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7장. 천년마교의 지배자. -03 >
장정만한 거대한 수강이 벼락같이 섭무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지축이 뒤흔들렸다.
웅혼한 법무의 내력을 가득 머금은 일격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법무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기세를 잡았을 때 몰아붙여야 한다.’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지켜보다가 역으로 당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무리 가벼워 보인다고 하더라도 섭무천은 천년마교의 주인이었다.
오직 힘의 논리만 통하는, 강자존의 세상에서 교주의 자리에 오른 이였다.
그렇기에 법무는 공력을 가일층 끌어 올렸다.
콰콰콰쾅! 꽈아앙!
관음청강수를 시작으로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항마복호장(降魔伏虎掌), 수미불면장(須彌佛面掌), 금강복마권(金剛伏魔圈)이 연이어 펼쳐졌다.
소림사의 자랑인 칠십이종절예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펼쳐졌던 것이다.
그런데 막강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법무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져 갔다.
분명 제대로 두들기고 있는데 손맛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벽을 때리는 느낌이다.’
폭발은 계속해서 일어났지만 정작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한 파육음이나 뼈가 부러지는 소리도 없었다.
그게 법무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 강력한 공격을 날려야 해!’
판단을 내린 법무가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만약 그가 생각하는 게 맞는다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터였다.
그렇기에 법무는 망설이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기회를 날려버리기보다는 최악을 상정하고 싸우는 게 백 번 나았다.
웅웅웅웅!
법무의 전신이 은은한 금광에 휩싸였다.
소림사의 비전절학이자 칠십이종절예 중에서도 최상위 신공이라 할 수 있는 불광대승신공(佛光大乘神功)을 극성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부정하고 사이한 모든 것들을 정화하고 소멸시키는 부처의 기운이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었다.
“이번 것은 좀 쓸 만한데?”
불광대승신공이 흩뿌리는 막대한 기파에 주변을 가득 채웠던 먼지구름이 일시에 밀려났다.
그러자 쑥대밭이 되어 있는 곳에 고고하게 서 있는 섭무천의 모습이 드러났다.
법무의 예상대로 호신강기 안에서 멀쩡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법무가 이를 악물었다.
“하아아압!”
처음 모습 그대로 여전히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서 있는 섭무천을 향해 법무가 땅을 박찼다.
그런데 그 순간 법무가 나눠졌다.
몸이 떠오른 순간 하나였던 법무가 땅에 닿을 즈음에는 아홉 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홉 명은 순식간에 팔방으로 흩어져 섭무천을 포위했다.
“호오. 이게 그 유명한 연대구품(蓮臺九品)인가? 워낙에 익히기가 난해해 대성한 이가 극히 드문 무공이라던데.”
팔짱을 끼고 있던 섭무천이 눈을 빛냈다.
지금까지 펼친 무공은 딱히 특별함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할뿐더러 허상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모두가 법무 본신이었던 것이다.
쌔애애액!
불광대승신공을 일으킨 상태에서 연대구품을 펼치고 거기다 각기 다른 칠십이종절예를 뿌려대는 법무의 모습에 섭무천이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제법 어울려 줄만한 모습이 보였기에 섭무천이 씨익 웃으며 팔짱을 풀었다.
그러나 검을 뽑지는 않았다.
“영광으로 알라고. 천마의 무공을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을 말이야.”
꽈아아아앙!
활짝 펼쳐진 손바닥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지옥의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기운이 한순간에 사방팔방을 잠식해갔던 것이다.
별다른 형태가 없는 그저 단순한 기운일 뿐인데 그를 향해 달려들던 아홉 명의 법무가 하나씩 사라졌다.
사마(邪魔)의 기운과 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불광대승신공을 오로지 힘으로 눌러버린 것이었다.
“크윽!”
분신이 하나둘씩 사라져 갈수록 법무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소림사가 자랑하는 항마의 기운도 극에 이른 마기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치이이익!
섭무천의 장심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하고도 모자라 본신만 남은 법무도 집어삼키려 했다.
상극의 기운 따위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듯이 검은 안개는 집요하고 끈질기게 법무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법무를 휘감고 있던 금광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마기로 인해 빛이 점차 시들어졌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단 말인가···!’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져가는 금광에 법무의 두 눈이 흔들렸다.
강할 거라고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격차가 이 정도로 날 줄은 몰라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어!’
법무가 두 눈에 힘을 줬다.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쿠웅!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일렁이던 금광이 진각과 함께 다시금 맹렬히 타올랐다.
법무의 의지에 따라 불광대승신공 역시 힘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 무인이 그 정도 근성은 있어야지. 더구나 소림사의 방장인데 못난 모습을 보이면 쓰나.”
어금니를 악문 채로 꾸역꾸역 다가오는 법무의 모습에 섭무천이 흡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자고로 무인은 무인다워야 했다.
깨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달려들어야 하는 독기가 있어야 성장도 있는 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잡혀줄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스윽.
뻗고 있던 손을 섭무천은 가볍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일어난 변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의 손짓에 주변을 잠식해 있던 기운이 합쳐지며 다가오는 법무를 후려쳤던 것이다.
짜아악!
찰진 소리와 함께 법무의 승복이 찢겨져 나갔다.
동시에 금광 역시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법무는 갑작스러운 일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꿋꿋하게 섭무천과 거리를 좁혔다.
“아미타불!”
불호와 함께 법무가 재차 진각을 밟았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칠십이종절예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름조차 생소한 온갖 무공들이 쏟아져 나와 주변의 마기를 밀어버렸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오겠단 말이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금광과 강기에 섭무천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폭발적인 기운의 원천이 무엇인지 그는 단번에 파악했던 것이다.
“나와 함께 가시구려!”
선천진기를 불태워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법무가 결연한 얼굴로 섭무천에게 쇄도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손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던 것이다.
더불어 법무의 전신에서 터져 나오는 금광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났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던 구마조차도 법무에게서 흘러나오는 항마의 기운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에이. 그럴 수는 없지. 이제 막 중원에 왔는데.”
온몸에서 금광을 흩뿌리는 법무가 섭무천을 껴안으려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섭무천을 함께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법무만의 생각이었다.
섭무천은 이대로 이승을 하직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콰득!
쫙 펼쳐진 섭무천의 손이 무언가를 움켜잡듯이 쥐어졌다.
그러자 금광에 휩싸인 채로 득달같이 달려들던 법무가 움찔거렸다.
징조도 없이 그의 오른쪽 어깨가 우그러졌던 것이다.
하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콰직!
섭무천의 손이 펴졌다가 조여지기를 반복할수록 법무의 신체 부위가 망가졌다.
반대쪽 어깨, 무릎, 골반 등등이 순식간에 박살나자 법무의 신형이 힘없이 비틀거렸다.
그러나 법무는 그럼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기에 악착같이 섭무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끄흐읍!”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얼굴로 법무가 손을 뻗었다.
이제는 흐릿해진 금광으로 휩싸인 손을 말이다.
“안타깝지만 여기까지다.”
“이, 이렇게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본좌가 이 정도 힘을 썼는데도 내 몸에 닿은 건 구마조차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러니 영광으로 알고 가도록.”
부르르르!
섭무천의 어깨에 닿은 법무의 손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몸에 닿았을 뿐 더 이상 그의 손은 금광에 휩싸여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의 육신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목숨까지 희생하며 모든 걸 쏟아부었음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손 하나 뻗은 것뿐이었다.
그 사실이 법무를 절망에 빠뜨렸다.
막아내려고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반가운 얼굴들이 곧 찾아갈 테니.”
툭.
흐릿하던 안광이 결국 빛을 잃었다.
소림무제라 불리며 중원무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법무가 끝내 숨이 다한 것이었다.
그것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서서 죽은 모습에 무림맹의 진형 곳곳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몇몇은 슬픔도 잠시 현실을 직시했다.
‘맹주께서···.’
그 중 한 명인 제갈현의 동공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하필이면 최악의 결과가 나와서였다.
게다가 제 3자의 시선으로 봤기에 제갈현은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
마제라 불리는 섭무천의 무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말이다.
“으음!”
“허어!”
그 사실을 증명하듯 분위기가 무겁게 침체되어 있었다.
누구 하나 법무의 죽음에 울분을 토하며 달려들지 못했던 것이다.
“총군사님.”
차갑고 묵직한 침묵이 좌중을 짓누를 때 중후한 음성이 제갈현을 불렀다.
그리고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러분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본 제갈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름 아닌 소림사의 팔대호법과 나한승들이 그에게로 걸어왔던 것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무엇을 결심한 듯한 얼굴로 말이다.
“소승들이 나가겠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하지만, 위험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허나 방장님의 시신만큼은 챙기고 싶습니다.”
“혼자 가겠다는 게 아닙니다. 팔대호법 전원이 나설 생각입니다.”
제갈현의 만류에도 노승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시신이라도 제대로 챙기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갈현은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소림사의 팔대호법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도 없었고 말이다.
“이번에는 여덟 명인가? 나는 괜찮으니까 얼마든지 들어와. 협공해도 괜찮으니까 들어와.”
법무를 상대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섭무천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오히려 기대된다는 듯이 방긋 웃으며 손짓했던 것이다.
그러나 팔대호법은 그 모습에도 흥분하지 않았다.
소림사의 방장이자 무림맹주인 법무를 어린아이 다루듯 상대했던 고수가 섭무천이었다.
그렇기에 팔대호법은 흥분하는 대신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부동심을 유지했다.
“우리가 죽더라도 총군사를 탓하는 제자들은 없을 것이오.”
“호법님들 다음에는 저희가 나설 것입니다.”
팔대호법의 뒤에 서 있던 나한승들이 눈을 빛냈다.
강력한 적이 있음에도 그들의 눈동자에서는 한 줄기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으음!”
제갈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무림맹주인 법무도 당한 마당에 팔대호법이라고 해서 결과가 딱히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물론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어 팔대호법을 보낼 수는 없었다.
‘권제께서도, 남궁가주님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다.’
제갈현의 머릿속에 혜량과 남궁진이 떠올랐다.
현재 무림맹에서 법무와 비견될 만한 무인은 몇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구마와의 격돌로 대부분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더욱이 협공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적다.’
< 제 97장. 천년마교의 지배자.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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