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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2화 (3/224)

002장. 글로벌 호구 나셨네.

베스트 드라이버 뺨치는 실력으로 최아라를 호텔 앞까지 안전하게 모셔왔다.

또 하염없이 앉아 있을까 봐 재빨리 달려가 뒷문도 열어줬다.

살포시 차에서 내린 최아라가 들고 있던 파우치를 살짝 열어 보였다.

‘미국에 오면서 환전도 하지 않은 거야? 달러는 없고 뭔 놈의 배춧잎만 가득해? 한인타운에서 먹고 마시려 해도 여긴 원화가 아니라 달러가 필요한 땅이라고!’

“고생했어. 여기.”

‘어이, 최아라 씨. 그래도 만원은 너무 하잖아!’

“안 받아?”

“그럴 리가요. 매번 감사합니다. 아라 씨.”

미국 땅에서 배춧잎으로 팁을 받는 게 묘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 들어가면 국밥 한 그릇이라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니 감지덕지 받아들었다.

크흠. 돈에 이름표 써진 것도 아니고.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나의 굽실거림이 최아라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서일까.

이동하는 중에 연신 구시렁거리던 그녀가 설핏 웃어 보이더니 턱짓을 했다.

‘네네. 돈까지 받았는데, 앞장서서 안내해야죠. 목욕 가운을 입고 한참 준비 운동하고 있을 이 상무에게 안전하게 배달해 드립죠.’

호텔 방을 똑똑 두들기니 이 상무의 거만한 목소리가 당연하다는 듯 흘러나왔다.

“들어와.”

나는 두말하지 않고 호텔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라 씨.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이 상무의 호텔 방문이 닫히고 나자 그제야 나도 휴식 시간이 생겼다.

지친 몸으로 옆방에 들어서니 같은 비서실 직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이진상 상무의 수발 내시라면 이들은 승정원 관원이다.

‘이왕 하는 내시 짓 상선 정도까지만 올라가도 해 볼 만할 텐데. 젠장, 어째 말하다 보니 저놈들은 티오피. 나는 그냥 커피 느낌이다.’

힐끔.

이제 왔냐는 듯 잠시 고개를 돌려 아는 척을 하더니 그게 끝이라는 듯 다시 TV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지방잡대 출신 노비와 스카이 출신 정예비서가 친해질 일이 뭐 있겠는가.

‘재미있는 거라도 하는 건가? 왜들 저렇게 다들 집중을 하고 있지?’

하나 같이 TV만 보고 있으니 자동으로 시선이 갔다.

“복권 방송?”

중얼거리듯 이야기하자 승정원 관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쉿!’하고 닥치란 신호를 보냈다.

‘뭐야? 뭔데?’

그나마 사람 취급해주는 비서실 막내 나상선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스카이를 가볍게 지르밟는 하버드 출신의 똑똑이인데, 천만다행으로 인성도 하버드급이다. 덕분에 비서실에서 유일하게 형 동생 하는 친근한 사이다.

“왜들 저래?”

“모르세요?”

“알면 묻겠냐?”

“세계기후 보호를 위한 글로벌 로또 당첨방송이잖아요.”

“세계기후 보호를 위한 글로벌 로또?”

고개를 갸웃거리자 상선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다른 비서들 방해되지 않게 물러나 이야기하자는 건데. 이깟 복권 방송이 옆 사람 눈치를 볼 정도로 조심해야 할 정도인가?

“유엔에서 만든 복권 몰라요?”

“뭔 헛소리야. 개들이 마사회도 아니고 유엔에서 복권을 왜 만들어.”

유엔이 사행 단체도 아니고 복권을 만들어서 뿌리다니. 그야말로 금시초문이다.

“아 진짜. 어디 오지에서 잠만 자다 왔어요? 요즘 저게 완전히 화젯거리이잖아요.”

“뭐가 얼마나 핫하기에 다들 저 모양이냐? 복권이 세상에 처음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다들 왜 이리 야단법석인지 모르겠다.”

“이 형님. 진짜 깜깜이네. 저거 당첨금이 어마무시. 아니 경천동지? 그것도 아니다. 음…….”

“당첨금이 얼마나 되기에 경천동지보다 더한 비유를 찾고자 고민을 하는 거냐.”

“아 모르겠다. 표현력이 달려서 그 이상은 모르겠네요.”

“아니. 이미 충분하다. 나도 경천동지 그 이상은 쉽사리 안 떠오르거든. 그래서 얼만데? 얼마기에 저러고 있어?”

“놀라지 말아요.”

“자식이. 내 돈도 아닌데 놀라서 뭐하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상선이는 '과연 그럴까요?' 하는 표정으로 씩 웃어 보였다.

“이번에 유엔에서 만든 글로벌 로또 리치리치의 당첨금은 말입니다.”

“아, 그래서 얼마냐니까.”

“무려, 사천오백칠십삼억!”

“뭐야. 끽해야 사천오백억 가지고 지금 이러는 거냐? 아, 아니구나. 말이 사천오백억이지 그것도 어마무시하긴 하다. 그런데 경천동지까지는 아니지 않냐? 예전에 보니까. 슈퍼볼도 그 정도는 심심치 않게 나오더구먼.”

“뭔 소리예요. G20 국가가 연합으로 발행한 복권인데. 원이 아니라 달러라고요.”

지금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사천오백칠십삼억 원(₩)이 아니라 사천오백칠십삼억 달러($)라고? 잠깐 이걸 한국 돈으로 바꾸면…….

“오락가락하는 환율 대충 때려 넣어도 사백오십칠조입니다.”

“컥! 이건 어마무시나, 경천동지로 표현할 수 있는 당첨금이 아니구나!”

“지금 실시간으로 당첨금을 공개하고 있는데 아주 미친 듯이 올라가는 중이에요. 이게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쫄깃쫄깃. 무슨 말인지 알죠?”

“어. 그래. 알아. 그래서 이게 언제 추첨을 하는데?”

“언제는요. 바로 오늘이지. 어디 보자. 이제 한 시간 남았네요.”

상선이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남은 시간을 알려준다.

“샀냐?”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샀죠. G20 국가는 물론이고 글로벌 복권에 참여하지 않았던 국가의 국민까지 해외로 나가서 복권을 사느라 아주 난리입니다.”

“나는 왜 몰랐지? 세상이 복권 한 장에 이토록 미쳐 날뛰고 있는데. 왜 나는 몰랐던 거야?”

“아, 형은 몰랐을 수도 있겠네요. 하루도 안 쉬고 상무님 수발만 들고 있었으니. 거기다 이게 이벤트성 복권이라 발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요.”

“씨발. 그걸 말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상 다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 돼?”

“어쩌겠어요. 상무님이 신문이고 뉴스고 간에 근처에도 가질 않으시니. 뭐, 이해는 합니다.”

“이해하지마! 그래서. 그거 어디서 살 수 있는 건데?”

“한국은 로또 판매점에서 대행했고. 미국은 슈퍼볼에서 대행하고 있어요.”

슈퍼볼. 그냥 아무 가게나 가서 사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진짜 대박이 뭔지 알아요?”

“아직도 놀랄 일이 있어?”

“이거 세금이 없잖아요.”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일이억도 아니고 조 단위의 당첨금인데 세금이 없다니!

“유엔이라서?”

상선이 피식 웃어버렸다.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유엔이 세계기후관리팀을 발촉시켰거든요.”

“그런데?”

“그런데는 무슨. 그거 제대로 돌리려면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관리팀 전용 인공위성도 몇 개 띄워야 하고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 관리하는데 슈퍼컴도 여러 대 필요하고 아무튼 그렇다네요.”

“그래. 돈 억수로 깨지겠네.”

“그런데 정작 돈을 내겠다는 나라가 없는 겁니다. 당장 트롤프 대통령 같은 경우엔 온실화니 뭐니 다 사기라고 하면서 아예 탈퇴해 버렸잖아요.”

“어. 그래. 그건 나도 알아.”

트롤프 그 양반 직책만 대통령이지 하는 짓은 글로벌 깡패다.

그게 은근히 병맛인데 이게 또 매력이 있다.

“그래서?”

“미국이 먼저 발을 빼 버리니 다른 나라들도 눈치가 보인 거죠. 속된말로 나랏돈 꺼내서 유엔에 처넣어야 하는데. 자칫하면 호구 잡힐 수도 있고. 당장 자기들 나라 빈민도 구제하기 힘들어 죽겠는데 그 많은 돈을 유엔에 가져다 바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음 선거에서 죽창 두들겨 맞고 다들 쫓겨나겠지. 그래서?”

“유엔이 머리를 쓴 거죠. 세계기후관리팀을 운영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G20 국가들에 이벤트성 복권을 발행하자고 제안했죠.”

“아무리 유엔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고 해도 그걸 덥석 받아들였다고?”

이벤트성이라고 해도 20개 국가가 동시에 복권을 발행해야 한다. 이게 쉽사리 될 리 없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당연히 떡고물이 묻어나니 하는 거죠.”

‘떡고물이라. 수백조짜리 떡에 묻은 고물은 도대체 얼마로 계산을 해야 할까.’

“총 구매금액의 절반은 당첨자가. 남은 절반의 절반은 유엔이. 그리고 남은 절반은 발행국가가 나눠 가지기로 했죠. 복권 발행하고 전산 관리 통합하고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지만 단방에 수십조가 떨어지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콩고물이라면 누구라도 앞장서 나설 일이다.

“그럼 사백칠십조를 둘로 나누면 이백삼십조 정도 되고.”

“계산이 틀렸습니다.”

“야, 자잘한 건 반올림하고 그러는 거지. 누가 하버드 아니랄까 봐. 까칠하기는.”

“아니. 그게 아니고요. 지금 금액은 순수한 당첨금이라고요. 이미 절반을 뗀.”

“잠깐만 그러면…….”

“네. 당첨되면 세금 한 푼 내지 않아도 되는 수백조의 공돈이 들어오는 거죠. 그러니 다들 저러고 있는 거고요.”

“이거 이거. 인생역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역사를 바꿀 정도의 돈이잖아.”

사백칠십조면 대한민국 일 년 예산을 훌쩍 넘어가는 돈이다.

전임 대통령이 4대 강에 삽질하면서 20조 넘게 퍼부었다고 아주 난리가 나지 않았던가.

그 돈이면 대한민국 대학생들 전부 학비면제를 받고도 남는 돈이라고 지랄 떨던 게 엊그제 같다. 그런데 그 20조의 스무 배 넘는 돈이라니!

“아우. 상상만 해도 살 떨리네.”

“크크크. 형도 그래요?”

“그걸 말이라고. 아, 한 시간 남았다고 했지!”

“네. 웃고 떠들다 보니 이제 40분 정도?”

“젠장. 나 나갔다 온다.”

재빨리 지갑을 열어 돈을…… 미친. 최아라 욕할 일이 아니었구나. 나도 환전을 안 했잖아. 잠깐. 카드가 있었지.

“아씨. 농협 직불카드…….”

BC카드 한 장 들고 다니지 않는 인생, 내 지갑이 오늘따라 비참하게 느껴졌다.

내가 넋 나간 표정으로 지갑을 바라보고 있자 상선이 슬쩍 10달러를 건넸다.

“이걸로 해 봐요. 게임당 10달러니까. 한 게임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역시. 상선이 이 멋진 놈 같으니라고. 내가 당첨되면 반땅해 준다.”

“크흐흐. 되기나 하고 그런 소릴 해요.”

10달러를 움켜쥐고 곧바로 호텔 방을 벗어났다.

다행히 호텔 주변에 복권 판매처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글로벌 로또를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선택한 번호는 ‘FC365ZY548’

뭔 놈의 복권 번호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놨는지.

알파벳과 숫자 고르다 시간을 넘길 뻔했다.

이벤트 글로벌 로또는 모두 열 자리로 이뤄져 있는데. 숫자는 0~9. 알파벳은 A부터 Z까지 26개 중 선택을 하는 방식이다.

조합만 놓고 본다면 로또가 됐든 슈퍼볼이 됐든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극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복권을 들고 헐레벌떡 호텔 방으로 돌아오니 다들 각자 구매한 복권을 손에 들고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샀어요?”

“어. 덕분에.”

“그새 당첨금이 더 올랐네요.”

“그래? 얼만데?”

“아까 형이랑 이야기할 때만 해도 사백칠십조 정도였는데, 한 시간 사이 칠백조를 넘어섰습니다.”

“와우! 진짜. 미쳤구나. 다들 미쳤어.”

남의 돈 10달러를 움켜쥐고 헐레벌떡 달려나가서 복권 사 들고 온 나도 그 미친놈이긴 하지만, 진짜 엄청난 열풍이다.

하긴 G20 국가 국민 수만 따져도 지구 인구 절반은 훌쩍 넘어서니 칠백조 정도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작한다!”

화면에 유엔이 등장했다.

다른 때 같으면 누군가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발표를 할 자리에 로또 당첨 기계가 놓여있다.

그것도 무려 10개나!

인생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진짜 별꼴을 다 보게 되는구나. 유엔 발표장에 로또 추첨기라니.

유엔 사무총장이 등장하고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각국 대사들이 깔맞춤을 했다.

잠시 뒤, 지구기후를 지키기 위해 어쩌고저쩌고하는 넋두리가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로또 기계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꿀꺽.

긴장된 마음에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나만 떨리는 건가 싶어 다른 비서들을 바라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뚫어져라. TV 화면만 바라본다.

첫 번째 기계에서 첫 번째 알파벳이 선정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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