 바이킹에게 고개를 돌렸다.

“상무님께서 궁금한 게 있다고 하십니다.”

“시간이 없는데…….”

“없는 시간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상무님입니다. 대답 똑바로 안 하면 투자를 빼겠다고 하십니다.”

내 경고성 멘트에 문어 대가리 바이킹이 ‘킥’ 웃음을 보였다.

‘으응? 저건 무슨 의미냐.’

투자자가 투자를 빼겠다고 하는데 되레 좋다고 웃어?

머릿속에서 삐― 하고 경고등이 켜졌다.

잠깐! 이거…… 투자처를 관리하는 비서실도 투자를 결정하는 이 상무도 몰랐던 투자.

거기다 투자비를 더 뜯어내도 모자랄 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고?

‘젠장. 이 상무가 여기 투자한 적 없는 거 아냐?’

경고등이 켜진 것까진 좋았는데. 그게 너무 늦어버렸다.

내 뒤에서 벌벌 떨고 있던 이 상무가 ‘컥!’ 소리를 내며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문어 대가리 바이킹 손에 어느새 소음총이 들려있었고 방금 총알을 뱉어냈다는 듯 희미한 연기와 화약 내음이 밀려들었다.

방금까지 나와 눈빛을 나누고 있던 이진상의 이마에 콩알만 한 구멍이 났고,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 엇! 어어어!”

씨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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