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패선-292화 (292/325)

< 제 90장.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03 >

퍼억! 퍼어억!

야수마가주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그는 지금 비현실적인 상황을 겪고 있었다.

퍼어엉!

묵직한 충격과 함께 그가 뒤로 날아갔다.

벽우진의 발차기를 복부에 허용하고는 그대로 무기력하게 날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벽우진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무상검을 마치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그의 몸을 두드렸다.

“크아아아!”

도검불침의 신체이기에 명검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무상검에 맞아도 생채기가 생기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처보다 자존심에 금이 갔다.

어느 순간 두들겨 맞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만들었던 것이다.

우드득! 우득!

그와 동시에 그의 육체가 변화를 일으켰다.

양손을 흔들어 벽우진과 거리를 벌린 그는 순식간에 야수맹혈마공(野獸猛血魔功)을 극성으로 일으켰다.

그러자 가뜩이나 거구였던 그의 신체가 더더욱 커졌다.

무려 십척이 훌쩍 넘을 정도로 거대해졌던 것이다.

쌔애액!

그런데 거대해진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야수마가주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단순히 빠른 수준을 넘어 무시무시할 정도의 속도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인간이었을 때보다 배는 빨라진 속도에 벽우진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콰앙! 쾅!

상승한 것은 속도뿐만이 아니었다.

언뜻 느껴지는 힘도 배 이상 강해진 듯했다.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손톱에 벽우진의 도복이 갈라졌다.

야수마가주의 공격을 피해내기는 했으나 뒤따르는 날카로운 바람이 그의 도복을 갈라버렸던 것이다.

‘이지가 남아 있나?’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피해내며 벽우진이 미간을 좁혔다.

앞서 상대했던 장로와 달리 야수마가주는 미약하지만 이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뭐, 지금 상황에서는 말도 못할 것 같지만.’

순식간에 커진 몸 때문에 옷은 진즉에 갈가리 찢어졌고 입은 짐승의 주둥이처럼 튀어나왔다.

말 그대로 인간과는 구강구조가 확연히 달랐기에 이지가 있다고 한들 육성을 제대로 낼 것 같지는 않았다.

콰아앙!

벽우진이 살펴보는 중에도 야수마가주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본래부터 두터운 몸 때문에 왠지 모르게 거대한 곰을 연상케 하는 그는 가공할 정도의 속도와 힘으로 벽우진을 압박했다.

한방만 제대로 맞추겠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맹렬한 그의 공격에도 벽우진은 유유히 공격을 피해냈다.

“크오오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회피하는 모습에 야수마가주가 울부짖었다.

한방만 맞추면 죽어라 팰 수 있을 것 같은데 얄미울 정도로 맞지 않아서였다.

“어이. 짜증나는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그따위로 생기면 내가 어떻게 대답을 기대하겠어?”

파아앗!

매서운 기세로 파고들던 야수마가주의 손에서 피가 솟구쳤다.

정확히 손목을 노리고서 벽우진이 검을 뿌린 것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회피했던 게 마치 움직임을 지켜본 것이라는 듯이 벽우진은 너무나 정교하게 야수마가주의 빈틈을 노렸다.

푸아아앗!

기교나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야수마가주와 달리 벽우진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검예를 펼쳤다.

강기마저도 감당해내는 야수마가주의 가죽을 너무나 쉽게 베어버리는 것을 넘어 힘줄도 끊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속도로 야수마가주를 압도하면서 말이다.

“크르르르!”

순식간에 전신이 난자된 자신의 몸뚱이를 야수마가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충격은 다른 마가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다고?”

“아무리 환골탈태를 했다고 해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더 마음에 드는데.”

귀림마가주, 탐천마가주와 달리 혈천마가주는 두 눈을 요요롭게 빛냈다.

보면 볼수록 더욱더 탐이 났던 것이다.

반면에 천패마가주는 조용히 벽우진을 주시하기만 했다.

“위험해 보이는데.”

“뭔 걱정이야. 측근들이 전부 대기 중인데. 위험하다 싶으면 나서겠지.”

혈천마가주의 시선이 야수마가주의 최측근들에게로 향했다.

친위대나 다름없는 그들은 명실상부 야수마가의 최정예였다.

오직 야수마가주의 명령만 듣는 충실한 충복들이기도 했고.

그런 그들이 두 눈을 빛내며 야수마가주와 벽우진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툭.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천패마가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수마가주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처음으로 야수마가주가 뒷걸음질쳤다.

강맹한 공격도, 질긴 가죽도 통하지 않자 본능적으로 물러난 것이다.

“크아아앙!”

“크워오오!”

그 모습에 지켜보던 야수마인들이 달려들었다.

주인의 위기에 격앙되어 몸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과는 참혹했다.

서걱.

야수마가주와 달리 벽우진은 단칼에 그들을 베어냈던 것이다.

일검을 견뎌내지 못하고 푸줏간의 고기들처럼 썰려 나가는 수족들의 모습에 야수마가주가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극도의 공포감에 야수화가 풀린 것이었다.

“이제는 말할 준비가 된 것 같은데 말이지.”

“크르르!”

허리서부터 동강이 난 야수마인 하나가 벽우진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물론 원래의 목적은 발목을 바스러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벽우진의 왼발에 야수마인의 머리통이 터졌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누가 청민을 죽였는지. 넌 그것만 말해주면 돼.”

“흐으읍!”

어느새 수하의 머리통을 짓밟고서 자신의 지척까지 접근한 벽우진의 모습에 야수마가주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부지불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 어디에서도 반격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팔이 잘리고 나서 기세가 확연히 꺾인 느낌이었다.

“말해.”

벽우진의 동공에서 서슬 퍼런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두 다리도 뎅겅 잘라버리겠다는 기세가 완연했다.

그렇기에 야수마가주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대벽검을 죽인 자는···.”

콰아아앙!

야수마가주가 주춤주춤 물러날 때 안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수십, 수백 명의 인기척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느닷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육대마가의 마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뒤쪽에서 공격을 당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으아아아!”

“모두 죽여!”

“사부님의 복수를!”

“네놈들의 피로 청성산을 씻을 것이다!”

벽우진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비밀통로를 통해 경내로 들어온 청성파의 본산제자들과 속가제자들이 그동안 꾹꾹 눌러 놓아야만 했던 울분을 모조리 발산했다.

자신이 죽더라도 마인 한 명만은 반드시 데려가겠다는 듯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마인들조차 순간적으로 기가 질릴 정도였다.

“크아악!”

“컥!”

동귀어진도 마다하지 않는 그 처절한 공세에 마인들이 순간 흔들렸다.

기습과도 같은 공격에 일시적으로 전선이 무너졌던 것이다.

“정신 차리지 못하겠느냐!”

“자리를 지켜라!”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청성파 제자들의 모습에 노마두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당해서 그렇지 청성파 제자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고수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청성산을 습격했을 대부분 죽었고, 지금 날뛰는 이들은 운 좋게 그때 청성산에 없던 이들과 속가제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차분히 상대한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

“개미떼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 봤자 개미떼일 뿐이지!”

그 사실을 증명하듯 당황해하는 것은 잠시뿐이었다.

이내 마인들은 무서운 기세로 청성파의 제자들을 압살했다.

벽우진에게야 약자들이지 다른 무인들한테는 아니었다.

“같이 죽자!”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갈 것이니라!”

하지만 현격한 수준차이에도 악에 바친 청성파의 제자들은 달려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마교도들을 몰아낼 기회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

비밀통로라는 패를 사용한 만큼 어떻게 해서든 이번 기회를 살려야 했다.

‘복수는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새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청성파의 장로가 흉흉한 안광을 흩뿌렸다.

그런 그의 노안(老眼)에는 복수심에 짙게 서려 있었다.

“우아아아!”

천년마교의 악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제 올라온 것인지 사방팔방에서 지원군이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사천당가가 있었다.

“허어. 자식 놈들인가. 내가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군.”

“···독황.”

선두에서 기세등등하게 올라오는 당민호를 본 천패마가주가 얼굴을 굳혔다.

만천독황이라면 그라고 해도 감히 경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전대 정마대전을 직접 겪은 인물이기도 했고.

“아미타불!”

게다가 사천당가는 홀로 오지 않았다.

아미파, 제갈세가, 거기에 소림사까지 합세했다.

“으음!”

증식하듯 순식간에 늘어나는 적들의 병력에 다른 마가주들의 표정 역시 심상치 않았다.

아직 전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달려들 줄은 다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전력이 구축된 상태에서 붙을 줄 알았는데 먼저 칼을 뽑자 마가주들은 하나같이 의외라는 얼굴로 중원무림 쪽 병력을 내려다봤다.

“왜들 굳어있어? 다들 심심하다고 하지 않았어? 근질근질해서 죽겠다며? 오히려 달려드는 걸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하긴. 생각지도 못한 등장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못 감당할 정도는 아니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전부 모였다면 진명마가가 빠진 육대마가가 상대하기에는 조금 벅찼을 터였다.

하지만 소림사와 아미파, 사천당가라면 충분히 해볼 만 했다.

더구나 지금의 소림사는 예전의 소림사가 아니었다.

‘청성파는 신경도 쓸 것 없고.’

최정예가 썰려 나간 청성파는 이제 더 이상 구대문파의 한 곳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지금 보이는 모습 역시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기에 천패마가주는 충분히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잊으면 쓰나.”

스스슥!

그러나 청성산에 오른 전력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서진후를 비롯해 현주혜와 보타문의 여검객들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나타난 마당에 자신들이 굳이 숨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은마각 놈들이 일을 안 하는 모양인데.”

“이 정도 병력이 다가올 동안 뭐한 거야?”

주변을 새카맣게 뒤덮는 병력에 탐천마가주와 귀림마가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둘도 아니고 천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접근했음에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툭. 투둑.

“하고 싶어도 못했을 게야. 이번에는 우리도 제대로 일을 했거든.”

“···개왕.”

탐천마가주의 두 눈이 번뜩였다.

복면을 쓴 수급을 내던지는 이가 누구인지는 모를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의외로 은마각의 마인들이 죽었음에도 놀란 기색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즉 이제 너희들만 남았다는 소리지. 잔영비마대가 오기 전에 모든 상황은 종결될 거야.”

“마치 다 이긴 것처럼 말하는군.”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리고 우리와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럼 눈알부터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숫자가 전부가 아니지. 네놈들이 늘 말하듯이 말이야.”

탐천마가주의 부리부리한 안광을 마주하면서도 개왕은 기죽지 않았다.

그 역시 왕의 칭호를 가진 무인이자 개방이라는 거대방파의 수장이었다.

“팔다리가 뽑히고도 그딴 소리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 제 90장.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03 > 끝

ⓒ 윤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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