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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패선-310화 (310/325)

< 제 96장. 죽음에는 죽음으로. -02 >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기어검은 분명 대단한 경지였다.

하지만 이기어검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고수는 천년마교에도 제법 있었다.

그 역시 이기어곤을 펼칠 수 있었고.

다만 내공 소모가 많아 비효율적이기에 평소에는 펼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수들을 상대할 때는 심리적으로 압박하기에 좋지만 비슷한 실력자를 상대로는 효율이 썩 좋지 않지.’

스스스슥!

곤마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기척을 최소화하면서 감각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벽우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사방에서 치고 박는 소리가 쉴 새 없이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나를 노린 만큼 도망치지는 않았을 터. 흉수를 찾겠다고 청성산까지 홀로 찾아간 자가 날 놔두고 물러났을 리가 없다.’

곤마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그로서는 급할 게 없었다.

오히려 다급한 쪽은 벽우진이었다.

그런 만큼 그는 이 상황을 이용해야 했다.

‘쫓기는 건 패선 쪽이다. 나는 일단 충격부터 해소해야···!’

콰아아아!

곤마의 머리 위에 있던 먼지구름이 사나운 바람에 갈가리 흩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벽우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벽우진은 곤마의 머리 위에 있었던 것이다.

쿠웅!

하지만 곤마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반응하는 것보다 벽우진의 발이 어깨에 닿는 게 조금 더 빨랐다.

“큭!”

천근추라도 사용한 것인지 어깨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무지막지했다.

말 그대로 어깨를 아작 낼 기세로 짓눌렀던 것이다.

그러나 곤마도 만만치 않았다.

자세를 비틀어 벽우진의 발바닥을 흘려내면서 오른손에 든 철곤으로 정강이를 노렸다.

터엉!

하지만 그 수법을 예상했다는 듯이 벽우진은 너무나 가볍게 반대발로 그의 철곤을 차버렸다.

그리고는 벼락같이 반대쪽 어깨도 발꿈치로 찍어버렸다.

“끄윽!”

철곤을 차버린 것과 동시에 어깨를 찍어버리는 공격에 곤마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양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이 절로 구겨졌던 것이다.

한데 그러면서도 곤마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2연격에 무너지기보다는 몸을 빼내면서 반격을 시도했던 것이다.

부우웅!

양쪽 어깨에 일격을 맞았음에도 곤마의 철곤은 묵직했다.

마치 맞은 게 거짓말이라는 듯이 쌍곤은 쉴 새 없이 허공을 가르며 벽우진을 노렸다.

후웅! 후우웅!

칠흑빛 강기가 서린 철곤이 흉흉한 기세로 벽우진의 사혈만을 노리고서 파고들었다.

그러나 날카로우면서도 강맹한 파상공세에도 벽우진의 몸에 닿는 것은 없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닿지 못했던 것이다.

“이익!”

곤마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떠올랐다.

어깨에 맞은 두 방이 생각보다 컸기에 어떻게든 비슷한 상황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벽우진은 좀처럼 그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닿을 듯 닿을 듯하면서도 끝내 닿지 않는 모습에 곤마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이었기에 곤마는 진기를 가일층 끌어 올렸다.

쑤아아앙!

묵빛을 머금었던 철곤이 순간적으로 길어졌다.

철곤을 휘감고 있던 강기가 일순 늘어나며 벽우진에게 파고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반대쪽 철곤이 무수한 변화를 일으켰다.

쿠아아아!

마치 벽우진이 피할 공간 자체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듯이 수많은 곤영(棍影)이 해일처럼 일어났다.

시커먼 곤영이 공간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이번 것은 피할 수 없을 거다!’

고통으로 인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곤마가 형형한 안광을 뿜어댔다.

상대가 요리조리 잘 피한다면 아예 피할 공간 자체를 주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난타전으로 간다면 유리한 쪽은 자신이었다.

아무리 극한으로 육체를 단련했다고 해도 병기를 들고 있는 자신과 맨몸뚱이인 벽우진이 받는 충격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끝장을 내자!’

전광석화처럼 뻗어나간 곤강이 벽우진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후방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곤영의 해일이 공간을 집어삼키며 벽우진을 덮쳐갔다.

터어엉!

곤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너무나 허망하게 튕겨지는 공격에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콰앙! 콰아앙!

손등으로 곤강을 튕겨낸 벽우진은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곤마의 두 번째 공격도 박살냈다.

별다른 초식을 펼치지도 않고 단순히 정권으로만 그의 공격을 깨부쉈다.

“크으읍!”

그러나 곤마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벽우진의 전신을 난타하겠다는 듯이 전력을 다해 쌍곤을 휘둘렀다.

콰앙! 쾅! 콰쾅!

애초에 곤마가 노렸던 대로 난타전 양상으로 싸움이 흘러갔다.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정면의 상대방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상대방의 공격을 맞받아치면서 말이다.

‘충격이 계속 누적되고 있을 터!’

곤마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맺혔다.

아무리 진기로 육신을 강화했다고 해도 내구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그의 무기는 철곤이었다.

거기다 막강한 진기까지 머금고 있는 만큼 벽우진의 내부에는 충격이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을 터였다.

‘검을 버린 게 크나 큰 패착임을 깨닫게 될···.’

곤마의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단순무식하게 주먹질만 하던 벽우진이 갑자기 손을 활짝 펼치며 그의 철곤을 붙잡았던 것이다.

콰드드득!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진기를 가득 머금고 있던 철곤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함께 했던 애병에 잔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슨!”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곤마가 다급히 철곤을 당겼다.

철곤을 보호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회수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반대쪽 철곤으로 벽우진의 손목을 노렸다.

철곤을 움켜잡고 있는 손목을 날려버리려는 것이었다.

덥석!

그러나 반대쪽 철곤 역시 벽우진의 손에 잡혔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던 철곤을 벽우진은 너무나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잡아냈다.

그리고는 똑같이 철곤을 우그러뜨렸다.

“이익!”

순식간에 쌍곤을 붙잡힌 곤마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애병을 잃을 수는 없기에 공력을 있는 대로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잔금이 번져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터어엉!

이윽고 먼저 붙잡혔던 철곤이 산산조각 났다.

끝내 벽우진의 아귀힘과 공력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났던 것이다.

뒤이어 나머지 철곤 역시 쪼개지자 곤마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병기도 병기지만 내력대결에서 그가 속절없이 밀렸다는 걸 뜻했기에 허망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말했지. 쉽게는 안 죽인다고.”

“컥!”

순식간에 쌍곤을 부숴버린 벽우진이 주먹으로 곤마의 양쪽 어깨를 찍어버렸다.

반격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게 두 팔을 망가뜨려버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발악해 봐. 청민이 그랬던 것처럼.”

퍼억!

벽우진의 발이 곤마의 하복부를 강타했다.

단전이 있는 부위를 정확히 가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전을 부수지는 않았다.

“커헉!”

그러나 곤마에게는 단전이 박살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기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양팔이 망가진 상태인데도 단전만은 어떻게든 지켜내겠다는 듯이 뒷걸음질쳤던 것이다.

“왜 물러나지? 청민은 너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남았다. 또한 네놈과 끝까지 맞서 싸웠지. 그런데 네놈은 고작 두 팔이 망가졌을 뿐인데 도망치는 거냐.”

“크으윽!”

대놓고 무시하는 말에 곤마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달리 그의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중이었다.

천년신교의 교도로서, 또한 구마의 일인으로서 당연히 달려들어야 했지만 곤마는 그러지 못했다.

애병이 박살나는 순간부터 그는 깨달았다.

벽우진이 자신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자신이 스스로를 얼마나 과대평가 했는지도.

“비록 무공은 네놈보다 약했을지 모르나 무인으로서 청민은 네놈보다 더 강했다.”

“닥쳐라!”

더 이상의 조롱은 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곤마가 이성을 잃고서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악만 지를 뿐 벽우진에게 달려들지는 못했던 것이다.

스극.

그때 미세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곤마가 신음을 흘렸다.

악을 쓰는 그 순간 소리 소문 없이 무상감이 날아와 그의 오른쪽 발목 인대를 베고 날아갔던 것이다.

“혹시 모르니까.”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날아온 무상검을 회수한 벽우진이 천천히 곤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곤마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던 것이다.

하지만 발목을 다쳤기에 그는 처음과 달리 거리를 많이 벌리지 못했다.

“실망인데. 나는 마인의 근성을 보여주었으면 했는데 말이지. 그래야 때릴 맛이 있지 않겠어?”

무표정한 얼굴로 벽우진이 말했다.

그런데 그게 곤마에게는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

절대 쉽게 죽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무, 물러나야 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곤마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벽우진을 상대하는 건 무모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단 사는 게 먼저였다.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었기에 곤마는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펴보려고 했다.

퍼억!

“눈알 굴리지 마라.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아니까.”

“커헉!”

곤마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다가온 벽우진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강타해서였다.

빠각! 뻑!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간보기였다는 듯이 벽우진은 곤마를 잘근잘근 밟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공력 없이 오로지 육신의 힘으로만 곤마를 두들겼던 것이다.

“고작 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면 안 되지. 청민은 이것보다 더한 상처를 안고서 싸웠는데.”

“제, 제발···!”

“시끄러워.”

곤마의 이빨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싸대기 한 방에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던 것이다.

더불어 입술 역시 터져나갔지만 벽우진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청민이 당한 것 그대로 곤마에게 되돌려주었다.

“으, 어어어···.”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질수록 곤마의 얼굴과 몸뚱이는 넝마가 되어갔다.

그리고 눈빛 역시 흐려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통에 결국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벽우진은 멈추지 않았다.

퍼퍼퍼퍽!

그의 뇌리에 남아 있던 청민의 상처 그대로 곤마의 몸에 되돌려 주었다.

이런다고 한들 청민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벽우진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또 다른 원한을 만든다는 것도.

하지만 벽우진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여길 봐라, 벽우진!”

멀리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그러나 벽우진은 부르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손으로 곤마의 멱살을 붙잡고서 주먹을 날렸다.

이미 모든 걸 놓은 듯 축 늘어져 있는 곤마를 멈추지 않고 두들겨 팼던 것이다.

“멈춰라, 벽우진! 그렇지 않으면 이 놈들이 죽을 것이다!”

“크으윽!”

고함과 함께 고통 가득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꽤나 익숙한 목소리가 말이다.

“나에게는 인질이 네 명이나 있다!”

인질이라는 말에 벽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여전히 한손으로는 곤마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사, 살려주시오!”

“장문인!”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네 명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들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거구를 자랑하던 황보강과 팽무광의 사지는 기이학적으로 뒤틀려 있었고 악진광과 하후건은 굴욕적이게도 권마의 양손에 목이 붙잡혀 있었다.

완벽하게 제압당한 듯 축 늘어진 상태로 말이다.

< 제 96장. 죽음에는 죽음으로. -02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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