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293화 (293/325)

< 제 90장.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04 >

탐천마가주가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매서운 마기가 일어나며 개왕에게 쏘아졌다.

거리가 상당함에도 개왕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변할 정도로 탐천마가주가 뿌리는 마기는 대단했다.

“그 전에 그 쪽이 뒈질지도 모르지.”

“큭큭큭!”

기죽지 않겠다는 듯이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개왕의 모습에 탐천마가주가 조소를 흘렸다.

말은 저렇게 해도 그의 두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볼 수 있어서였다.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할 것 같은데.”

스윽.

그런 개왕의 앞으로 법무가 나섰다.

개왕에게 향하는 탐천마가주의 기세를 그가 가로막아주었던 것이다.

“벽 장문인이야 다르시겠지만.”

법무의 시선이 벽우진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게 벽우진이었다.

통보 아닌 통보 후에 붙잡기도 전에 청성산을 올랐으니까.

하지만 그는 지금의 이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증원군이 없는 건 똑같아. 아니, 지형지물을 생각하면 우리가 유리해.’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게 육대마가였다.

반면에 비록 이쪽은 청성산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청성파의 제자들이 있었다.

거기에 지략이 출중한 제갈현이 함께 하고 있는 만큼 법무는 자신들의 전력이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보타문의 전력도 가세했기에 법무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일단 벽 장문인이 계시니.’

홀로 싸워왔기에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았을까 했는데 적어도 겉모습은 멀쩡해 보였다.

내공 역시 워낙에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일단 각자 한 명씩 맡자고.”

“알겠습니다.”

“예.”

당민호는 홀로 오지 않았다.

사천성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사천당가가 가만히 좌시할 리가 없었고, 그의 곁에는 사천당가의 정예와 가주인 당문경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한 자리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아미타불!”

거기에 아미파의 장문인과 금강신니가 합세했다.

아무래도 가장 강력한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마가주들인 만큼 남은 한 명을 맡기 위해서였다.

“흐흐! 이거 제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는데요?”

“발도 좋지 않으면서. 그나저나 조금 씁쓸한데. 저 쪽은 세대교체가 잘 된 것 같은데 우리는 나나 우진이가 현역에서 뛰고 있으니.”

“그만큼 두 분께서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

앞으로 나선 다섯 명을 보며 네 명의 마가주들이 얼굴을 굳혔다.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앞을 막으니 상당히 부담되었던 것이다.

누구 하나 만만한 이가 없다는 사실에 마가주들은 긴장이 되면서도 심장이 뛰었다.

“안 그래도 소림무제의 실력이 궁금하던 찰나였지.”

“어허!”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보다는 호기심이 불타오르는지 탐천마가주가 선수를 쳤다.

은근슬쩍 법무를 택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챙겨오려 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한 것이다.

“소림무제는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제일 정순할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럼 아미파를 상대하던지.”

“계집년들은 좀 껄끄러워서.”

혈천마가주가 대놓고 얼굴을 구겼다.

선수를 빼앗긴 게 상당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쪽이나 잘 싸우시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독으로 회까닥 갈지도 모르니.”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귀림마가주그 괴소를 머금었다.

독의 명가라 불리는 사천당가라고 하지만 그 역시 귀림마가의 주인이었다.

쉽게는 당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콰아아앙!

그런데 그때 한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을 확 끌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던 것이다.

“다들 잊은 모양인데, 진짜 괴물은 아직 오지도 않았어. 심지어 아직 지치지도 않았지.”

“···패선.”

한쪽 팔이 잘린 채로 심하게 두들겨 맞은 야수마가주가 그들 근처로 날아왔다.

전신이 처참하게 망가진 채로 정신만 겨우 유지한 채 바닥을 나뒹굴었던 것이다.

“끄으으···.”

맷집만 따지면 육대마가주들 중 가장 뛰어난 야수마가주가 힘겹게 신음을 흘리는 모습에 다른 마가주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야수마가주가 이렇게 망가진 모습은 그들도 처음 봐서였다.

“온다는 말도 없이 뭐야?”

“친구가 위험한 곳에 간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당연히 나라도 나서야지.”

“그런 것치고는 인원이 너무 많은데?”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기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제갈현이 대답을 거들었다.

단순히 친분 때문에 병력을 이끌고 온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해가 있을지언정 지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또한 사기도 무시할 수 없었다.

청성파의 제자들이 죽음을 불사하는데 지켜만 본다면 그 누구도 무림맹에 가입하지 않을 터였다.

즉 중원무림의 결집력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게 분명했기에 제갈현으로서는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맞는 일이기도 하고. 피해는 크겠지만···.’

싸움에는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싸움도 있었다.

제갈현에게는 지금의 전투가 바로 그랬다.

“왜들 그렇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상대가 상대이니까. 그런데 네 말마따나 피해가 적을 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뼈 빠지게 싸웠으니까.”

스윽.

벽우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육대마가의 마인들이 움찔거렸다.

단순히 쓰러뜨린 숫자를 넘어 벽우진은 진명마가주에 이어 야수마가주도 쓰러뜨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기에 대부분은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몸을 떨었다.

“그러기에 천천히 가지 그랬어. 바람처럼 쌩하고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알아는 냈고?”

“다들 입이 무거워. 주둥이에 아교라도 발랐는지 묻기만 하면 대답을 안 하네.”

벽우진의 눈초리가 싸늘해졌다.

뒤쪽 경내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이곳만큼은 조용했다.

최고수들이 전부 모여 있기에 누구 하나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콰앙! 쾅!

그리고 전투를 이끄는 이는 다름 아닌 벽우진의 제자들이었다.

서진후, 현주혜와 함께 아이들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있었다.

호법들이 지켜만 보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들 중에 있어서 그런 거 아냐?”

“그럴 지도 모르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순수하게 무위만 따지자면 마가주들 전부 다 청민보다 위에 있었다.

다만 청민의 몸에 남은 상흔을 생각해보면 후보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근데 참 신기해. 말해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꽁꽁 숨겨두는 걸 보면.”

“내 속을 뒤집어 놓고 싶은가 보지.”

“그럼 별 수 없네. 일단 때려잡고 묻는 수밖에. 제 목숨이 걸려 있는데 별 수 있겠어?”

당민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푼수 끼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늘한 한기가 서렸다.

청민의 죽음에 분노한 이는 벽우진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청민과는 인연이 얕지 않기에 충분히 복수를 거론할 자격이 있었다.

타앗!

이윽고 당민호가 땅을 박찼다.

성격이 급한 그답게 느닷없이 쇄도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 뒤로 법무와 당문경, 금강신니와 정은 사태가 몸을 날렸다.

각자 상대를 정하고서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했던 것이다.

“웃차!”

“저희도 가죠.”

거기에 개왕과 제갈현도 가세했다.

마가주들이야 다섯 명이 상대한다지만 육대마가의 정예들이 남아 있었기에 그들을 막기 위해 전투에 참여한 것이다.

콰콰콰쾅!

거기에 현주혜와 보타문의 여검객들도 합세했다.

이곳에서의 결과가 승패를 좌우할 것임을 알기에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사형.”

“애들이 안 나서도 되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복수할 기회는 주어야지요. 가슴에 계속 담아두기만 하면 병이 됩니다.”

“너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지요. 저와 청민 사형이 쌓아온 세월이 얼마인데요.”

벽우진에게 다가온 서진후가 얼굴 가득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아직도 청민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장례까지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근데 대체 왜 말을 안 하는 것일까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속을 뒤집어 놓으려는 거겠지. 어쩌면 진짜 모를 수도 있고.”

“보아하니 마가주들 중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서진후가 날카로운 눈으로 경천동지의 대결을 펼치는 마가주들을 쳐다봤다.

그 역시 비천단을 먹은 후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그럼에도 마가주들하고 비교할 수는 없었다.

평범한 최절정의 경지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꼭 정면으로 싸울 필요는 없지.’

벽우진처럼 절대무쌍의 선봉장처럼 적군을 정면에서 깨부수는 무장형 무인이 있는 반면에 온갖 뒷공작과 계략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지장형 무인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무장보다는 지장에 가깝다는 걸 서진후는 잘 알고 있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다리가 찢어지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니까.’

벽우진을 일별한 서진후의 시선이 소림무제 법무에게로 향했다.

패선이 나타나기 전 중원무림의 최고수 중 한 명으로 꼽혔던 무인답게 법무는 탐천마가주를 연신 몰아붙였다.

육대마가 중 한 곳인 탐천마가의 주인을 상대로 확실한 우위를 점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름 대등한 대결을 펼치는 당민호, 당문경 부자와 달리 아미파 쪽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콰콰콰쾅!

마치 촉수처럼 움직이는 혈천마가주의 공격을 정은 사태와 금상신니는 막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아미파 특유의 마를 굴복시키는 항마의 기운도 혈천마가주를 상대로는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크헉!”

“냄새 나는 백도 놈들에게 당하다니···.”

반대로 다른 곳의 상황은 무림맹 쪽이 우세였다.

특히 검후인 현주혜를 중심으로 한 보타문 여검객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숫자는 적어도 일당백의 활약을 선보였던 것이다.

‘흐름이 좋지 않아.’

그것을 가장 먼저 느낀 천패마가주가 미간을 좁혔다.

눈앞의 적을 상대하기 급급한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아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날 두고서 한눈을 파는 건가!”

“그럴 만 해서.”

“이 눔이!”

당민호의 얼굴이 벌게졌다.

표정도 표정이지만 말투에서도 건방짐이 가득해서였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당민호의 속은 답답했다.

천패마가라는 네 글자가 너무나 잘 어울릴 정도로 천패마가주는 강했다.

쩌어어엉!

분명 그가 쌓아온 세월과 공력이 더 길었을 텐데 밀리는 것은 되레 그였다.

그것도 정면대결에서 밀리는 모습에 당민호가 내심 이를 악물었다.

독강을 아무리 뿌려도 좀처럼 중독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였다.

‘여기서 밀리는 것만큼 쪽팔린 것도 없는데!’

승리도 승리지만 벽우진이 지켜보고 있기에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했다.

그래도 동갑내기 친구인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더욱이 그는 사천당가의 태상가주 아니던가.

‘독황의 이름이 잊혀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친구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사내대장부에게 있어 자존심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걸 알기에 벽우진 역시 도와줄 여력이 있음에도 지켜보고 있는 것이고.

무뚝뚝한 것처럼 보여도 은근히 세심한 걸 알기에 당민호는 가일층 공력을 끌어 올렸다.

“초조한 모양이야? 하긴. 이미 관에 들어갔어도 진즉에 들어갔어야 할 나이인데 이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삭신이 쑤시겠지.”

“초조한 건 네놈이겠지. 아까부터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던데.”

“후후후!”

천패마가주가 짐짓 여유롭게 웃었다.

그러나 속마음은 달랐다.

승기를 잡아가는 혈천마가주와 달리 탐천마가주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방심하지 않는 소림무제는 그 정도로 대단한 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퍼퍼퍼펑!

그때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새로운 이들의 등장에 분위기가 삽시간에 뒤바뀌었던 것이다.

< 제 90장.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04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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