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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화 (2/224)

001장. 수행비서라 쓰고 딱쇠라 읽는다.

“우리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대왕의 후예여! 너는 어디 가서 처맞고 다니면 안 되는 것이여!”

“네. 할아버지.”

귀에 딱지가 내리게 듣는 이야기라 이럴 때마다 ‘네네’를 반복했다.

괜히 말대꾸라도 했다간 귀에 피가 나게 같은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니 이름을 주몽이라고 지었어. 그런데 니가 왜 아직 취직도 못 하냔 말이여! 돈을 벌어야 장가도 가고 손주도 볼 게 아니냔 말이여!”

청년실업 300만을 넘보는 이 헬조선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취직은 했냐, 결혼은 언제 하냐. 손주는 언제 낳을 거냐. 아닌가 싶다.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잔소리에 어머니가 그만 좀 하라는 듯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 많은 애한테 왜 그러세요.”

“이게 다~~아! 어멈 때문이다!”

“할아버지. 장손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울 장손이 할 말이 있어?”

“네. 할아버지.”

“크흠. 그래. 장손이 말을 한다는데 내가 들어봐야제.”

“에헴. 제가 말입니다.”

내가 턱 끝을 세우며 슬쩍 바람을 잡자,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응?’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대왕 그룹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 이름이 흘러나오자 세 분은 칼 군무 추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대왕 전자에 합격을 해부렀습니다. 카~ 고씨 집안 장손이. 아니 종손이! 대기업에 취직해 버렸다 이 말입니다!”

나는 국뽕 열 사발 거나하게 들이킨 표정으로 취업 소식. 그것도 대왕 그룹 입사 소식을 이야기했다.

“아구야. 이게 무슨 소리여? 지금 울 장손이 대왕 그룹에 들어갔다 이 말이여?”

할아버지는 흥분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동네 사람들!’을 외칠 기세다.

“어미야 뭐하냐! 빨랑 동네 사람들 불러 모으지 않고!”

할아버지의 외침에 대응각을 세우던 어머니 역시 비장한 눈빛으로 방을 나섰다.

아버지도 마당으로 달려나가더니 대번에 돗자리를 깔았다.

“고롬. 고씨 집안 종손이 비리비리할 리가 없제!”

대한민국 전라북도 주왕시 한천면 종말리에 단박에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울 주몽이가 해낼지 알았다!”

“할아버지! 앞으로 꽃길만 걸으시면 됩니다!”

“고레?”

“그럼요! 울 집안은 앞으로 종손이 책임지겠습니다!”

“어엄아. 여그 술 좀 가져와라. 오늘 아니면 언제 좋아 먹겠나!”

“조금만 기다리세요. 주몽이 아빠가 동네 사람들 모으고 있다네요.”

“크하하하하. 그래. 그래. 그것 쫌 못 기다릴까!”

전라도 지방 대학 경영학과 출신.

스펙이라곤 학점과 아르바이트 경력이 전부인 스물일곱 살의 취업 준비생 고주몽.

7전 8기 끝에 대기업 입사에 성공하던 날 있었던 일이다.

* * *

“움냐. 너무 많이 묵었어. 배불러서 죽겠…….”

퍽!

“컥!”

‘아! 이런 제기랄. 깜빡 졸았구나.’

“어이 딱쇠.”

이진상 상무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 봤다.

“네. 상무님.”

“정신 안 차리냐? 어디 수행비서가 처자고 지랄이야!”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그동안 시정했던 것만 리스트로 만들어도 백과사전 찜 쪄먹겠다.”

“죄송합니다.”

“침 흘린 거 봐라. 내가 진짜 더러워서.”

“후루룹.”

재빨리 입가를 훔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젠장, 너는 일등석에서 와인 빨면서 누워왔지만, 나는 한국에서 여기까지 일반석에서 부동자세로 벌서다 왔다고! 시차 적응은 둘째라 쳐도 사람이 숨 돌릴 틈은 줘야 하잖아.’

“잘리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 상무님!”

“뭘 멀뚱멀뚱 보고 있어? 가서 아라 데려와야지!”

“아!”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

재벌 4세 우리 상무님께서 인기 여배우 또는 인기 여가수 또는 인기 여모델과 합방 하시는 날이다.

“아? 지금 '아'라고 했냐?”

“총알같이 다녀오겠습니다.”

여기서 더 머뭇거렸다간 개새끼 소새끼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다.

일 초라도 빨리 다녀오는 게 신상에 이로웠다.

“새끼. 어리바리해서는.”

호텔 방문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이진상 상무의 짜증스런 시선이 날아 꽂힌다.

“후우. 오늘따라 더 힘 빠지네. 외국까지 나와서 이게 뭔 미친 짓인지.”

오늘도 취업 전선에서 피를 쏟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하자.

최아라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 도착하니 변장에 변신을 거듭한 최아라가 새초롬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라 씨. 타세요.”

최아라가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기. 아라 씨. 뒷자리에 타시는 것이.”

“나는 뒤에 타면 멀미해요.”

지금 누굴 죽이려고. 그냥 뒤에 타서 멀미해! 점심때 먹은 기내식 비빔밥이 튀어나와도 조수석은 착석 불가야!

“상무님께서 불편해하십니다.”

넌지시 이진상의 성격을 이야기했다.

먹다 버린 사과라도 남이 건드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 이진상이다.

그것이 비록 그저 옆자리에 앉히는 것뿐이라 할지라도 이진상은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뒷좌석이 귀빈석입니다.”

“멀미한다니까요.”

그냥 멀미하라고. 세탁비는 법인카드로 긁으면 그만이니까.

“내 말 안 들려요?”

시동을 끄고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아 짱나. 운전이나 하는 주제에.”

운짱을 해도 나는 시험 봐서 정식으로 입사한 거야. 너처럼 떡장사해서 위세 떨지는 않는다고!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자, 최아라가 신경질적으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간 최아라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냥 길에 서 있다.

“쓰바. 진짜 가지가지 한다.”

재빨리 운전석에서 내려 차량 뒷문을 정중하게 열어줬다.

그제야 피식 웃음을 흘리며 올라타는 최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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