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8장.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02 >
섭무천이 광오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벽우진에게는 가소로워 보였다.
마치 자신이 뭐라고 되는 양 말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섭무천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는 게 시시했겠지. 마땅한 상대가 없었으니까.’
뒷짐을 진 벽우진이 마치 다 안다는 눈빛으로 섭무천을 쳐다봤다.
천년마교주 섭무천은 소문대로 제 2의 천마 소리를 들을 정도의 고수였다.
마교 내에서도 최상위에서 군림하는 구마조차도 감히 비교하기에 힘들 정도의 강자가 섭무천이었다.
심지어 전대 마인들로 이루어진 장로원의 장로들조차도 섭무천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스으윽.
하나 그게 섭무천에게는 독으로 작용했다.
적수가 없으니 향상심 역시 꺾였던 것이다.
“지금의 눈빛, 많이 거슬리는데?”
섭무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벽우진의 눈빛이 심히 거슬렸던 것이다.
동시에 섭무천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의 의지를 따라 마기가 흉포해졌던 것이다.
키이이! 끼이이잉!
하지만 흉포한 마기의 공세에도 벽우진의 꼿꼿한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벽우진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를 마기는 조금도 뚫지 못했다.
“흐음!”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섭무천의 입술이 비틀렸다.
벽우진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막히는 건 상상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섭무천은 공력을 좀 더 끌어올렸다.
‘최강자는 나다. 인간 중에 나보다 더 강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확신이 서린 눈동자로 섭무천이 마기를 내뿜었다.
이윽고 그의 전신에서 시커먼 마기가 먹물처럼 사방을 집어삼켰다.
지상 최강, 최악의 무공이라 일컬어지는 천마신공의 마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이다.
후우우웅!
하지만 결과는 썩 달라지지 않았다.
소림무제라 불리던 법무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천마신공은 벽우진의 무형지기를 뚫지 못했다.
밀고 밀리기를 반복할 뿐 정작 벽우진에게 접근조차 못했던 것이다.
“참나.”
그 광경에 섭무천이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림맹의 다른 무인들과 수준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천마신공의 마기조차도 이렇게 확실하게 막아낼 줄은 몰라서였다.
“천마신공을 대성했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지.”
“아직 거들먹거리기에는 이른 것 같은데 말이지. 대결은 시작도 안 했어.”
완벽하게 막아낸 것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인지 섭무천의 표정이 달라졌다.
얼굴에 은은하게 서려 있던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졌던 것이다.
동시에 그의 기도가 다시 한 번 달라졌다.
“말로만 떠들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츠츠츠츠!
벽우진이 씨익 웃으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곤륜파의 비전절학이자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신공인 상청무상신공(上淸無上神功)의 진기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자 섭무천이 뿌리던 천마신공의 기운이 크게 출렁거렸다.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운에 일순 밀린 것이었다.
“흥!”
그 모습에 결국 섭무천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더 이상의 입씨름은 하기 싫다는 듯 드디어 팔짱을 풀었던 것이다.
동시에 마기가 더욱 강대해졌다.
“진즉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사나운 기세와 함께 사방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어둠이 내린 듯 섭무천에게서 흘러나온 마기가 주변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갔던 것이다.
쌔애애액!
그뿐만 아니라 섭무천은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보는 이의 심령마저도 빼앗을 듯이 묘한 기운을 흩뿌리는 검을 쥐고서 벽우진을 향해 거칠게 휘둘렀다.
쩌저저적!
섭무천의 마기를 잔뜩 머금은 검이 대지를 갈랐다.
단순한 종 베기에 땅이 갈라졌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섭무천의 검강은 벽우진의 무형지기는 물론이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무림맹의 무인들도 절단내버렸다.
이유도 모른 채 수십 명이 섭무천의 검강에 썰려 나갔던 것이다.
꽈과과광!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낸 섭무천의 무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땅이 뒤집어지고 하늘이 갈라지는 위력에 무림맹은 물론이고 천년마교의 마인들 역시 감히 두 사람의 권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든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꽈아앙!
벽우진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심지어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고 있는 장로원의 노마두들조차도 접근을 피했다.
괜히 휘말렸다가는 늙은 몸뚱이가 남아나질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꽈앙! 콰쾅!
섭무천과 마찬가지로 뒷짐을 푼 벽우진이 두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남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섭무천의 마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벽우진을 노렸다.
벽우진의 무형지기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거기에 무지막지한 검강이 폭격처럼 쏟아져 내렸기에 벽우진도 마찬가지로 두 손을 멈추지 남고 움직였다.
퍼퍼퍼펑!
벽우진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곤륜파의 절기에 허공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두 사람 다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정면으로 상대방의 공세를 맞받아쳤던 것이다.
“꺼어억!”
거기에 벽우진은 받았던 빚도 갚아주는 걸 잊지 않았다.
처음 일검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썰려나간 것처럼 벽우진 역시 태청신권(太淸神拳)으로 천년마교의 마인들을 밀어버렸다.
무지막지한 권강으로 마인들을 압살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거대한 망치에 찍힌 것처럼 곤죽이 되어 즉사한 교도들의 모습에 섭무천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신은 무림맹도들을 죽여도 되지만 벽우진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섭무천이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쿠그그긍!
한데 단순히 마음을 고쳐먹은 것뿐인데도 지축이 뒤흔들렸다.
섭무천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어마어마한 마기에 대지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쉬이이익!
이윽고 한 줄기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아니, 천지를 갈라버렸다.
섭무천의 검격이 천하를 양분했던 것이다.
스릉.
소리 없이 공간을 베어오는 무시무시한 참격에 무상검이 저절로 뽑혀져 나왔다.
벽우진의 의지를 받들어 잡히기 좋은 위치로 떠올랐던 것이다.
쩌어어엉!
부드럽게 무상검을 잡은 벽우진이 가볍게 휘둘렀다.
별다른 초식도 아닌 가벼운 횡 베기를 펼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벌어진 후폭풍은 무시무시했다.
허공 한 가운데서 충돌한 두 기운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던 것이다.
콰르르릉!
땅이 뒤집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지상에서 해일이 일어난 것처럼 땅거죽이 출렁거렸다.
그로 인해 격전이 잠시나마 멈출 정도였다.
쩌엉! 쩌어엉!
그러나 두 사람의 대결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지금까지는 전초전일 뿐이었다는 듯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허공에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무상검으로는 역시 힘들군.’
전신을 난자할 기세로 쏟아지는 섭무천의 검격을 일일이 튕겨내며 벽우진이 미간을 좁혔다.
분명 무상검은 희대의 명검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검이었지만 섭무천이 들고 있는 마검은 상고무림 시대 때부터 천하에 이름이 드높았던 병기였다.
흔히 말하는 신병이기가 바로 섭무천이 신마검(神魔劍)이었다.
마검이되 신검이기도 한.
끼기긱!
초대 천마가 사용했던 검으로도 유명했던 신마검은 마물이자 요물이었다.
그렇기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무상검이 비명을 질렀다.
병장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벽우진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무상검을 보호하기가 쉽지 않았다.
웅웅웅웅!
거기다 무상검 역시 비명을 지르기는 해도 대결을 피하지는 않았다.
영성이 확실히 잡히지는 않았지만 무상검 역시 배율석이 장인으로서의 혼을 불태우며 만든 명검이었다.
그런 만큼 무상검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괴롭더라도 어떻게든 버텨내며 신마검과 싸웠다.
‘네 의지가 그렇다면야.’
섭무천은 인간의 끝에 다다른 무인이었다.
극마(極魔)를 넘어 초마(超魔)를 이룬 무인이 섭무천이었다.
그렇기에 벽우진도 섭무천을 경시할 수 없었다.
구마야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섭무천은 달랐다.
쩌어어억!
흘려보낸 섭무천의 검강이 대지를 갈랐다.
길이만 해도 오십 장이 훌쩍 넘는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위력으로 따지자면 벽우진 역시 만만치 않았다.
뻐어어엉!
벽우진의 일검도 섭무천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벽우진은 무형지기 뿐만 아니라 손발 역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단순히 검공을 펼치는 것을 넘어 권장각도 연거푸 뿌렸다.
“흡!”
현란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벽우진의 공세에 섭무천 역시 천마신공 상의 무공을 모조리 펼쳤다.
그러지 않고는 벽우진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가장 놀라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지?’
섭무천의 눈동자에 한줄기 의심이 짙게 떠올랐다.
천마신공은 만마(萬魔)를 아우르고 지배하는 무공이었다.
상극이라는 불문과 도문의 무공조차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그 사실을 소림무제를 때려잡음으로써 만천하에 증명하기도 했고.
한데 벽우진에게만큼은 이상하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듯했다.
‘어째서지?’
신마검을 거칠게 휘두르며 섭무천이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마기에 점차 짓눌려야 하는 벽우진은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 점이 섭무천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까아아앙!
게다가 벽우진의 검술 역시 만만치 않았다.
초대 천마와도 비견되는 그의 검을 벽우진은 어렵지 않게 막아냈던 것이다.
심지어 그러면서도 무형지기와 권장각도 물 흐르듯이 펼쳤다.
단순히 검공을 펼치는 것을 지나 만류귀종의 경지를 몸으로 재현하는 듯했다.
‘곤륜파에 이 정도의 무공이 있다고? 그럴 리가!’
섭무천의 신마검이 벽우진의 전신요혈을 노렸다.
하나같이 치명적인 사혈만을 노리고서 찔러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개수가 수십 개가 넘었다.
일검에 수십 개의 검영이 뿌려졌던 것이다.
터터터텅!
하지만 벽우진도 순순히 당하지 않았다.
놀라운 검예를 선보이며 그의 검격을 모조리 튕겨냈던 것이다.
“흐음!”
그 모습이 섭무천은 너무나 못마땅했다.
빌빌 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휘청거려야 할 벽우진이 너무나 멀쩡히 자신의 공세를 받아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고작 해야 곤륜파의 무공으로 말이다.
‘심지어 내가 나섰는데도 말이지.’
놀람은 잠시뿐이고 이내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재미있는 장난감도 결국에는 질리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원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싫증이 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인간의 극에 이른 섭무천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슬슬 보여줄 때도 되었지. 교주의 압도적인 무력을 말이야.’
지금만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감히 두 사람의 영역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자칫 휘말리기라도 하면 뼈도 못 추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구마조차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장로들도 감히 엄두를 못 내는 게 두 사람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콰우우우!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고. 노는 건 이 정도면 되었으니까.”
섭무천의 눈동자가 사라졌다.
검은 동공이 사라지고 흰자위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새카만 어둠이 자리했다.
최강이자 최악의 마공이자 인세의 재앙으로 불리는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펼친 것이었다.
쿠아아아!
동시에 섭무천의 등 뒤에서 사두팔비(四頭八臂)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영혼을 찢어발기는 듯한 괴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 제 98장.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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